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21
121화
정셰프.
근래 들어 본격적으로 방송을 촬영하기 시작하며, 의도치 않게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한 사람이었다.
‘은근 미안한데.’
나는 그에게 작게나마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그의 미튜버 인생 최고 히트작, 무림고의 제작이 정체된 것 때문.
방송 스케줄 탓에 4편 제작을 미루는 게 됐다.
그래서 내심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그가 먼저 연락한 것.
심지어 그것도.
“증거 영상이 있다고요?”
이번 사태를 반전시킬 증거가 자신에게 있다면서 말이다.
“예, 이걸 봐 주시길 바랍니다.”
정셰프.
그가 노트북으로 어느 영상을 재생했다.
그런데 그 화면에 비치는 영상이.
“잠깐만.”
어쩐지 익숙한 사람들이다 싶은데, 조은솔이 입을 열었다.
“저거, 우리 아냐?”
그녀의 말이 맞았다.
영상 속에 찍힌 무리는 우리, 팅 멤버들이었다.
그것도 촬영장에 처음 방문했던 그날인지, 낯선 환경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영상 속에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건 같은 날 같은 시각, 현장의 다른 부분을 찍은 영상입니다.”
정셰프가 또 다른 영상을 재생했다.
그리고.
‘이게 오늘의 본론이네.’
카메라의 저쪽 끝.
그곳 어딘가에 한 왜소한 남자가 손에 캠코더를 든 채 몸을 숨기고 있었다.
우리가 있는 방향을 향해서 말이다.
카메라와 그 피사체.
이 두 가지를 조합해 보면 나오는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어쩐지.”
나는 이쯤에서 헛웃음을 터뜨리고는 말했다.
“몰래카메라였네요.”
“예.”
정셰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 말인즉슨, 김경율이 귀신 분장을 하고는 우리를 덮쳤던 것까지가 전부 조작일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었다.
“피해자인 척하더니. 이 새끼 아주 우스운 새끼 아니야.”
홍윤서가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몰래카메라 찍으려고. 그러다가 실패하니까 뭐? 삐져? 정신머리가 어디로 간 거야? 별거리 여덟 마당의 홍윤서가 따끔한 맛을 보여 줘야 정신을 차릴까? 어?”
“형, 지금 농담할 때가 아닌 것 같아요.”
“난 늘 진지해.”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시군.
나는 그에게서 슬며시 시선을 치우고는 정셰프를 바라보며 물었다.
“대표님, 이 영상은 어디에서 구하신 거예요?”
“그게 말입니다.”
정셰프는 어딘가 허탈한 눈치로 숨을 몰아쉬더니 입을 열었다.
“저희 스튜디오는 사실, 현장에서 촬영한 동영상뿐만 아니라, 현장 그 자체까지 모조리 다 촬영해 모조리 클라우드에 저장하는 체계를 구축해 뒀습니다. 혹시 나중에 어떻게 쓰일지 모르니까요.”
“그 촬영 분량을 검토하던 중 발견하셨다는 거군요.”
“예, 당시 영상 수백 개를 전부 확인하느라 시간은 조금 걸렸습니다만. 혹시 몰라 저장해 둔 CCTV에서 나오더군요.”
“몰랐을까요?”
“알았을 겁니다.”
그가 참담한 표정으로 혀를 찼다.
“저희 현장이 이렇게 돌아간다는 걸 알았으면서도 놓친 겁니다. 부주의했던 거겠지요. 습관이 무서우니까 말입니다.”
우스운 이야기다.
장난을 친 것까지는 좋았는데, 정작 뒤처리가 어설펐다는 말인가.
“이거 완전 멍청한 새끼네.”
홍윤서가 중얼거렸다.
“저지를 거면 들키지를 말든가.”
공감한다.
이렇게까지 멍청하다니.
물론, 그 멍청함 덕분에 우리야 이득이지만 말이다.
딸깍.
나는 마우스를 들고 촬영자의 모습을 몇 번이고 다시 반복해서 재생해 보았다.
얼굴에 야릇하게 번진 웃음이 흐릿한 화질로도 보였다.
‘지독하네.’
원한도 없는 사람에게 이런 장난까지 친단 말인가.
나는 그 알량한 태도가 우스워서 말했다.
“대표님, 이런 일이 흔한가요?”
“절대 흔하지 않습니다. 흔해서는 안 되고요. 저희도 이런 일이 일어났을 거라고는 상상을 못 했습니다.”
“재밌네요. 어디 중고등학교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다 생기네. 촬영 현장이 동네 놀이터도 아니고.”
왜 이 업계에는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을 구분 못 하는 사람이 널린 걸까.
이래서야 아마추어라고 놀림 받은들 부정하기도 어렵겠네.
유감이다.
반은 허탈하고 반은 우스워서 작게 읊조린 순간이었다.
“죄송합니다.”
“……!”
정셰프가 깊게 머리를 숙였다.
