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96
095화
바이브의 마지막 방송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시에스타와 함께 일정을 떠났던 마리가 있었다.
그런데 왜 회사가 아니라 집에 있는 거지?
“왜 여기에 있냐니…. 조금 서운하네요. 스케줄이 끝나서 보고하려고 왔습니다. 회사에 갔더니 오늘 안 나오실 거라는 이야기를 들어서요.”
“아….”
크리스가 보고를 집에서 하라고 했었나?
“여기는 어떻게 들어온 거예요?”
“예전에 에릭에게서 받았던 열쇠를 제가 갖고 있거든요.”
아…. 예전에 파티 가자고 할 때 열쇠 압수한 걸 마리에게 줬었구나. 나는 빼앗는 것만 생각하고 그걸 다른 사람에게 줄 생각을 하질 않았었는데.
회사에 나가지 않는 것이 익숙해져서 집에서 쉬고 있었더니, 회사 사람이 집으로 찾아왔다.
“아…. 그 열쇠….”
“유럽 쪽 일정까지 마무리가 되어서 돌아왔다는 말씀을 드리려고요. 이제 시에스타는 신보 준비에 들어갑니다.”
시에스타에서도 신경을 끄고 살았었다. 뭐 처음 한두 곡 띄워 줬으면 된 거 아닌가? 아이돌 그룹의 인지도를 올리는 것에는 초반이 가장 중요하니까.
일단 인지도를 갖기만 하면 그다음 순서는 그리 어렵지 않다. 적당히 그룹의 색깔에 맞춰 음반을 발매하기만 하면 유지하는 것에는 큰 무리가 없다.
“네, 지난 몇 달 동안 수고하셨어요.”
“지난번에 이야기하신 대로 이제는 에릭을 맡아도 될까요? 다른 매니저들의 교육은 확실하게 해 놓았습니다.”
“원래 에릭을 맡고 싶다고 하셨죠? 그렇게 하도록 하세요. 다만 다음에 시에스타를 맡을 사람들에게는 확실하게 인수인계 부탁드릴게요.”
“이미 끝냈습니다.”
마리는 품에서 작은 수첩 같은 것을 꺼내 펼쳐 보였다.
그 안에는 시에스타 멤버들의 취향이라든지 어떻게 케어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저 정도면 충분하지. 그 이상 바라는 것은 정말 욕심일 것이다.
그렇지만 마리는 너무 꼼꼼해서 내 말문을 막아 버리는 게 조금 흠이랄까…?
대화를 하다 보면 조금의 틈도 없어서 조금 무서울 때가 있다.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혹시라도 마리가 낳는 아이는 조금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겠습니다. 에릭도 새 앨범으로 바쁠 테니까 그다음에는 투어 계획만 세우면 되겠네요.”
“공연을 준비하라는 말씀이신가요? 알겠습니다. 영국과 미국 위주로 계획을 한번 세워 보도록 하겠습니다.”
대기업 출신이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원래 성격이 저런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참 뭐라고 할 말이 없다. 이미 에릭의 케어 계획까지 완벽하게 세워 놓았나 보다.
이런 사람이 경영을 맡아 주면 좋으련만, 경영은 싫고 매니저만 하고 싶어 하니 어쩔 수 없지.
마리는 에릭에게 가겠다고 하며, 별다른 말도 없이 바로 나가 버렸다. 열쇠는 주고 가지…?
바이브가 진행되는 중에도 집에는 계속 돌아왔었지만, 내일 방송국으로 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너무 좋다.
오랜만에 다음날에 대한 부담 없이 편하게 잠들 수 있는 밤이었다.
***
“…….”
“…뭐야…. 누구야…?”
진짜 편하게 자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흔들어서 깨웠다.
아 진짜 정말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단 말이야!
“…리. 일어나.”
“…크리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이곳에 올 사람은 크리스밖에 없다.
바이브가 진행되는 기간에 매일 나와 함께 움직이던 경호원들도 모두 휴가를 가 버렸으니까.
“몇 시야?”
“점심시간이 지났어. 자더라도 밥은 먹고 자야지.”
아니, 사람이 바쁘거나 하면 한 끼는 굶고 그럴 수 있는 거지, 시간마다 모두 먹고살 수는 없잖아.
그나저나 잠들었던 시간은 평소랑 다를 바가 없었는데 오랜만에 늦잠을 자 버렸다.
