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12
112화
최근 들어, 홍윤서의 추천으로 봤던 어느 소설에 그런 내용이 있었다.
‘학생이 어설프게 잘나면 선생이 신나서 가르치지만, 너무 심하게 잘나면 점차 두려워하게 되어 있다고 했나.’
어떤 말인지는 알 것 같다.
뒤에서 쫓기는 처지가 되면 밑천이 드러날까 봐 겁이 난다는 말이겠지.
나 또한 이걸 겪어 본 적 있었다.
함재원에게 말이다.
[뭐야, 너 집에 안 갔어?] [이 악보 익숙하게 칠 수 있게 되기 전까지는 연습실이 제집이에요.]집요하게 날 따라왔다.
나라고 해서 연습량이 적은 편이 아니었는데, 함재원은 그런 나를 더더욱 사냥개처럼 쫓아왔다.
처음에는 기특해서 가르쳤지.
하지만 나중에는 살짝 식은땀이 날 정도로 아슬아슬했다.
고희범식 표현으로 말하자면 심장이 쫄깃해졌지.
‘나를 가르치겠다고 했지.’
어디 얼마나 가르칠 수 있나 보자.
삑, 삐빅, 삑. 드르륵.
함재원에게 미리 받은 암호를 입력하자 학원 문이 열렸다.
‘진짜로 이 암호가 맞네.’
학원 내에는 아직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학생을 받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나는 이 순간이 좋았다.
남들 다 자고 있는데 나 혼자 일어나서 연습하는 시간.
잔잔하게 들어오는 아침 햇살에 둥둥 떠다니는 먼지가 산란한다.
이때 연습하면 그만큼 남들보다 한 걸음 앞서갈 수 있을 것 같다고나 할까.
‘어디 보자. 1, 2, 3, 아, 여기다. 4번 연습실.’
낡은 학원이지만 연습실만큼은 썩 충분했다.
방음 설비가 잘 갖춰진 좁은 방에, 메트로놈과 보면대 그리고 연습용 기타 한 대가 놓여 있었다.
나는 대충 의자에 걸터앉고는 악보를 보면대 위에 펼쳤다.
‘좋네.’
끼릭.
기타를 들고 이번에 연주할 곡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았다.
김한석에게서 모티베이션을 얻은 김한영의 노래.
이번 곡의 제목은 이렇게 정했다.
[고양이]특별히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 학교 동아리 건물에 고양이 한 마리가 살아서 이걸로 정했다.
‘시작해 볼까.’
먼저 메트로놈을 켜 놓았다.
틱, 틱, 틱, 틱.
건조하면서도 일정한 박자를 가진 소리가 차분히 올라왔다.
나는 그 소리에 맞춰 바닥을 탁탁 밟다가 기타를 몇 번 퉁기고는, 입을 열었다.
“늦게 일어난 저녁, 다리를 쭉 내밀고 기지개 한 번. 하품 길게 내쉬고 위풍당당하게 행진하니 저게 뭐야, 못난 집사가 양지바른 소파 위 내 자리를 점령했네.”
고양이의 시점에서 본 이 세상을 그려 보기로 했다.
관점을 바꾼 세상.
그게 이번 곡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주제였다.
“무겁게 수그린 등을 보니 싸움을 걸었다가 진 것 같기도 해. 내 자리에서 비키라고 힘껏 밀어 봤더니, 이 집사 왜 이래. 건방지게 내 공들인 머리카락을 어지럽히려 드네.”
고양이의 유리구슬 같은 눈으로 바라본 이 세상은 어떠할까.
다소 우습게 보이리라.
개다래꽃 한 다발이면 세상 행복한 그들과는 달리, 사소한 일에 얽매이는 삶이 복잡하게 보이겠지.
‘아니, 애초에 그런 생각 자체를 안 하겠지.’
사람의 세상은 인간과 인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고양이들의 세상은 다르다.
