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36
136화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갔다.
[저녁에 다 같이 자비에르 보러 가자.] [오, 좋네. 어차피 곧 귀국인데 이런 추억 정도는 쌓아야지.]한참 즐겁게 여행을 즐기나 싶었더니, 그 끝맺음이 이런 식이라니.
솔직히 말하자면, 들키든 말든 상관없다.
어차피 식구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 단독 행동을 했었지, 부끄러운 구석이 있어서 그랬던 게 아니다.
다만.
‘기왕 들킨다면 좀 더 재밌는 방식으로 들키고 싶은데.’
왜, 첩보 영화를 보면 정체를 숨긴 주인공들이 하이라이트에서 정체를 드러낼 때는 좀 멋지게 나오지 않나.
나 또한 그런 방식을 생각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 보니, 저녁에 다다랐다.
“오! 김상! 김상! 김 센세! 기타리스트 킴! 영혼을 울리는 연주자! CD 음원을 삼킨 보컬리스트! 김상!”
윤국도가 요란한 목소리로 나를 맞이했다.
“조금만 조용히.”
“왜요?”
“부끄러워요.”
“전 안 부끄러운데.”
내가 부끄럽다고.
됐다.
여전히 과장된 리액션이지만 그것도 이제 슬슬 적응했다.
그보다 나는 그에게 생각했던 바를 밝혔다.
“네?”
윤국도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오늘 정체를 밝히시겠다고요?”
“네, 어차피 시간 문제였잖아요.”
그렇다.
나는 원래 내일 저녁 가면을 벗고, 정체를 드러낼 생각이었다.
그리고 한국어로 노래를 부르려고 했지.
그게 하루 당겨졌다.
“식구들을 놀래키고 싶어서요.”
“으음, 그런 이유라면 딱히 나쁠 건 없지만…… 그런데 그럼 그 팅 멤버 분들은 한영 씨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
“도저히 졸려서 숙소에서 자다가, 졸음이 깨면 합류하기로 했어요.”
“편리한 변명이군요.”
“졸린다는데 뭐 어쩌겠어요. 억지로 데려갈 수도 없을 테고.”
그런데 윤국도는 어딘가 고민에 잠긴 눈치였다.
“그, 꼭 정체를 밝혀야만 하겠어요?”
“왜요?”
살짝 걸리는 게 있다는 듯한 말에 되묻자, 그는 눈을 찡그리고 부르르 떨더니 말했다.
“이노우에가 충격받을 것 같아서요.”
“아.”
이노우에.
돌이켜 보면 이번에 내가 자비에르에서 가면을 쓰고 노래하게 된 계기가 된 사람이었다.
한국인이라서 날 인정 못 하겠다면, 정체를 숨기고 인정받겠다는 생각.
그러다가 끝내 정체를 밝히는 게 처음 계획이었다.
이제 아무래도 좋은 상황이 되어 버렸지만.
‘뭐, 어떻게든 되겠지.’
나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처음부터 이러기로 했잖아요.”
“그건 그렇지만요.”
“얼른 가죠.”
* * *
늘 그러했듯, 밤늦게 자비에르로 향했다.
혹여 식구들을 마주칠지 모르니까 조금 더 빠르게.
나는 낡은 건물 계단을 타고 내려가 안쪽을 슬쩍 들여다 보며 생각했다.
‘사람이 부쩍 늘었네.’
불과 며칠 전에 비해서, 자비에르를 찾는 고객의 수가 어마어마하게 늘었다.
거의 2배 정도로.
내가 기억하는 자비에르는 가벼운 마실 것과 함께 여유를 즐기는 공간이었는데, 지금은 본격적인 공연장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사람 많다.”
“비밀스러운 장소라더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은데?”
“여기 맞아? 그 가면 가수가 나타난다는 곳.”
‘이것도 나쁘지 않지만, 살짝 아쉽네.’
아마도 나를 보러 온 거겠지.
인터넷에서 입소문을 잔뜩 탔으니까 말이다.
거의 내 공연을 보러 온 모양.
세상이 이렇다.
사장님도 당분간은 바빠지시겠다.
‘슬슬 시작해 볼까.’
가면을 쓰자 시야가 제한되며 주변이 조금 더 어둡게 느껴졌다.
그리고 대기실에서 준비를 시작한 순간이었다.
끼익.
갑작스럽게 대기실 문이 열렸다.
누구지, 이 시간에 여기 올 사람이 없는데.
사장님한테 외부인은 들이지 말아 달라고 따로 부탁까지 했는데.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어?’
문을 열고 나타난 사람은, 내게 있어서도 퍽 익숙한 사람이었다.
