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24
124화
JCTV 방송국.
늦은 저녁.
잦은 야근으로 좀비가 기어 다니는 사무실에, 상대적으로 화사한 오 작가가 걸어 들어와서는 큰 목소리로 외쳤다.
“마실 거 사 왔어요.”
그와 거의 동시에 책상 위에 늘어져 있던 정 PD가 급히 고개를 들어 올리더니 핼쑥한 표정으로 외쳤다.
“당! 당! 당! 오 작가! 나 당 떨어졌어! 당 줘!”
“어디 안 가요. 여기요.”
정 PD가 초코우유에 꽂힌 빨대를 정신없이 빨기 시작했다.
오 작가는 적당히 옆자리에 앉아 어처구니가 없다는 눈길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PD님, 왜 그래요? 요즘 잠을 제대로 못 주무셨나?”
“못 주무시다니. 못 잔 게 아니라 안 잔 거야.”
“그게 그거죠.”
“타의적인 행동과 자의적인 행동은 구분해야지.”
“그래서? 무슨 일인데요?”
“뭐겠어.”
정 PD는 초코우유를 책상 위에 탁 내려놓더니 말했다.
“김한영 방송 보고 있었지.”
“아, 그 방송이요?”
“그래, 그 100시간 켠 김에 무대까지인지 방송까지인지 하는 그거.”
정 PD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온 순간이었다.
사무실의 직원들이 일제히 움찔하더니 정 PD 쪽으로 곁눈질을 보냈다.
대놓고 내색하지는 않아도, 의식하는 게 티가 난다.
김한영이라는 단어 탓이었다.
‘그거 봐라.’
정 PD가 퀭한 표정으로 클클 웃음을 흘렸다.
“방송 끝날 때는 동시 시청자가 최종 2만 명을 찍었네. 후원액은 며칠 동안 천만 원을 훌쩍 넘겼고. 무엇보다도 사이트마다 화제가 됐어.”
그의 입에서 김한영 방송의 기록이 호박 넝쿨처럼 줄줄 흘러나왔다.
김한영의 성공이 자기 성공이라도 된 것만 같은 목소리.
하지만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정 PD는 일말의 승리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김한영을 쳐내야 한다니 뭐니 말 많더니 꼴좋다.’
방송국에서 근래 들어 김한영을 내심 꺼리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편집권 문제로 내부에서 불만이 흘러나왔을뿐더러, 마침 방송 외적으로 갑질 논란에 휩쓸리기까지.
덕분에 대놓고 그의 편을 들어 주었던 나만 고립됐지.
워낙 주위 눈치가 보이니 늦은 저녁으로 마라탕이라도 먹은 듯 장이 불편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다.
“상상도 못 했네. 설마 방송 바깥에서 몸집을 키울 줄이야. 우리가 마케팅을 안 해 줘도 자기가 알아서 하네. 인터넷 사이트마다 난리인 거 봤지? 돈 주고 쓰는 기사보다 이게 훨씬 세.”
내부에서 뭐라 하든 스스로 저 하늘의 별처럼 빛나 버리지 않았나.
기특해 죽겠다.
이렇게까지 해 줬으면 이제 이쪽이 보답할 차례지.
정 PD는 아예 들으라는 듯 대놓고 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거 뭐야, 김한영 보겠다고 유마온 다음 화 본방 사수하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더라. 이 정도면 시청률은 보장이지. 보장.”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정 PD가 강조하는 건 보는 눈이 많다는 것이었다.
김한영의 연습 방송이 보기 좋게 다듬어진 채로 온갖 커뮤니티에 도배되었다.
그 결과가 썩 볼 만했다.
무대 하나 나가겠다고 112시간을 연습했다고 하지 않았나.
“결과물이 궁금해서라도 3화를 라이브로 보고야 말겠다는 시청자들이 줄을 섰어. 진짜로 줄을 섰다니까? 고객센터에 문의 전화가 끊이질 않는다잖아!”
