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56
156화
이 세상에는 참 다양한 종류의 공연장이 존재한다.
클럽.
야외 공연장.
홀 공연장.
오페라하우스.
그리고 공연의 꽃, 스타디움까지.
보통 몸값이 두둑한 뮤지션일수록 대형 공연장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큼지막한 곳이라고 무조건 좋은 곳일까.
아니다.
그럴 리가.
공연장이란 저마다의 규모에 따라 고유의 특성을 가졌다.
1000석 규모를 갖춘 중형 공연장, 레드스퀘어홀.
이곳 또한 고유의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음향 설비가 엄청나게 좋아.”
나는 한여름을 향해 손가락 하나를 들며 말했다.
“공연장이라면 음향 설비가 좋은 게 당연한 거 아니겠냐고 하겠지만, 사실 꼭 그렇지는 않단 말이지.”
“별로인 곳도 있나 봐요?”
“의외로 많아. 공사할 때 음향 설계를 잘못 가져가잖아? 그럼 가수가 아무리 멋진 소리를 내도, 짜그리 뭉그러져서 관객석에 제대로 전달이 안 될 때가 꽤 많아.”
“오…….”
한여름이 감탄한 표정으로 내 목소리에 청각을 곤두세웠다.
마치 스승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주워섬기는 제자의 모습처럼.
나는 일말의 만족감을 느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야외 공연장은 음향 설계가 어렵지. 음향이란 공간에서 반 이상을 먹고 들어가는 건데, 이게 통제가 안 되거든. 잘 생각해 봐. 락페 같은 곳 나갔다가 굴욕당한 가수가 한둘이 아닐걸?”
“확실히 그랬던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형은…….”
“나는 잘하니까.”
“아.”
“여하튼, 실내공연장은 통제가 잘 되지. 레드스퀘어홀은 그중에서도 정점이라고 할 수 있을 곳이라는 거야.”
그렇다.
레드스퀘어홀의 장점, 그건 바로 음향에 대한 투자가 어마어마하다는 점이었다.
규모로 얕볼 곳이 아니다.
좋은 음향을 전달하기 위한 접근, 그곳에서 있어서는 가히 장인의 경지라고 봐도 무방했다.
거기에 레드스퀘어홀을 상징하는 붉은 톤의 원목 인테리어까지.
“1,000석 규모면 명성에 비해 아쉽다고 할 수도 있는데, 오히려 1,000석 규모니까 음향을 챙길 수 있었던 거지. 여기에서 인생 라이브 뽑아낸 뮤지션이 한둘이 아니야.”
“그래서 숲 뮤직 측에서 여기로 정한 거군요.”
“맞아, 일단 촬영해 놓고 홍보용으로 쓰겠다는 거겠지.”
“역시…….”
한여름이 감탄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명해지려면 실전뿐만 아니라 이론에도 해박해야 하는 거네요!”
감탄하다 못해 반짝반짝 빛난다.
하지만 나는 그렇다고 말해 줄 수 없었다.
‘이거 이론 아닌데.’
그냥 상식인데.
당연한 말을 한 건데, 그걸 너무 대단한 조언이라도 배웠다는 양 반응한다.
사람이 해맑다.
며칠 사이 죽어라 굴리면서 사람이 좀 마모됐나 했는데, 색다른 환경에 좀 왔다고 그새 초심으로 돌아온 한여름이었다.
조은솔이 내게 물었다.
“한영이가 잘 아네. 레드스퀘어홀에 와 본 적이 있었나?”
“아주 먼 옛날에요.”
“김한석 시절에?”
“네, 그때 왔어요.”
나는 우수에 찬 눈빛으로 실내를 돌아보았다.
“먼 옛날, 레드스퀘어홀이 새워질 당시, 이곳에서 처음으로 공연을 뛰었던 게 저였죠. 설립자가 저를 참 좋아했어요. 그게 벌써 몇십 년 전이네요.”
내부적으로 많이 뜯어고쳐서 그때와는 많이 다르다.
하지만 공간이 주는 향기랄까.
그런 건 여전했다.
옛 추억을 떠올리며 감회에 사로잡혀 있는 찰나 고희범이 한여름을 붙잡고는 말했다.
“여름아, 봤지? 저걸 보고 중2병이 늦게 도졌다고 하는 거야.”
“중2병이요?”
“쟤는 자기가 김한석의 환생이라고 말하고 다닌다니까.”
“……그거 농담으로 하는 말 아니었어요?”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야, 꽤 진지해. 한영이가 평소에도 제정신이 아니지만, 김한석 이야기만 나오면…….”
나는 고희범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뭐라는 거야. 신입생한테 이상한 말 하지 마라.”
“이상한 말은 네가 하는 거고. 그리고 이 상한의 반대말은 이 건강한.”