영국에서 목수였던 때는 비가 오는 날 늦잠을 자곤 했었는데, 삶이 전보다 조금 바빠진 것 같기도 하다.
하품하며 침대에서 일어나 아래층에 있는 식당으로 내려가는데 잠이 아직 덜 깨서인지 계단에서 다리를 삐끗하며 발목을 접질렸다.
쿵-
“아오….”
“왜? 무슨 일 있어?”
조금 절뚝이며 식당으로 들어가는 나의 모습을 보고 크리스는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는데, 계단에서 내려오다가 삐끗했다고 말하면 부끄러울 것 같아서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아냐 괜찮아. 메뉴는 뭐야?”
크리스가 만든 음식은 정말 맛이 없어서, 주로 외부에서 사 온 음식을 세팅하는 것까지만 담당했다. 영국식 가정식이 모두 맛이 없는 건 아닐 텐데 어떻게 크리스가 손을 대면 한결같이 맛이 없는 건지….
“특별한 건 아니고 그냥 치킨이야.”
“아아. 치킨.”
치킨을 먹을 때마다 한국 생각이 났었는데. 아무래도 한국의 치킨이 가장 맛있으니까. 그건 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공감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의 치킨은 짜고 기름기가 많아서 1인 1닭을 하기에는 양이 좀 많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물론 사용하는 닭의 사이즈가 큰 것도 있지만.
그래서 나는 영국이나 미국의 치킨은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왜? 다른 거 먹고 싶어?”
“아냐. 먹을게. 탄산음료는?”
“요즘에 탄산 너무 많이 마시는 것 같은데….”
“엄마도 아니고 내 걱정 좀 그만해. 우리 엄마도 그 정도는 아니라고.”
못이기는 척 탄산음료를 꺼내오는 크리스의 모습이 점점 어머니를 닮아가는 것 같다.
“아. 깜박할 뻔했다!”
“뭘?”
“몇 시간 전에 어머니께 전화 왔었어.”
“응? 갑자기 왜 전화를 하셨지?”
“모르겠어. 급한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일어나면 전화해 달라고 하신 걸 보면.”
한국과 이곳의 시차는 열여섯 시간. 점심이 다 된 지금은 새벽 네 시다. 지금 전화를 거는 건 무리인 것 같다.
희한한 일이다. 어머니께 전화를 거는 일은 거의 내가 하는 일이었고, 어머니가 먼저 나에게 전화를 거는 일은 거의 없었다.
무슨 일이 났나?
그렇게 치킨을 먹고 저녁까지 빈둥거리다 생각나서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네, 전화하셨었다면서요?”
[응, 별일 없지?]“저는 잘 지내요. 거기는 좀 어때요?”
[현아. 한국에 한 번 들어와야 할 것 같아.]뜬금없이 한국에 들어와야 할 것 같다는 어머니의 말에 속으로 조금 놀랐다.
내가 어디에 머무르고 있다 이야기해도 아무런 상관하지 않고 돌아오라는 말도 말은 하신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네 큰누나, 결혼 날짜 잡았다.]큰누나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었는데, 드디어 결혼을 하는구나.
그냥 남들이 다 남자친구가 있다고 하니까 발끈해서 자신도 있다고 말한 것인 줄 알았었는데, 현실에 실제로 존재했었던 사람이었나 보다.
나와 여덟 살 차이가 나는 큰누나의 나이는 이제 서른여덟. 결혼하기에는 조금 늦은 나이라고 볼 수도 있는 나이.
요즘에는 보통 서른 무렵에 결혼하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으니까.
그렇게 보자면 수원이가 결혼을 참 일찍 한 케이스네. 서른이 되기 전에 이미 애까지 낳았으니.
“누나들 성격이 별로라 평생 못할 것 같았는데, 하긴 하네. 그래서 언제 가면 돼요?”
[걔가 성격은 별로라도 얼굴은 좀 되잖니. 엄마 닮아서. 아무튼 3월 19일 토요일이야. 아직 한 달 조금 넘게 여유는 있어. 그래도 네가 워낙 바쁘니까 미리 말해 줘야 할 것 같아서.]뭔가 수긍하기 어려운 말이 섞여 있지만 나는 애써 무시하고 내가 할 말만 했다.
“…괜찮아요. 당분간은 한가하니까. 3월 19일 기억해 둘게요.”
가끔 어머니와 통화를 하기는 했어도, 별일이 있느냐 없다 이 정도의 대화만 오갔었는데….