예상치 못한 횡재 때문일까.
정 PD의 입꼬리는 아주 귀에 걸린 채로 내려올 줄을 몰랐다.
‘이 양반, 너무 신났는데.’
오 작가는 정 PD의 허세에 맞장구를 쳐 주기보다는 슬쩍 흘리며 분위기를 살폈다.
‘듣는 귀가 많아.’
마냥 동조하기에는 걸린다.
김한영을 칭찬한다는 건, 그를 싫어하는 사람을 맥이는 것과도 같으니.
하지만 이번만큼은 오 작가도 통쾌한 부분이 있었다.
‘PD님이 신날 만하기는 하지.’
지난 방송, 유마온 2화에서 사실 김한영은 노골적인 천대를 받았다.
악의적인 조명 그런 건 없다.
애초 약속대로 고희범이라는 꼬맹이가 깐깐하게 굴었기 때문.
하지만 그 대신 분량을 대폭 뺏겼다고나 할까.
방송에서 활약했음에도 김주언&김건하 몰아주기에 희생당한 부분이 있었다.
시청자들에게 항의도 들어왔지.
[아니, 본방 보니까 김한영 압승인데 왜 다른 방만 띄워줌?] [김건하가 잘하기는 했잖아] [잘한 건 잘한 거고ㅋㅋㅋㅋ 방송 볼 때는 김한영 방이 제일 재밌었음] [너도 한영단임? 방송은 공평해야지 어디까지 분량 몰아줘야 성에 참] [JCTV 뭐 돈이라도 받았음?] [뻔하지 ㅋㅋㅋ 김주언이잖아. 천만 배우 김주언. 영화 찍으려고 홍보대사 겸 나왔다는 데 건다]시청자들의 목소리가 꽤 섬뜩했다.
‘시청자들 촉이 날카롭다니까.’
실제로 그의 등장을 두고 뒤에서 말이 오간 게 사실이기 때문.
김주언은 그냥 단발성으로 등장한 게 아니다.
그의 이번 무대는, 조만간 있을 음악 드라마를 위한 홍보 무대이기도 하니까.
그렇다.
김주언은 여전히 배우로서 이번 촬영에 임했다.
그런 탓일까.
기본적인 실력은 충분하지만, 일정이 바쁘다며 전력을 다하지는 않는 게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밥맛이야.’
필사적인 모습은 없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김한영이 훨씬 호감상이었다.
100시간이 넘게 연습했다지.
꼭 노력이 결과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만, 그녀도 사람인데 인간 대 인간으로서 호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 결심했다.
“흠흠.”
오 작가는 슬쩍 주위 눈치를 살피고는 말했다.
“PD님.”
“왜?”
“이번에 분량 안 몰아주면, 시청자들이 사이에서 난리겠죠?”
신호를 보냈다.
오 작가가 은밀하게 보낸 눈빛을 정 PD는 놓치지 않았다.
벌써 두 자릿수로 호흡을 맞춘 사이 아닌가. 일류 배구 선수의 토스를 기다렸다는 듯 외쳤다.
“아, 그럼! 물론이지! 요즘 시청자들이 얼마나 예민한데. 전에 그 오디션 프로그램 뭐는 분량 조절 실패했다고 조작 방송이라며 보이콧하고 난리가 아니었잖아.”
경쟁 프로그램의 뒤에 언제나 따라붙는 이야기였다.
자기들이 응원하는 사람의 방송 분량이 적으면, 꼭 뒤에서 말이 나온다.
어떻게 보면 이게 참가자의 진짜 실력이기도 하였다.
방송국마저도 이런 목소리가 쌓이면 아예 외면할 수는 없으니까.
“우리 방송이라고 남 일이 아니라니까!”
“맞아요. 어휴, 요즘은 옛날 같지가 않아요. 시청자들 눈치가 제일 무섭다니까요.”
“무섭다! 무서워!”
예능국 사무실에 난데없이 야합이 일어났다.
