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52
152화
서울 소재의 어느 4년제 종합 대학교.
가양 대학교.
이 학교의 미대에는 예전부터 특이한 입시 전형이 하나 있었다.
[포트폴리오 100% 입시]오로지 포트폴리오만 본다는 것.
입결도 내신도 안 본다.
오직 포트폴리오와 면접만으로 입시를 진행했다.
이 탓에 가양대학교 미대는 유독 사회의 틀을 거부한 괴짜들이 많이 몰려드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올해 또한 마찬가지였다.
안재명.
가양대 미대 조형학과 1학년.
그는 어린 나이부터 오로지 예술 작품에만 모든 것을 걸어온 사람이었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래, 아마 백남준 작품 [다다익선]을 실물로 접했을 때부터였으리라.
‘나도 이런 걸 하고 싶다.’
12살 안재명은 비디오 아트에 반했다.
미술로 그의 꿈을 펼치겠노라고 일찍이 다짐했다.
하지만.
“…….”
될 리가 있나.
미술이라는 건 원래 될 사람만 되는 세상이다. 될 사람도 운이 나쁘면 안 된다. 자본이 부족하면 안 된다.
어려서부터 금수저, 아니, 붓 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들을 이기기는 어렵다.
재능이 있으면 어떻게든 된다고 하였나.
아니다.
이건 재능과는 별개의 이야기다.
진주가 제아무리 찬란한 진주를 품고 있더라도, 그걸 남들에게 보여 주려면 그 과정이 얼마나 험난하던가.
안재명은 가양대 미대 안에서 튈 뿐, 그 이상은 될 수 없었다.
이번에 전시한 그의 야심작, [0공감] 또한 그러했다.
음성을 시각적으로 보여 준다는 컨셉트 하에, 수많은 삽질에 삽질을 거쳐 간신히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노력을 보답받기는 어렵다.
야외 전시까지는 했지만, 사람들은 흘끗 바라보고 지나갈 뿐 이 작품의 진면목을 알아봐 주는 사람은 드물었다.
분명 그랬는데.
“저거 너무 멋지다.”
“진짜, 노래하면 거기에 맞춰서 이미지가 바뀌는 건가?”
“느낌 알 것 같아.”
지금, 그의 예술품이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것도 그의 손이 아닌.
“라라라, 화분에 물을 주며 라라라, 너와 함께하는 미래를 꿈꿔 보며.”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서 말이다.
‘저 사람, 대체 누구지.’
저 사람이 등장하자마자 대중이 하나둘씩 몰려들기 시작했다.
노래를 시작하고 불과 3분, 그사이에 몰려든 인파만 30명에 달할 지경.
‘버스킹을 하러 온 건가. 하지만 어지간한 프로들조차 이렇게 사람을 끌어모으기는 힘들 텐데.’
여긴 혜화역 대학로다. 버스킹을 하는 사람이라면 질리고 질릴 만큼 봤다.
그런 그에게도 지금의 광경은 본 일이 드문 것이었다.
그런데 저 사람, 이상하다. 목소리가 익숙하다.
모자를 덮어쓰고 마스크까지 걸치고 있어서 얼굴이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목소리만큼은 수백 번 들어 본 듯 익숙했다.
‘분명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은데.’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이나 감상하던 찰나였다.
“어우 더워, 여러분, 마스크 쓰고 노래 부르면 안 돼요. 입가에 습기가 차서 피부 트러블 올라오고 안 좋아. 노래 부를 때 호흡도 안 되고요. 이거 완전 그거거든요. 노예 생활을 오래 하면 쇠사슬을 자랑하기 시작한다는데, 가수한테는 이게 딱 쇠사슬…….”
“그거 여기에 쓰는 말 아니야, 바보야.”
“너한테 바보 소리 들으니까 좀 화가 나네.”
한창 버스킹을 하던 사람이 같이 온 친구와 함께 뭐라 중얼거리더니, 마스크를 벗어 던졌다.
그런데 거기에서 나타난 얼굴이.
“김한영?!”
김한영, 최근 인터넷 스타로 부상한 뮤지션이었다.
불과 1년 사이 일반인에서 어지간한 프로급 이상으로 성장한 재능충.
그리고 또 입버릇처럼 내뱉는 기만을 컨텐츠로 삼은 남자.
미튜브 지망생들 사이에서 성공신화로 자주 일컬어지는 남자, 그가 지금 안재명의 예술품을 붙잡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니, 헛소리를 뱉고 있었다.