큰누나의 남자친구 얼굴을 한 번도 보질 못했는데, 결혼한다고 하니 조금 기분이 이상하다.
***
“크리스에게 들었는데, 넉 달이나 회사를 비우셨으면서 또 어딜 가신다고요?”
정말 오랜만에 회사에 들어와 누나의 결혼식 때문에 일정을 정리하는데, 갑자기 들이닥친 안젤리나가 나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왜 내 사생활은 이렇게 만인에게 공개가 되는 건지…. 이제는 기자들이 나를 따라다니지 않아서 망정이지, 아마 지금 기자들이 회사 직원들에게 접촉했다면 내가 치과 약속을 잡더라도 기사로 나갔을 거다.
내 눈앞에서 자신이 몹시 화가 나 있음을 어필하는 안젤리나. 그녀는 미친 듯이 일만 하고 살았는지 그 예쁜 눈가에 다크서클이 진하게 진 모습이었다.
“누나가 결혼을 한다고 해서요. 가족 일이니까 어쩔 수 없죠.”
나는 세상의 그 무엇보다 가족을 소중하게 대하는 서구권에서 가장 잘 통하는 최고의 핑계를 댔다.
가족에게 일이 있다고 말을 하면 대부분의 일에서 용서를 받을 수 있다. 치트키지.
“저 작업실에 틀어박혀서 작곡만 계속하고 있는 건 아시죠…? 잊은 건 아니죠?”
“알죠. 알아요. 지금 눈 밑의 다크서클도 그걸 말해 주는 것 같네요. 그리고 결과물도 제가 가끔 손봐 줬잖아요. 모를 리가 없죠. 쉬엄쉬엄해요. 몸 상할라.”
내 말을 들은 안젤리나가 손가락으로 눈 밑을 가렸다.
“그런 것 말고요! 저도 휴가 가고 싶어요….”
“가면 되죠. 휴가 2주도 넘게 쓸 수 있잖아요. 휴가 가겠다고 말하고 쓰면 되는데 그걸 왜 나에게 말해요?”
“아! 진짜! 제가 휴가 간다고 말해야 하는 사람이 사장님이잖아요!”
아. 내가 직속 상관이구나. 크리스가 나한테 붙여 준다고 했었지.
다른 직원들의 상관은 대부분 크리스와 마리가 되지만, 내게 이렇게 말할 일반 직원은 안젤리나뿐이었다.
혹시나 크리스나 마리가 휴가를 간다고 한다고 해도 나에게 말을 하겠지만, 마리는 휴가를 안 갈 것 같은 분위기라….
최근 회사에 나오질 않아서 얼굴을 마주하는 일이 없다 보니, 그런 사소한 것들은 잊을 수밖에.
그나저나 내 앞에서는 그렇게 수줍어하던 애가 작업실에 혼자 틀어박혀서 한두 달 있더니 성격이 괄괄해졌다. 아닌가? 원래 이런 성격이었는데 새침한 척했던 걸까?
순간 버럭대는 소리에 당황해서 멍하니 있었더니, 오히려 안젤리나가 더 깜짝 놀라며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앗! 아니! 죄송해요. 매일 매일 작업만 하다 보니 너무 스트레스가 쌓여서….”
“…오늘 퇴근하고 바로 휴가 다녀오세요. 바쁜 일도 없잖아요. 이제 바빠지는 건 매니지 팀이니까, 마음 편하게 휴가 다녀오세요.”
에릭은 이미 새로운 앨범을 들고 빌보드 상단을 때려 넣었고, 시에스타의 새 싱글 작업을 거의 마무리한 것으로 알고 있으니 그것만 끝내면 크게 바쁜 일은 없다.
최종 결과물들은 이번에는 내가 일일이 다 체크했지만, 내가 손을 대기 전에도 꽤 질이 좋은 편이었기에 다음에는 크게 손댈 일이 없을 것으로 기대했다.
해야 할 일 중에 남은 것은 그래미 시상식에 참가하는 것뿐인데, 지난번 올해의 앨범 수상자라 안 갈 수 없어서 일단은 참석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만들었던 곡들은 노미네이트가 되질 않아서 구경만 하다 올 생각이었다.
“저도 사장님 갈 때 따라갈래요.”
“따라? 어딜?”
“저도 사장님이 태어난 나라에 가 보고 싶어요!”
이건 뭔 개뼈다귀 같은 소리야. 나라가 나를 낳았냐? 우리 어머니가 낳았지.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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