“시청자들이 유마온 2화 보고 뭐라고 했는지 알아? 이거 시청자들이 김한영 죽이기 하는 거 아니냐잖아! 미튜버 무시하는 거 아니냐고! 공평성이 없대!”
“맞아요. 제 친구도 왜 이렇게 됐냐고 저한테 물어보더라고요.”
“어우, 쪽팔려.”
티키타카는 이만하면 됐다.
정 PD는 기세를 몰아, 아예 다른 예능국 직원들에게도 들으라는 듯 외쳤다.
“아이고! 시청자님들이 너무 무서워서라도 이번 방송은 어쩔 수가 없겠구만! 어?! 김한영! 당신 대체 뭐야!”
“…….”
“왜 이렇게 열심히 해! 그렇게까지 방송 분량이 탐이 났어?!”
유치하기 짝이 없다.
메인 PD씩이나 되는 사람이 이런 저열한 정치질을 해도 되는 건가 싶은 상황.
차라리 정치질이 어디 드라마처럼 꼼꼼하면 모르겠는데, 이건 너무 치졸하지 않나.
잘 쳐 줘야 중학생 이상 고등학생 이하 수준의 정치다.
하지만 정 PD는 쥐뿔도 신경 쓰지 않았다.
‘노를 이럴 때 저어야지 아니면 언제 저어?’
추진력이 생겼다.
이제 밀어붙여야지.
‘아니꼬우면 항의하라고 해.’
어차피 JCTV에서 국장 달기는 글렀다. 문제 생기면 이직하면 그만이다.
* * *
본격적인 행사 준비가 끝마무리에 다다랐다.
‘아, 상쾌하다.’
새벽에 가까운 아침, 작업실에서 눈을 뜨고 거실에 나왔을 무렵 함재원은 이미 연습에 빠져 있었다.
내가 나온 걸 모르는지 연습에 빠져 있는 모습.
그걸 본 순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원래대로 돌아왔구나.’
불과 얼마 전의 한심했던 그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뭐라고 하면 좋을까.
지금의 그는 얼마 전 그와 같은 사람이라고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학원 시절을 말하는 게 아니다.
지난주를 말하는 것이었다.
지난 일주일 남짓했던 시간.
온 힘을 다했던 그 일주일이 잔뜩 녹이 슨 명검을 시퍼렇게 갈아 냈다.
‘확실하네.’
완벽하게 돌아왔다.
기타에 집중하는 모습에서 소름이 끼칠 정도.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수십 년을 근육질로 살아왔던 사람인데 잠시 과식 좀 했기로서니 본판이 어디 가겠는가.
지방을 걷어 내면 그 안에 여전히 단단한 근육이 자리 잡혀 있는 게 당연했다.
어쩌면 예전보다도 훨씬 강인해진 그것이 말이다.
“뭐 하나?”
그가 내가 일어난 걸 눈치챘는지 심드렁한 목소리로 물었다.
“촬영 전까지 손 풀어야지.”
“알았어요. 하지만 밥은 먹고요.”
뭘 먹으면 좋을까.
생각해 보니 이럴 때 딱 좋은 식사가 있었다.
나는 군침이 흐르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며 말했다.
“고구마요. 에어프라이어에 돌려먹으면 엄청 맛있는 거 알아요?”
“아침부터 고구마?”
“아침이니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고구마에는 마그네슘이 풍부해서 긴장이 가시거든요. 식이섬유가 많아서 장 건강에도 좋고. 공연 중에 속이 불편하면 조금 그렇잖아요.”
사실, 음식 하나 먹는다고 뭔가 엄청난 차이가 생기지는 않겠지.
하지만 플라시보라는 게 있지 않나.
프로 뮤지션이라면 플라시보마저 자신의 편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식습관이군.”
반응 봐라.
취향에 존중이 없네.
나는 그를 게슴츠레 바라보다가 말했다.
“싫으시면 저 혼자 먹고요.”
“…….”
