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99
098화
뜬금없이 중매라니 이게 무슨 일이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결혼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해 본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 혼자 남아 힘들어하시던 어머니만 기억나는데, 이렇게 갑자기 내게 결혼할 나이가 되었다고 말한다.
밖에 나가서 사람 좀 만나라는 어머니의 성화에 결국 집 밖으로 나왔지만, 아는 사람이 없어서 만날 사람이 수원이밖에 없었다.
그렇게 경호원 두 명까지 총 네 명이 함께 갈 수 있는 곳이 많이 없었기에, 우리는 싸구려 호텔 방을 잡고 술을 마셨다.
“아니, 갑자기 결혼하라는 게 말이 되냐? 아직 서른밖에 안 되었는데?”
“야. 네 앞에 있는 사람은 딸도 있어. 난 우리 딸 보는 낙에 산다.”
딸바보인 김수원은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말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결혼은 인생의 늪이니 뭐니 하면서 ‘너는 결혼 늦게 해라’ 이런 말을 하던 놈이 갑자기 태세 전환을 하고 빨리 결혼하라고 하다니.
“지난번에는 결혼하지 말라며. 왜 이랬다저랬다 하냐, 술 취했냐?”
“난, 너 대신 사장 역할 하던 아가씨랑 사귀는 줄 알았지. 안 그랬으면 회사 이름까지 그 여자 이름으로 했겠냐는 생각이었어.”
설마 크리스와 내가 그런 사이라고 오해를 하고 있었을 줄이야.
“전혀 그런 사이 아니다.”
“지금이야 그런 걸 알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걸? 매일 붙어 다녔잖아. 같이 살기까지 하고.”
하긴 젊은 남녀가 같이 산다고 생각을 하면 사람들이 그런 오해를 할 법도 하다.
서로 사랑해서가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 같이 지냈던 것뿐이지만,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또 다를 수도 있으니까.
“잠깐만.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라는 거잖아?”
“그럴걸? 뉴스에 나와도 신문에 나와도 항상 옆에서 같이 있는 모습이 나왔으니까.”
헐.
설마 내가 크리스 혼삿길을 막은 건가? 이건 한번 확인해 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급하게 전화를 걸어 보았다.
크리스가 혹시나 나 때문에 연애를 못 하고 있는 건가 싶었던 나는 본인에게 확인했다. 행여나 다른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아무도 못 만나고 있다고 하면 내 잘못처럼 여겨질 수도 있으니까.
[나 남자친구 있는데?]“그렇지? 다행이네. 수원이를 만났는데 사람들이 전부 우리가 사귀거나 부부인 줄 안다고 이야기하더라고. 그래서 물어봤지.”
[아…. 그건 맞아. 그렇게 생각하더라고.]아니,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데 대체 너는 누구랑 어떻게 만난 거냐.
얘도 다른 의미로 굉장하다. 나랑 매일 붙어 있는데 다른 사람을 만날 시간이 있었단 말이야?
세상이 이렇게 불공평하니 더욱더 바쁘게 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가 아파서 그런 것 아니다. 절대로.
그나마 크리스가 싱글이었다면, 내가 그동안 바빠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으로 버틸 수 있었을 것 같았는데.
안타깝게도 남자친구를 사귀는 상태였다니 더 괴롭혀 주고 싶었다.
“젠장. 남들 다 연애한다니까 갑자기 외로워지는 것 같잖아!”
“임마,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야. 하지만 딸은 다르지. 딸은 축복이라고!”
제대로 딸바보 인증을 하는 김수원이 술에 취했는지 멈추지도 않고 딸 자랑만 하는 밤이었다.
***
[얼마 전 열애설에 휩싸였던 세계적인 음악가 이정현의 상대로 지목되었던 안젤리나 던슨으로부터 공식적인 답변이 나왔습니다.바로 둘은 아무런 관계도 아니며 이정현에게는 사귀는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였습니다.
LA 현지에서 김대기 기자가 보내드립니다.
얼마 전 한국에 있는 한 호텔에 이정현과 함께 방문하던 사진으로 열애설이 나왔던 당사자인 안젤리나 던슨. 그녀는 현지 시각으로 오늘 낮, 기자 회견을 열어 공식 입장을 말했습니다.
