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4
14화
이후 방송은 더 볼 것도 없었다.
[진짜 자기만의 색깔이 있는 것 같은데, 어디서 그렇게 배웠음?]“음, 거의 독학으로 했죠.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방송의 흐름은 이상혁에게서 완전히 내게로 넘어왔다.
[독학이 어딨어요 ㅋㅋㅋㅋㅋ 이 분 시청자를 너무 물로 보시네.] [사실 전공자 아님? 어디 기획사에서 키운 비밀 병기라거나.]“에이, 저 여기 옆 학교 국문학과 다니는 학생입니다. 학생증 보여드릴까요? 보여드릴까요?”
[보여줘!!]“에이, 아니야. 안 보여드릴래.”
[지금 시청자랑 밀당하는 거 맞음?]“밀당이 뭐예요?”
[지금 하고 계시는 거요.]크게 어려울 게 없었다.
아는 만큼 대답했고, 모르는 건 모르는 척 흘려넘겼다.
어느새 이상혁은 방장의 자리에서 밀려나 반쯤 쭈구리가 된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가만히 입만 닫고 있는 건 아니었다.
“저! 미션을 하나 할까 하는데요! 연주 하나 할까요? 후배님 생각은 어때?”
궁여지책으로 뭘 계속 짜내기는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처절하게 밀릴 뿐이었다.
“아, 그거 좋죠. 이번에는 제가 먼저 해도 되죠?”
애초에 연주력에서 비교가 안 되는 상황이다.
[뭔가 느낌이 그 사람이랑 비슷한데?] [누구였더라. 나도 알 것 같은데.] [아! 김한석이랑 비슷하다.] [생각해 보니까 그렇네?]이 시청자들 뭘 좀 아는군.
나는 은근히 기쁜 마음을 숨기며 입을 열었다.
“흠흠, 제가 그분을 좀 좋아하고 존경하긴 합니다. 정말 대단한 분이죠. 원래 포크 음악을 좋아했다는데, 사실상 한국 음악의 기틀을 세웠다니까요? 그분만큼 연주가 촘촘한 사람이 잘 없어요. 사실 제가 그분 곡을 또 거의 다 칠 줄 알거든요. 그런데 또 치면 칠수록 새로운 깊이가 느껴지는 게 아주 뭐라고 해야 할까. 바다와도 같은 아티스트라고 할까요?”
한참을 떠들면 가끔 띠링! 하고 시원한 메시지가 터진다.
[1만 원 후원!] [우와, 말 많아.]“안 많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김한석 선배님이 마이애미 해변에 갔을 때 작곡한 곡이 있다고 하는데요. 네? 들려달라고요?”
적당한 토크를 이어나가면 시청자들이 티키타카로 어떻게든 콘텐츠를 만들어준다.
“못 들려드릴 거 없죠. 그런데 저희 선배님께서 괜찮다고 하실지 모르겠네요.”
“어…… 응, 괜찮아, 한영아. 하고 싶은 거 해.”
안 괜찮아 보이는데요.
이상혁은 계속해서 죽을상이 되었다.
방송이 진행되면서 후원액은 계속 쌓이는데, 그와 반대로 얼굴에는 근심이 드러난다.
주도권을 뺏겨 초조한 것이리라.
유감이다.
‘적당히 놀려야겠네. 그만할까? 에이, 아니야. 더 놀릴래.’
새삼스럽지만 나는 그에게 상당히 언짢은 감정을 품고 있었다.
왜냐, 지난 버스킹이 끝난 이후, 그가 작년에 무슨 짓을 했는지 좀 자세히 들었기 때문이다.
[여자 신입 회원이 들어올 때마다 나가는 거 있지?]조은솔과 윤서 선배가 번갈아서 말해주었다.
[자꾸 신입생들한테 술 먹이고, 공부 가르쳐 준다면서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고, 기타 가르쳐 준다면서 스킨쉽 시도하고. 그러다가 질리면 거리 두고. 그러니까 자꾸 신입 회원들이 얼마 버티질 못하고 나가는 거야.]이상혁은 동아리를 내면에서 좀먹고 있는 병균이었다.
