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5
15화
“팅에 들어오라고? 내가?”
고희범이 멍하니 눈을 뜬 채로 말없이 섰다.
그런데 윤서 선배는 그게 웃긴 지 말했다.
“그렇네. 어차피 지금도 매일 오는데, 이만하면 그냥 정식으로 입부하는 게 낫겠다. 그렇지? 한영아.”
“몹시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
고희범의 말문이 굳었다.
그는 게임을 할 때 외에는 사용하지도 않는 머리를 빠르게 굴리더니 말했다.
“저 기타 칠 줄 모르는데요.”
“그럼 지금부터 배워.”
“에이,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럼 동아리방에서 나가야지. 바래다 줄까?”
그 말에 고희범은 눈을 데굴데굴 굴리더니 말했다.
“……중간고사 시작하고서부터 시작해도 될까요?”
“푸흐흐.”
궁색한 변명에 동아리방에 작은 웃음이 번지기를 잠시.
이내 즐거운 대화가 퍼져나갔다.
“희범이도 팅 들어오는 거야?”
“손가락에 물집 잡힐 각오 해야겠네.”
“신입 회원도 없었는데 잘 됐다.”
“의선아, 너랑 같이 기초부터 하면 되겠다.”
“좋습니다!”
선배들이 낄낄 웃었다.
기타 못 친다는 사람을 안 받겠다고 말했던 건 까먹었나 싶은 모습.
그런데 이는 다르게 보면 합리적인 행동이기도 했다.
‘동아리 들어와서 분탕 치는 사람 안 받으려고 그랬던 거니까.’
요컨대, 고희범은 나름대로 무해 하다는 걸 입증받은 셈이었다.
어찌 저찌 매일 나를 따라 동아리방에 들락날락하다 보니 어느새 게임도 반쯤 끊은 상황.
“희범이는 좋겠네. 가르쳐 준다는 사람 많아서.”
나는 어느새 웃음이 가득해진 동아리방을 둘러보다가 생각했다.
‘아, 이게 대학 생활이구나.’
꼭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쁜 일만 있는 것도 아니다.
전생의 내게 부족했던 무언가가 채워지는 느낌.
어려서부터 한 번도 평범하게 살아 본 적이 없었기에 더 와닿는 그런 거.
그런데 문득 한 가지 일이 의아해졌다.
“민아는 요즘 잘 안 보이네요?”
성민아가 동아리방에서 잘 안 보였다.
기타를 꽤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나. 또 열심히 치기도 하고.
‘학과 일로 바빠서 그런가? 그런 것치고는 그렇게 남들이랑 어울리는 것 같지도 않던데.’
한창 의아한 참이었다.
조은솔이 씨익 웃더니 내게 물었다.
“신경 쓰여?”
의미심장한 질문.
나는 현명한 사람이기에 이에 대해 대답할 줄 알았다.
“전혀요.”
“…….”
내 말에 조은솔은 실망한 듯 입술을 삐죽 내밀더니 말했다.
“민아 오기는 또 자주 와.”
“언제요? 거의 못 본 것 같은데.”
“보통 너 없을 때 오더라.”
의아한 말이었다.
나랑 이상할 정도로 타이밍이 안 맞았단 말인가.
아니면 나를 피한다는 건가.
‘묘하게 찜찜한데.’
찜찜할 때는 생각을 그만두는 게 좋다.
‘뭐, 자기 인생 알아서 살겠지.’
때로는 무관심이 보약인 법.
나는 그렇게 신경을 치우고 다시 전공 서적에 눈을 돌렸다.
아니,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민아 왔네?”
조은솔 선배가 입을 열었다.
그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동아리방 문 앞에는 성민아가 서 있었다.
* * *
동아리 회관 건물의 2층 휴게실.
덜컹!
성민아는 자판기에서 음료수 캔을 뽑더니, 내게 건네며 말했다.
“받아.”
“네.”
“왜 존댓말?”
“그냥.”
분위기가 어색해서 그렇다.
‘일단 이야기 좀 하자니까 따라오기는 따라왔는데, 뭔가 좀 그렇네.’
동아리방에서 대뜸 말을 붙일 때부터 뭔가 예감이 안 좋았는데, 대뜸 할 말이 있다면서 불렀다.
어색하다.
그냥 무시하고 넘길 걸 그랬나.
그런데 또 무시했더라면 앞으로 동아리 생활 몇 년 내내 껄끄러웠을 것 같다.
그 꼴을 볼 바에는 그냥 지금 정리하고 넘어가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에라이, 모르겠다. 내가 언제부터 분위기 보면서 말했다고.’
요즘 말로 선빵필승이라고 했던가, 먼저 화두를 던지는 자가 대화를 지배한다.
