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08
108화
기말고사가 끝났다.
날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던 공부가 끝나고, 종강이 찾아왔다는 말과도 같았다.
“비바 라 비다.”
짧게나마 부르르 떨고 있는데, 고희범이 헛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했다.
“많이 기쁜가 보다.”
“안 기쁠 수가 없지. 시험이 끝났는데.”
몇 주를 책과 기 싸움을 펼친 끝에 이기고야 말았다.
‘망할 오픈북.’
흔히 오픈북이라고 하면 책을 펼치고 시험을 보니 편하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실상은 책을 보면서 풀어도 어려워서 오픈북.
그럼에도 결국 넘어섰다.
이 뒤에 보상처럼 찾아온 감정을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그래, 나는 지금 성장감을 느꼈다.
‘이게 성장이구나.’
음악이야 원래 잘하는 거니까 잘하더라도 그게 좀 미묘하다.
200에서 10을 성장한들 큰 체감은 없다고나 할까.
하지만 공부는 다르다.
10에서 10만큼만 성장해도 2배다.
압도적인 성장감 앞에서 쾌감이 척추를 타고 짜르르 올라왔다.
“언제는 공부하기 싫다고 난리더니.”
“그야 시험 기간에는 방송에 집중하기 어려우니까.”
“그럼 조금 대충하지.”
“대학생인데 그럴 수는 없지.”
대학교 생활도 내가 재밌어서, 좋아해서 하는 것이다.
음악이란 결국 경험에서 비롯되는 것.
나는 이 사실을 잘 알기에, 대학교에서 쌓는 경험 또한 훗날 좋은 음악으로 다시 태어나리라는 것 또한 알았다.
‘지금 생활 하루하루가 내 음악의 양분이 되겠지.’
그러니 할 수 있으면 최선을 다해서 누리고 싶은 게 내 심정이었다.
“대단하다. 대단해.”
어느새 같은 책상에 앉는 게 당연해진 성민아가 웃음을 터뜨렸다.
“너는 뭐 하나 꽂히면 뭐든 죽을 만큼 파고들더라. 진짜 지치지도 않나. 그냥 적당히 잘하면 됐지. 과 수석이라도 먹게?”
반쯤 농담조로 나온 그녀의 말에 나는 손가락을 내밀며 말했다.
“백척간두 진일보.”
“그게 뭔데?”
“뭐든 끝까지 했을 것 같을 때 한 걸음 더 나아간다는 말이야.”
“그러니까 그게 왜.”
아리송한 표정을 지은 그녀에게 한 마디를 더 던졌다.
“한계까지 가다 보면 또 다음 한계가 보이거든. 아니지, 오히려 뭐든 한계라고 생각했던 곳까지 가 봐야 보이는 다음 한계가 있어.”
“그래, 백척간두든 백두혈통이든 너 잘하고 있으니까 뭐라고 할 수도 없고. 됐어.”
성민아는 더 말하기 피곤하다는 듯 짐을 정리하며 말했다.
“가서 밥이나 먹자. 학교 앞에 덮밥집 하나 생겼더라. 줄 서기 싫으면 오픈 시간 맞춰서 가야 돼.”
“먹고 바로 작업실 가자.”
“……이런 날에는 하루만 좀 쉬면 안 될까?”
“그래, 쉬어야지. 작업실 가서.”
“너 잘났다.”
“감사.”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였다.
‘음?’
갑자기 깨달은 건데, 어쩐지 옆자리에 앉은 고희범이 조용했다.
평소 그 누구보다도 시끄러운 게 그 아닌가.
곡식을 씹듯 하찮은 말을 쏟아 내고 있어야 할 그가 핸드폰을 손에 쥔 채 말이 없었다.
‘뭐지?’
시험 조진 걸 깨달았나.
그래서 충격에 빠진 건가.
이상하다 싶어서 그를 바라본 순간이었다.
“크아악!”
고희범이 괴상한 비명을 지르더니 말했다.
“야! 방송국 PD가 일정만 알려 주면 지금 당장이라도 찾아오겠다는데?”
확실히 놀랄 만한 말이었다.
PD가 찾아오는구나.
그동안 방송국에서 찾아오라는 거 몇 번 거절했더니, 이제 저쪽에서 직접 발을 옮기는구나.
“뭐? 진짜로?”
성민아도 눈을 활짝 떴다.
둘 다 깜짝 놀란 눈치.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고희범이 내게 물었다.
“야, 왜 말이 없어.”
“왜?”
“아니, 좀 놀라는 반응 좀 보여 봐. 방송국에서 먼저 찾아온다니까. 우리랑 이야기 좀 나누고 싶다는 이유로!”
“아, 그게.”
나는 싸던 짐을 마저 싸다가 말했다.