“진짜, 마스크 쓰니까 노래가 잘 안 돼요. 족쇄 찬 것도 아니고. 어우, 무슨 팬데믹도 아니고 왜 마스크를 써야 하는지.”
자기가 썼으면서 왜 중얼거리나.
“여러분도 마스크 쓰지 마세요. 아, 팬데믹 때는 쓰셔야 하고요. 안 쓰면 그거 민폐거든요. 그거 아세요? 누가 손 한 번만 안 씻어도 퍼지는 게 팬데믹이래요.”
그놈의 팬데믹.
왜 자꾸 일어나지도 않을 일 가지고 저 떡밥을 굴리나.
하지만 어찌 되었든, 안재명 그에게는 행운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 작업물이다.’
지금, 김한영이 그의 야심작 [0감각]을 붙잡고 있지 않나.
같이 온 사람이 카메라를 들고 있는 걸 보면 저거 촬영해서 미튜브에 업로드할 게 분명하다.
‘그럼 홍보가 된다!’
이름 알릴 기회 한 번이 궁한 예술가로서는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방법이 없을까.
김한영에게 연줄을 놓아서, 인생 역전 떡상 한 방을 노릴 방법이 없을까.
비굴하지만 어떻게든 비벼 볼 방법 없을까.
머리가 터지도록 굴리는 와중이었다.
“야, 슬슬 가자.”
“가기는 뭘 가.”
김한영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관객분들이 이렇게 많은데. 지금 막 오신 분들도 많고. 성원에 보답해 드려야지.”
“야, 한 곡만 하고 가기로 했잖아.”
“관객이 우스워?”
“말도 안 되는 말은 하지도 말고.”
“그러면 지금 이 타이밍에 가자는 건 말이 되고?”
뭐라고 선약이 있었던 것 같은데, 김한영이 마이크를 잡고 외쳤다.
“기왕 제 무대 보겠다고 여기까지 찾아와 주셨으니 화끈하게 놀아 봅시다.”
아니, 관객들이 오신 게 아니라.
네가 왔지.
여기는 네 무대가 아니라 내 전시장이고.
안재명은 후두 끝까지 차오른 말을 간신히 도로 삼켰다.
* * *
고희범이 부글부글 끓는 목소리로 말했다.
“김한영, 이 미친놈아. 한 곡만 하고 가자고 했잖아.”
“응, 그랬지.”
“알면서 열 곡, 열 곡을 채워? 제정신이야? 무슨 콘서트 하러 왔냐? 나오다가 깔려 죽을 뻔했다!”
그의 말대로다.
한 곡만 부르고 빠지려다가 열기가 올라서 좀 열심히 해 버렸고, 사람이 좀 많이 몰렸다.
최소 백 명은 넘었는데, 몇 명쯤 왔는지는 모르겠다.
내 등장이 SNS 등지에 올라서 주위 사람들이 다급해서 몰려온 모양이었다.
“한영아, 제발 좀 인지하자. 이제 네가 아무렇게나 막 돌아다녀도 될 사람이 아니라니까. 사람들이 붙잡는다고 다 붙잡히면 끝이 없어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서비스 정신이 없네.”
“제발 그 서비스 정신을 나한테도 발휘해 봐라!”
고희범이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쾅쾅 두드렸다.
하지만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건 그렇고.’
나는 호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끄집어내고는, 그것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조금 전 무대가 끝나고 도망칠 때쯤 누가 다짜고짜 명함을 던졌다.
그리 당황하지는 않았다.
대뜸 명함을 건네는 정도쯤이야, 근래 들어서 흔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설마 그게 이번 전시의 주최자였을 줄이야.
‘명함 한번 어설프네.’
종이의 질부터 디자인까지 다 별로다.
동네 문방구에서 대충 프린트해 온 것만 같은 느낌.
나는 그것을 몇 차례 손가락으로 쓸다가 말했다.
“요즘은 대학생들도 명함을 만드나?”
“예술 하는 사람들은 가끔 그런다던데? 뭘 하든, 자기 PR이 중요한 세상이잖아.”
고희범이 안다는 듯 중얼거렸다.
“흐음.”
“왜, 연락해 보게?”
“꼭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아까 봤던 그 전시품이 꽤 재밌어서.”
작품 이름이 [0감각]이라고 했나.
공감각이라면 두 가지 감각이 한꺼번에 일어난다는 건데, 그걸 의도한 작명이겠지.
노래가 시각적으로 보인다던가.
썩 괜찮은 이름이다.
그리고 또 꽤 흥미가 생기는 작품이기도 했다.
‘슬슬 이런 거 신경 쓸 때가 됐지.’
