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53
153화
며칠 뒤.
숲 뮤직의 제안서를 받은 팅 식구들의 분위기는 꽤 무거워져 있었다.
왜냐.
“전원 다 프로네…….”
“그러게. 다 데뷔한 사람들이다.”
숲 뮤직에서 참가한 뮤지션들이 전원 프로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하나같이 실력이 보증된 사람들로.
“와…… 얘들 발성 뭐야. 노래 진짜 잘 부른다.”
한참 그들의 영상을 바라보던 정의선이 중얼거렸다.
“노래도 노래지만, 무대가 때깔부터 다르네. 잘 꾸미고, 잘 추고, 카리스마가 넘치는데요? 은솔이 누나, 얘들 중학생 때부터 연습생 했대요.”
“후, 후후후, 후후, 희범아, 쫄 거 없어. 우리는 한예원 전공생들한테도 이겼잖아. 그렇지? 애들아, 자신감을 가져.”
“누나, 손이 떨리고 있어요.”
식구들은 라인업을 확인하자마자 안색이 거무죽죽하게 물들었다.
본격적인 프로들과의 경쟁을 앞에 두고, 트라우마에 빠져든 것이었다.
“옛날처럼 발리면 어쩌지?”
국단대 동아리와 친선 공연을 가질 때마다 발리던 때의 추억이었다.
생각해 보면 참 차근차근 올라왔다 싶다.
국단대 시절에는 전공생 이상 프로 미만이 벅찼지. 그런데 한예원에 이르러서는 프로와 다를 바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제 아예 명문 기획사와 계약한 진짜배기 프로들이다.
‘그건 그렇다 쳐도, 이거 좀 세게 나오네.’
솔직히 숲 뮤직에서 잘해야 연습생 정도 던지겠거니 했다.
일반인들 상대로 전력 승부에 나서며, 프로를 내밀어 봐야 큰 의미도 없으니까.
그런데 대뜸 프로라니.
그쪽에서 자랑하는 중견 아티스트를 들이밀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여름아, 괜찮아? 너, 안색이 안 좋아.”
“누나도요.”
“……나는 문제 없거든?”
막상 한여름보다 더 몸이 굳어 버린 성민아가 중얼거렸다.
“산 넘어 산이라더니.”
그렇다.
산 넘어 산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넘어야 할 산이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실패할 걸 가정하고 발걸음을 옮기지 않는다.
도전하는 게 두렵다면, 발전 또한 이루기 어렵다.
나는 그런 마음을 담아 식구들을 위로하려 입을 열었다.
“어차피 시장 정상에 올라가려면, 진짜 프로들을 상대로 이겨야 해.”
홍윤서가 빙그레 웃더니 말했다.
“우리 한영이가 또 자기 혼자만 잘났다고 괴악한 발언을 뱉는 걸 보니까 이제 새삼스럽지도 않구나.”
흠, 아무래도 내 마음이 잘 전해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조은솔도 동의하는 듯했다.
“하하, 확실히 한영이만 너무 침착하기는 하다.”
“딱히 침착하기보다는요.”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이길 방법을 알 것 같아서 그래요. 이제 저희도 슬슬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가 온 거죠.”
“다음 단계?”
“네, 본격적으로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가 발생하기 시작하는 단계요.”
나는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무대 그 자체의 퀄리티죠.”
본격적으로 설명을 시작하려는 순간이었다.
“누가 보면 지는 태어나기도 전부터 프로였는 줄 알겠네.”
홍윤서가 끝내 태클을 걸었다.
나는 그 말에 놀라며 말했다.
“형, 어떻게 알았어요?”
“저놈의 컨셉질.”
어찌 됐든, 설명은 시작한다.
* * *
“하나만 물어볼게요. 프로와 아마추어를 가르는 가장 큰 차이가 뭘까요?”
“음, 글쎄.”
내 질문에 홍윤서가 잠시 볼멘소리를 뱉더니 말했다.
“아무래도 노래 실력 그 자체지.”
“그것도 크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하지만 사실, 그거 하나만으로 완전히 구별되는 건 아니에요.”
“그래?”
홍윤서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실력이 부족해도 프로로 활동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으니까요. 당장 예능 방송에 나오는 연예인들이 앨범 내고 그러잖아요. 발성이 부족하고 그래도 무대가 지루하다는 느낌은 안 들죠?”
“흠, 생각해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흔히 있는 일이었다.