지난번 버스킹 때 이 선배들이 나를 안 지 얼마나 됐다고 동아리 뒷사정을 막 늘어놓는가 했는데, 할 만했다.
어쩌면 이들은 내가 혹시라도 이상혁을 좋은 사람으로 생각할까 걱정했던 게 아닐까.
‘뭐, 어차피 그럴 일은 없었겠지만.’
이런 부류는 겪을 만큼 겪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났으면 알아서 거리를 뒀으리라.
“LA에 가 본 적 있냐고요? 없죠. 하지만 김한석 선배님은 LA에 가 보신 적이 있다고 하는데 그 당시 인터뷰에 의하면…… 왜 자꾸 김한석이냐고요? 그만큼 존경받아 마땅한 분이니까요.”
그렇게 잔뜩 떠드는 사이 방송도 슬슬 끝낼 시간이 되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던졌다.
“그러고 보니까 저도 이제 곧 방송을 시작하려고 하거든요. 김한영 본명으로 운영할 예정이니 혹시 오늘 방송 재밌게 보신 분들은 한 번쯤 찾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홍보였다.
기왕 남의 방송에 찾아왔다.
그것도 하꼬라지만 나름대로 고정 시청자를 꾸리고 있는 사람 방송에.
기회가 제 발로 찾아왔는데 홍보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럼 다음 시간에 또 만나요~”
그렇게 내 첫 방송이 끝났다.
이상혁의 표정은 이미 시커멓게 잠겨 있었다.
나는 그에게 허리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오늘 선배님 덕분에 재밌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
지쳤구나.
너도 가서 쉬어라.
그렇게 방송을 마치고 이상혁을 스튜디오 안에 내버려 둔 채 바깥으로 나간 순간이었다.
“야, 너 왜 이렇게 잘해?”
고희범이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들러붙었다.
“왜.”
“아니, 너 방송 처음 맞아? 뭐 이렇게 말하는 게 자연스러워?”
“나 옛날에 방송 나간 적 있는데.”
“언제? 어디에?”
“지상파 방송.”
“지상파?”
“어, 30년 전에 자주 나갔지.”
“……거짓말이 아주 입에 붙었네.”
진짠데.
사실, 안 믿어도 상관없다.
그런데 조은솔은 슬쩍 스튜디오 문을 닫더니 말했다.
“속이 다 시원하더라.”
“그래요?”
“응. 너 중간부터 이상혁 표정 봤어?”
“제가 남한테는 별 관심이 없어서.”
“깨소금이더라.”
그녀는 속이 다 시원한 듯 웃음을 멈출 줄을 몰랐다.
“기분이다. 오늘 밥 사줄까?”
“저 입맛 까다로운데요.”
“뭐 먹을래? 말만 해.”
“그럼 연어요.”
“연어? 못 사줄 거 없지. 오늘 물릴 때까지 먹을 각오해. 이 앞에 대왕 연어 초밥 맛집 생겼더라.”
그렇게 두 사람과 왁자지껄 떠드는 참이었다.
어느새 사장님이 옆에 다가와서는 흐뭇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깜짝이야.’
왔으면 말을 좀 하시지.
나는 헛기침을 하고는 그에게 물었다.
“어땠어요? 이만하면 충분할까요?”
잠시 뒤.
그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훌륭했습니다. 충분한 정도가 아니라, 제가 학생을 붙잡아야겠습니다.”
사장님이 껄껄 웃었다.
내가 상당히 마음에 든 눈치.
당연하다.
나는 고희범을 곁눈질로 살짝 본 뒤 입을 열었다.
“그럼 혹시 선금을 받을 수도 있을까요?”
“……선금이라면?”
“제가 급전이 좀 필요해서.”
“…….”