나는 마음의 눈을 질끈 감고 입을 열었다.
“야.”
“그게.”
“아.”
“아.”
타이밍이 겹쳤다.
대박이네.
괜히 뻘쭘해져서 가만히 있으려니 성민아가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내가 먼저 말할게.”
“그래.”
“고마워.”
“별말씀을.”
그녀는 다시 한번 더 심호흡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무언가 큰 결심을 한 듯 기도를 다잡고는, 내 눈을 직시하면서 말했다.
“미안.”
사과였다.
갑자기 웬 사과인가.
조금 상황 파악이 안 되는데 그녀는 연이어서 말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 내 잘못이야. 미안해.”
좀 의아한 말이었다.
성민아가 나한테 사과할 게 있나.
사과를 받는 당사자인 내가 좀 아리송한 상황이었다.
“뭐가?”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묻자, 그녀는 지체 없이 바로 답했다.
“너 없는 데서 너 뒷담화 까고 다녔던 거.”
“…….”
순간적으로 내게 충격이 찾아왔다.
‘얘, 내 뒷담을 언제 깠지?’
관심법으로 예상하긴 했지만 그게 사실이라니.
단순히 짐작하는 것과 그게 사실이 된 건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사람이 이럴 수가 있나.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아니다, 생각해 보니까 딱히 잘해준 적은 없네.’
당황하기도 잠시, 나는 이내 침착해졌다.
이미 깐 뒷담은 어쩔 수 없다. 그보다는 차라리 뒷수습이 더 중요하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그녀에게 물었다.
“어디서?”
“과에서. 그리고 동아리에서.”
“무슨 뒷담을 했는데?”
“그게.”
성민아는 자기 입으로 말하기가 부끄러운지 한 차례 호흡을 다듬더니 말했다.
“김한영이 나한테 치근덕댔다고. 그리고 기타 칠 줄 모르는 것 같은데 칠 줄 아는 척했다고.”
“아.”
그런 뒷담이었구나.
그런데 실상을 알자 의외로 별 충격이 없었다.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왜냐, 애당초 그런 말이 돌 건 감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거 애초에 뒷담이 아니잖아.’
외려 이상했다.
악의적인 이야기를 퍼뜨리거나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야 좀 뒷담 아닌가.
예를 들자면 이상혁이 여자에 미쳐서 양다리를 걸쳤대요. 같은 거.
‘생각해 보니까 이건 또 가능성이 있네.’
이건 킵.
어쨌든, 성민아가 한 말은 그냥 이번 생의 나 아닌 내가 헛짓거리를 했던 걸 주변에 하소연한 정도 아닌가 싶었다.
‘이걸 굳이 사과하려고 불러냈다고?’
말없이 고민하기도 잠시.
나는 곧 깨달았다.
‘자기 말에 자기가 걸려 넘어졌구나.’
개강 초 내가 아닌 나는 본의 아니게 한 가지 거짓말을 저질렀다.
코드도 짚을 줄 모르면서, 기타 재질의 특성도 모르면서 함부로 아는 척했지.
성민아는 숙련자니까 거짓말을 단번에 눈치챘으리라.
하지만 내가 기타를 칠 수 있게 됨으로써 그 거짓말은 거짓말이 아니게 되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성민아의 진담은 거짓말로 바뀌었다.
‘이제 좀 이해가 되네.’
머리가 슬슬 굴러가려는데 성민아가 말을 이었다.
“내가 잘 모르면서 함부로 말했어. 넌 그냥 농담으로 한 말이었을 텐데, 그렇지?”
“아마도.”
“내가 혼자 과하게 반응해서 못 할 말을 하고 다녔어. 미안, 애들한테는 내가 사과할게.”
그녀는 내게 사과하면서 살짝 떨기까지 하고 있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수치심과 나에 대한 일말의 걱정이 덕지덕지 묻은 모양새.
문득 그녀의 생각을 알 것도 같았다.
‘동아리에서 거짓말쟁이로 찍히고, 두고두고 불편할 것 같아서 무섭겠지. 대학 생활 시작을 망친 것 같고.’
한 번 사고가 이어지자 판단이 빠르게 돌아갔다.
그래서 이에 대한 내 생각이 어떻냐면.
“됐어.”
이해 못 할 게 없었다.
“……뭐?”
성민아가 눈을 크게 뜨는데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됐다고.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뭘 사과까지 해. 무슨 고등학생들 말싸움도 아니고, 그냥 말 한 번 잘못했으면 그랬구나 하고 넘어가면 그만이지. 왜 슬슬 피해 다니나 했네.”
“…….”
그녀가 멍하니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녀의 반응을 기다리다가 기왕 말이 나온 김에 말을 이었다.