노래를 제대로 불러 본 사람이 아닐뿐더러, 실력 자체가 모자라다.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은 뮤지션이 아니라 희극인이니까.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무대를 볼 때 생각보다 꽤 깊게 몰입할 때가 많았다. 지루하다는 느낌이라고는 전혀 없이.
“이번에는 의선이가 말해 보자.”
“잘 모르겠는데…… 음, 당장 떠오르는 거라면 아무래도 예산?”
정의선이 자신 없다는 듯 말했다.
그 찰나의 순간 홍윤서가 핀잔을 던졌다.
“야, 그건 너무 두루뭉술하다.”
하지만.
“의선이 말이 맞아요. 거의 근접했어요.”
“……저게?”
“네.”
놀랍게도 거의 사실이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이 질문의 종지부를 찍겠다는 생각으로 말했다.
“민아야, 너는 알지?”
“알지.”
역시 고등학교 시절 전공생 출신이다.
그녀는 입술을 삐쭉 내밀더니 말했다.
“아무래도 얼마나 무대 연출에 공을 들였느냐가 제일 크지.”
이번에는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아.”
그렇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무대를 가르는 가장 큰 차이, 그건 바로 무대 연출이었다.
“간단하게는 조명부터 시작해서, 음향, 무대 장치, 안무, 영상, 동선이나 대본까지 모든 게 다 합쳐져서 프로의 무대가 되는 거지. 더 넓게 보면 관객을 다루는 방법까지도.”
이 부분에서 정의선의 말이 맞았다.
무대라는 건 누가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디에서 어떻게 하느냐가 생각보다 큰 법이고.
여기에는 예산의 힘이 상당했다.
“당장 아무리 잘하는 사람이라도, 흡음재가 잔뜩 깔린 방음실에서 혼자 반주도 없이 노래하라고 하면 생각보다 밋밋할걸요? 하지만 노래방에서 에코 잔뜩 키우고 노래 부르면 어때요. 일반인 노래도 들어 줄 만하잖아요.”
노래방의 정신 사나운 음향과 조명도 어찌 보면 연출의 한 갈래라고 볼 수 있었다.
부족한 실력을 보완해 주는 게 연출이기도 하니.
“연출이 그렇게 중요한가. 딱히 의식을 못 했는데.”
“연출에 의식이 안 쏠리게 하는 것도 연출가의 기량이거든요. 어쨌든 무대의 주인공은 뮤지션이니까요. 실력 있는 연출가들은 뮤지션이 뭘 잘하고 못하는지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고 해요. 그걸 연출 단계에서 보강하는 거죠.”
말이 길어졌다.
나는 짧게 헛기침을 뱉고는 말했다.
“아무튼, 그런 면에서 볼 때, 저희는 지금까지 족쇄를 차고 경쟁해 왔던 거예요.”
방송의 한계였다.
매일 똑같은 환경에서 찍어내야 하는 환경상, 무대 하나하나의 퀄리티를 올리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진짜 프로들은 어떠한가.
무대 하나에 억 단위의 예산을 투자한 나머지, 설령 만석을 채우더라도 손해를 짊어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프로들의 무대는 그런 것이었다.
들어가는 예산부터가 다르고, 그에 따라 연출도 다르다.
“숲 뮤직은 아예 본격적인 프로 집단이에요. 연출에 돈 좀 쓰겠죠.”
이번에 선택된 공연장만 봐도 그렇다.
일반 소극장이 아니라, 천 명가량의 관객이 들어갈 수 있는 공연장을 제안했다.
이는 본격적으로 ‘무대’를 다뤄 보겠다는 말과도 같았다.
“……라고 미튜브에서 현역 프로가 그러더라고요.”
그 말에 식구들의 시선에 서린 의심의 빛이 조금이나마 씻겨 나갔다.
조은솔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으음, 설명을 좀 들으니까 호랑이 입에 머리를 집어넣는 것 같은 기분이 드네. 우리도 무대를 프로 수준으로 꾸려 봐야 한다는 말인데…… 여태껏 안 해 본 일을 갑자기 잘할 수 있을까?”
“어렵겠죠. 저희끼리만 알아서 한다면.”
그래, 우리끼리만 한다면 말이다.
나는 한마디를 뒤에 덧붙였다.
“하지만 예산만 있으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요?”
* * *
“이 친구가 그 슈퍼스타 발매한 친구야?”
어느 한 남자가 왁자지껄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그거 진짜 차트에서 오래도 버티던데. 발표한 지 일주일이 훌쩍 넘었는데 아직 10위 바깥으로 나가지도 않았잖아. 이러다가 역주행이라도 하는 거 아니냐?”
