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00
100화
모든 준비물이 갖춰졌다.
릴 데크와 릴 테이프.
그리고 당시 규격에 그대로 호환되는 마이크까지.
스튜디오는 현시점에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 현대식 시설을 갖춘 스튜디오로 구했다.
그런데 그 스튜디오라는 곳이.
“아드님, 이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군요.”
마찬가지로 디마와 인연이 닿은 곳인 모양이었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중년.
그가 훌훌 웃으며 디마에게 말을 건넸다.
“여기 안 오신지도 조금 된 것 같은데.”
“이제 학교에 다니니까요.”
“여전히 아버님과는 서먹서먹하시고요?”
“안 만나고 살아요.”
“그럼 오늘 오신 건 비밀로 해야겠군요.”
무슨 관계지.
새삼스럽게 느끼는데, 이 디마라는 사람에게는 비밀이 꽤 많은 것 같다.
평범한 집안이 아닌 것 같기는 했지만 까면 깔수록 양파라고나 할까.
‘이렇게 나이 지긋한 중년한테 아드님 소리 들을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 같은데.’
하물며 여기는 딱 봐도 호화롭기 짝이 없는 스튜디오.
스튜디오 [기본].
인터넷에서 소개 문구를 봤는데, 그 역사가 20세기부터 시작된다고 하였다.
궁금하다.
몹시 궁금하다.
생각해 보니 인제 와서 딱히 비밀로 할 것도 없기에, 대놓고 물어보기로 했다.
“아버지가 좀 유명한 사람인가 봐요?”
“요한 군 아버님은 유명하죠.”
디마에게 물어본 건데, 스튜디오 사장님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한국 음향인 협회의 회장이니까요.”
“…….”
한국 음향인 협회.
생각보다 거창한 이름이 대뜸 튀어나와 버렸다.
‘아, 여기서 출생의 비밀이?’
은근히 감탄하는 참이었다.
이번에는 디마가 눈을 천천히 깜빡이더니 입을 열었다.
“더 궁금한 거 있으면 지금 물어보세요. 어지간한 건 다 말해 줄 테니까.”
이 사람도 캐릭터 참 특이하다.
원래 이런 가정사는 은근히 숨기다가 나중에야 털어놓는 게 정성 아닌가.
홍윤서가 추천한 웹소설에서는 늘 그렇던데.
예외가 없던데.
‘뭐, 나야 호기심이 풀리면 좋지만.’
민감한 가족사는 안 물어보는 게 예의라서 참던 와중이었는데 잘 됐다.
“음, 그러면요.”
나는 고민하다가 물었다.
“가족이랑 사이가 안 좋으신 것 같던데. 그건 왜 그래요?”
“아버지는 저를 해외로 보내고 싶어 하셨는데, 제가 싫다고 했거든요.”
“집으로 돌아오라고 말하는 건요?”
“집 나와서 작업실에서 혼자 사는 거 때문에 그래요. 허락 안 받았거든요. 생활비도 안 보내 주면서.”
“형이랑 사이가 안 좋은 건요.”
“저희 형은 부모님 말씀 잘 따르는 효자라서요. 제가 멍청해 보이는 거죠.”
시원시원하네.
물어보는 즉시 답이 빠릿하게 튀어나온다.
“이렇게 쉽게 알려 줘도 돼요?”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튀어나와서 물어본 순간이었다.
“그럼 숨겨야 하나?”
“보통은 숨기죠. 부끄러워서라도.”
“굳이.”
디마는 오히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부끄러운 일이 아닌데 왜 숨겨야 하죠.”
처음부터 부끄러워서 숨긴 게 아니라, 그냥 안 물어봐서 말을 안 했던 거구나.
본인이 그렇다면 굳이 더 캐물을 것도 없겠다.
‘자기 자신을 안 불쌍하게 여긴다는데, 다른 사람이 불쌍하게 대할 수는 없지.’
그건 동정도 뭣도 아니다.
그냥 오지랖이지.
생각이 이쯤 닿았을 때 디마가 스튜디오 사장을 바라보며 외쳤다.
“아저씨, 지금 바로 시작할게요.”