“대표님?”
그 찰나 조은솔이 만류하려 했지만, 그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로 다시 들어 올리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그간 촬영장 분위기를 즐겁게 잘 만들려고 많이 노력했는데. 제 그런 태도가 오히려 현장의 상식마저 오염시켰습니다. 한영 씨 말씀대로, 그간 제 스튜디오는 동네 놀이터였습니다.”
아.
이 사람, 내가 조금 전에 한 말을 듣고 자기를 꾸짖는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전혀 아닌데.
‘거기까지는 생각 안 했는데.’
자조적으로 한 말이었다.
물론, 현장 관리를 허술히 한 건 실책이 맞다. 하지만 실책은 실책이지 결코 죄가 아니었다.
당장 고등학교 학급 40명 중에 깡패 1명 있는 걸 교사가 어찌 통제한단 말인가.
오히려 뒤늦게라도 도와주겠다고 나선 게 고마운 일이지.
그렇기에 나는 정셰프에게 별다른 악감정이 없는데, 그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사람 관리를 못 해서 일어난 일이니 제가 할 말이 없습니다.”
“대표님.”
“저도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뭐라고 말하려 우물쭈물하기를 잠시.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말했다.
“아닙니다. 변명의 여지 없이 제 잘못입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잘못이 아니죠.”
“아닙니다. 그 사람을 뽑은 것도 저 자신이니, 촬영장에서 나온 잘못은 전부 제 잘못이 맞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장난을 시도할 만큼 현장을 우습게 여기게끔 했다는 것부터가.”
혓바닥에 무게감이 실렸다.
설령 자기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아니더라도, 자기 책임이기에 하는 사과.
정셰프는 거듭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전적으로 제 책임입니다. 거듭 죄송합니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책상에 머리라도 박겠다.
그 기세에 나도 할 말을 잃은 참인데, 정셰프는 어느새 달라진 기세로 다시 입을 열었다.
“필요하시다면 사과 영상을 올리겠습니다. 이번 직원은 앞으로 저희와 함께할 수 없는 건 물론 필요하다면 고소까지도 감수하겠습니다.”
“……그렇게까지야.”
“선례를 만들어 두려 합니다. 가수님 덕분에 저 또한 돌이켜 볼 기회를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름대로 강단이 잡힌 목소리였다.
평소 대책이 없을 만큼 유한 태도를 보이는 정셰프가 이렇게까지 말한다는 건, 그만큼 이번 사태가 심각하다는 거겠지.
스튜디오 직원이 출연자에게 독단적으로 몰래카메라를 저지른 셈이니 말이다.
그런데 홍윤서도 욱해서는 말했다.
“한영아, 봐줄 거 없어. 다 한통속이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 알지? 이거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야. 아주 업계에서 퇴출을 시켜 버려야 해.”
원론적인 말이다.
다소 감정에 휘둘린 말이라는 걸 고려해도 적잖이 솔깃했다.
“윤서 말이 맞아. 이번에는 확실히 짚고 넘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조은솔마저도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평소 온화하고 모든 일에 좋게 좋게를 추구하는 그녀이기에 더욱 와닿았다.
하지만 결국.
이번 일에 선택권은 내게 달렸다.
‘처벌이라.’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단순히 화풀이를 쏟아 낸다고 해서 사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사건의 본질이 무엇인가.
몰래카메라일까.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내부 다툼을 인터넷으로 확장해 부풀린 게 문제이지.
조금 더 완만한, 아니, 더 즐거운 해결 방법이 있을 터.
‘모처럼 생긴 반전인데, 이걸 좀 더 유익하게 써먹을 방법 없을까.’
미튜버다운 거 말이다.
사태 해결의 실마리가 손에 잡힐락 말락 해 고민하기를 잠시.
머릿속으로 함무라비 법전이 떠올랐다.
‘그게 있었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고 했던가.
나는 작은 아이디어를 떠올리고는 비로소 입을 열었다.
“일단은 알았어요. 대표님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해 주시니, 따로 사과는 더 필요 없어요. 충분합니다.”
“이 빚은 제가 꼭…….”
“대신, 그 친구에게 부탁이 하나 있어요.”
내 말에 정셰프는 숙였던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리더니 말했다.
“…… 부탁이요?”
“네.”
“부탁이라면 어떤.”
나는 모처럼 유쾌한 마음이 들어서 웃으며 말했다.
“부탁 하나요. 딱 하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사과가 아니다.
컨텐츠다.
* * *
몇 시간 뒤.
나는 고개를 돌려 내 맞은편을 바라봤다.
한 남자가 덜덜 떨면서 고개를 웅크리고 있었다.
겁에 질려도 제대로 질린 눈치가 영락없이 물에 젖은 생쥐를 닮았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문제를 저지르지 말 것이지.’
이 남자의 정체는 바로, 전봉모, 몰래카메라에 협조한 스태프였다.