“먼저 계약금으로 받고 나중에 방송 수익분으로 갚는 것도 좋고요.”
사장님은 잠시 어이가 없다는 시선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내 정신을 다잡은 듯 말했다.
“계약 이야기는 앉아서 천천히 나눕시다.”
* * *
인터넷에 몇몇 영상이 올라왔다.
[기타 천재.] [일반인 기타 연주 클라스.] [이상혁 방송 하이라이트 편집.] [1초만 보면 빨려 들어감.]그 영상에는 두 명의 사람이 기타를 들고 연주하거나 떠들거나 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방송의 주인은 이상혁.
근래 선한 외모와 훌륭한 기타 실력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스트리머였다.
그런데.
이번에 시청자들에게 주목을 받은 건 그가 아니었다.
더 어려 보이는 남학생이었다.
[진짜 잘하네?] [얘 대박이다.]김한영이었다.
그의 실력이 좀 특출났다.
즉석에서 귀 카피 연주를 한다는데 이렇게까지 수준이 높은 연주라니.
시청자들의 관심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나 얘 앎. 지난번에 중경대 대학로 버스킹 영상에서도 봤음. 같은 사람인 듯?] [편안한 게 계속 듣고 싶어지는 뭔가가 있다. 화려하진 않은데 담백하다. 깊이가 장난이 아님.] [계속 반복재생해서 듣고 있음.] [얘는 방송 안 함?] [게스트로 한 번만 참여한 거라는데?] [나 얘 방송하면 본다.] [원본 풀버전 영상 보면 곧 시작한다고 했음.]호평이 쏟아진다.
그중에서는 자기가 기타를 제대로 공부해 봤다면서 김한영을 칭찬하는 부류도 있었다.
[저렇게 연주하는 게 정말 어려운 거임. 그냥 잘 치는 사람은 많아도, 저렇게 자기 색깔 담아서 여유롭게 치는 건 절대 쉽지 않음.] [나 기타 전공했는데 저 정도면 우리 과에서도 잘 없는 수준임.] [독학으로도 좀 치면 저만큼은 할 수 있지 않나?] [저게 무슨 독학임 ㅋㅋㅋ 레슨을 받아도 몇 년은 받았겠는데.]아는 만큼 보이는 셈이었다.
한편, 김한영과는 반대로 이상혁의 연주에 대해서는 혹평이 이어졌다.
[이걸 즉석에서 카피했다고? 그런 음악 천재가 왜 이런 방송을 하고 있음?] [저거 백 퍼센트 외워 온 거다.] [꼭 그거 같다. 방송에서 꼬마 천재들 보면 수학 공식 외워와서 칠판에 적는 거 있잖아. 부모가 시켜서.]물론, 아직은 미미한 반응에 불과했다.
하지만 원래라면 이런 의혹이 불거질 일도 없었으리라.
영상들의 조회수는 10만을 넘는 것이 잘 없었다.
하지만 꾸준히 상승했다.
한 번 본 사람들이 그걸로 끝내지 않고, 반복해서 몇 번이고 돌려 봤기 때문이었다.
[얼른 방송 시작해라 아 ㅋㅋㅋㅋㅋ] [커버 영상 좀 올려라.] [감질나서 정신 나갈 것 같애.]그렇게 김한영은 데뷔하기도 전부터 은연중에 인지도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 * *
이상혁의 방송에서 깽판을 치고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방송을 바로 시작하지는 못했는데, 당장은 학과 공부가 급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중간고사가 코앞이었다.
‘대학생이 꼭 재밌기만 한 건 아니었구나.’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제대로 경험해 본 적 없는 국어국문학과 공부는 결단코 만만하지 않았다.
‘고전소설론? 고전을 통째로 읽어와서 토론을 나누라고? 오왕이 뭐 어쩌고 이졍양가록이 뭐 어쩌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통째로 분석해서 제출하라고?’
이해하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려울 게 없다.
문제는 양이었다.
중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수업은 양으로 사람을 찍어누르는 게 있었다.
