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19
119화
어느덧 완연한 겨울이 찾아왔다.
숨을 쉴 때마다 폐가 아프고, 스치는 바람이 칼날처럼 느껴지는 계절.
삐리릭!
“어우 추워.”
오들오들 떨며 현관문 안으로 들어서자, 게임 패드를 손에 쥐고 있던 고희범이 낄낄 웃으며 반겨 주었다.
“뭘 벌써 엄살이야. 이것 가지고.”
“넌 아직 젊어서 그래. 나는 뼛속부터 시리다.”
“이거나 먹어라! 빅장!”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알고 드립 친 거 아니었어?”
“?”
“?”
여전히 어렵다.
본격적으로 방송을 시작한 게 어느덧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고희범의 말장난만큼은 알아듣는 데 애로사항이 꽃피었다.
‘그래도 덕분에 많이 배웠네.’
내가 인터넷 문화에 약한 건 안다.
부인할 생각도 없다.
더군다나 인터넷 방송을 볼 시간에 음악 연습에 더 집중할 때도 많았고.
이 시대의 방송인으로서는 실격일지도 몰랐다.
‘나도 인풋을 쌓아야 한다는 건 알지만, 이게 썩 쉽지 않단 말이지.’
방송을 보려 몇 번이고 노력해 봤지만, 영 적성에 맞지 않았다.
이건 태생적인 문제인가 보다.
하지만 괜찮았다.
내 옆에 고희범이 머무르며 상당 부분 해결해 준 덕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또 고가놈만 아는 이야기 나오죠?] [고가놈이 해냈다]내가 부족한 걸 고희범이 보완해 준다.
난 어디까지나 음악 방송에서 연주를 담당할 뿐, 드립이나 티키타카는 고희범의 몫이 지대했다.
어떻게 보면 그가 내 방송에 차지하는 지분은 25%를 훌쩍 넘을지도 몰랐다.
‘고마운 일이야.’
나 혼자서 방송을 했어도 언젠가는 떴겠지.
하지만 지금처럼 빠르게 떴을까.
매일 붙는 구독자만 수천 명 단위다.
어쩐지 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야. 고맙다. 여기까지 온 건 네 덕분이야.”
그래서 모처럼 감사의 마음을 입 밖으로 꺼내 본 순간이었다.
“…….”
고희범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이어서 미간에 주름이 잡히더니, 손에 들고 있던 게임패드를 손에서 놓았다.
왜 이러지.
설마 내 말에 그렇게까지 감격한 건가.
오묘한 정적이 흐르는데, 마침내 고희범이 입을 열었다.
“님 도르신?”
“…….”
갑자기 공격을 하네.
“한영아, 너 어디 아파?”
그는 기괴한 각도로 목을 꺾으며 내 얼굴을 살피더니 말을 이었다.
“아니면 이제 방송 나간다고 이미지 관리하는 건가? 이미 늦었다. 요놈. 요오오오놈. 모두를 속여도 내 눈은 속일 수 없다. 낮말은 고희범이 듣고, 밤말도 고희범이 듣는다. 싱어송라이터 김한영의 평소 혐성은 내가 전부 기억하고 있다 이 말씀이야.”
“…….”
가관이다.
대체 왜 이러는가.
이유가 뭐야.
나는 그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해고.”
“죄송합니다. 주인님.”
빠르다.
태세 전환하는 솜씨가 하루 이틀 해 본 솜씨가 아니다.
나는 감탄마저 터뜨리며 말했다.
“넌 일류다.”
“아아.”
나는 적당히 주위에 눌러앉으며 물었다.
“그래서, 방송 편집은 좀 어때, 해 볼 만해?”
방송 앞 무대에서의 내 역할은 끝났다.
하지만 뒷무대, 그러니까 편집 과정에서는 그의 힘이 필요했다.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궁금하기도 해서 물어본 참이었다.
“음, 그게 말이지.”
그 순간이었다.
