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28
128화
지난 유마온 방송 출연이 끝난 뒤, 어쩐지 끝마무리가 애매한 감이 있었다.
얽힌 게 많은데 설렁설렁 지나갔다고나 할까.
‘왜 불렀나 했더니.’
함재원이 부르기에 혹시 무슨 일 있나 하는 마음에 따라온 참이었다.
치이익.
불판 위로 삼겹살이 달아오르는 고기집.
고기 한 근에 십만 원은 가볍게 호가하는 최고급 한우집 ‘설화정’에서 함재원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 사람은 또 왜 여기에 있지.’
내 앞 불판 너머로 한 중년이 앉아서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김건하.
지난 방송에서 끝을 조지고 뒤로 물러난 사람이었다.
사람을 왜 불렀는가 어색하기만 한데, 그는 목이 적잖이 탔는지 생수병을 쉴새 없이 기울이기 바빴다.
곁눈질로 안색을 살피니 관우 못지않게 붉었다.
이미 얼큰하게 걸친 모양이다.
‘이 사람, 진짜 그냥 놀러 온 건가.’
흘끔 옆을 돌아봤더니 함재원은 소주잔을 연신 기울이고 있었다.
딱 봐도 잔뜩 취했다.
문자는 어떻게 쳤나 의심스러울 수준.
그건 그렇고 이 두 사람이 왜 한자리에 있나.
서로 견원지간인 줄 알았는데, 며칠 사이에 의기투합이라도 한 건가.
됐다.
머리를 비우자.
맨손으로 돌아가기도 그렇고, 차비라도 때울 겸 고기로 배라도 채울까 하는 순간이었다.
“이 친구가 노래를 잘 부르더라고.”
김건하가 날 칭찬하기 시작했다.
“아주 대단해. 그 나이에 그렇게 하기가 쉽지가 않았을 것 같은데.”
“감사합니다.”
“딱 옛날에 내 생각이 나는 거 있지. 내가 눈이 삐었지. 용서해 줄 거지?”
“그렇군요.”
“나도 어릴 때부터 음악을 했거든. 딱 이 친구 나이 때 처음으로 곡을 냈지.”
“훌륭하십니다.”
왜 칭찬을 하나.
한때는 경쟁자였지만, 이제 아니다 그건가.
굳이 신경은 안 쓴다.
음악이 누구 하나 죽여야 끝나는 칼싸움도 아니니까.
하지만 취기가 묻은 목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고기라도 한 판 비워야겠다는 생각으로 버틸 뿐.
‘아무런 사정도 없이 온 건 아닐 거 아니야.’
기다리다 보면 본론을 꺼내겠지.
그 순간을 기대하며 고기 익기만을 기다리는 와중이었다.
탁.
함재원이 책상 위로 소주잔을 내려놓았다.
이목이 쏠린 순간 그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왜 불렀나 정신이 없겠지.”
“네.”
“자네한테는 말을 안 했지만, 지난번 방송이 끝나고 회포를 풀었어.”
아.
그렇구나.
그러셨구나.
‘대단하네.’
어쩐지 같은 자리에 있다 싶었네.
참 개연성 있는 말이다.
지난 일주일 사이에 자기들끼리 잘도 지지고 볶았나 보다.
“당황스럽기는 하네요.”
“뭐, 말을 들으니까 사정이 없던 건 아니더라고.”
“사정이요?”
“누구나 다 그른 선택을 할 이유가 하나쯤은 있지 않겠나.”
김건하는 조용히 잔을 따르며 말했다.
“이 자리에서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누구나 다 살면서 그런 선택을 하지. 나도 그렇고, 이 친구도 그렇고.”
저 말을 들은 내 소감은 이러했다.
‘뭐라는 거야.’
무게나 잡으면서 빙빙 돌리는 걸 보니 구체적으로 말해 줄 생각은 없나 보다.
하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두 사람 사이가 어찌 되었든, 그건 내게 크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사람 사이라는 게 좋다가도 나쁜 거지.’
부모님 안부 묻던 사이에서 의형제 맺은 걸 한두 번 봤나.
아저씨들끼리 술 한잔 걸치면서 감정의 골을 풀 수도 있지. 이 나이 먹고 아직도 서로 원망하면 조금 그렇다.
“잘됐네요.”
