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95
094화
[드디어 여러분이 기다리시던 결과가 나왔습니다! 길었던 바이브의 우승자는!]““와아아아!“”
[이정현 씨가 발표해 주실 겁니다!]““우우~!“”
한 번에 발표를 하지 않고 기대감만 고조시키는 지미의 장난에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다 금세 야유를 퍼부었다. 이런 분위기를 클래식 공연장에서 볼 수 있을 줄이야.
그나저나 나에게 수상자 발표를 맡길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후보 중의 두 명과 관련이 된 사람에게 수상을 맡기는 일은 없으니까.
캐서린은 스포트라이트에 둘러싸인 나의 손에 수상자의 이름이 쓰인 봉투를 쥐여 주며 눈을 바라보고 말했다.
“사실 이 프로그램 기획안을 올렸을 때, 위에서는 워낙 반대가 심해 실제로 제작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못했었어요. 이정현 씨가 없었으면 만들 수 없었을 겁니다. 그 점은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마왕 물리치러 가는 용사한테 말을 해 주는 듯 마지막 말을 속삭이는 캐서린.
하지만 눈빛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마도 지난주의 방송 사고 때문이겠지.
살짝 등 떠밀리는 기분으로 무대 위에 올라가는 계단에 오르자, 열네 살 때 처음으로 올라갔던 무대가 생각났다.
입어야 하는 무대 복장이 없어서 빌린 옷을 입고, 제목만 듣고 무대에 올라가 기억나는 대로 노래를 불렀던 날.
그날은 집의 월세가 밀려 급하게 돈이 필요했던 어머니가 보험을 팔러 나갔기에, 항상 그림을 그리시던 집의 거실에 보이지 않았던 날이 반복되고 있던 때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느낌이 묘하다.
그때 내가 올라갔던 무대를 바라보던 사람은 겨우 백 명 정도라 관객들의 얼굴을 모두 알아볼 수 있었는데, 지금 이곳에서는 멀리 있는 관객들의 얼굴은 형태조차 알아볼 수가 없다.
이곳에 있는 4만 개의 눈이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농구 코트가 있던 자리에 무대를 만들고 그 외곽에 의자를 더 놓았다. 그러니 그보다 더 많은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겠지.
처음 무대에 올랐던 때는 사는 게 급급해서 주변을 둘러볼 여유를 가질 수도 없었는데, 지금은 내가 주인공이 아닌 무대에도 올라올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지난번 뉴욕의 센트럴파크에서는 이런 기분을 느끼지 못했었다. 아마도 야외였기 때문이 아닐까. 콘서트홀의 무대에 마지막으로 올랐던 날이 아니라 처음 올랐던 날이 떠오른 것이 이상하기는 하지만, 이 이상 잡생각을 해서는 곤란하다.
무대 위로 올라온 내게 진행자인 지미가 말을 걸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셨습니까, 이정현 씨? 혹시 성악 부문이 없어서 아쉽지는 않으셨나요?] [제가 이런 말씀 드리기는 좀 이상한 것 같지만, 성악은 연습을 아무리 많이 해도 타고나야 하는 부분이 큽니다. 좋은 목소리를 타고난 사람이 연습을 많이 하는 사람을 이길 수 있는 클래식에서 유일하게 불공평한 분야죠.]성악은 연습으로 커버할 수 있는 영역보다 아닌 부분이 더 많다.
흔히들 성량과 음색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데 이 두 가지는 타고 나야 한다.
폐활량을 타고난 사람이 호흡이 더 좋을 수밖에 없고, 목소리가 좋은 사람의 노래가 더 좋을 수밖에 없지.
연습으로 익힐 수 있는 것은 창법과 호흡법인데 그걸 타고난 사람은 아무런 연습을 하지 않더라도, 연습만 하는 사람보다 나은 소리를 낼 수 있으니까.
[클래식에서 유일하게 불공평한 분야라…. 그 분야에서 가장 많은 우승 기록을 가지신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니까 자랑 같기도 한데요? 하하.] [자랑할 것도 없죠. 하하하. 지금 제가 성악으로 밥 벌어 먹고사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하하하!“”
나와 지미가 나누는 만담에 객석에 앉은 관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나저나 오늘 우승자는 예상하셨던 것과 동일한가요?] [저도 아직 수상자를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봉투를 받은 다음에 바로 올라왔거든요.]나는 손에 있는 봉투를 들어 지미에게 흔들어 보여주었다.