‘이 사람.’
이노우에였다.
까맣게 탄 구릿빛 피부에 뻐드렁니가 인상적인 남자. 포찬의 고인물로서, 이유 없이 한국인을 싫어하다 못해 혐오하는 사람이었다.
또한, 최근 며칠간 마주치지 않으려 의도적으로 피한 사람이기도 하였다.
‘최대한 자리를 피해 왔는데, 여기까지 밀고 들어오다니.’
좀 황당한 기분이다.
또한, 혹시 모를 상황에 긴장감이 흐르기도 했다.
그가 대기실 안으로 들어온 그가 윤국도를 바라봤다.
“야, 사카모토, 너 임마.”
“이노우에.”
윤국도가 당황한 모습으로 그를 저지했다.
“잠깐, 안 돼. 밖에 관계자 출입 금지라고 못 봤어?”
“나 여기 알바야.”
그렇구나
그렇기는 개뿔이.
‘정체를 캐러 온 건가.’
사장님한테는 자세한 사정을 말하며 함구해 달라고 했으니 어디에 떠벌리지 않았을 터.
하지만 이노우에는 어찌해야 하나.
난데없이 대기실에 들어온 그는 나를 마주 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적막한 분위기가 흐르기를 잠시.
“이노우에.”
윤국도가 입을 열었다.
“바쁘시잖아. 이따가 이야기하자.”
“알아, 그런데, 나, 딱 말 한마디만 하자.”
“야! 이노우에!”
다음 순간이었다.
그는 저지하는 윤국도의 밀쳐내고 내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어딘가 각오했는지 입은 꽉 다물었다. 얼굴은 화난 듯 긴장이 가득하다.
상체 근육은 뻣뻣하게 굳었으며, 발걸음도 딱딱해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감이 안 잡혔다.
‘뭐라고 말을 걸든 섣불리 대답할 수는 없다.’
노래까지는 윤국도가 도와줘서 발음을 교정했다만, 대화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일본어가 서투르다는 게 조금만 티가 나도 들킬 수 있기 때문.
아직은 정체를 밝힐 때가 아니다.
‘여차하면 말없이 무시한다.’
혹시 몰라서 입을 가만히 다물고 있는 와중이었다.
이노우에는 내 앞에 딱 서더니, 기립 자세로 입을 열었다.
“저, 저, 저.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
“저기.”
다음 순간.
그가 침을 꿀꺽 삼키더니 말했다.
“팬입니다!”
“……?”
어?
지금 내가 무슨 말을 들었지.
‘나한테 지금 뭐라고 했지.’
팬이라고 했나.
갑자기?
잠시 현실 파악이 안 되는 사이 이노우에가 다시금 말했다.
“며칠 동안 매일 나오셨죠? 공연하시는 거 다 챙겨 봤습니다. 존경한다고요. 오늘 공연도 기대하겠습니다! 실례인 줄 알면서도 이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 대기실까지 따라왔습니다!”
흡사 고백하듯 말을 쏟아 낸다.
어색하다.
나한테 이런 말을 하러 여기까지 왔다는 건가.
따지려고 온 게 아니라.
그냥 물끄러미 있는데 이노우에는 연신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저기 그리고, 실례가 아니라면 사인 한 장만.”
“…….”
“……하하, 과묵하시네요.”
“…….”
“……안 되겠죠?”
“…….”
“……크흠.”
이노우에는 대답 없는 사람 앞에서 혼잣말만 하는 게 민망한지 헛기침을 터뜨리더니 말했다.
“선배님께서 어디 레이블에 몸을 담으신 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응원하겠습니다! 제가 방해했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그는 그렇게 허리를 폴더폰처럼 접어 가며 인사하더니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마치 폭풍과도 같은 모습.
“……흐아아.”
윤국도가 스르륵 넘어지듯 벤치 위에 앉더니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죽는 줄 알았네…….”
문득, 나는 윤국도가 나를 이노우에와 마주치게 하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정체를 드러내지 말아 달라고 했던 것도.
‘한국인을 싫어하는데, 내 팬이 됐다라.’
상황이 퍽 재밌어졌다.
이런 구도에서 내가 본격적으로 정체를 드러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배신감을 느낄까.
아니면 자기가 편견에 물들어 있었다는 걸 인정하고 사람이 바뀔까.
모르겠다.
원래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지. 그리고 어차피 결과는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확인할 수 있으리라.
“국도 씨.”
“네.”
“끝나고 초밥이나 먹죠.”
“……알았습니다.”
그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이제 하이라이트를 마주할 시간이 왔다.
* * *
늦은 저녁의 자비에르.