대충 한 귀로 흘리며 고기나 마저 집으려는 찰나였다. 함재원이 김건하에게 눈길을 돌리며 말했다.
“이 친구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면서. 해.”
“고마워.”
김건하가 피식 웃었다.
이제부터 본론이겠다 싶은 찰나 그가 내게 말했다.
“거창한 말을 하려고 부른 건 아니고, 내가 이번 무대를 마지막으로 은퇴할 생각이라서 한번 만나자고 했지.”
“그래서 부르신…… 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은퇴한다고 했나.
깜빡이 없이 들려온 말에 영혼이 머리를 이탈한 것만 같은데, 김건하가 말했다.
“이 자리는 내 은퇴식이고.”
*은퇴라니.
당신, 한 시대를 풍미한 거인이라며.
잠적했다가 복귀한 지 한두 달밖에 안 됐으면서 갑자기 또 무슨 은퇴야.
눈을 게슴츠레 뜬 참인데 김건하가 입을 열었다.
“자네와는 한번 속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 지난번 일도 있었고. 재원이한테 졸랐어. 만나게 해달라고.”
그는 생수를 꼴깍꼴깍 들이켜더니 말했다.
“자네는 내가 껄끄러울지도 모르겠네. 안 그런가?”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죠.”
“…… 예의상으로라도 돌려서 말해 주면 어디가 덧이라도 나나.”
“제가 빈말을 못 하는 성격이라.”
“아무튼, 나는 그런 기분이었어. 선후배 관계고 경쟁이고 뭐고 그런 모든 걸 다 떠나서, 속이 시원하게 이야기를 해 보고 싶은 그런 거.”
김건하가 불판 위의 고기를 뒤집었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소고기 사이로 핑크빛 속살이 돋보였다.
100g에 3만 원을 호가하는 최고급 한우다운 자태.
‘저건 무조건 맛있다.’
군침이 절로 나오려는데 김건하가 내게 말했다.
“내가 왜 은퇴하려는지 알겠나?”
저런.
고기 한 점 집기 어렵다.
대답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에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목 상태가 안 좋아서요.”
“답이 빠르게 나오네.”
잠짓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리기에 나는 빠르게 젓가락을 놀려 고기를 입안으로 숨기고는 말을 이었다.
“그럴 것 같았거든요. 아무래도 지난번 그게 정상적인 무대는 아니었으니까요.”
“…… 맞아, 정상적인 무대는 아니었지.”
김건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목이 안 좋았던 게 하루 이틀 된 일이 아니야. 그보다는 훨씬 더 오래됐어.”
그가 시선을 내게 다시 보냈다.
언제부터였는지 물어봐 달라는 시선이었다.
참 번거로운 사람이다.
나는 고기 한 점을 입에 넣고는 어깨를 으쓱하고 물었다.
“언제부터요?”
“몇 년 전부터. 정확히는.”
그가 손가락으로 자기 목의 후두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여기 못난 놈이 입주했을 때부터였지.”
“성대결절이요?”
“후두암. 목에 암이 자랐지.”
들어본 적 없는 말이었다.
목 상태가 안 좋은 것 같기는 했다만, 일시적인 컨디션 저하나 성대결절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암이라니.’
단어의 무게감치고는 너무나도 태연하게 나온 말에 눈을 깜빡거리는데, 그가 장난스럽게 웃더니 말했다.
“지금은 다 나았으니까 딱히 안타깝게 생각할 필요는 없고, 그냥 그런 게 있었다는 정도만 알아 둬. 딱히 암 때문에 어쨌느니 변명하려고 한 말은 아니니까.”
“후유증이 남은 건가요?”
“그렇지.”
“못 고친대요?”
“고치려면 고칠 수는 있지만, 목에 칼을 대면 목소리가 지금 같지는 않을 거라고 하더라.”
아.
종종 있는 일이었다.
가수라는 직업은 평생 목을 쓰는 직업인 탓일까.
강철 성대라도 타고난 게 아닌 이상, 성대에 문제가 없는 사람이 드물었다.
경력이 쌓일수록 너덜너덜해지기 마련.
경증이라면 모를까, 중증이라면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이게 또 문제였다.
간혹 예전처럼 노래할 수가 없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었다.
음색을 잃거나, 음역을 잃거나.