“…….”
“…….”
춥다.
대기실이 잠시 정적으로 감싼 순간이었다.
“아, 덥다. 벌써 여름 되려나 봐. 여기 에어컨이…….”
대기실 문을 열고 누군가가 나타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복수로.
* * *
“…….”
“…….”
대기실에 한순간 대치 상태가 발생했다.
서로 아무런 말도 없지만, 나는 이들에 대해 잘 알았다.
‘딱 보니까 숲 뮤직 쪽 사람들 같은데.’
유리를 제외한 나머지 넷이었다.
보통 방송을 진행하기 전 미팅을 한 번쯤은 진행하는 게 맞겠지만, 이번에는 예외였다.
전적으로 손 과장이 중간에서 매니저 역할을 전담했기 때문.
그러니 이 자리는 우리들의 첫 미팅이라고 봐도 무방했는데, 그 분위기가 영 아니었다.
“…….”
“…….”
뭐지.
왜 아무런 말이 없지.
너희 쪽에서 먼저 뭐라고 말을 해 보라 이건가.
하지만 어림도 없다.
나라고 해서 굳이 먼저 말을 꺼내는 타입은 아니다.
그렇게 바라보고만 있는데, 그중에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윤서 형?’
홍윤서와 비주얼이 90% 일치하는 남자가 있었다.
헐렁한 상의에 후줄근한 반바지.
그리고 모자.
차이점이라면 이 사람은 수염을 길렀다는 정도일까.
‘이름이 고든이라고 했나.’
인터넷에서 확인했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아마추어 생활을 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갔다지.
음악을 관두고 프로그래머로 살다가 돌연 오디션 프로그램에 진출.
본선 4위까지 들어갔다.
이후 숲 뮤직의 눈에 띄어서 전격 데뷔.
최종 성적은 차트 20위대 정도.
신인치고는 꽤 괜찮은 성적이었는데, 미래가 기대되는 유망주 정도의 자리였다.
그가 홍윤서와 한참이나 눈싸움을 벌이더니 말했다.
“어쿠스틱브릿지?”
“프리즘캐슬.”
무슨 단어지.
생전 들어 본 적 없는 용어가 허공을 나뒹군 찰나였다.
고든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까닥이더니 말했다.
“클래식이네요.”
“클래식은 유행을 안 타거든요.”
클래식.
음악 이야기인가.
나름대로 유추하는데 고든이 말을 이었다.
“그래도 20대 초반이면 클래지컬한 브랜드를 쫓기보다는 시티보이 쪽을 노려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언제까지고 보이에 머무를 수는 없잖아요?”
“하긴, 20대 중반이면 슬슬 맨으로 넘어갈 시기고, 그 정도는 입어 줘야죠.”
고든은 홍윤서의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턱수염을 손가락으로 훑다가 말했다.
“그래도 프리즘캐슬의 자메이카 팬츠면 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3년 전 S/S 시즌 상품 아닌가?”
“고생 좀 했죠. 그 정도 가치는 있잖아요? 프리즘캐슬인데.”
“뭐, 그렇기는 하죠.”
“…….”
무슨 말인가 했더니.
아무래도 패션용어인 모양이었다.
혼란스럽다.
두 집단이 만나서 처음으로 하는 이야기가 음악이 아니라 패션이라니.
‘그건 그렇고 저 바지, 브랜드였어?’
너무 후줄근해서 대충 시장 가판대에서 한 장 떼 온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홍윤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슬리퍼 예쁘네요. 그레이스톤? 아직 국내에서는 못 본 모델 같은데. 본토에서도 못 구하는 거 아닙니까?”
“지인 찬스로 구했습니다. 미국에 친구가 많아서요.”
“흠, 앞서가시네요.”
“그쪽은 샤크핀 크리스마스 한정판? 소화하기 어려웠을 텐데.”
“믹스매치에서 해답을 찾았죠.”
그 말을 끝으로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홍윤섭니다.”
“박고든입니다.”
어느새 서로를 인정해 버린 두 남자가 악수를 나눴다.
이 양반들 좀 봐라.
‘남들은 말 한마디 없는데, 자기들끼리 이상한 공감대가 통해 버리네.’
하필 털털하다 못해 털이 난 사람들끼리 통해 버리니까 좀 그렇다.
대머리들 사이에서는 말이 필요 없다던데, 이쪽도 칼라로 이어진 건가.
더럽다.
하지만 어찌 됐든 말문은 튼 것.
다음으로는 서로 이상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두 사람이 있었다.
“…….”
“…….”
성민아, 그리고 유독 두꺼운 얼굴이 인상적인 여성.
김수경이었다.
본토 흑인 음악 스타일을 접목했다고 했지.