[그러면 이정현 씨! 발표해 주시죠!]그의 말에 봉투에 들어 있는 카드를 꺼냈다. 분위기는 그래미의 시상식처럼 뜨겁게 달아올라 마치 축제를 방불케 했다.
무대의 바로 앞에 모여 있는 참가자 여덟 명의 얼굴이 보인다.
콩쿠르를 이미 여러 번 경험했던 경험자들은 그다지 긴장한 것 같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런 형태의 경연에 처음 참여한 김시욱과 엘레나는 완전히 얼어붙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분명히 본인이 우승할 실력이 아니라며 즐기겠다고 말했던 김시욱까지도 긴장한 기색이 보였다.
그리고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고 있지만, 의자에 앉아 있는 무릎이 떨려오는 것이 보이는 창샤오위.
경연에 참여한 모든 사람의 얼굴들을 확인하고 나는 다시 카드를 보며 입을 열었다.
[발표하겠습니다! 클래식 음악 경연 프로그램의 최종 우승자는!]여기까지 말하고 주변을 한번 둘러보았다.
수만 명이 들어찬 스테이플스 센터에 들려 오는 사람들의 숨소리. 긴장했는지 누군가는 침을 삼키고 있었다.
이런 맛에 시상식에서 발표자들이 뜸을 들이는구나!
[축하드립니다! 엘레나 자야치키프스카!]엘레나와 눈을 마주치며 마이크에 대고 우승자를 발표하자, 그녀의 커다란 눈이 더 커졌다.
입을 벌린 채 두 손으로 가리며 놀라서 움직이질 못하는 엘레나.
그리고 그녀의 자리 옆에서 고개를 숙인 창샤오위.
본선이 시작되기 전 나를 노려보며 말을 걸던 그 모습이 이제는 생각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안 나오는 거지?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엘레나를 바라보며 카드에 쓰인 글을 읽었다.
[엘레나 씨는 총투표자 2만 5천 명 중 8,645표를 획득하여 최종 우승자가 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와아아아!“”
“엘레나가 될 줄 알았다니까!”
“왜 창샤오위가 아니지? 그 화려한 초절기교에 점수를 더 높게 줘야 하는 것 아닌가?”
“현장에 모인 사람들이 직접 투표했다고 하잖아. 왜냐고 물어볼 필요도 없지.”
“그럼 2위는 누구야?”
1위를 발표하자 조용하던 객석은 서로 자신들이 생각하던 결과를 말하며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카드에 적혀 있던 것은 딱 우승자인 엘레나에 대한 정보뿐이었다. 2위도 3위도 전혀 나와 있질 않았다.
김시욱이 가까이 다가가 몇 마디를 하고 나서야 놀라서 멈췄던 엘레나는 자리에서 움직여, 무대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와 나에게 다가왔다.
와락!
[왜, 왜 이래요….]“잠깐만 이러고 있을게요….”
엘레나는 무대 위로 올라오자마자 아무런 예고도 없이 나를 껴안았다.
순간 당황한 나는 마이크가 켜져 있다는 것도 잊고 왜 이러냐는 말을 해 버렸다.
우는 거야 뭐야?
울음소리도 전혀 없고 눈물이 묻는 것 같은 느낌도 전혀 들지 않았다.
길게만 느껴졌던 시간이 지나고 나를 안고 있던 엘레나가 떨어졌을 때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녀를 알게 된 후 처음 보는 너무도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 그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지고 말았다.
“뭐야? 왜 달려가서 안는 거야? 설마 사귀는 건 아니겠지?”
“그런 거였어?”
아무래도 내일 이상한 소문이 날 것만 같은 웅성거림이 신경 쓰인다.
나는 보조 연출이 엘레나에게 다가와 마이크를 건네주는 모습을 보고 나서 말을 했다.
[누가 오해하면 어쩌려고 이러세요….]다행히 내 마이크의 볼륨을 아직 내려놓지는 않은 모양. 내가 하는 말이 고스란히 스피커를 통해 공연장 내부에 울렸다. 이제 오해하는 사람은 없겠지?
[죄송해요. 너무 감격해서 저도 모르게 그만….]어지간한 모델보다 큰 키의 엘레나가 내 눈앞에서 조금 풀이 죽은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1위를 해서 기뻐야만 하는 시간에 이렇게 풀이 죽어 버리다니 조금 받아 줄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조금 밀려왔지만 그래도 서로를 위해서 이런 것에는 선을 그어 놓는 게 좋지.