“예, 천천히 하십시오.”
* * *
공요한의 아버지는 뭐라고 해야 할까.
한국 음악계의 역사 그 자체라고 불러도 무방할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어려서부터 엘리트 교육이 심했는데, 공요한은 부모의 기대를 다른 부분으로 배신할 때가 잦았다.
[아빠랑 싸웠어요.]그럴 때마다 찾아오던 게 이 스튜디오.
스튜디오 [기본].
이곳의 사장인 탁임기는 공요한을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드님은 한국 어디를 가도 마음이 편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음향업계는 좁다.
딱 두 다리만 걸치면 한국의 모든 음향업계 종사자와 그대로 연결이 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그렇기에 음향업계인협회의 회장인 그의 아버지의 영향력을 피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도망치듯 한예원에 입학했지만, 그곳 또한 그의 형제가 교수로 활동하고 있으니 온전한 자유를 느끼기는 어려운 곳.
그런 공요한은 언제나 소원이 있다며 말하고는 했다.
[저만의 방식으로 성공할 거예요.]아버지가 그를 위해 준비한 방식이 아닌, 자기만의 방식으로 성공하겠다는 것.
[제 사람을 제가 찾아내서 제 이름으로 뜰 겁니다. 아버지랑은 상관 없이요.]말은 좋지만 그게 쉬울 리가.
탁임기 사장은 그런 공요한을 안타깝게 여길 때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광경을 보면 공요한의 말이 마냥 뜬구름은 아니었나 보다.
“바다새야, 작은 바다새야, 너는 무엇을 찾아 날개를 퍼덕여 이 먼바다까지 떠나왔니. 수표 위를 적시는 뱃고동 소리가 널 유혹했니.”
김한영이라고 하였던가.
확실히 그 실력이 걸출하기는 하였다.
‘놀랍군.’
탁임기 또한 공요한의 행적을 좇다 보니 그에 대해서도 조금은 알아보았다.
음악을 시작한 게 아직 1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고 했지.
하지만 그의 발전은 탁임기 사장 그로서도 일찍이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실력이 빠르게 느는 사람은 많지.’
음악을 하다 보면 두 가지 부류가 있었다.
그중 첫 번째가 빠르게 느는 사람.
무언가를 배우려고 손만 대면 남들의 족히 몇 배는 되는 속도로 빠르게 발전한다.
천재 소리를 많이 듣는 부류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발에 채일 만큼 널렸다.’
가장 흔한 부류이기도 하였다.
당장 발성이 그러했다.
태어날 때부터 모든 걸 갖추고 태어나, 보컬 강사의 입에서 따로 가르칠 게 없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던가.
정말로 중요한 건 후자였다.
‘멀리 가는 사람이라.’
멀리 가는 사람.
시속 100km로 달리지 않더라도, 결국에는 지구 한 바퀴를 돌고야 마는 그런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눈앞의 사람은 그 둘을 함께 갖춘 듯했다.
“후후.”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버렸다.
아날로그 레코딩이라.
아주 먼 이름이다.
그것이 이 업계에서 점점 사장된 것이, 벌써 20년 가까이 되었던가.
경력이 오래된 탁임기 그조차도 처음 일을 시작했던 때나 잠깐 봤던 것이었다.
그런데 저 아날로그 레코딩이라는 게 말 그대로 사장된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그건 바로, 아날로그가 아날로그이기에 태생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약점 때문이었다.
‘소리를 부분적으로 수정하며 진행하기가 쉽지 않지.’
디지털과는 다르다.
즉각적인 수정과 피드백이 불가능하여, 한 번의 녹음에도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가 들어가기 마련.
그렇기에 아날로그 레코딩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능력이 있었다.
그게 바로.
실수하지 않을 것.
단 한 번의 실수조차 치명적이라는 것이었다.
‘디지털이었다면 실수 취급조차 못 받았을 것이, 아날로그에서는 통째로 폐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정도의 문제가 되어 버리기 마련.’
같은 실수라도 그 무게감이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르다.
왜, 어느 밴드는 앨범 녹음하면서 아날로그 원테이크를 고집하다가 테이프값만 천만 원을 태웠다고 하지 않았나.