고희범은 불편한 구석이 있는 사람처럼 인상을 찌푸리더니 말했다.
“수정 요구를 줄기차게 하고 있기는 한데, 그쪽에서 보낸 원본이 조금 이상하더라.”
“어떤 식으로.”
“우리를 빌런으로 만들려고 한다고 해야 하나?”
“빌런?”
“시청자들을 깔보는 것처럼 나오더라. 네가 평소에 혐성이기는 해도 그 정도까지는 아닌데.”
“흠.”
저쪽에서 나를 부정적인 캐릭터로 잡으려고 했단 말인가.
하지만 딱히 걱정이 들지는 않았다.
예상했던 흐름대로다.
방송국에서 미튜버를 일회용 소모품 취급한다는 얘기 정도는 귀에 박히도록 들은바.
그래서 고희범에게 편집 검수 역할을 맡겼던 거 아닌가.
‘희범이가 알아서 했겠지.’
아니나 다를까, 그는 손바닥으로 자기 가슴팍을 탕탕 치더니 말했다.
“그래도 내가 누구냐. 기 싸움 열심히 해서 어떻게 많이 고쳤다.”
“안 힘들었어?”
“테슬라에서 뚝배기 많이 깨졌잖아. 그 덕분에 맷집이 늘어서 버틸 만하더라.”
그가 킥킥 웃었다.
어쩐지 그 모습에 묘하게 안심이 들었다.
예전이었다면 고희범 하면 허술한 일 처리부터 떠올랐는데, 이제 많이 늘었다.
나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프로젝터 하나 사자.”
“프로젝터는 왜?”
“이번 방송 볼 때 거실에 띄워 놓고 식구들이랑 다 같이 보려고. 가끔은 윤서 형 좋아하는 애니메이션도 틀어 놓고. 민아나 은솔이 누나는 드라마 좋아하잖아.”
“그건 좋은데, 프로젝터 엄청 비싸던데. 백 얼마 해.”
“이제 그 정도 돈은 있어.”
* * *
[유&마이 온에어].이 새로운 프로그램은 방영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시끌벅적하기 짝이 없었다.
양산형 포멧과 출연진 섭외로 화제 몰이를 톡톡히 했던 그 첫 방송.
인터넷 생방에서는 누적 시청자 20만을 넘겼다고 했던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화제가 되었던 그 방송의 실체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리고.
시청자들의 반응은 훌륭하기 짝이 없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김한영 뭐냐고 ㅋㅋㅋㅋ 혼자서 계속 저래 ㅋㅋㅋㅋㅋ] [진짜 저게 미리 준비 안 하고도 나온다고??? 사람임?]김한영의 독주였다.
시청자들이 뭘 요청하든 즉석에서 어레인지해 버린다.
엉성하게 따라 하는 게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원곡을 뛰어넘는 수준의 편곡까지.
[기타만 잘 치는 게 아니었네]그 천재성은 시청자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김한영이 평소 자부하는 작곡 능력이 여기에서 나타난 것.
[솔직히 김한영 방송이 제일 볼 만하더라] [ㅇㅇ 다음에 뭔 곡이 튀어나오나 기다리는 재미가 있음 ㅋㅋㅋ] [진짜 까는 맛이 있다] [혼자서 게스트 남들 몇 배임 ㅋㅋㅋ] [반칙 아니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김한영이 문과라는 게 믿기질 않는다]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다른 참가자들은 곡 한두 개 준비하고, 나머지는 토크로 때우는 방식이 잦았다.
아니면 발성을 가르치는 방송도.
그것도 아니면 역사상 최고의 보컬 32위를 선정하는 방송을 하기도 했다.
나쁘지 않다.
나름대로 고심한 게 느껴지는 컨텐츠.
하지만 그 어느 컨텐츠를 가져온들, 아무나 할 수 있는 컨텐츠다.
또한, 시청자들이 의미 없는 독주이기도 했다.