그들에게 세상이란 철저하게 그들을 중심으로 굴러간다고 했다.
“조금 더 느긋하게 앉아 있어도 될 텐데 금방 싫증 내고 달려가네. 밥이라도 주고 갈 것이지 서둘러 나가네.”
발성이 편안하다.
아침이라 목이 다소 잠긴 걸 감안해도 노래에 별다른 지장이 없었다.
벌써 1년 가까이 다룬 세스 로버츠 발성법이 목에 익은 결과, 이제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올바른 소리가 나오는 수준에 다다른 것.
“그런 모습이 멀어지네. 멀어지네. 이제 다시 나 혼자네. 조용한 내 집. 잠이나 더 자야겠소.”
하지만 이번 곡은 어디까지나 노래보다는 기타 연주에 두기로 했다.
그것도 함재원이 가장 잘하는 일.
속주로 말이다.
타라라라락. 착! 착!
‘자, 안 하던 짓 한번 해 보자.’
한국의 3대 기타리스트 중 함재원의 특징이 무엇일까.
그건 바로, 그만이 어쿠스틱 기타를 주로 연주한다는 것이었다.
‘나머지는 대부분 일렉을 연주했지.’
하지만 함재원은 어쿠스틱이다.
하물며 그 어쿠스틱 기타로 무슨 짓을 하는가.
속주를 한다.
보통 속주 하면 당연히 일렉 기타를 떠올릴 텐데, 함재원은 어쿠스틱 기타로 속주를 했다.
200bpm을 넘나드는 속도로.
그것도 그냥 빠르기만 한 속주가 아니라, 듣기 좋은 속주를 했다.
‘참 독특해.’
엄밀히 말해서 나는 속주를 하지 않는다.
못 한다기보다는, 안 했다.
너무 빠르게 치는 것보다는, 코드 하나하나 차분히 정성을 들여 연주하는 게 내 스타일이었기 때문.
하지만 필요하다면 해 볼 생각.
차자작.
평소 안 하던 짓을 해서 그런지 손끝이 어색하다.
메트로놈을 못 따라가는 손이 야속하게 느껴질 정도로 불편했다.
하지만 상관없다.
‘불편하다는 건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지.’
못 하니까 불편한 것이다.
코드도.
메트로놈도.
속주도.
기타라는 건 지극히 불합리한 물건이라, 뭐든 불편함을 극복해야 비로소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니 손끝의 불편함은 기타리스트가 갈 길을 비춰 주는 이정표였다.
‘빠르게, 표현은 놓치지 않으면서 더 빠르게. 정확하게. 메트로놈의 박자에 몸을 맡기면서.’
탕, 다다당. 디링.
어느덧 살짝이나마 익은 연주가 손끝을 타고 울려 퍼질 무렵.
“후우.”
1절 부분이 끝났다.
어느덧 아침의 잔잔한 분위기는 사라지고, 대신 살짝 더워진 열기가 은은하게 허공을 감돌았다.
하지만 아직 한참 멀었다.
‘묘하게 재밌네.’
혼자 집중하기 좋은 단독 연습실이 생겨서 좋다.
식구들한테 둘러싸여서 보내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도 가져야지.
‘어디 보자, 오늘 저녁에 레슨 봐 주겠다고 했지.’
지금이 7시니까 어디 보자.
앞으로 딱.
12시간 정도만 달려 보자.
* * *
음악 학원에서 제일 늦게 출근하는 사람이 누굴까.
학원 카운터 보는 직원일까, 정직원 강사일까.
아니면 프리랜서 강사일까.
그것도 아니면 누굴까.
“흠.”
정답은 바로 원장이다.
음악 학원의 원장이란, 특별히 학원에 애정이 있는 게 아닌 이상 자기가 나오고 싶을 때만 나오는 직종이었다.
심할 때는 1달에 1번 세미나 때만 얼굴을 비추는 사람도 있다고 하지 않았나.
함재원.