그 탓에 실수 한 번 하면 주먹다짐이었다나.
‘깨끗한 새 릴 테이프로 녹음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는 미신까지 있었지.’
그렇기에 아날로그에는 연주자의 확신이 필요했다.
언제나 최선, 최상의 연주를 끄집어낼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면 시도조차 못 해 볼 게 아날로그 레코딩.
자잘한 마이크의 사용법 따위는 부수적인 문제라고 말해도 좋았다.
그런데.
저 김한영이라는 사람은 그 본질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다.
‘아날로그 레코딩을 경험해 본 적도 없을 텐데 저만 한 수준으로 능숙하게 해내다니.’
천재다.
저건 천재가 맞았다.
알 만큼 알기 때문에 보이는 천재성이 보석처럼 반짝였다.
아니, 반짝인다고 말하기에도 부족했다.
찬란하게 빛을 뿜어냈다.
도저히 가릴 수 없을 정도로 터져 나오는 빛.
그것이 저 작은 부스 안에서 귀를 어지럽혔다.
‘어디서 저런 괴물이 나왔는가.’
20년 가까이 이 업계에 몸을 바쳐 왔다.
하지만 저런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있다고 해 봐야 극소수.
혹은 이미 오래전에 완성되어 하늘을 훨훨 날고 있는 사람들이었지, 신인이 저렇게 해낸다는 건 본 적도 없었다.
“하늘아, 넓은 하늘아, 나는 어느 손에 나침반을 쥐고 떠나야 할까. 내 돛을 밀어주는 바람의 이름을 말해 주렴.”
그 노랫소리를 듣고 있기를 한참.
탁임기는 실소를 터뜨리며 생각했다.
‘아드님이 해냈군.’
조만간 보기 좋은 하극상이 펼쳐질지도 모르겠다.
자, 이번 녹음은 완벽했다.
이대로 진행하면 되겠군.
……이라고 생각한 찰나였다.
“다시요.”
디마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외쳤다.
“또?”
“2절 초반에 텐션이 풀렸어요.”
그 순간 탁임기의 머리에 어질어질한 기운이 감돌았다.
분명 완벽했는데.
적어도 그의 귀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는 녹음이었다.
아니, 그냥 문제가 없는 게 아니지.
엔지니어 10명을 데려다 놓으면 특별히 트집 잡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섞인 게 아닌 이상에야 10명 모두가 통과시킬 녹음.
그런데 저걸 떨어뜨리다니.
“그래요? 까비, 그럼 어쩔 수 없지.”
심지어 김한영 저 사람은 뭔가.
저 말에 일말의 반박조차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다시 리테이크를 하는 모습이라니.
아니다.
원래 공요한의 귀가 어릴 때부터 특출나게 좋지 않았나.
뭔가 잡아낸 거겠지.
그렇게 다시 시작된 녹음.
그다음 연주 또한 완벽하기 짝이 없었다.
‘드디어 끝이군.’
이라고 생각한 찰나.
디마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눈길로 말했다.
“다시요.”
“이번에는 어디에요?”
“중간에 나의 바다야 하는 부분이요. 거기에 일부러 숨소리 섞었죠? 아까 했던 방식이 더 나았어요.”
“흠.”
“이대로면 오늘은 집에 못 들어가겠네요. 짜장면 시킬까요?”
“집에 우육면 컵라면 사 놨는데.”
“나중에 드세요.”
경악스러운 말이었다.
탁임기는 재차 반복된 일에 눈을 깜빡이며 생각했다.
‘대체 얼마나 잘 만들려는 거지?’
그의 귀에 안 들릴 정도면, 일반인들도 구분을 못 할 텐데.
대체 어디까지 완성도를 끌어 올리려고.
그리고.
이 대답의 정답은 디마가 가지고 있었다.
‘아직 테이프가 한참 남았네.’
보유한 테이프 물량이 전부 다 너덜너덜해질 때까지였다.
애초에 녹음 퀄리티 하나만 보자면 계속 괜찮았다. 지금은 최대한 많은 샘플을 확보하는 게 목적일 뿐.