김한영의 방송이 주는 몰입감에는 비교하기 어려웠다.
[이것도 성공하나 보자] [더 어려운 곡 가져왔!] [군가도 되나요? 전국 사나이 신청하고 싶은데.] [ㄴ오 몇 사단?] [미필입니다!] [군가 좋다ㅋㅋㅋㅋ이건 진짜 제대로 하기 어렵지]소통의 힘이었다.
김한영이 실패하는 순간을 보려고 계속해서 스택을 쌓아 간 것.
까는 맛으로 보는 방송에는 이러한 힘이 있었다.
여태껏 성공을 이어 온 만큼, 갈수록 어려운 선곡을 던지면서 실패하게끔 유도했다.
그렇다면 김한영이 실패했는가.
아니다.
얄미우리만치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이렇게 하는 거 맞나 모르겠네요.]중간중간 적당한 도발을 섞어 가면서.
[킹받네] [아오 김한여어어어어어어엉] [좀 실패하라고오오오오오] [왜 나 괴롭혀! 괴롭히지 마아아!]이게 앞서 1분을 본 시청자들이, 이후로도 그의 방송을 계속 따라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
하물며 식구들의 핀잔과 함재원의 논리정연한 공격도 좋은 케미를 일구어냈다.
그 결과.
방송 첫 편이 송출됐을 때 최종 순위는 이러했다.
[최고 순간 조회 수: 3위]아이러니하게도 순간 조회 수는 1.2만으로, 3위에 머물렀다.
1위는 누구인가.
바로 전반부에서 1.3만을 달성한 김건하&김주언 조합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평가는 그리 좋지 않았다.
1편에서는 실력을 보여 주지 않았기 때문.
그럼에도 김한영 방송의 순간 조회 수는 그들에게 한참 밀렸다.
하지만 평균 조회 수로 간다면 어떠했을까.
[싱어송라이터 김한영&함재원] [평균 조회 수: 1.05만] [1위]타 참가자들과 궤를 달리했다.
유일하게 평균 조회 수 1만을 넘겨 버린 그들의 방송은, 2위와 무려 3천이라는 격차를 자랑했다.
전적으로 남들 무대 안 볼 때 보기 좋다는 평가.
하물며 편집의 질도 달랐다.
[이쪽은 좀 드립 선정이 좋네 ㅋㅋㅋㅋㅋ] [ㄹㅇ 딱 인방st]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좀 치네]시청자들의 평가가 대동단결했다.
[ㅋㅋㅋㅋ] [사실상 김한영 우승]전반부 종합 승리.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쾌거였다.
* * *
첫 방송이 나가고 며칠 뒤.
정 PD는 다시 한번 예능국 국장 사무실로 발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예전의 그와는 달라도 확실히 달랐다.
어디가 다른가 하면, 걸음걸이가 달랐다.
저벅저벅.
예전에는 배 째라는 기세가 드러나는 발걸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쨀 수 있으면 째 보시던가.’
네가 뭘 어쩌겠냐는 발걸음이었다.
그 오만하게마저 보이는 모습에 박찬성 국장이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정 PD야, 요즘 기분 좀 좋은가 보다.”
“에이, 평소랑 다를 게 있겠습니까. 이게 전부 국장님의 은총이죠.”
정 PD가 실실 웃었다.
예전의 눈치를 보기 바빴던 그의 태도라고는 도저히 보이지 않는 상황.
왜 이렇게 당당할까.
그 이유를 말하자면, 시청률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5.2%]시작부터 전국 5%를 뚫고 호신호와 함께 시작되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
신규 예능 프로그램의 스타트로는 잭팟이라 불러도 무방할 수준이었다.
‘예전이라면 모를까, 요즘은 이런 인터넷 방송 컨셉 프로그램이 너무 흔하지 않나 지적이 많았지.’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흔히 지긋지긋하다는 말이 나오는 와중이었다.