– 이정현 씨와 저는 아무런 관계도 아니며 회사 동료일 뿐입니다. 현재 저뿐만 아니라 그도 만나는 사람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이정현의 연애사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공식적인 입장 발표 자체를 피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에 따라 많은 사람이 항상 함께 다니는 매니저와 연인 관계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었지만, 이것 역시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그의 열애설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그가 공식적으로 현재 연애하는 사람이 없다고 알려지는 것 역시 처음 있는 일입니다.
LA에서 김대기였습니다.]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자 시도했던 안젤리나의 기자 회견.
이는 사생활을 전혀 알 수 없었기에 베일에 싸여 있는 인물이었던 정현이 만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기자 회견이었다.
이 기자 회견은 큰 파문을 불러왔다. 아무도 알 수 없었던 정현의 사생활이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되었기 때문이었다.
결혼이 임박했다는 기사를 올리던 각국의 일간지는 싱글이라는 정정 기사를 올렸고, 이정현에게 조금이라도 연이 닿을 수 있는 사람들은 그에게 중매를 서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결혼이라는 것으로 현재 음악계를 대표하는 정현과 엮일 수 있다면, 최소 다음 몇 세기 동안 음악사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알버트 랭커스터는 굉장히 운이 좋은 편이었다. 안젤리나의 기자 회견을 듣고 움직이기 시작한 다른 사람들보다 한발 앞서, 더 빠르게 이정현에게 중매를 주선할 수 있었으니까.
이는 그가 영국 정보국의 수장이었기에 이미 알고 있었지만, 혹시나 크리스와 몰래 연애하는 관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차마 확인하지 못하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그런 그가 정현에게 소개해 주고자 하는 대상은 손녀인 메건.
소개팅을 주선하기로 했던 알버트는 그렇게 먼저 정현에게 허락을 구한 뒤 자신의 손녀 메건에게 말했다.
어쨌거나 영국의 귀족 사회는 여전히 중매로 결혼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에, 중매 자체에는 큰 거부감이 없었던 메건.
하지만 그녀의 걱정은 중매 자체가 아니었다.
“할아버님은 정말 이정현 경이 저랑 결혼할 것 같다고 생각하세요?”
“양쪽 집안 모두의 경사가 아니겠느냐. 너도 학교를 졸업하고 음악에 벽을 느꼈다고 하니 배울 수 있는 점도 많을 거고. 이정현 경과도 이야기가 다 되었으니 그가 곧 영국에 돌아오면 한번 만나 보기나 하거라.”
물론 정현이 중매를 받겠다고 흔쾌히 허락한 것이 아니라, 너무 간곡하게 말하는 알버트를 향해 한번 만나는 보겠다고 대답했던 것이었다.
그런 할아버지의 일방적인 통보에 메건은 답답한 마음이 앞섰다.
“결혼이 무슨 학교 입학하는 건가요. 배우려고 하게. 제가 대관식 때 찍어 놓은 그의 영상으로 여전히 매일 자극받으면서 작업을 하고 있지만, 제가 느끼기에 이정현 경은 여자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에요. 저와 함께 작업할 때도 저에게 눈길 한번 안 준 사람이라고요”
“오, 메건. 그런 말 하지 말아라. 이 세상에 여자에게 관심 없는 남자는 없단다.”
정현이 자신의 외모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은, 예쁘다는 소리만 듣고 자라 나름 외모에 자신이 있던 메건에게 조금은 상처가 되었던 일이었다.
메건이 걱정을 하는 이유는 정현이 중매 후에 거절할 것을 우려한 것이었다.
중매 후에 거절을 당하면, 무언가 거절한 것에 심각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여겨지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만날 확률이 매우 희박해질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일반적으로 귀족 집안 자녀의 중매는 일생에 단 한 번뿐. 중매에 실패하면 그 이후로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위해 일반적인 연애 결혼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이는 귀족 집안에서는 굉장히 수치스러운 일로, 집안에서 버린 자식 외에는 모두 중매 결혼을 했다.
부푼 마음을 끌어안은 알버트와 불안한 마음으로 밤을 새운 메건. 그렇게 랭커스터 공작가의 저녁은 깊어갔다.