“놀랄 일인가 싶어서.”
“뭐?”
“방송국에서 찾아오는 거, 그거 당연한 일 아닌가.”
나름대로 담백하게 한 말이었다.
하지만 이 둘에게는 아닌 모양이었다.
“……밥은 네가 사라.”
“내가 왜.”
“그냥 좀 사라면 사!”
“그러니까 왜.”
어리둥절한데 성민아까지 거들었다.
“한영아, 이번에는 네가 사는 게 맞을 것 같아.”
단체로 이상하다.
요즘 식비가 부족한가.
인센티브를 고려해 봐야겠다.
* * *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두 시간 뒤.
우리는 작업실에서 두 손님을 맞이했다.
‘생각보다 평범하네.’
그 두 손님은 JCTV에서 온 둘.
오 작가와 정 PD였다.
“아, 여기에서 방송하시는구나.”
“시설이 어지간한 전문 스튜디오 안 부럽다. 안 그래요? 오 작가.”
“그러게요. 요즘은 다 상향 평준화네요.”
옷차림만 보면 동네 마실 나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두 사람이 편안한 몸가짐으로 실내를 돌아다녔다.
그 모습은 뭐라고 해야 할까.
‘편안해 보이는군.’
좀 심하게 편해 보였다.
뭐지.
방송국 사람들이 원래 이렇게 사람이 편안한가.
“대학생인데 이만큼 전문적으로 시설을 꾸리셨어요? 혼자 힘으로? 우리 조카도 방송한다고 요즘 조르는데 한영 씨 보고 배웠으면 좋겠어요.”
이상하다.
나한테 대하는 태도도 이유 모르게 사근사근한 게, 내가 아는 방송국 직원들 성격이랑 너무나도 다른데.
‘뭐지? 몇십 년 사이에 방송국 문화가 좀 바뀌었나?’
진지하게 머릿속에 의문이 찾아왔다.
친절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심히 어색하다.
왜냐.
내가 기억하는 방송국 직원들이란, 하나같이 고압적이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야, 너, 그래 너, 왜 사람 눈을 그렇게 똑바로 쳐다봐. 밥줄 끊기고 싶어?]비위에 거스르면 일감으로 갑질하는 건 기본이요.
[아 그 가수? 예전에 저쪽 방송국 이사 딸이 일 좀 도와 달라니까 싫다고 거절했대요. 그래서 그쪽 기획사 사람들 전부 다 잘렸다던데요?]찍히면 그대로 방송국에서 은퇴당하는 것 또한 일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절대 갑과 절대 을.
다른 말로는 먹이사슬 최상위 포식자와 박테리아.
예로부터 방송국 제작진과 출연자란 자못 상하 관계가 또렷했고, 그렇기에 나와 방송국 또한 서로 견원지간에 가까웠다.
‘물론, 내가 뜬 뒤로는 이야기가 달라졌지만.’
뜬 다음에나 마지못해 불렀지.
어디까지나 업계 상식이 그랬단 말이다.
그런데 지금 내 눈앞의 두 사람은 어떠한가.
‘이렇게 사람들이 가벼워졌다고?’
마치 옆집 이모 삼촌을 보는 것만 같았다.
“어머, 실물이 훨씬 더 낫다.”
“오 작가, 앞에서 그런 말 하는 거 실례야. 가수는 실력이지.”
“무슨 말이에요. 실력은 당연히 깔고 가니까 그 위에 외모가 빛을 발하는 거죠. 훤칠하니 화보 찍어도 되겠는데요?”
칭찬이 많다.
그렇기에 더더욱 의심이 들었다.
‘방송국 사람들이 이렇게 만만할 리가 없지.’
방송국은 사람을 이용하고 버리는 게 습관처럼 몸에 배인 사람들이다.
내게 친절하다면 그건 아직 카메라를 들이밀기 전이기에 그럴 뿐. 일단 편집을 시작하면 어떤 수작을 부릴지 모를 터.
‘긴장을 놓을 이유는 없다.’
차근차근 간을 보기를 잠시.
“제가 솔직히 말을 할게요.”
정 PD는 어느 테러 조직의 수장처럼 양손을 모으더니, 이 세상에서 가장 진지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우리 방송에 나와 볼 생각 없습니까?”
방송이라.
하긴, 방송국 사람들이 만나자고 하면 당연히 방송 관련 미팅이겠지.
이 정도야 예상한 바였다.
‘굳이 채널 테슬라를 안 통하고 직접 찾아온 건 신기하기는 하네.’
뭔가 속셈이 있는 거 아닐까.
어쨌든 일감이 왔다.
안 그래도 마침 종강도 했겠다 새 일감이 필요한 시기이기는 했지.
방송국이라.
