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14
114화
“박자부터 다시. 속주는 일단 친다고 되는 게 아니야. 일단 들어 봐.”
갑작스럽게 레슨이 시작되었다.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난데없이 시작됐다.
‘운이 좋군.’
솔직히 시간 좀 더 걸릴 줄 알았다.
후배 가수의 발전이 너무 신경 쓰여서 못 버티게 될 때까지.
하지만 그는 매번 내게 못마땅한 시선을 보냈고, 그럴수록 내심 기회가 사라져가는 게 아닌가 싶었지.
물론, 어느 시점부터 그건 아무래도 좋은 일이 됐지만.
‘연습 재밌었는데.’
그렇다.
연습이 재밌어서 그냥 연습에 푹 빠져서 보내던 참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연습을 즐기던 참인데, 본인이 개심해서 달려와 줬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어디 어떻게 가르치나 보자.’
일단은 레슨까지는 끌어들였다.
그렇다면 다음 단계는 그와 점차 호흡을 맞추는 것.
“내가 지금 누구랑 말하나?”
“저요.”
“집중해.”
“네.”
함재원은 곧 기타의 현을 퉁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연주가 썩 익숙했다.
뭐라 말하면 좋을까.
‘내 연주네.’
정확하게 내 연주였다.
내가 구사하는 습관을 거의 흡사하게 따라 하는 연주.
근래 한창 연습한 [Libera me]의 핵심 파트가 순식간에 흘러나왔다.
착.
어느새 연주를 마쳤는지 기타를 비스듬한 자세로 든 건 함재원이 내게 말했다.
“이게 자네가 하는 연주야. 들었지? 딱 봐도 엉성하지?”
“엉성하기까지 한가요?”
말이 너무 심하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별로인가.
함재원은 기타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말했다.
“내가 자네한테 거짓말을 왜 하나? 엉성한 게 사실이라 그대로 말했을 뿐이지.”
“흠.”
“귓구멍 열고 잘 들어. 지금부터가 제대로 된 연주니까.”
함재원은 그 말과 함께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이며 본보기를 연주했다.
여섯 개의 현을 무대 삼아 춤을 추는 열 개의 손가락.
그 끝에서 나오는 환상적인 멜로디.
나도 모르게 이마 위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졸라 잘 치네.’
말도 안 되는 실력이었다.
실력이 있는 건 알았지만, 이건 조금 차원이 다르다.
나도 기타와는 어지간히 친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정도 되면 아예 기타와 한 몸이 아닌가 싶은 수준.
그래, 이걸 홍윤서가 읽는 소설로 말하자면.
‘신검합일, 아니, 신기합일이다.’
몸과 악기가 하나가 된 경지였다.
나라고 저걸 못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완성도와 기술에서 차이가 났다.
라스게아도.
세 종류의 주법을 패턴화시켜 초고속으로 반복하는 기법.
그게 함재원의 손에 찰떡같이 붙어 있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손가락 다섯 개가 전부 다 따로 노네.’
한 번의 스트로크에 들어가는 다섯 개의 손가락의 강약조절을 전부 다르게 조절했다.
이러니 같은 소리 같아도 느낌이 다를 수밖에.
하물며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타다다닥, 차작.
이 화려한 라스게아도조차 밑에 기본으로 깔리는 베이스에 불과할 뿐.
그 위로 남들의 ‘보통 연주’가 촘촘하게 깔려 있었다.
흡사 마이클 잭슨의 비트박스를 보는 것만 같은 연주.
‘누가 들으면 두 명, 아니, 세 명이 동시에 연주하는 줄 알겠네.’
곡 하나를 연주해도 그 밀도가 남들의 배에 달하지 않나.
살이 찐 손가락이 그래도 길쭉한데, 그것조차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재빠른 소세지다.
내심 감탄하려니 함재원이 입을 열었다.
“들었지? 뭐가 문제인지 알겠어?”
흠.
하나도 모르겠는데.