***
영국에서 입헌 군주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논의는 항상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입헌 군주제 폐지를 투표까지 몰아붙였을 때, 반대의 목소리가 더 컸기 때문에 아직 유지할 수 있었던 것뿐.
국민들이 입헌 군주제 폐지를 반대했던 이유는 왕실의 이야기가 국민들에게는 현실에 펼쳐진 드라마처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과거 사고로 사망했던 다이애나 왕세자빈을 사람들이 그렇게 사랑했던 이유도, 그녀와 왕세자의 러브스토리가 현실에 존재하는 신데렐라 이야기인 것처럼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왕가의 사람과 일반인의 알콩달콩한 연애 이야기.
비록 사람들이 내는 세금 수천억 원이 왕실을 유지하는 데에 쓰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왕가의 사람들이 왕가의 이야기를 워낙에 좋아했기에 유지할 수 있었다.
명목은 전통을 유지한다는 것이었지만.
이런 현상은 일반인이라고 볼 수 있는 정현과 왕가의 방파이긴 하지만, 그래도 왕가의 일원인 메건에게까지 이어졌다.
기존에도 여러 번 함께 있던 모습을 보였던 두 사람이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크리스의 존재 덕분에 전혀 오해를 사지 않았었다.
하지만 크리스와도 아무런 사이가 아니라는 안젤리나의 기자 회견 덕에, 메건과의 러브 스토리를 기대하는 언론의 부채질이 시작되었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벌써 둘의 드라마를 기대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싱글이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갑자기 왕가야?”
“원래 둘이 친했었대. 그 대관식 다큐멘터리 봐도 둘이 같이 있는 모습이 나오잖아.”
“그때까지만 해도 메건은 미성년자 아니었나?”
“아닐걸. 왕실 음악원 학생이라고 했었으니까, 미성년자는 아니었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둘의 이야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부풀려질 대로 부풀려져 메건의 임신설까지 돌았다.
“아이를 가졌다던데?”
“아이가 생겨서 외부에는 중매 서는 것처럼 포장한다는 소문이야.”
확실하게 둘이 결혼을 전제로 만난다는 소문이 생기기도 전에 벌써 아이를 가졌고, 둘이 만난다는 것은 그것을 가리기 위한 구실일 뿐이라는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알버트는 조금 난감해졌다. 둘이 만날 거라는 이야기를 언론에 뿌린 것이 알버트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저 둘이 공식적인 커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기정사실처럼 만들고 싶었던 것뿐이었는데, 알버트의 언질을 받은 언론이 기대감과 여러 가지 추측을 덧붙여 둘을 혼인 신고만 하면 될 정도로 이야기를 진행해 버렸다.
가쉽을 좋아하는 영국 언론에서 이런 기사가 나올 때까지 일주일의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게다가 실제로는 공주의 직위를 갖고 있지 않은 메건도 할아버지인 알버트와 그녀의 아버지가 사망할 경우, 랭커스터 공작부인이라는 직위를 얻게 되며 왕위 계승 순위가 크게 상승하기에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물론 이런 기사를 보게 된 본인에게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지만.
“할아버님! 뉴스 보셨어요?”
“무슨 뉴스?”
언론에 불을 붙이고 휘발유를 부어 버린 알버트는 시치미를 떼며 아무것도 모르는 척 대답했다.
“제가 임신했다고 하잖아요!”
“옛날 같았으면 아이를 낳아도 셋은 낳았을 나이 아니겠니?”
“저 이제 스물넷이라고요!”
작년에 왕실 음악원을 졸업하며 이제 스물넷의 나이가 된 메건.
아직 어린 그녀에게 아이를 갖는 일은 정말 큰 일이었고, 외부에 그런 소문이 돈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는 만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영국 귀족 사교계의 사람들은 다른 것보다 명예를 중시했기 때문에.
“그러니까, 이번 만남에서 적극적으로 나가 이정현 경의 마음을 잘 휘어잡아 보렴. 그러면 뉴스 기사가 헛소문이라는 이야기도 없어질 테니.”
오히려 뉴스 기사들이 헛소문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메건을 향해 말하는 알버트의 파란 눈이 빛났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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