[대체 언제까지 인방 방송만 나오냐] [포멧 돌려막기도 적당히 해야지 ㅋㅋㅋㅋㅋ 그렇게 아이디어가 없음?]그런데 이 분위기를 뚫고 [유마온] 첫 방영이 선방해 버린 것.
하물며 그 주역이 누구인가.
정 PD가 밀어붙인 출연자, 김한영이었다.
“이야, 잘할 줄은 알았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잘해 줄 줄은 몰랐네요. 후후. 역시 제 안목 어디 안 갔습니다.”
“임마, 적당히 웃어. 그러다가 망하면 부끄러워진다.”
박찬성 국장도 속으로는 미세한 짜증이 끓어오르면서도 차마 겉으로는 대놓고 갈구지를 못했다.
방송국은 시청률만 나오면 장땡이니까.
또한, [유마온] 1화의 성공으로 상부에서도 박찬성 국장의 유능함을 치하했으니까.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유능하기는 유능해.’
정 PD는 엄밀히 말해서 트러블 메이커다.
그럼에도 여태껏 회사에서 잘만 승진했던 건, 트러블을 일으키는 이상으로 시청률을 견인해 왔기 때문.
그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절 호출하셨습니까? 설마 형님께서 절 칭찬하려고 부르셨을 리는 없고.”
“적당히 기어올라. 좋은 말 하려고 부른 거 아니니까.”
“예? 그게 무슨 말씀.”
정 PD가 예상외의 말에 작게 의문을 띄운 순간이었다.
박찬성 국장은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너도 알지? 편집팀에서 말 나오고 있는 거.”
“…….”
“이럴 줄 알았어. 임마, 내가 그래서 몇 번을 말렸냐. 알고는 있었던 거 맞아?”
적막한 사무실로 박찬성 국장의 목소리가 이어지기를 한참.
잠시 뒤.
정 PD도 예상했다는 듯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답했다.
“그럴 것 같기는 했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예상했죠.”
그렇다.
편집팀의 권한을 줄이고 김한영 측에게 양보한 순간, 내부에서 반발이 일어날 건 뻔한 일이었다.
“겉으로는 대놓고 말은 안 하겠지. 하지만 네가 조금이라도 물러서는 순간, 저쪽에서는 물어뜯을 빌미를 찾을 거야.”
“음.”
생각보다 진지한 말이 나왔다.
사내 정치는 질색인데.
그렇다고 회사 생활을 하는 이상 완전히 외면할 수도 없는 일.
정 PD는 잠시 주위를 둘러본 뒤 입을 열었다.
“그럴까 봐 제가 샅샅이 확인하고 있습니다. 잘 커버해 보겠습니다.”
“아니, 이미 늦었어.”
박찬성 국장은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어디서 말이 샜는지는 모르겠지만, 위에서 항의 들어왔다.”
“……!”
“허튼짓하고 있는 거 아니냐고 하더라. 겉으로는 의심인데, 실제로는 대놓고 꼽주는 거야. 어디 협력사에서 윗선으로 찔렀나 보지.”
그 말에 정 PD가 눈을 크게 떴다.
‘젠장, 냄새 한번 더럽게 빨리 맡네.’
설마 일어날까 했던 사태가 일어나 버린 것.
내부에서 얼버무린다면 모를까, 외부로 말이 퍼졌다면 위험하다.
시청률 5%는 청신호가 맞다.
하지만 외부의 불만을 잠재우고 강행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정 PD.”
박찬성 국장이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지금 방식으로 쭉 가기는 어려울 것 같아. 선은 지키자고.”
“하지만.”
“나 지금 너랑 상의하자고 부른 거 아니다. 명령하는 거야.”
무거운 분위기가 잠시 더 이어졌다.
정 PD가 평소 국장에게 잘 개기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박찬성 국장이 사적인 영역에서 허용하기 때문.
공적인 입장에서 명령한다면 이건 또 별개의 이야기였다.
“……알겠습니다.”
적신호가 들어왔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