원장 짬밥을 잘못 쌓았나 보다.
말이 없으려니 그는 인상을 한번 찌푸리더니 말을 이었다.
“그만큼 칠 줄 알면 라스게아도 정도는 가볍게 할 줄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 왜 못 하지?”
“연습을 안 해 봐서요.”
정확히는, 나 때는 이거 연습하는 사람 거의 없었으니까.
나아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으니까.
“라스게아도의 핵심은, 기술에서 신경을 끄고 박자에만 집중하는 거다.”
“기술에서 신경을 끄라고요?”
이상한 말이었다.
이게 극복이 안 돼서 그동안 연주가 별로였다는 거 아닌가.
그런데 왜 여기에서 눈을 떼나.
“그게 성립이 되나요?”
종강 이후로 작동한 적 없는 우뇌를 발동시켜 고민하고 있는데, 함재원이 코웃음을 치더니 말했다.
“그게 지금 자네 연주의 단점이야. 너무 스킬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까, 오히려 핵심에서 멀어지는 거지. 라스게아도는 기술에서 최대한 신경을 꺼야 자연스럽게 살릴 수 있는 기술이야.”
그는 그렇게 말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아무런 맥락도 없이 가볍게 튀어나온 콧노래.
하지만 그 콧노래에 맞춰, 순식간에 완벽한 라스게아도를 선보였다.
“기술이라고 부르기도 뭐하지. 라스게아도라는 건 말이다. 그냥 자기 흥에 겨워서 후리다 보니까 멋대로 튀어나올 때가 가장 라스게아도다운 거야.”
말을 들으니까 알 것도 같다.
초고난도 기술이지만, 오히려 기술이라는 인식 자체가 없어야 살릴 수 있다는 거지.
잘 모르겠다.
유감이다.
하지만 그 끝자락 정도는 보였다.
“알았어요. 감 왔어요.”
“이거 한 번 들었다고 감이 오면, 이 세상에서 기타 학원 따위 다닐 사람은 아무도 없겠다.”
그가 나무라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딱히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간 막혔던 부분.
막연히 짐작만 하고 있던 부분을 뚫을 힌트가 조금이나마 아른거렸다.
얼른 움켜쥐고 싶어 손이 근질거릴 정도로.
그렇게 기타를 건네받은 순간이었다.
“난 그럼 퇴근한다.”
함재원이 대뜸 자리에서 일어났다.
“…….”
이 사람 보소.
뭘 했다고.
꼴랑 이거 하나 연주했다고 가나.
보름 가까이 여기에서 살다시피 했는데, 고작 10분 정도 가르쳐 주고 마는 건가.
나는 어처구니가 없는 심경이 들어 그에게 물었다.
“과제 같은 건 없어요?”
“그런 건 알아서 해.”
함재원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정말로 떠났다.
사람이 예나 지금이나 4박자가 없다.
30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습득하는 데 실패한 모양.
‘하지만 차라리 저러는 게 낫네.’
쓸데없이 능글거리는 척할 때보다는 볼 만하다.
과제는 없다고 했지.
좋다.
나도 과제랑 친한 사람은 아니니까 알아서 할 생각이었다.
‘흥을 못 이겨서 멋대로 튀어나올 때가 가장 라스게아도다운 라스게아도라고 했지.’
나는 함재원의 짧았던 말을 되새기며 다시 기타를 잡았다.
작업실 가서 방송 시작하기까지 앞으로 2시간.
그 안에 뭐라도 얻고 가야겠다.
* * *
본격적인 레슨이 시작되었다.
그 패턴은 언제나 같았다.
혼자 연습하고 있으면, 저녁 나지막한 시기에 함재원이 온다.
그리고 딱 하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하나만 짚어 주고 연습실을 떠나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얼핏 보기에는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 교습법.
하지만 저게.
‘재밌네.’
내 손에는 딱 맞았다.
‘답답하던 게 계속 뚫리네.’