‘보니 타일러는 영원히 예전 목소리를 잃어버렸다고 했지.’
그쪽은 새로 얻은 목소리가 개성적이라 이득이었다지만.
아무튼, 목소리가 변할 게 두려워 반쯤 고장 난 목으로 살아갈 때가 잦았다.
“혹시라도 산에 들어가서 지내면 낫지 않을까 했지. 이번 방송에도 같은 생각으로 출연했고. 그런데 내가 오만했던 거지.”
김건하가 낄낄 웃었다.
‘지금이다.’
나는 슬쩍 젓가락을 놀려 고기를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이 맛이다.
흡사 녹은 버터를 삼키는 것만 같은 질감에 혀가 녹을 것만 같은데, 김건하가 웃더니 말했다.
“지난 무대는 내 은퇴 무대고, 자네는 나와 마지막 무대를 함께한 셈이야.”
“…… 그렇군요.”
급하게 대답하고는 우물우물 씹던 고기를 꿀꺽 삼켰다.
“슬슬 힘이 부치더라고. 몸도 예전 같지가 않고. 내 마지막 무대라고 생각하고 나왔는데, 결과가 이렇게 돼 버렸으니 박수 칠 때 완전히 떠나지 못한 죗값을 크게 치렀지.”
말하는 것과는 달리 얼굴에는 여전히 웃음이 만연했다.
그가 눈을 깜빡이더니 말했다.
“나는 말이다. 한평생 내가 뭐 하고 사는 놈인지 감이 안 왔다. 그냥 가는 대로 살았지. 주위에서 뭐라고 하든 귓등으로도 안 들으면서. 하고 싶은 대로. 그런데 뒤늦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그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어쩐지 껄끄러운 눈빛이다 싶은데 김건하가 피식 웃더니 말했다.
“나한테는 남은 게 없어.”
좀처럼 갈피가 안 잡히는 말이었다.
“내가 정말로 스스로 이룬 게 하나도 없단 말이야. 그게 얼마나 지독하게 공허하던지. 전부 자업자득이지.”
그가 킥킥 웃었다.
말하는 데 두서가 없다. 일찍 와서 마신 탓에 취한 건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 이어지기를 한참, 그는 마침내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자네는 나 같은 실수는 하지 마. 주위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
이제야 핵심을 알았다.
이 사람은, 음악인으로서 먼 후배인 내게 조언을 하고 싶어서 부른 것이었다.
김건하가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은 아니다.
나와는 살아가는 방식이 너무나도 다를뿐더러, 성격과 태도부터도 그러했다.
건들건들하지 않나.
하지만 지금 한 말 한마디 정도에서는 일말의 진심이 엿보였다.
“자네는 재능이 많은 사람이야. 앞으로 더 성공하겠지. 많은 사람에게 축복을 받을 테고, 그럴 때마다 주어지는 기회에 흔들리기도 할 거야. 자만도 할 테고.”
말이 이어졌다.
“나는 내가 잘난 맛에 살아서 못 할 짓을 많이 했어. 특히 재원이한테 그랬지.”
“됐네, 이 사람아.”
“아니야, 내가 미안해. 내가 너무! 나쁜 사람이었어.”
아저씨 둘이 의기투합을 하셨군.
취한 말들이다.
앞에서 한 말이 뒤에서 한 말과 부딪친다.
연결고리가 실종됐다.
누가 듣는다면 영락없이 취한 주정뱅이의 그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말들의 연속.
맥락이라고는 사막의 바늘처럼 실종된 조언이 이어졌다.
“이제, 내가 다 내려놓아서 말할 수 있는 거야.”
새삼스럽지만 그런 말들을 한 귀로 흘리며 듣고 있으려니 조금이나마 느껴지는 게 있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그가 지금 내게 하는 말들은 딱히 악의가 있어서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 나이 먹고 깨달은 게 이 모양이야. 하지만 자네는 젊잖아. 나처럼 살지 말았으면 좋겠어.”
할 말이 없는 사람들이 술에 취하면 흔히 하는 말이었다.
술기운을 빌려 말하고 싶겠지.
먼 후배에게, 자기처럼 살지 말라고 말이다.
‘나랑 딱히 친한 사이도 아닌데, 굳이 불러서 이런 이야기를 풀어 놓을 만큼.’
