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37
137화
일본에 오고 근 일주일.
그동안 참 여러 아티스트를 카피했다.
‘대충 열 명 정도 했나.’
모든 무대를 다른 아티스트로 했던 건 아니고, 가끔은 중복으로 하기로 했으니 저 정도 나왔다.
처음에는 모창이었다.
어느 정도 나와 영역이 겹치는 가수 위주로 했으니 그렇게 됐다.
하지만 점차 그 바깥 영역을 하나씩 공략해 봤다.
노란색이 파란색을 흉내 내어 초록색을 찾아내듯, 나 또한 다른 가수를 따라가는 과정에서 많이 배웠다.
‘일주일짜리 고생치고는 얻은 게 많아.’
오늘은 그렇게 발견한 색을 써먹어 볼 생각이었다.
“아, 아. 콘방와.”
원어민 수준으로 발음할 수 있는 인사말도 꽤 늘렸다.
“쿄노 라이부와 고란노 스폰사데 데이쿄 오쿠리시마스.”
윤국도가 알려 준 인사말을 흘리자 관객석에서 잔잔하게 웃음이 번졌다.
‘왜 웃지.’
요즘 사람들의 유머 감각은 좀처럼 이해가 안 간다.
아무튼, 나는 그 목소리를 귓가에 담으며 열기가 살짝 가라앉았을 무렵 입을 열었다.
“가슴이 두근두근 두근거려.”
짧게 나온 가사에 관객들의 표정에 의문이 떠올랐다.
몇몇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짓기도 했다.
또 얼굴에 웃음을 머금기도.
“새로운 만남이 있을 것 같은 날이야. 흘러가는 네온사인이 내 갈 길을 비춰 줘. 오늘이라면 서투른 요리도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아.”
한국어 가사다.
그렇다.
오늘 내가 부르기로 한 곡은 바로, 케이팝이었다.
“Fire, 네 안에 빛나는 자신을 Tune up. 숨길 필요는 없어. Cuz 모두가 알게 될 테니까. 수줍게 피어나는 넌 마치 Allstar.”
일주일 동안 일본어 곡만 불렀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얻은 깨달음을 적용해 한국어 노래를 불러 볼 생각이다.
“Dancing in the circle. 이제 네 차례. Campfire 둘러싸고 춤추는 Like 피터팬.”
더욱이 이번 곡은 그냥 케이팝 곡이 아니다.
유리.
한국에서 가장 뜨거운 신인 중 하나인 그녀가 최근 일본에 진출하며 내놓은 곡이었다.
오리콘 차트에서도 성과가 좋아서 5위 안에 진입했다지.
‘가장 최신 케이팝이다.’
하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음.
이거 부르면서 느끼는 건데.
“Singing loud, loud, loud, Everybody 들을 수 있게. 네 모습. Jumping high, high, high. Hi there 자신 있게 Handshake.”
아무리 봐도 영어 가사가 너무 많지 않나.
좀 많다.
한국어 가사 맞나.
아니, 영어인 건 둘째치고 문법은 맞나.
“Shooting star. bamp, bamp, bamp. we’ll gonna live forever. like a photograph.”
한국어 노래 아니잖아.
이게 왜 한국어 노래야.
부르기로 했으니까 부르는 건 부르는 건데, 아무리 봐도 한국어 아니잖아.
해외 진출 욕망을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냈잖아.
‘요즘 노래는 왜 이렇게 영어 가사가 많은지. 한국어도 충분히 예쁜데.’
곡은 또 좋아서 화가 난다.
속으로 작게 투덜거리는 사이 슬슬 곡이 끝으로 달려갔다.
관객들의 어깨춤이 보인다. 흥이 제대로 올랐다.
그 무리 사이로 팅의 식구들 또한 보였다.
사이좋게 테이블 두 개를 둘러싸고 앉아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얼굴에 웃음기를 잔뜩 머금었다.
‘놀래킬 순간이 기대되네.’
앞으로 몇십 초 안 남았다.
나는 그 순간을 속으로 음미하며 노래를 끝마쳤다.
“감사합니다.”
이쯤에서 곡이 끝났다.
그와 동시에 관객들의 박수 소리가 여름 소나기처럼 시원하게 쏟아졌다.
이제 5초 남았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3초.
얼굴 위를 덮은 가면에 손을 얹었다.
2초.
입가로 작게 웃음을 머금었다.
1초.
들어 올렸다.
0초.
관객들의 표정에 놀라움이 번졌다.
그리고.
“…….”