퍼즐의 키만 던져 주는 느낌이었다.
하나하나 친절하게 배우는 건 어차피 적성에도 안 맞는다.
적당히 힌트를 던져 주면, 나 혼자서 고민하면서 낑낑거리는 게 더 재밌다.
이렇게 살아왔던 세월이 한참이기도 했고.
‘속주에도 미학이 있구나.’
나는 그렇게 연습하는 사이에 나도 모르게 속주에 더 깊이 빠져들었다.
속주.
한평생 외면하면서 살아온 기법이었다.
하지만 막상 파고들기 시작하자, 그 안에도 나름의 깊이가 가득했다.
“다음 파트로 넘어가지.”
어디를 배울지는 전적으로 그의 마음에 달려 있었다.
내가 연습하고 있으면, 그걸 듣고는 알아서 파악해 알려 주는 모양.
그의 대표곡, [Libera me]를 나날이 이어졌다.
반복.
계속해서 반복.
그의 가르침에 따르는 나날의 반복.
그 끝에, 드디어 기다렸던 순간이 왔다.
“이 곡은 이만하면 됐고.”
함재원이 [Libera me]를 끝낸 것이었다.
이 기타 학원에 들락날락하기 시작하고 한 달 만에 이뤄낸 성취였다.
그래서 내 소감이 어떠했냐면.
“벌써요?”
아직 배울 게 태산인데 뭘 벌써 끝내냐는 것이었다.
함재원은 여전히 기분 나쁜 눈길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필요한 건 다 가르쳤으니까 완성도는 알아서 올려.”
“아직 배울 게 남은 것 같은데.”
부족하다는 건 다른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았다.
당장 구색은 갖췄지만, 완성도에서는 한참 뒤떨어지는 상황.
라이브에서 쓸 수 있을 수준이 아니었다.
그런 내 항의에 함재원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내가 됐다면 된 거야. 내 곡을 내가 알지, 학생이 알아?”
참으로 뻔뻔한 말이었다.
결과적으로 자기 귀로 듣기에 충분해졌으니까 됐다는 거 아닌가.
같은 말을 해도 기분 나쁘게 하는 재주가 충만하다.
이러니까 성격 나쁘다고 까이지.
‘누가 보면 나랑 싸운 줄 알겠군.’
그래, 이만하면 됐다.
나머지는 시간 문제라는 거겠지.
얻은 성취를 되새기며 현을 다시 퉁겨 보려는 찰나였다.
“그리고.”
함재원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말이 나왔다.
“언제까지 이 곡만 계속 만지고 있을 생각이야?”
잠깐.
저 말은 설마.
순간적으로 내가 말을 잘못 들었나 싶은 순간이었다.
“이제 방송 본격적으로 들어갈 때까지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선택과 집중을 해야지.”
방송을 준비하자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이번에 만들어 온 곡 [고양이]로 넘어가자는 것.
내가 할 말은 정해져 있었다.
“악보는 다 외우셨죠?”
* * *
얌전할 날이 없는 JCTV 방송국.
그곳에서 오 작가가 기진맥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으…… 죽을 것 같아요.”
“왜 그래.”
그 모습에 정 PD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물었다.
“아직 안 죽었으면 됐지.”
“그 말 되게 실례되는 거 알죠. 저 요즘 가슴이 답답해서 녹즙 먹고 다니는데.”
“이 업계에 식도염 하나 안 달고 사는 사람이 어딨나.”
정 PD는 말을 내뱉고 슬쩍 곁눈질로 오 작가를 바라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진짜 힘들었구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농담으로 한 말인데, 꽤 강하게 받아들인 모양.
‘어쩌지. 오 작가 한 번 화나면 한 달은 가는데.’
뮤지컬 티켓을 한 장 더 구해 봐야 하나.
세상 진지하게 고민하는 찰나, 오 작가가 입을 열었다.
“섭외 성공했어요.”
“섭외?”