그곳은 개업한 이래,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시끌벅적한 목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오늘은 온대?”
“몰라, 근데 내 친구가 그러는데 아까 화장실 가는 모습 봤대.”
“와.”
“카메라 가져왔지?”
“그렇게 노래를 잘 부른다더라.”
“지금은 술 한 잔이면 되지만, 나중에는 몇만 엔짜리 티켓 사야 멀리서 볼 수 있을 거야.”
작은 라이브하우스라는 모습이 무색하게 관객들의 기대감은 무도관 공연장에 필적했다.
그 기세에 눌린 나머지 출연자들이 불쌍할 뿐.
“저, 저기, 감사합니다.”
김한영의 앞 차례를 맡은 가수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고개를 숙이고는 자리를 떠났다.
사장, 유이치로는 잔을 닦으며 그 광경을 두 눈에 담았다.
‘놀랍군.’
김한영, 그가 오고 난 뒤로 가게 분위기가 바뀌었다. 하루가 멀다고 손님이 늘어난다. 흔히 말하는 관용어로 그렇다는 게 아니다. 정말로 그러했다.
하루하루 손님이 눈에 띄게 붙었다.
‘우리 가게가 한국인이랑 무슨 연이 있나.’
김한석이 떠오른다.
매사에 시큰둥하다 못해 짜증까지 나는 듯한 표정.
그 당시의 그는 어찌 보면 사람이라기보다는, 음악을 하는 기계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랬던 그가, 기타만 손에 쥐면 사람이 되었다.
무대 위에 오른 김한석은 그 누구보다도 사람 냄새가 풀풀 풍기는 사람이었다.
놀랍게도 김한영은 그랬던 그와 닮은 부분이 많았다.
‘묘하게 재수 없는 건 똑같다만, 음악을 할 때는 사람이 되지.’
물론, 두 사람은 다르다.
먼저 김한영은 김한석보다 외모 면에서 월등히 나았다.
재수 없는 모습이 개성으로 보일 정도로.
하물며 인간미도 훨씬 진했다.
김한석은 주위에 친구 하나 없을 것 같았고 실제로 친구라고는 없었지.
하지만 김한영은 다르다.
온 첫날부터 사카모토가 쫄랑쫄랑 따라다니지 않았나. 게다가 인터넷 방송에서도 친구들이 썩 많은 듯했다.
그래.
두 사람은 다르다.
‘하지만 비슷하단 말이야. 쓰읍.’
노망이 든 건가.
여전히 머릿속에서 일말의 의심을 지워 낼 수가 없었다.
죽은 김한석이 김한영으로 환생한 게 아닌가 하는 그런 의심을.
왜, 역사상 최고의 프론트맨으로 꼽히는 프레디 머큐리도 죽어서 MIKA라는 가수로 환생했다는 농담이 있지 않나.
이것도 같은 부류인가.
‘그건 그렇고, 이노우에 저놈은 어떻게 반응할는지.’
이 가게 알바, 이노우에가 걱정이다.
사람이 나쁘진 않다.
평소 주위 사람을 잘 챙겨 줄뿐더러, 성실하니 일을 맡기면 그 이상으로 한다.
인맥도 두툼해서, 자기 지인들을 데려와서 가게에 공연을 세울 때도 잦았다.
실력으로 보면 충분하다.
메이저에 오르더라도 이상하지 않겠지.
하지만 그가 가진 편견이 그의 가능성을 잘라 먹을 때가 많았다.
편견, 혐오, 선입견, 증오.
뮤지션으로서 좋지 않은 마음가짐이다.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음악이든 편견 없이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만 한다.
그게 힙합이 되었든 락이 되었든 발라드가 되었든 엔카가 되었든.
미국 음악이든 케이팝이 되었든 말이다.
이게 이노우에가 지닌 가장 큰 문제일지도 몰랐다.
편견을 가졌다는 것.
더욱이 그 어두운 편견 속에 자기 자신을 몰아넣었다는 것.
이노우에가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 잘 아는 그이기에 더더욱 안타까웠다.
‘조금만 세상을 넓게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헤세는 말했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세상을 깨뜨려야만 한다고.
이노우에는 어느 세상에 갇혀 있는 걸까.
오늘따라 생각이 많았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은 순간.
저벅.
무대 위로 발걸음 소리가 저벅저벅 울려 퍼졌다.
그 위로 올라온 사람은.
“대박.”
“진짜로?”
“운이 좋군.”
가면을 쓴 김한영이었다.
끼릭.
그의 기타 소리가 작게 흐른 찰나 유이치로의 머릿속 잡생각이 훤히 트였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