미디어라는 하이에나들이 언제 어떤 글을 쓸지 모르니까.
[우승 축하드립니다!]깜짝이야….
소리 없이 다가온 지미 카멜이 다가와 정말 심장이 떨어질 것만 같은 큰 목소리로 외쳤다.
[감사합니다!] [세계 메이저 콩쿠르를 우승하고 온 다른 경쟁자를 제치고 우승을 차지하신 소감을 말씀해 주시겠어요?] [솔직히 이렇게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 했어요. 그래서 수상 소감도 준비하질 못했네요. 기쁩니다. 정말 기뻐요. 엄마, 언니 정말 고마워. 그리고 저를 정말 많이 가르쳐 주신 이정현 선생님께도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어요!]조금도 버벅대지 않고 소감을 말하는 엘레나.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하더니 할 말은 모조리 하고 있었다.
개뿔도 가르쳐 준 것이 없는 것 같은데 많이 가르쳐 주었다고 말을 하면 내가 뭐라도 가르쳐 준 것 같잖아. 나는 그저 잔소리를 많이 했을 뿐이다. 어색한 부분과 좀 더 나은 방향이 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었다는 것이 피아노에 아무런 테크닉이 없는 내게 할 수 있는 말인가 싶다.
[소감을 준비할 수 있도록 우승할 것이라고 미리 말씀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아시죠? 저도 몰랐어요.] [괜찮아요!]““아하하하!“”
지미가 가볍게 하는 농담에 관객석이 웃음바다에 빠져 버렸다. 그는 객석의 웃음이 멈추고 소강상태가 되었을 무렵 다시 엘레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상금 1백만 달러를 받으시게 되었는데요, 혹시 어디에 사용하실 건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솔직히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일단은 좋은 피아노를 갖고 싶네요.]우승 소감을 말하며 싱긋 웃어 보이는 엘레나의 미소가 너무 아름다워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만 같았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꽃가루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그리고 꽃잎처럼 아름다운 그녀는 우승자의 앙코르 연주를 시작했다.
***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방송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 대문 앞에 창샤오위가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은 어색한 상황.
얼굴을 맞댄 것은 단 둘뿐이지만, 양쪽의 경호원과 매니저가 모두 함께 있어 거의 열 명의 인원이 집의 대문 앞에서 대치했다.
“…인정할 수 없어요….”
“인정하고 자시고 할 게 없잖아요. 이미 우승자는 엘레나로 정해졌는데. 게다가 우승하면 내가 뭐라도 해 준다고 한 것도 아니잖아요. 지난번에 제가 미디어를 통해 했던 말 기억 안 나요? 쇼팽 콩쿠르 우승하고 오라니까요.”
분하다는 얼굴을 하고 그렇게 말을 해 봤자 소용없다. 결투하는 것도 아니고 승패를 인정하고 자시고 할 게 없잖아.
“…….”
“내가 그쪽을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그쪽도 신경 꺼요.”
그리고 내가 대문을 열어 들어가려고 하는 순간 샤오위는 내 등에 대고 말했다.
“…제 어깨 위에는 10억 인민들이 있단 말이에요! 당신을 끌어내리고 내가 최고가 되어야 해!”
어처구니가 없는 소리가 들려 와서 고개를 살짝 뒤로 돌려 힐끗 보며 나는 말했다.
“당신 어깨 위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당신이 책임져야 하는 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당신 자신밖에 없다고. 10억 인민? 웃기지도 않네. 나랑 분야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나보다 나은 걸 증명할 건데? 내가 피아노를 칠 생각은 없으니까 지금이라도 성악으로 변경하시든지.”
“…으으…. 으아아!”
주저앉아 울부짖는 샤오위를 뒤로 하고 나는 집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아침에 방송을 시작하기 전 나를 찾아왔던 그 모습이 아니었다.
남의 집 대문 앞에서 대체 뭐 하는 짓이야 저게.
어쩌면 2년 뒤에 있을 쇼팽 콩쿠르의 수상자 명단에서 그녀의 이름을 찾아보는 것은 어려운 일일지도….
“그런데 당신은 여기에 어떻게 들어온 거예요?”
집 안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있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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