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32
132화
눈앞의 일본인의 입에서 이상하다 못해 어리둥절한 말이 튀어나왔다.
‘훔쳐? 내가? 뭘?’
훔치다니.
나 아직 뭐한 거 없는데. 애초에 우리가 아는 사이이기는 한가.
아니면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상한 짓 했나.
하나도 안 떠오른다.
좋아, 뭔지는 몰라도 내 잘못은 아닌 것 같군.
그렇다면 내가 할 말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뭐 임마, 한국말로 해.”
당당하게 나가는 것이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네.”
그 순간 뻐드렁니 일본인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걷히고 이상하게 뒤틀렸다.
자기가 뭘 잘못 들었다는 듯한 눈치.
“잠깐, 지금 뭐라고.”
그러더니 그가 정색해서 내게 따지려 드는 순간이었다.
“워, 워, 워. 잠깐, 잠깐만.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못 알아들었을 거야. 업장이잖아.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
윤국도가 그를 저지하듯 팔을 붙들었다.
실내가 조용했던 만큼 슬슬 이쪽으로 이목이 쏠리려는 상황.
“무슨 일이래.”
“한국인이라는데?”
“한국인?”
소란이 일어났다.
윤국도가 다급히 말했다.
“김상, 잠시만요. 김상도 여기서 이러지 말고 저랑 좀 나가서 이야기합시다.”
정신이 어지간히 없었는지 일본어로 말이 쏟아졌다.
그에 못 알아듣겠다는 것처럼 양팔을 벌려 제스처를 취하자, 그는 환장하겠다는 듯 머리를 찰싹 치더니 말했다.
“따라와 봐요.”
자비에르 첫 방문은 이러했다.
* * *
인근의 공터.
윤국도는 내게 음료수 캔을 하나 건네더니, 벤치 위에 털썩 걸터앉으며 말했다.
“으, 미안해요. 정신이 하나도 없었죠?”
“아뇨, 재밌었어요.”
“재밌었으면 안 되죠…….”
그가 풀이 죽은 듯 연거푸 마른세수를 반복했다.
새삼 느끼는데 사람이 좀 독특하다.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한국어가 맞는데, 말의 뉘앙스나 행동에서는 일본인 특유의 과장이 느껴졌다.
‘윤서 형도 가끔 이러던데.’
그쪽은 반쯤 장난으로 하는 거지만 말이다.
나는 그에게서 받은 캔을 벤치 위에 대충 내려놓고는 말했다.
“그래서, 아까 그 사람은 무슨 일이에요?”
“이노우에요?”
“이름이 이노우에인가? 아까 그 피부 좀 검고 이빨 튀어나온 사람이요. 머리카락은 금발이고.”
“기억력이 좋으시네요.”
“그냥 캐릭터가 특이해서.”
윤국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말했다.
“혹시 포찬이라고 아세요?”
포찬.
놀랍게도 이 사이트는 내가 아는 곳이었다.
“거기 인터넷 사이트 아니에요?”
말 그대로다.
고희범의 시장조사 좀 하라는 조언대로 아무 사이트나 막 돌아다니다가 찾은 곳이었다.
아무런 이야기나 막 올라오는 그런 곳.
한국 인터넷에도 거기 번역본이 가끔 올라올 때가 있었다.
“네, 인터넷 게시판 같은 건데. 거기가 좀 이상한 사람이 많거든요.”
“한국인을 싫어한다거나?”
“어우, 소름 끼쳐. 정확하게 맞추셨네.”
윤국도가 길게 자란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비비더니 말했다.
“이노우에가 거기를 자주 봐요. 그래서 농담 식으로 한국인 욕할 때가 많죠.”
“도둑질?”
“네, 그런 인식이 있거든요. 한국인들이 일본 음악 문화를 베껴 가서 자기들 것처럼 말한다는 그런 인식.”
“아이돌 말하는 거군요.”
“어…… 이런 말을 해도 되나 모르겠는데, 아이돌 문화의 원조는 일본이 맞잖아요?”
일단 맞는 말이기는 했다.
사무실을 두고 아이돌을 기르는 문화 자체는 일본에서 시작됐다.
결과적으로 시간이 흐르니 양국이 너무 달라졌지만.
또 한국이 역전해 버렸지만.
“그런 걸 두고 한국이 일본 문화를 도둑질해 갔다고 욕하는 거죠. 매일. 또 아실지는 모르겠는데, 옛날부터 표절곡이 가끔 나오기도 했고요.”
이것 또한 맞는 말이다.
일본에서 성공한 곡에서 멜로디를 가져와서 그대로 가사만 바꿔다가 부르는 도둑들이 간혹 있었지.
하지만.
“요즘은 없는 일 아닌가요?”
이제 거의 사라진 일들이었다.
한국이 일본 문화를 롤모델로 삼았던 것도 옛날이지, 이제 차라리 미국 시장을 따라가고 있기 때문.
“신기하네요. 표절은 그렇다 쳐도 음악이라는 게 원래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성장하는 거잖아요. 허공에 덩그러니 생긴 게 얼마나 있다고.”