그 또한 비슷한 인물이었다.
‘점심부터 기름진 걸 먹어서 그런가, 속이 더부룩하군.’
얼마 전에 사 놓은 양배추즙이라도 마시고 나올걸.
함재원은 쓰린 배를 두드리며 학원으로 향하는 운전대를 잡았다.
머릿속으로 한 사람을 잠깐 떠올리며.
‘김한영, 그 학생 설마 정말로 학원에 오지는 않았겠지.’
무안을 줄 만큼 줬다.
어색할 정도로.
어제 그렇게까지 눈치를 줬는데, 정말로 학원에 왔을까.
그렇다면 그는 바보거나 철면피다.
‘바보 같기는 했지.’
사람이 너무 자신만만한 거 아닌가.
처음 봤을 때부터 어딘가 기시감이 드는 게 마음에 안 들었다.
열심히만 하면 될 것처럼 군다고나 할까. 더욱이 그를 앞에 두고서도 자기 할 말을 다 하는 태도가 더더욱 그러했다.
이래서 일찍 성공한 사람들은 가까이하기 거북하다.
이번 방송 일감이 엮인 것만 아니었다면, 처음부터 딱 잘라 거절했을 터.
‘아니다.’
어린놈에게 깊게 생각을 품을 거 없다.
어차피 이 바닥을 좀 경험하다 보면 그도 자연히 깨닫겠지.
바로.
대중은 뮤지션이 음악에 기울인 노력 따위, 사실은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 말이다.
“…….”
생각을 떨쳐내려고 했는데 더 생각이 깊어졌다.
득.
마침 학원 건물 주차장에 도착했다.
함재원은 이럴 때라도 운동을 하자는 생각으로 건물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그런데.
어딘가 심상치 않았다.
‘뭐지?’
학원 유리문 안쪽으로 보이는 광경이 조금 이상했다.
저걸 뭐라고 해야 할까.
‘뭐 저렇게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어?’
한 연습실 앞에 사람들이 잔뜩 몰려 있었다.
이 광경, 이상하다.
원래 사람들이 남 연습에 이렇게 관심이 많았나.
아니다.
안에서 연주하는 사람이 여간 괜찮은 실력을 갖춘 사람이라도, 몇 분 정도 구경하면 이내 질려서 물러나기 마련이었다.
이런 음악 학원이라면 나름대로 기타 좀 친다는 사람이 많으니 더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저건 뭔가.
끼익.
함재원은 마치 도둑이라도 된 것처럼 조심스럽게 학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들었다.
“쩐다.”
학원 수강생이 하는 말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직원들도 몇몇 있었다.
“벌써 4시간째 안 쉬고 연습하고 있는 거 아닌가?”
“졸라 잘한다.”
“수강생인가?”
“목소리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누구지?”
아이러니하게도 연습실 유리에는 반투명한 코팅이 발려 있어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저쪽 소리만 은근히 바깥으로 들릴 뿐.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안에 있는 사람의 실력이 충분히 드러났다.
속주.
‘누구지?’
우리 학원에 저렇게까지 연주하는 사람이 있었나.
흡사 그의 스타일을 보는 듯하다.
하물며 완성도까지 일반인의 그것이 아니었다.
‘대체 누가 이만한 수준으로 연주를.’
이 학원이 말이 한국 3대 기타리스트 이름 걸고 운영하는 학원이지, 실상은 그냥 동네 학원이었다.
입시생도 프로도 안 받다 보니, 그냥 취미로 하는 사람만 많았다.
그렇기에 저만한 연주를 할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의심하는 순간이었다.
‘가만.’
설마.
함재원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성큼성큼 걸어가서는 문을 열었다.
그러자 그 안에서 익숙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
김한영이었다.
그 김한영이 앉아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기타를 잡고 있었다.
얼마나 연습에 몰두했으면 실내는 후끈후끈한 게 바깥과 몇 도는 온도 차가 느껴질 지경.