사실, 그간 반쯤 선입견 탓에 꺼렸던 게 사실이었다.
엮이면 피곤할까 봐.
하지만 굳이 여기까지 찾아온 이들의 자세를 보면, 이야기 정도는 들어 봐도 될 것 같았다.
‘나도 달라졌고 음악 시장도 달라졌어. 방송국도 그럴 수 있겠지.’
일단 뭐든 경험해 볼 일 아니겠는가.
협상을 거친 다음에 말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 나는 비로소 입을 열었다.
“알았어요.”
그 순간이었다.
“이게 한영 씨가…… 네.”
한참이나 각오하고 말을 늘어놓으려던 정 PD가 입을 멈췄다.
그러더니 눈을 깜빡이더니 말했다.
“지금 뭐라고 말씀하셨죠?”
이 반응, 안 봐도 뻔하다.
내가 뭐라고 말했는지 놓쳤군.
유감이다.
나는 작은 실망감을 느끼며 다시 말했다.
“출연하고 싶어요. 하지만 그보다는 우선 어떤 방송인지 먼저 들려주세요.”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방송 내용도 모르면서 출연부터 결정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아, 그게. 흠, 아, 잠시만요. 내가 마음의 정리가. 오 작가.”
“네? 네. 잠시만요. 이걸 어디 뒀더라.”
두 사람이 허둥지둥했다.
준비성이 모자란 사람들이다.
* * *
결과적으로 말해서, 그들이 꺼낸 기획이라는 것은 상당히 솔깃한 것이었다.
“방송이요?”
“예, 방송입니다.”
정 PD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방송을 컨셉으로 프로그램 하나를 새로 만들어 보려 합니다.”
이들이 내게 제시한 기획안의 제목은 이러했다.
[유&마이 온에어]기성과 신인, 두 명의 뮤지션을 한 조로 함께 인터넷 방송을 꾸린다.
그리고 이걸 미튜브에서 실시간으로 방송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조회 수 서바이벌이라.’
기획안을 차근차근 훑고 있는데, 정 PD가 어린아이처럼 들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때요, 재밌겠죠?”
마치 칭찬해 달라는 듯한 표정이군.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왜냐.
‘이거, 대놓고 베껴 왔잖아.’
아무리 봐도 유사품이기 때문이었다.
‘다른 방송국 TV에도 비슷한 거 있지 않았나.’
인터넷 방송이라니.
더욱이 뮤지션 두 명을 한 조로 엮는데, 화룡점정으로 조회 수 경쟁이란다.
이쯤 되면 TV를 거의 안 보고 사는 나조차 알 지경에 다다랐다.
‘다 섞었네.’
모조리 다 섞었다.
요즘 좀 팔린다는 소재는 모조리 다 한 솥에 넣고 얼큰하게 섞었다.
“한영아,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마침내 고희범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고야 말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마음의 눈을 질끈 감았다.
‘아니야, 기획안을 가져온 당사자 앞에서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하지만 잘했다.
이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나 나도 보고 싶기는 했다.
두근거리는 찰나 정 PD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보일 수 있습니다.”
본인이 인정해 버렸다.
끝났네.
헛웃음만 나오는데 그는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하지만 기존의 방송들과는 다릅니다.”
뭐가 달라.
안 다르잖아.
아무리 봐도 아류작 소리는 못 피하게 생겼는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쪽은 방송의 중심이 함께 출연하는 스타에게 달려 있다면, 이쪽은 신인과의 팀워크에 달려 있거든요.”
더럽게 차별성 있네.
막상 저렇게 말하는 본인도 시선을 피하는 걸 보면 찔리기는 하는 모양.
하지만 어찌 되었든, 기획 자체만 보면 망할 기미가 전혀 안 보였다.
그렇기에 더 문제였다.
‘이거, 매력적이야.’
방송의 내용 자체만 보면 굉장히 매력적이라는 것.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솔깃하다.
그냥 솔깃한 걸 넘어, 나를 위해 주문 제작한 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수준.
‘마침 이런 게 필요하기도 했고.’
내가 요즘 느끼는 건데, 인터넷 방송에는 작은 한계가 있었다.
바로 TV 시청자층을 흡수하기 어렵다는 것.
애초에 시청자가 갈라진 탓이었다.
이번 방송을 기회로 양쪽을 흡수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
‘하물며 음악 방송이라. 내 장기랑 아무런 상관도 없는 예능이면 어쩌나 했는데, 이 정도면 해 볼 만해.’
하지만 한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했다.
이번 출연에서 잃는 것 없이 내실만을 챙기기 위한 보험이.
“저기. 이번 방송이요.”
“예.”
나는 정 PD를 바라보며 물었다.
“저희 방송 분량만큼이라도 저희 측 편집팀과 함께 상의하며 편집을 진행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