그가 시종일관 껄껄 웃으며 내 어깨를 탁탁 두드렸다.
아주 기특해 죽겠다는 눈치.
‘사람이 하나도 안 변했군.’
그래서 이 사람이 누구인가 하면.
‘교수 노릇을 하고 있었을 줄은 몰랐는데.’
한국에서 무대 연출의 대부로 불리는 인물, 배영수 교수였다.
그리고 그에게는 한 가지 특징이 있었다.
바로―.
“김한석이랑 뭔가 닮았네. 얼굴 말고 분위기가.”
김한석을 좋아하다 못해 환장한다는 것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가 출세한 게 바로 김한석 덕분이니까.
‘세상 참.’
김한석 시절 내가 데뷔했던 초기, 내게는 돈이 없었고 우리 회사에도 돈이 없었다.
김진산 사장에게도 돈이 없었다.
그래서 다룰 수 있는 무대에도 한계가 있었다.
해서, 찾아냈던 게 이 사람.
당시만 해도 저예산 무대 연출에서는 도가 텄던 사람이었다.
그랬던 게 내가 뜨면서 점차 몸값이 불어나더니, 나중에는 돈 드는 연출이라면 그 누구보다도 잘하는 사람이 됐지.
‘그래서 김진산 사장님이 파산했나.’
화려한 연출 기획을 년 단위로 채워 놓고, 그게 다 증발했으니 버틸 도리가 있나.
그러고 보니까 그 양반, 슬슬 찾아볼 때도 된 것 같은데.
“…….”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자, 한윤태가 내 시선을 은근슬쩍 피했다.
소개해 주는 것까지가 자기 역할이었으니, 이제부터는 네가 알아서 하라는 모양.
“사실, 오늘 교수님을 뵙자고 한 이유가요.”
나는 헛기침을 뱉고는 본론을 꺼냈다.
그렇게 잠시 뒤.
배영수 교수는 눈을 좁게 뜨면서 말했다.
“그래서 숲 뮤직을 이기는 데 훌륭한 연출이 필요하다는 거네?”
“그렇죠.”
“후, 하필 숲 뮤직이라 이 말이지?”
“왜요?”
뭔가 숲 뮤직이면 안 될 이유라도 있나.
의심이 고개를 들려는데 그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말했다.
“잘됐네. 거기 놈들은 하나같이 싹퉁바가지가 없는데.”
의심이 사라졌다.
원한이라도 있나 싶은데 배영수 교수가 헛웃음을 치며 말했다.
“아니, 숲 뮤직 그놈들은 자기들이 무슨 고매한 예술가라고, 자꾸 연출가를 종처럼 부리려고 한다니까. 돈 주고 맡겼으면 준 대로 쓸 것이지, 자꾸 뜯어고치려고 한다니까? 그에 비하면 차라리 3대 기획사 놈들이 예의 발라요. 걔들은 남의 분야를 존중하거든.”
아, 이쪽 업계에도 나름대로 감정싸움이 존재하는구나.
다행이다.
적의 적은 내 친구. 그렇다면 배영수 교수는 다시 한번 내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그래서 기대감을 품고 말한 순간이었다.
“아니.”
“…….”
단번에 거절당했다.
분위기 좋았는데 갑자기 왜 거절이지. 뭔가 이유라도 있나.
혼란스러우면서도 혹시 모르니 다시 한번 권유해 보려는 찰나.
“내가 숲 뮤직 패는 걸 네가 돕는 거지.”
배영수 교수가 가슴을 두드리며 호언장담하듯 말했다.
“이건 내 복수이기도 하거든? 잘 됐다. 숲 놈들, 나 배영수의 자존심에 먹칠한 걸 이번 기회에 후회하게 만들어 주지.”
아하, 원한이 좀 있으셨구나.
눈동자 사이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길이 보이는 것도 같다.
그는 지체할 게 없다는 듯 A4 용지 하나를 프린터에서 꺼내 들더니 말했다.
“그럼 우선 자세한 건 이야기를 나눠 봐야겠지만, 오늘은 컨셉 정도 정해 보자고. 뭔가 마음에 드는 거 있어? 이번 무대는 이런 거로 하고 싶다든지. 키워드도 괜찮아. 우주, 커피, 한자, 라틴 같은 거.”
키워드라.
마땅히 고민해 둔 게 없어서 턱을 괴고 생각해 보는 찰나였다.
‘아.’
그게 있었지.
나는 가방 속에서 조잡한 명함 하나를 꺼내 들며 말했다.
“비디오 아트요.”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