관객석 사이로 팻말이 나타났다.
정확히는 팅 멤버들의 손에 팻말이 들려 있었다.
[김한영 멋지다!]뭐야, 저거.
* * *
자비에르 무대 맞은편.
구석의 자리에 앉은 팅 식구들이 웃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푸흐흐.”
“후후후후후후.”
“아, 웃겨.”
눈물을 닦으면서 웃는다.
그들의 눈에 비친 김한영의 표정이 참 새로웠다.
평소 그 매사에 무덤덤했던 김한영의 얼굴에, 지금만큼은 당황이 떠올라 있었다.
물론, 미세하다.
남극의 거대 크레바스 끝자락에 난 기스 만큼이나 사소하다.
그마저도 평소 그와 붙어살아 온 그들이 주의 깊게 관찰해야만 볼 수 있는 균열.
하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한영이가 저런 표정을 지을 줄도 아네. 어쩌지? 이거 너무 재밌는데. 어쩌지?”
홍윤서가 충격받은 표정으로 중얼거리는데, 조은솔이 그걸 보고 혀를 차더니 말했다.
“못됐어. 어떻게 사람이 이럴 수가 있냐.”
홍윤서가 주도했다는 듯한 말이었다.
그에 홍윤서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쏘아붙였다.
“야, 조은솔, 무슨 남 말이야. 네가 하자고 했으면서.”
“아니, 내가 언제.”
“그 누구보다도 앞장섰잖아. 잔다르크처럼.”
“나는 공연을 보러 가자고 했지, 팻말까지 준비하자고 한 적은 없거든?”
“와, 그거 되게 치사한 말인 거 알지? 부장이면 책임을 져야지.”
“안 됐네요. 나 곧 졸업이라 다음 1학기부터는 네가 부장인데.”
“너 잘났다.”
두 사람이 옥신각신하기 시작했다.
성민아는 그 표정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말해 주지 말 걸 그랬네.’
실제로는 이러했다.
김한영이 밤에 어딘가를 몰래 돌아다닌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었다.
둘째 날 밤, 홍윤서의 코골이에 잠을 설친 고희범이 알아냈다.
하지만 막상 단서는 못 찾아내는 상황.
여기에서 성민아가 근거를 찾아냈다.
[인터넷에 유명한 가수가 있다는데요?]공연장에 집착하는 그녀이기에 빠르게 찾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걸 번역한 게 홍윤서였다.
[일렉트로닉 딕셔너리 on]단번에 알아봤다.
어쩔 수 없었다.
김한영이 모창이니 뭐니 아무리 평소 습관을 숨기려고 한들, 기타를 치는 습관만큼은 전혀 숨기지 못했던 것.
본인조차도 모르는 김한영의 습관이 생각보다 많았다.
명색이 기타 동아리인데 어떻게 그걸 모르겠는가.
정체는 뻔히 드러난 상황.
여기에 마지막으로 모르는 척하자고 제안한 게 조은솔이었다.
[내버려 둬. 한영이도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그러는 거잖아. 잘은 모르겠지만, 우리한테 밝히지 못할 이유가 있는 거겠지. 모르는 척해 주자. 대신, 조용히 응원해 주는 게 어떨까?]뉘앙스는 좀 달랐지만, 저런 내용이었다.
그리고 정의선은.
[뭐야, 나만 못 알아봤어? 용서할 수 없다.]팻말을 제작했다.
그렇게 모두가 짠 사이, 단 한 명만이 게슴츠레한 시선으로 중얼거렸다.
“진짜 못됐다.”
김예담이었다.
“어떻게 사람을 놀릴 수가 있어요.”
“누나도 재밌었잖아요.”
“그건…… 맞는데, 그건 맞지만…….”
“저 놀란 얼굴을 봐요. 언제 저런 걸 또 보겠어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팅 식구들 정도는 돼야 간신히 알아볼 수 있는 표정이었다.
한편.
“……뭐야.”
귀신이라도 본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남자가 한 명 있었다.
“저거, 그때 그 한국인 아니야?”
이노우에였다.
“아니, 저기서 저 사람이 왜 나와. 말도 안 돼.”
그는 어찌나 충격을 받았는지,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듯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윤국도는 그 표정을 곁눈질로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래서 최대한 숨기려고 했는데.’
한편, 유이치로는 생각했다.
‘이 순간을 기다렸지.’
복잡하게 꼬인 상황.
이노우에는 머리가 복잡한 듯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이 쓰레기야…….”
* * *
공연이 끝났다.