‘좋은 결과물이 나오겠어.’
* * *
녹음이 끝났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엔지니어의 시간.
[필요하면 연락할게요.]디마는 짧은 한마디를 남기고는 다시금 작업실에 틀어박혔다.
‘아날로그 레코딩이라 믹싱도 금방 끝낼 줄 알았는데.’
원래 아날로그는 녹음 시간이 길어서 그렇지, 믹싱에 들어가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짧지 않나.
대체 뭘 어떻게 만지려고.
듣기로는 녹음한 음원들을 하나하나 만져서 좋은 소리만 추출해 짜깁기할 생각이라고 하던데.
‘물어볼까.’
그 결과물을 예상해 보기를 잠시.
‘에이, 모르겠다.’
나는 고개를 저어서 털어 냈다.
내 알 바 아니다.
연주자의 역할이 끝났으니, 지금부터는 기술자에게 맡기면 그만이다.
서로의 일은 각자가 잘 알 터.
괜히 물어보고 끼어들고 그랬다가는 업무에 지장만 생길 게 분명하다.
나도 괜한 걸 알면 참견하고 싶어지겠지.
‘어설프게 알면 아는 척하고 싶어지는 걸 우매함의 봉우리라고 했나.’
디마의 일은 디마에게 온전히 맡겨야겠다.
나는 그런 생각으로, 그간 밀렸던 일들을 하나하나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얼마나 목타게 기다렸는지 아세요?”
그중 하나가 맥스 무비와의 영상 촬영.
“시청자님들이 2편 언제 나오냐고 난리였어요. 이러다가 노 젓기도 전에 물부터 다 빠지겠습니다. 어서 진행하죠!”
그리고 방송.
“미-하. 오늘은 제가 신곡 작업 관련해서 조금 썰을 풀려고 하는데요.”
그리고 또 기획.
“희범아, 슬슬 다음 콘텐츠를 준비할 때가 온 것 같다.”
“예를 들면?”
“시청자들이랑 같이 감상회를 하나 열어 볼까 하는데. 흠, 시청차들을 우리한테 부르는 게 아니라, 우리가 찾아가 보는 건 어떨까.”
“찾아가는 감상회라. 학교 공연에 찾아가서 깜짝 공연을 한다거나?”
고희범의 입에서 그럴듯한 의견이 나왔다.
“그거지.”
“아, 그럼 막 병원에서 노래 불러 줘도 되겠다. 결혼식장에 찾아가서 불러도 되겠고. 이거 은근 재밌겠는데.”
“잘하면 그걸 그대로 콘텐츠로 만들 수도 있겠네.”
오랫동안 새 콘텐츠 이야기가 없었던 만큼, 둑이 무너진 듯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또 학교 시험공부.
“흠, 어째서 국어국문학과생인 내가 일본사를 공부해야 하지?”
내 질문에 성민아가 또박또박 답했다.
“현대 어휘는 유럽에서 나온 말이 일본에서 번역되고, 그게 한자어의 형태로 한국에 넘어온 게 많으니까.”
“응애, 나 애기 학부생 어려운 말 몰라.”
“……그 이상한 말투는 뭐야, 희범이한테 배웠어?”
“어떻게 알았어?”
“네가 이상한 말 하면 다 희범이한테 옮은 거길래.”
“말문이 막히면 이렇게 말하라던데.”
“하지 마. 안 어울려.”
“네.”
그 외에도 할 일은 많았다.
정말 많고도 많았다.
그동안 참 오랫동안 신곡 제작에 빠져 있었구나 싶을 정도로.
하지만.
아무리 멀어 보이는 달도 보름이 되면 찬다고, 기다림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Dim.A: 다 만들었어요.] [Dim.A: 한 번 들어보고 감상 주세요.] [항해_수정본_최종_파이널(진짜).mp3]결국에는 완성본이 도착했고.
그 결과물은.
‘이 맛에 기다리지.’
기다릴 가치가 충분했다.
‘이건 공개해도 되겠네.’
30년 전의 흑역사를 덮어씌울 날이 왔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