“아예 식구들도 불러서 다 같이 먹고 오후에 출발하죠. 아니면 주변 작업실에서 더 연습하고 들어가도 좋을 것 같아요.”
“흠.”
함재원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무대 아침밥으로 고구마를 먹는다는 말은 살다 살다 처음 듣네. 차라리 굶는 게 낫지.”
이 사람 뭐래.
하지만 퉁명스러우면서도 가벼운 농담이 담긴 말이었다.
……적어도 내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문득, 지금이라면 그에게 뭔가 물어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궁금해도 민감해서 못 물어보던 그런 거 말이다.
하기 어려운 질문.
꺼낼까, 말까.
‘그냥 지르자.’
후폭풍은 미래의 내가 알아서 감당하겠지.
흠흠.
나는 헛기침을 뱉고는 말했다.
“그 김건하라는 사람이요. 라이브를 그렇게 잘해요?”
함재원이 움찔했다.
역시나 했더니 역시다.
아픈 구석을 찔렀는데 반응이 없을 수가 없지.
그는 눈을 몇 차례 깜빡이더니 마지못해 답한다는 듯 말했다.
“……인터넷에 영상이 많지 않나?”
“네, 있기는 있던데요. 그런데 뭐라고 해야 하나. 잘할 때는 잘하는데, 못할 때는 정말 못 하는 것 같아서.”
내가 본 김건하의 특징이었다.
기복이 심하다.
잘할 때는 정말 한국 최고라고 불러도 될 라이브를 보여 주지만, 못할 때는 아마추어에 가까운 솜씨였다.
‘발성부터가 흔들렸지.’
옛 가수 중에는 감에 의존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이런 보컬이 자주 있기야 했지.
하지만 그중에서도 김건하만큼 오르내리는 건 또 드물었다.
내심 의문을 가진 참인데, 함재원이 입을 열었다.
“너무 재능을 과신하는 탓이지.”
“전에 말씀하신 그거요?”
“술을 진탕 마시고 무대에 오를 때가 잦은 건 물론, 아예 무대에서 마실 때도 있지. 보컬리스트에게는 금물인 흡연에 폭식까지. 하물며 연습까지 게으르니, 좀처럼 컨디션 조절이 안 돼.”
“이번에도 그럴 수 있겠네요.”
“그건 또 모르지.”
그는 고개를 젓더니 말했다.
“연습을 거의 안 하는 건 맞지만, 몇 년 만에 산에서 나왔다고 하지 않았나. 듣기로는 잘해야만 할 이유가 있다고도 하고. 생각이 있다면 몇 년 만의 복귀 무대인데 조금은 신경을 썼다고 보는 게 타당하겠지.”
연습을 아예 안 하는 편은 아니라는 건가.
뭐, 아무래도 좋다.
상대가 어떤 부류든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준비해 놓은 것도 있고.’
이 사소한 준비가 끝의 끝에서 차이를 벌릴 수 있기를 바랄 뿐.
그렇게 생각하며 기타를 들려는 순간이었다.
-삑삑삑삑. 또로롱.
현관 암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왔다.
“일어나 있었네?”
조은솔이었다.
그녀가 우리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잘 됐다. 집에서 고구마 샐러드 가져왔거든? 같이 좀 먹고 연습한 다음에 가자. 민아한테도 연락했는데 곧 온대.”
명언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는 함재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봤죠? 고구마.”
“응? 고구마가 왜?”
조은솔이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후우.”
동시에 함재원이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는데, 나는 어째서인지 이 상황이 웃겨서 큭큭 웃고는 손가락을 추켜세우며 말했다.
“누나가 최고예요.”
“어? 왜?”
“그냥요. 누나 최고.”
“땡큐. 그건 그렇고.”
조은솔이 함재원을 바라보며 물었다.
“선생님도 같이 드실래요? 식구들 다 같이 먹으려고 좀 많이 싸 왔거든요.”
그는 심경이 복잡한 듯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조금만 주게.”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