깜짝 놀랄 말이 튀어나왔다.
“네, 그 산속에 들어간 사람 있잖아요. 어떻게 성공했어요.”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했던 섭외를 기어코 성공했다는 말이었다.
그 말에 정 PD가 입을 쩍 벌렸다.
‘그 사람, 속세와의 연을 끊었다고 하지 않았나?’
이번 방송을 위해 준비한 히든카드가 있었다.
김한영 또한 카드는 카드다.
하지만 그건 다소 실험정신을 쏟은 카드라면, 이쪽은 아예 흥행이 보장된 카드.
시청률은 떼놓은 당상이라고 말해도 좋을 사람이었다.
“대체 어떻게?”
“뭘 어떻게 해요. 딸한테 껌뻑 죽는 사람이잖아요. 장수를 잡으려면 말을 쏘라고, 딸을 설득했지.”
“……오 작가, 사람이 참 나쁘네.”
“왜요?”
“조용히 살고 싶다는 사람은 조용히 살게 내버려 두지. 무슨 협박을 해?”
“협박이라뇨.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네.”
오 작가는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설득이요. 설득, 애초에 정 PD님이 데려오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으면서 무슨.”
어찌 되었든 성공했다는 건 성공했다는 말 아니겠나.
한숨 놓았다.
‘그동안 마지막 섭외를 두고 촬영 진행이 늘어지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진행할 수 있겠군.’
매일 쪼이느라 얼마나 피곤했나.
정 PD는 박찬성 국장의 잔소리에서 벗어난 걸 속으로 작게 기뻐하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 프로그램은 세트로 진행하는 기획이잖아. 그 사람한테도 사이드 킥을 달아 줘야겠는데, 누구 오 작가가 생각해 둔 거 있어?”
다음 고민을 시작하려는 순간이었다.
“그것도 같이 생각해 놨어요. 최근에 알아봐 둔 사람이 있었거든요.”
오 작가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그것도 시청률이 보장된 대어로.”
“대어? 그게 누군데? 요즘 시청률 보장이라고 부를 정도라면…… 설마 임대경 아들?”
그 말에 오 작가가 작게 웃고는 말했다.
“아직 데뷔도 안 한 사람을 어떻게 데려와요.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하던데.”
“오 작가, 말 그만 돌려. 프로그램에 섭외하겠다는데, 그게 누군지 PD가 모르는 게 말이 돼?”
“알았어요. 자세히 말씀드릴게요.”
그다음 순간.
오 작가의 입에서 나온 사람의 정체는, 확실히 시청률 보장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었다.
“와, 그건 확실히 먹히겠다.”
정 PD가 놀라서 중얼거렸다.
말이 신인이지, 이미 인지도로는 전국적인 규모라고 불러도 될 사람이다.
블록버스터 둘의 조합이다.
이건 시청률이 당연히 보장된 수준.
“이렇게 갈까요?”
“그쪽 실력은 확인했지?”
“음원을 받았는데요. 나무랄 게 없어요.”
“흠 좋아, 그렇게 가자고.”
한 건 끝냈다고 생각한 참이었다.
“오 작가, 이건 그냥 내가 하는 말인데.”
정 PD는 문득 머릿속으로 떠오른 말을 입 밖으로 꺼내 보았다.
“그쪽이랑 김한영 팀이랑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잘 뽑힐까?”
이번 히든카드.
그리고 화제성을 위해 섭외한 카드 중 누가 이기겠냐는 말이었다.
“아무래도 이쪽이 낫겠지? 김한영은 신인이니까. 그리고 함재원도 엄밀히 말해서 이름값이 좋은 사람이지, 요즘은 폼이 많이 떨어지기도 했고.”
“흠, 글쎄요.”
오 작가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이 바닥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죠.”
김한영의 편을 은밀하게 들어 주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고서도 어색했는지 정정하듯 덧붙였다.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나긴 불가능에 가깝겠지만요.”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