“그 말이 맞기는 해요. 한국이 일본에 영향을 받았다면, 정작 일본도 유럽에서 엄청난 영향을 받았죠. 사실, 역사라는 게 그렇잖아요.”
윤국도는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을 흔들더니 말했다.
“하지만 인터넷만 보고 사는 사람들한테는 그런 게 중요하지가 않아요.”
“흠.”
“그런 나쁜 말만 계속 보잖아요. 지킬 선도 모르게 되고. 이노우에 걔 한국인 만나 본 적도 없거든요. 근데 마음속으로는 적인 거예요.”
저런 말을 하는 윤국도 본인조차도 아주 찝찝한 눈치였다.
하기야,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지인의 허물을 털어놓는 상황이니 그럴 수밖에.
또 한국이니 일본이니 그 중간에 붕 뜬 포지션도 그렇고.
‘중립 기어 박는 게 쉽지가 않지.’
원래 그렇다.
양쪽 모두 나쁘지 않게 말하려 하는 이 사람이 이상하리만치 철이 들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
“그런데 왜 굳이 어울려요. 말하는 거 들어 보니까 막 편한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사람 관계가 어떻게 막 칼로 끊듯 흑백으로 나누겠나요. 이노우에가 하는 짓은 저래도 주위 사람을 잘 챙겨 줘요. 도쿄에서 상경하고 촌뜨기처럼 굴던 절 사람 노릇을 하게 만들어 준 것도 이노우에고.”
“당신이 혼혈인 건 알아요?”
“그건…… 모르죠.”
그 또한 심경이 복잡한 눈치였다.
“특별히 감춘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까 이렇게 돼서.”
“걔들 재일을 자이니치라고 엄청나게 싫어하지 않나?”
“그래서 더 그래요.”
나라면 그냥 거리를 두고 말 텐데.
하지만 인간관계는 원래 끼어들어서 함부로 훈수를 두는 게 아니다.
나는 대신 화제를 돌리며 말했다.
“말씀하시는 거 들어 보니까 좀 민감한 내용 같은데, 저한테는 막 털어놔도 되는 건지 모르겠네요.”
“신을 만났는데 속내를 숨길 수는 없잖아요?”
와, 이렇게까지 띄워 주네.
아무튼, 상황이 이렇게 되었다.
나는 기껏 쉬러 와서 하루 만에 사건에 휘말린 내 처지가 우스워져서 중얼거렸다.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라.”
솔직히 말하자면, 무시하면 그만이다.
남이 뭐라고 말하든 무슨 상관이겠나. 그쪽한테 잘 보일 필요도 없는데.
사람을 싫어하는 이유는 찾아보면 한도 끝도 없다.
잘생겨서, 못생겨서.
돈이 많아서, 적어서.
음악을 잘해서, 여자를 잘 만나서, 성격이 밝아서.
그런 걸 하나하나 맞춰 주면 끝이 없다.
당연히 저쪽에서 나를 싫어한다고 내가 반응해 줄 이유라고는 티끌만큼도 없다.
옛말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혐오가 습관처럼 배인 사람들은 어떻게든 또 다른 이유를 찾아 혐오하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실력으로 누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재미는 또 별개의 일이었다.
당분간 힘을 숨기려고 했는데, 그럴 이유가 없어져 버렸다.
기왕 하는 거 제대로 해 보면 어떨까.
고희범이 게임을 하다 보면 말버릇처럼 내뱉는 말이 있었다.
[저쪽에서 나를 이유 없이 싫어한다면, 싫어할 이유를 하나 만들어 줘야지.]그 말이 맞다.
한국인이 자기네 문화를 모방해서 싫어한다고 했나. 그렇다면 더더욱 싫어하게끔 만들어 주지.
이번 휴가는 그렇게 보내야겠다.
방향을 결정하자 머릿속으로 팝콘이 튀듯 계속해서 아이디어가 튀어 올랐다.
어떻게 하면 즐길 수 있을까.
기왕 맥이는 거, 더 강렬하게 맥일 방법 없을까.
“김상?”
“…….”
“김상?”
“…….”
“김상!”
“아.”
“괜찮아요?”
“잠깐 어떤 거 생각 좀 하느라.”
나는 슬쩍 고개를 돌리며 그에게 물었다.
“도움이 필요한데, 도와줄 거죠?”
* * *
새벽이 다 되어서 숙소로 돌아오고 다음 날 아침.
“와, 여기 엄청 맛있네. 맛집이다.”
“여행지에 와서까지 프랜차이즈…….”
“의선이가 뭘 모르네, 원래 여행은 현지인들 먹는 곳이 진짜 맛집이야.”
“형, 규동 프랜차이즈니까 당연하죠.”
팅 식구들은 아침부터 모여 아침밥을 먹으며 하루 일정을 짜기 바빴다.
원래 여행이라는 게 그렇지 않나.
첫날은 어디까지나 맛보기일 뿐, 진짜는 다음날부터다.