연출이었다.
뮤지션이란 음악에만 신경을 써서는 안 되는 직업.
음원만 유통할 게 아니라면, 내 무대를 남들에게 어떤 식으로 보여 줄지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까 그 장치는 여기에 썩 효과적인 부분이 있었다.
‘이름이 안재명이라고 했지. 기억해 둬야겠다.’
전문 연출가는 아닌 데다가 나이도 한참 어리니까 어설프겠지.
하지만 그 정도는 전문 연출가를 붙여 주면 될 일이었다.
일정 규모 이상의 공연이라면, 연출을 혼자 다 때우는 경우가 더 드물지 않나.
더욱이 그의 작품 발상은 썩 그럴듯했으니.
‘마침 연출까지 신경 써야 하는 때가 오기도 했고.’
한창 고민에 빠진 순간이었다.
“한영아, 그, 식구를 늘리는 건 좋은데 말이다.”
“응.”
고희범이 지극히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비율까지 떼 주는 건 그만하자.”
“왜?”
“미친놈아. 왜는 무슨 왜. 네가 무슨 왜나라 사람이냐. 맨날 왜야. 왜는.”
“조선 사람 맞으니까 본론만 말하자.”
“너 평소에 외주하면서 비율을 떼 주는 거 되게 이상한 거야. 그러지 마.”
“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여?”
그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말했다.
“얼굴 보니까 벌써 그럴 생각이 가득해 보이는구먼.”
흠.
이건 좀 조심해야겠다.
* * *
같은 시각.
최근 한국 연예계를 삼분하는 3대 엔터 구도에서, 3강 1약의 한 축으로 새롭게 부상한 엔터.
숲 뮤직.
그곳의 수뇌부들은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무슨 총공도 안 하는 애들이 차트를 이렇게 뻥뻥 뚫어? 운빨이야? 아니면 실력빨이야?’
바로 김한영 때문이었다.
차트를 박살 내고 그의 주가가 급상승함에 따라, 숲 뮤직 또한 내부 회의가 연일 이어지고 있었다.
조만간 약속된 방송 때문이었다.
‘원래는 적당히 연습생들 내보낼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판돈이 커지네.’
이게 문제였다.
김한영과의 경쟁에서 숲 뮤직의 수뇌부는, 본디 내부 연습생을 몇몇 끼워 주고 끝낼 생각이었다.
유리는 약속한 게 있으니까 출연시켜야겠지.
하지만 나머지 구성원들은 ‘체급’ 문제 때문에라도 연습생으로 구성할 생각이었다.
김한영이야 그렇다 쳐도, 아마추어 싸움에 프로들이 대놓고 끼면 추하니까.
‘그럼 이겨도 이긴 게 아니지.’
그런데 지금 상황만 보면 썩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지 않나.
저쪽 체급이 단기간에 폭등해 버렸다.
“이쪽도 체급을 조금 올리는 게 좋지 않을까요?”
손 과장이 웃으며 말했다.
“아예 중견급은 그렇더라도, 적어도 데뷔한 지 1~2년 이상 된 신인 중심으로.”
“손 과장, 신인은 대부분 그쪽에서 맡고 있지 않나?”
“우연히도 그렇네요.”
그의 뻔뻔한 발언에 건너편에 앉은 김 이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우연은 무슨 우연.
자기 실적을 올리기 좋은 방향으로 판을 다 짜 뒀으면서.
‘사람이 은근히 능글맞아.’
손 과장은 숲 뮤직에 입사한 지 오래되지 않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신인 육성 위주로 집중했다.
처음에만 해도 우스운 일이었다.
아예 신인보다는 이미 자리 잡은 연예인을 담당하는 쪽이 실적을 내기 쉽다는 게 상식이니까.
그랬는데, 손 과장은 최근 들어 유리를 필두로 급격하게 실적을 내기 시작했다.
‘이제 아예 자기들이 맡은 신인들만 밀어 보겠다는 거지.’
문제는 달리 반박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남들이 안 하는 일 떠맡아서 성과 냈다는데 뭐라고 하겠나.
숲 뮤직은 아닌 척하면서 은근 중견 가수만 챙기는 기업이다. 이럴 때가 아니면 신인을 띄워 줄 기회가 돌아오지도 않으리라.
결국, 김 이사는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손 과장 말대로 이번 일에서 연습생은 완전히 제외하도록 하지. 알아서 해 봐.”
“감사합니다.”
손 과장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숲 뮤직.
김한영과의 경연에 나갈 다섯이 전원 프로로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