“…….”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려니 등 뒤로 학원 직원들과 학생들의 소곤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헐.”
“김한영 아니야?”
“김한영이 우리 학원에 왜 왔대?”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김한영은 그런 분위기를 의식하기는 하는지 대뜸 말했다.
“왜요.”
“…….”
이대로는 할 이야기도 안 되겠군.
함재원은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잠깐 이야기 좀 하지.”
* * *
“이거 손가락이 좀 아프네요. 속주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네. 오늘도 원장님에 대한 존경심이 오늘도 깊어지네요.”
나는 손가락을 흔들며 엄살을 부려 봤다.
사실, 별로 안 아프다.
손가락이 조금 뻐근하기는 하지만, 딱 그 정도다.
그냥 분위기가 어색해서 뭐라도 말해 봤을 뿐.
“…….”
“…….”
하지만 원장실 분위기는 변함이 없었다.
함재원은 여전히 말이 없다.
그저 어딘가 고민에 빠진 눈길로 책상 위를 바라만 보고 있을 뿐.
잘 보아하니 어제와 조금 다르다.
어제는 기분 나쁠 정도로 능글능글했다면, 지금은 그냥 차갑다.
‘사람을 불렀으면 말을 할 것이지.’
예나 지금이나 싸가지가 어디로 안 갔구나.
하지만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으면 그렇게 자랄 수밖에.
나는 내 안의 유교 정신을 발휘해 입을 열었다.
“저기요.”
“…….”
“선생님, 저기요. 저기.”
“…….”
“저 갈게요.”
“듣고 있어.”
함재원이 마침내 반응했다.
그는 어딘가 착잡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딱 두 번 눈을 깜빡이고는 말했다.
“자네는 자존심도 없나?”
“…….”
이 사람 보소.
초면에 공격부터 하네.
선공몹인가.
‘갑자기 왜 이래.’
나는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오늘 저녁에 레슨해 주신다면서요.”
“정말로 올 줄은 몰랐지.”
“오기로 했으니까 오는 것, 그게 약속이니까요.”
“자네는 상식적으로 그런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나?”
“학원 비밀번호까지 알려 주셨잖아요. 그럼 써도 된다고 허락해 준 거 아니에요?”
자기가 된다고 해 놓고서는 사람 참 이상하네.
우두커니 바라보려니 함재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튼, 오늘 저녁에 레슨은 없어. 약속이 생겨서 캔슬.”
“저랑 한 약속도 지키셔야죠.”
“난 바쁜 사람이야.”
“저도 바빠요.”
말하고 보니까 설명이 모자란 것 같다.
뒤에 말 한마디를 덧붙였다.
“레슨 전까지 연습해야 돼서.”
그 말에 함재원의 이마 위 주름이 한층 더 깊어졌다.
M자 문신을 새긴 것 같군.
여기서 더 자극하면 문제가 생기겠다.
나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전 밥 좀 먹고 연습 더 하고 있을게요. 저녁 레슨 시간 때 봬요.”
그렇게 말하면서 달아나듯 원장실 문을 벗어났을 때였다.
“아.”
카운터 앞에 여학생 세 명이 서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나를 어딘가 부끄러운 듯하면서도,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봤다.
이거 상황이 익숙하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사진 찍어요?”
“네? 네.”
“핸드폰 주세요.”
그렇게 사진을 찍고 돌려보낸 뒤, 나는 미리 사 놓은 삼각김밥을 먹고 다시 연습에 빠져들었다.
저녁, 아주 늦은 저녁까지.
약속한 레슨이 저녁 8시니까, 거기에 근접할 때까지.
하지만.
‘역시.’
함재원은 자기 말을 지키겠다는 듯 레슨 시간을 지키지 않았다.
대신 카운터에 직원 한 명만 놀란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내일 다시 올게요.”
함재원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내게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내일은 재원이 곡이나 연습해 볼까.’
연습은 어차피 할 일이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