평소 공연이 어디까지나 연습용 공연이었다면, 오늘의 공연은 조금 달랐다.
김한영이 그간 거둔 발전을 집약해서 보여 주는 무대.
원래 내 곡들에 연습한 스타일을 버무려서 보여 주었다.
“어땠어요?”
“굳.”
대뜸 엄지를 척 내미는 조은솔에게, 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물었다.
“구체적으로 칭찬해 보세요.”
“음, 목소리의 표현력이 대폭 늘었습니다. 훨씬 깊어졌다고나 할까요?”
“좋아요. 그럼 다음으로 윤서 형.”
“예, 마치 RGB 92%짜리 실력에서 광색역으로 나아가 140%를 달성한 듯한 창법이었습니다.”
“흠.”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음으로 고희범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는?”
“제가 이런 사장님을 모실 수 있어서 자랑스럽습니다. 존경합니다. 제가 태어난 목적, 그 이름 세 글자, 김한영.”
“민아.”
“……잘하더라.”
“정의선.”
“김한영 그는 신이야. 한영 펀치, 한영 펀치.”
“좋아, 용서해 주도록 하지.”
손뼉 한번 치고 정리하려니 고희범이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야! 예담이 누나는 왜 스킵해!”
“그야.”
나는 김예담을 잠시 바라본 뒤 말했다.
“예담이 누나가 그런 짓을 주도해서 했을 리가 없잖아.”
“…….”
“보나 마나 형 누나랑 너희들이 작전 세웠겠지. 예담이 누나는 마지못해 따라온 거고. 맞아? 아니야.”
그 말에 식구들은 대답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내 예상이 맞았나 보다.
그런데 이번에는 홍윤서가 억울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야, 우리만 숨겼냐? 너도 뭐 하는지 숨기고 단독행동한 거 맞잖아.”
“이론적으로 맞는 말이에요.”
“그렇지? 어서 사과해라.”
“3분 전에 그 말을 했더라면 말이죠.”
“크아악!”
어찌 되었든 상황 정리가 끝났다.
내 공연은 마쳤고, 식구들도 이번 이벤트를 나름대로 재밌게 관람한 눈치.
자비에르는 일찍 문을 닫아 실내가 한산했다.
나는 홀가분해진 표정으로 호흡을 가다듬고는 말했다.
“다 같이 여행 온 건데, 혼자 단독행동해서 미안해요. 그러고 싶은 기분이었어요. 매일 저한테 끌려다녔으니까 좀 쉬게 해 드리고도 싶었고. 그리고 보러 와 줘서 고마워요.”
그 말에 식구들 사이로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어쩐지 낯부끄럽다 싶은데, 홍윤서가 입을 열었다.
“김한영이 사과를 다 하네.”
“그러게.”
“언제 사람 됐냐, 희범아, 얘 원래 사과할 줄 알았냐.”
“한영이한테 그럴 정도의 양심은 없어요.”
뭐래.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뒤를 바라보며 말했다.
“국도 씨, 잠깐 이쪽으로 와 보세요.”
“네?”
“할 이야기가 있어요.”
윤국도.
예수 머리를 한 그가 살짝 기죽은 표정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그에게도 상을 하나 줄 생각이다.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입을 열었다.
“이쪽은 국도 씨, 지난 며칠간 저 도와주신 분이에요. 음악 하시는 분이고, 기타 잘 치셔요. 그리고 국도 씨, 이쪽은 저희 팅 식구들이에요. 인사 나누세요.”
“……!”
소개였다.
그 순간 윤국도의 표정이 밝게 펴졌다.
‘역시.’
그는 단순히 내 개인의 팬이 아니다.
정확히는 싱어송라이터 김한영 채널의 시청자라고 봄이 옳았다.
우리 방송을 지켜봤다면, 출연하는 식구들에게도 관심이 있었을 터.
지난 며칠간 나를 위해 열심히도 고생해 주었다.
뭐라도 하나 해 줘야지.
‘그리고.’
나는 식구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까, 이대로 그냥 가면 조금 아쉬울 것 같은데.’
할 일이 조금 더 남았다.
자비에르의 관객 대부분이 떠난 게 맞다. 하지만 모든 관객이 떠난 건 아니었다.
‘사장님이랑 한 약속도 지켜야지.’
몇십 년 전.
그에게 약속한 게 하나 있었다.
비록 내가 죽어서 지난 수십 년간 못 지키게 됐지만, 이제 어떻게든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사장님, 저 노래 하나만 들어 주실래요?”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