“그냥 할 만한 상황이라서 했겠지. 나라도 너처럼 오해했을 텐데. 애초에 오해가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거 아니야.”
이 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차라리 이런 방식으로 한 번 짚고 넘어갈 수 있으면 상관없다.
오히려 그녀가 내게 먼저 사과를 꺼낸 게 정상 참작할 부분이 되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오해 때문에 싸울 수도 있지. 그러다가 좀 불편할 수도 있고. 말했으면 됐어. 오히려 덮고 넘어가려는 게 부끄러운 행동이지.”
내 말이 정곡을 찔렀는지 그녀의 귓불이 붉게 달아올랐다.
한창 말을 늘어놓은 탓에 목이 말라서 음료수 캔을 따려는데,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됐다니까.”
굳이 사과를 듣는 게 더 이상했다.
그럼 내가 먼저 사과하겠다는 얘한테 무슨 말을 더해야 하나.
학교를 관두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뭐 앞으로 계속 머리를 수그리고 다니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돈으로 배상하라고 해야 하나.
그런 건 내 취향이 아니다. 더욱이 내게 이득이 되는 일도 아니었다.
‘애초에 얘가 딱히 거짓말을 했던 것도 아니잖아. 그냥 운이 더럽게 나빴던 거지.’
설마 기타 코드도 모르는 사람이 하루 사이에 갑자기 권위자가 될 줄 알았겠는가.
운이 나빠 지나가던 트럭에 치였다고 봄이 옳았다.
그것도 로봇으로 변신하는 미제 화물 트럭.
굳이 사과를 받을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사과는 잘못 받으면 두고두고 흠집이 되는 법이지.’
나는 이 사실을 잘 알았다.
하지만 눈앞의 이 학생은 그걸 잘 모를 터.
그러니까 이렇게 불편한 상황에, 불편한 방식으로 사과를 던진 것이리라.
아직 미숙해서 그렇다.
‘사과는 이렇게 하는 게 아니지.’
나는 정 사과를 받아야 한다면 다른 사과를 받고 싶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서로에게 장기적으로 편해질 그런 사과를 말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은 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그게 있었네.’
문득,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성민아가 내게 구체적인 사과를 할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서로에게 이득을 가져다줄 방법이.
나는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정 미안하면 하나만 부탁 하나만 하자.”
“부탁?”
성민아의 목소리가 작게 흔들렸다.
하지만 동시에 각오한 표정이기에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너 학과 생활 잘하지? 수업도 열심히 듣고.”
“남들 하는 만큼은 하는데…….”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그녀에게 말했다.
“시험 족보 공유 좀.”
“…….”
그 순간이었다.
어색했던 분위기가 찬바람에 날아가더니, 다른 방향으로 어색해졌다.
성민아는 조금 전의 그 모습은 어디 갔는지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유감이다.
그렇게 괜히 민망해진 상황인데, 그녀는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족보 보여 달라고?”
“응.”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내가 학과에서 친한 사람이 없어서 달라고 하기가 좀 그렇더라.”
“희범이는?”
“걔 공부 안 해. 수업 시간에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게임 공략 글만 보고 있던데.”
“…….”
그렇게 말이 없기를 잠시.
성민아는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그래. 그냥 기왕 시험 준비하는 김에 희범이도 같이 보자. 됐지?”
“응.”
이 정도면 됐다.
그렇게 나와 고희범 그리고 성민아로 구성된 3인 스터디 그룹이 즉석 결성되었다.
물론, 이미 앞서서 대화한 게 있느니만큼 분위기가 마냥 좋지는 않았다.
이건 앞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겠지.
반면.
“이야, 이게 무슨 일이야? 개꿀.”
고희범은 마냥 신난 모양이었다.
* * *
눈코 뜰 새 없이 중간고사 기간이 지나갔다.
마지막 시험을 성공적으로 끝마친 뒤, 나는 생전 느껴 본 적 없는 충족감에 기지개를 켜며 생각했다.
‘이게 자유인의 기분이구나.’
나는 그동안 죄수였다.
대학이라는 감옥에 갇혀 공부라는 벌을 받는 죄수.
그것도 돈을 내면서 벌을 받는 죄수.
‘소년이 죄를 지으면 소년원에 가고, 대학생이 죄를 지으면 대학원에 간다고 했던가.’
결심했다.
대학원만큼은 가지 않는다.
이번 기회에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나는 공부에 적성이 없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고희범이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오늘부터 시작인가?”
“뭐가.”
“방송 말이야.”
아.
그러고 보니 시험 기간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방송을 시작하기로 했었지.
공부에 올인하다 보니까 조금 잊고 있었다.
나는 고희범에게 말했다.
“그냥 지금 바로 가자.”
다시 음악으로 돌아갈 시간이 왔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