그가 내 앞에 앉아 있는데, 태도가 예전의 그와는 완전히 달랐다.
뭐라고 해야 할까.
영상 속에서는 함박웃음을 짓던 그가 지금은 마치 판사 앞에 선 죄인처럼 어깨가 쪼그라들었다.
“저기, 봉모 씨.”
“네, 네!”
짧게 이름 한번 불러 본 건데 화들짝 놀라서 대답하고는 내 눈치를 살폈다.
식은 땀까지 줄줄 흘리는 게 누가 보면 내가 묶어 놓고 물고문이라도 한 줄 알겠네.
‘괜찮은 생각인데?’
상상해 보자 그러고 싶은 마음이 은근슬쩍 고개를 치켜들었다.
하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다.
왜냐.
“……저, 저기, 진짜로 용서해 주시는 거 맞죠?”
이 사람은 지금 내게 협조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나는 이번 일을 덮고 넘어가는 조건으로 말이다.
나는 헛기침을 뱉고는 말했다.
“대표님 얼굴 봐서 선처해 드리는 거예요. 서로 얼굴 붉히기 싫다고 하셔서요.”
“예,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는 몇 번이고 반복해 고개를 숙이면서도 목소리에 떨림이 가시질 않았다.
하지만 내 입으로 확답을 들어서 그런지 조금이나마 안도한 눈치.
그게 더더욱 그의 처지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조심할 것이지.’
스태프가 출연진의 몰래카메라를 찍은 상황이다.
이게 새어 나가면 바로 매장당하겠지.
살아남고 싶다면 필사적일 수밖에 없으리라.
그의 목에 매인 목줄이 눈에 보이는 것만 같다. 스스로 맨 목줄이었다.
동정할 필요라고는 티끌만큼도 없는 목줄.
“시간을 지체할수록 안 좋으니까 바로 시작할게요.”
나는 핸드폰을 꺼내서는 어느 번호를 눌렀다.
몇 초 뒤.
딸깍.
수화기 너머에서 태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여보세요.]이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김경율.
이번 사태의 원흉이 된 사람이었다.
[여보세요?]그 염치없는 목소리를 듣자 꿀꿀했던 기분이 조금이나마 좋아졌다.
이제부터 그의 앞으로 어떤 코스 요리가 닥쳐올지 전혀 모르고 있군.
웃고 싶다.
하지만 나는 애써 장난기를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네, 안녕하세요. 경율 씨.”
[누구세요?]“저 김한영입니다.”
우선 정체를 밝힌 그 순간이었다.
[아, 그러세요?]짧고 정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차갑다.
살얼음 위를 맨발로 걷는 듯, 지극히 차갑기 짝이 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제 막 전화를 건 참인데 이 대화의 결말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
그렇기에 나는 일말의 여유를 띄우며 물었다.
“갑작스럽게 죄송하지만, 인터넷에 올리신 글을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인터넷에 올린 글이요?]“네, SNS에 올리신 글이요. 저에 대해서 하신 말씀이 있길래요.”
[아-.]이제 본론이다.
다음으로 무슨 말이 나올까 기대되는 와중.
그는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외면이었다.
이번 사태를 철저하게 모르쇠 하는 것.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내 연락을 듣고 글을 올린 게 본인이라는 걸 인정하면, 사태가 번거로워질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내 입장에서 볼 때는 그저 우스운 일이기도 했다.
‘예상대로네.’
외면해 줬구나.
고맙다.
덕분에 일이 더 재밌어졌다.
나는 그가 정확하게 내 예상대로 행동해 준 데 감사의 마음마저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이번 일은 서로 오해가 있지 않았나 싶은데, 대화로 풀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말을 하시는지 저는 잘 모르겠네요. 그리고 제 연락처도 어디서 받으셨는지 모르겠는데, 이렇게 불쑥 전화하시는 거 불쾌합니다.]“배우님, 그래도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주실 수 없으신가요? 아니면 혹 커피라도 한잔하면서.”
[저 바쁩니다. 혹시 저희가 아는 사이던가요? 끊겠습니다.]“저기요. 배우님, 잠시만…….”
다음 순간이었다.
삐―.
통화가 그대로 끊겨 버렸다.
칼로 끈을 자르듯 매정하리만치 깔끔하게.
나는 일방적으로 단절된 핸드폰 액정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기를 잠시.
고개를 돌려 고희범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땠어?”
그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시선으로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응, 미튜브 각이다.”
기대했던 그 답이다.
하지만 나는 또 다른 답도 듣고 싶어 재차 물었다.
“아니, 연기력 말이야.”
“음.”
고희범은 팔짱을 낀 채로 눈을 지그시 감더니 말했다.
“너는 연기는 멀리하는 게 좋겠다.”
“월급.”
“여기서 조금만 더 잘하면 전국의 천만 배우들이 모두 일자리를 잃을 테니까 말이지.”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