“우선은 여기 시부야 오 이스트는 꼭 봐야겠어요. 오늘 저녁 늦은 시간에도 공연 있다는데. 여기 역 앞에서 버스킹도 엄청나게 많이 한대요. 명소라는데요? 매일 앨범 깔아 두고 판다고.”
성민아는 언제 발을 뺐냐는 듯 어딘가 들뜬 모습으로 계속해서 목적지를 열거했다.
“민아가 많이 신났네?”
“볼 수 있을 때 잔뜩 봐 둬야죠! 앞으로 또 언제 기회가 생길지 모르는데.”
이제 저 푼수기를 숨길 생각도 없구나.
한국에서는 무게 잡고 다니다가 해외로 나와서 더 편해진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나는 좀처럼 피곤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흐아암.”
“한영이, 왜 그래?”
하품을 나지막하게 내쉬려니 조은솔이 걱정스럽다는 눈길로 바라봤다.
“눈이 많이 졸려 보인다. 어제 깊게 못 잤어?”
“티 나요?”
“응, 많이.”
잠깐 눈만 붙이는 수준으로 잔 탓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여행은 여행이지만, 다른 목적이 생겼으니 몸을 더 바쁘게 굴리는 수밖에.
그건 그렇고, 일단 오늘만큼은 음악을 위해서라도 따로 다닐 필요가 있었다.
‘적당한 핑계가 뭐가 있지.’
머리를 열심히 굴리는 순간이었다.
“야, 홍윤서.”
조은솔이 난데없이 외쳤다.
“진짜 코 좀 작작 골라니까.”
“응? 나 왜.”
“네가 자꾸 코골이 하니까 한영이가 잠을 못 자는 거 아니야.”
“아니야, 나 코 안 골아.”
갑작스럽게 도탄에 피격당한 홍윤서가 다급하게 항변했다.
하지만.
“맞아요…… 저도 어제 잠이 안 와서 죽을 뻔했어요…….”
고희범마저도 가세했다.
“으으…… 귀에 이어폰 꽂고 ASMR 틀어놨는데도 그걸 뚫고 들어와서…….”
평소 눈 밑에 다크서클을 상시 달고 사는 그이니만큼 말에 설득력이 넘친다.
홍윤서가 가해자가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윤서 오빠가 잘못했네.”
“형, 사과하세요.”
“한영아, 네가 용서해 줘.”
정작 나는 아무런 말도 안 했는데, 홍윤서가 코를 골아서 잠도 제대로 못 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이게 무슨 일이야.’
솔직히 나는 괜찮다.
상대방이 코를 골든 말든 전혀 신경 안 썼다.
내가 단체생활을 원데이 투데이 했나.
보육원에 살 때는 10명과 방 하나 쓸 때도 흔했다.
하지만 기왕 좋은 핑계를 목구멍 앞까지 떠먹여 줬는데, 이걸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
‘형, 미안해요.’
나는 속으로 작게 중얼거리고는 말했다.
“윤서 형, 양압기 사드릴까요?”
“……한영이, 너마저.”
홍윤서가 울상이 되었다.
아무튼, 나는 적당히 짐을 싸며 말했다.
“그럼 죄송하지만 전 숙소 가서 조금만 더 눈 좀 붙일게요. 흐아암, 누나, 저 너무 피곤해서 길 걷다가 쓰러질 것 같네요.”
“한영이가 그동안 너무 무리했나 보다. 하긴, 스케줄이 너무 빡세기는 했지. 모처럼 여행 온 거니까 푹 쉬어.”
“네, 쉬니까 좋네요.”
“우리는 알아서 돌아다닐 테니까 일어나면 연락해.”
“감사합니다.”
자연스럽게 핑곗거리가 생겼고, 그 덕에 손쉽게 빠져나왔다.
하지만 정말로 아예 쉬려는 건 아니다.
따로 할 일이 있었다.
‘여기 어디라고 했던 거 같은데.’
어젯밤, 윤국도와 미리 이야기를 나눠 두었던 게 있었다.
시부야역 코앞에 있는 스타벅스.
세계 매출 1~2위를 다툰다는 매장 앞에 서 있으려니.
“어! 김사아앙! 김상! 여기예요!”
윤국도가 멀리서 손을 붕붕 흔들었다.
그가 손가락으로 마구 뒤를 가리켰다. 그곳에 거대한 매장 하나가 서 있었다.
음악인이라면 누구나 눈길이 갈 수밖에 없는 장소.
시부야역 앞에 랜드마크처럼 박혀 있는 거대한 매장.
시부야 타워 레코드.
도쿄 최대 규모의 음반 전문 매장이라 불리는 그곳 앞에서 윤국도가 외쳤다.
“오늘은 한번 여기를 제대로 박살 내 봅시다!”
“…….”
멀리서 저렇게 혼자 외치니까 좀 그렇다.
범죄자처럼 보이잖아.
박살을 내긴 뭘 박살을 내.
저쪽 경찰의 슬쩍슬쩍 바라보는 눈길이 섬뜩했다.
‘한국어라서 다행이야.’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