사람이 술기운에 기대야 했을 만큼 약했던 거다.
김건하가 마저 말했다.
“나도 자네 덕분에 기회를 얻은 거야. 지금까지의 나를 돌이켜 볼 기회를. 아주 시원하게 박살이 났지. 자네한테 고마워.”
그가 껄껄 웃었다.
탁.
이때쯤 고기 한 판이 다 떨어졌다.
슬슬 생각 정리를 마쳤을 때쯤,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는 그에게 말했다.
“글쎄요. 선배님은 이루신 게 많죠.”
“내가?”
그 순간 분위기가 바뀌었다.
한참이나 주정을 늘어놓던 김건하가 말을 멈추고는 눈만 깜빡거렸다.
이제 먹을 것도 다 먹었겠다.
더 눈치 볼 것도 없으니 할 말을 마저 해야겠다.
나는 그 정도의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선배님은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그렇게 비관적으로 생각할 거 없어요. 이 세상에 모든 걸 다 가지는 사람은 더 드물겠죠.”
“…….”
“재능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운동선수가 타고난 덩치를 잘 써먹는다고 해서 그게 죄는 아니잖아요. 잘났으면 잘난 거지.”
이제 돌이킬 수 없다.
나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할 말은 끝내기로 다짐하며 입을 열었다.
“선배님께서는 자기 인생이 흠집투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제 생각에 실수는 누구나 다 해요. 그걸 돌이켜보는 사람과 아닌 사람만 있을 뿐.”
“나는 이제야 그걸 깨닫고…….”
“그런데 굳이 돌이켜볼 필요 없어요.”
김건하가 말을 멈췄다.
“좋은 것만 보고 살아도 모자란 세상이잖아요.”
내 생각이 그러했다.
누구나 결함은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걸 되새기자면 끝이 없다.
“그리고 매일 이기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어요. 누구는 매일 지는데. 아니, 음악에 이고 지고를 따지는 것도 웃기죠. 누군가한테는 제 무대보다 선배님 무대가 훨씬 나았을 수도 있잖아요.”
물론, 그런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그러니까 내가 1위지.
예의상 말해 봤다.
‘본인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다만.’
그건 내 알 바가 아니다.
이쪽이 취해서 자기 할 말만 쏟아냈다면, 나 또한 맨정신으로 돌려줄 뿐이다.
“자부심을 가지세요. 그게 선배님을 좋아하는 팬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요.”
진심이다.
내가 내 음악에 자부심을 가지는 이유.
그건 바로, 그것이 내 음악을 좋아할 사람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냥 제 주관적인 생각이지만요.”
마지막 말을 내놓은 순간이었다.
내 말을 한참이나 들은 김건하는 함재원을 곁눈질로 바라보더니 말했다.
“맹랑해.”
“맹랑하지. 위아래가 없어.”
“어떻게 가르쳤길래?”
“가르친 적 없어.”
이 사람들,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었나 보다.
됐다.
혀가 꼬부라진 사람들한테 뭘 더 바라겠나.
그런 것보다는, 고기가 떨어졌더니 이 주정뱅이 말을 더 들어주기가 힘겹다.
나는 손을 들며 외쳤다.
“여기 한우 꽃갈비살 3인분 추가요!”
두 사람 관계가 좀 그랬던 게 나랑 무슨 상관인가.
전혀 알 바 아니었다.
그보다는 내 입에 들어갈 고기 한 점이 더 중하다.
“아 참.”
그러고 보니 문득 생각나는 게 있어 지갑에서 명함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걸 받은 김건하가 중얼거렸다.
“발성 학원?”
말 그대로다.
내가 그에게 넘긴 건 내가 다니는 발성 학원, JEM 장영민 원장의 명함이었다.
“이거요. 제가 잘 아는 곳인데 발성 클리닉 같은 것도 잘한다더라고요. 한국대 병원에서 음성치료 쪽으로 저명한 교수님이랑 협업한다나. 자연치유 때문에 산속에만 계셨다고 들었는데, 여기가 도움이 될 수도 있잖아요.”
“흐음…….”
“언제 한번 시간 나시면 들려 보세요.”
싫으면 말고.
우선은 이 정도면 됐다.
“그리고 혹시 인터넷 방송 관심 있으세요?”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