그렇게 반쯤 시체가 되어 시달리기를 불과 며칠, 내게 몇 가지 변화가 찾아왔다.
“야, 너 방송에 막 나왔더라?”
점차 학과 동기들이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지난번에 버스킹 때도 봤는데 너 기타 잘 치는구나. 나도 좀 가르쳐 주면 안 돼? 아니다. 이따가 저녁에 애들이랑 같이 노래방 갈래?”
“애들이랑 스터디 모임 만들었는데 같이 하자.”
좀 급진적이지 않나 싶을 정도로 쏟아지는 호의.
나는 흔치 않게 당황했다.
‘너희들 나랑 언제부터 친했니?’
학기 초 학생들이 내게 어딘가 차가웠던 걸 생각해 보면 당황스러울 정도.
하기야, 이들이 이상한 게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그 당시의 내가 이상했던 게 맞았다.
‘나 같아도 개강하자마자 대뜸 동기한테 들이댔다가 차이고, 술집에서 찌질하게 굴고 그러면 가까이하기 좀 그렇겠다.’
그렇게 쌓인 오명도 이제 씻어낸 모양.
하지만.
나는 먼저 내게 다가온 사람들에게 일관적인 반응으로 대했다.
“미안, 저녁에 일이 있어서.”
“무슨 일?”
“동아리.”
정확히는 사람 만날 시간에 기타 치기만도 바빴다.
지금 몸은 뭐라고 해야 할까.
쓰면 쓸수록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었다.
‘손가락이 길다는 게 이렇게 좋은 일이었구나.’
손가락이었다.
손가락 길이가 기타리스트에게 중요하다는 건 당연히 알았다.
하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좋을 줄은 몰랐지.
‘고기도 뜯어 본 사람이 잘 먹는다더니.’
전생에는 손가락이 짧은 게 서러웠다.
그래서 기타리스트에게 정말로 중요한 건 표현력이라며 자기합리화를 하고는 했다.
물론, 표현력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 아는가.
손가락이 길면 표현할 수 있는 범위도 그만큼 대폭 늘어난다는 사실을.
‘즐거워, 짜릿해, 손가락 긴 게 최고야.’
그렇게 당장은 기타 치는 게 좋았다.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앞으로 배울 보컬 레슨을 찾아다니느라 바쁘기도 했다.
현대의 아티스트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그들의 발성을 배울 필요성이 있었다.
할 일이 더럽게 많다.
요컨대, 지금의 나는 썩 충실한 생활을 보내고 있는 셈이었다.
학과 공부에 기타에 노래에 숨이 가쁠 정도.
그렇다고 인간관계를 아예 도외시하고 사는 것도 아니고.
“희범아, 움라우트가 뭐냐.”
“나도 몰라.”
“왜 몰라.”
“응애, 나 아기 학부생. 전공 몰라.”
고희범과 동아리방에서 공부에 집중했다.
거의 동아리방에서 살다시피 하니 동아리 사람들과 자주 마주치고 또 친해지는 것도 당연한 수순.
윤서 선배는 희범이의 모습에 낄낄 웃으며 말했다.
“희범이는 뭐 공부를 할 줄 아는 게 없냐.”
“제가 다 한영이 때문에 그렇죠.”
“한영이?”
“얘 중간고사 끝나면 방송 시작한다잖아요.”
고희범은 씩 웃더니 말했다.
“그거 때문에 요즘 영상 편집 공부한다고 저녁에 잠도 잘 못 자요. 다 김한영 탓이라니까요. 알았냐? 나한테 고마운 줄 알아.”
“흐음.”
다른 공부를 하고 있었구나.
확실히 요즘 들어 눈가가 퀭하기는 했다.
너도 나름대로 진지했었구나.
속으로 고희범을 1.87% 정도 재평가한 순간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윤서 형.”
“왜?”
나는 고희범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냥 희범이도 팅에 들어오는 건 어떨까요?”
고희범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내가?”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