그러고 보면 성민아도 해외 스타일에 관심 좀 있었던 것 같은데.
‘이쪽도 서로 패션 확인하나?’
의심스러운 순간이었다.
두 사람이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말했다.
“오랜만이다.”
“그러게. 한 2년 만인가? 학교에서 보고 연락 한 번 안 했네. 동창회도 안 나왔지?”
“좀 바빴거든.”
예상이 빗나갔다.
고등학교 동창인 모양이었다.
“국문학과로 갔다길래 음악 관둘 줄 알았는데, 쭉 하고 있어서 다행이다.”
“응, 너도.”
사이가 좋아 보인다.
성민아가 마주 웃으며 말했다.
“고등학생 때는 YTG 가고 싶어 했잖아. 얼른 데뷔해서 다행이다.”
“……취향이 이쪽이더라.”
아니, 사이 좋은 거 맞나?
어지간히도 날이 선 목소리를 보면, 사이가 그리 좋지만은 않은 모양.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성민아는 원래 이랬다. 사이가 좋은 사람이 많지 않았다.
아니,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
당연한 일이었다.
‘성격이 더러우니 어쩔 수 없지.’
은연중에 허세가 있는데, 심리적으로 거리를 두는 성격이니 도리가 있겠나.
그런 주제에 까다롭기만 한 것도 아니고 허당이다.
“민아야, 그러고 보니까 축하해. 상도 하나 탔다면서? 특선이었나? 준우승이었나?”
“고마워. 너도 신곡 성적 잘 나왔더라.”
“나 앨범 작년에 냈는데.”
“아, 미안, 내가 다른 사람이랑 헷갈렸나 보다. 요즘 정신이 없어서. 알잖아. 바쁘면 자꾸 헷갈리는 거.”
“그럴 수도 있지. 그래도 코드는 아직 안 까먹었지?”
숨 막힌다.
분명 대화하는 맥락만 보면 나름대로 배려하는 듯한데, 정작 그 뉘앙스가 날카롭기 짝이 없었다.
폐를 손아귀로 쥐어짜는 느낌.
자존심 강한 두 사람 사이에 불꽃이 튀었다.
‘이러다가 싸우겠다.’
뭐라 말리려는 순간이었다.
우리 쪽에서 한 사람이 앞으로 성큼 나가더니 생긋 웃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팅의 전 부장 조은솔이라고 해요. 프로분이시죠?”
“이화예요. 저도 데뷔한 지는 얼마 안 됐어요. 방송 자주 챙겨 보고 있어요.”
갑자기 화목한 대화가 한 구석에서 튀어나왔다.
조은솔.
그리고 그녀와 닮은 분위기를 풍기는 여성, 이화였다.
두 사람은 나긋나긋하고 지적인 게 닮았다.
그리고 또.
“동아리 부장이면 고생이 많으시네요.”
“고생이랄 게 있겠어요.”
어딘지 모르게 서로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까지.
하지만 이 둘이 입을 열자, 성민아와 김수경 탓에 날카롭던 대기실 분위기가 조금 부드러워지는 듯했다.
나는 비로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머지 두 사람은요? 아직 안 오셨나?”
숲 뮤직 측 사람은 아직 셋밖에 없었다.
다섯이어야 하는데.
“아, 유리는 스케줄 때문에 조금 있다가 도착할 것 같고요.”
이화가 답했다.
“그리고 나머지 한 친구는 지금 잠깐 밖에 있어요.”
“밖에요? 왜요?”
“그 친구가 긴장이 좀 많아서요. 최근에 디지털 싱글 한 장 낸 친군데, 완전히 쌩 신인이라 긴장이 많거든요. 잠까지 설쳤나 봐요.”
그러고 보니까 이쪽에도 아예 무명 신인이 한 명 섞여 있다고 했지.
그 사람인가 보다.
‘뭐, 일단 이런 사람들이네.’
대충 판단은 마쳤다.
평범한 뮤지션들이다.
특별하게 모난 거 없고, 그렇다고 까다로울 것 없는 평범한 뮤지션들.
‘무난하네.’
얼핏 서먹해 보이지만, 옛날에는 이보다 더한 것도 많이 봤다.
소주병으로 머리를 깨는 것도 아니다.
린치를 가하는 것도 아니다.
이 정도면 귀엽게 넘길 수 있는 범주였다.
누군가는 좀 불편한 듯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장 멱살을 잡을 것도 아니고.
이화가 싱그럽게 웃더니 말했다.
“여기 대기실 하나 더 있죠? 저희는 그쪽에 가 있을게요.”
“아, 네! 이따가 무대에서 봐요.”
“은솔 씨도요.”
그녀가 응원하는 듯 주먹을 꾹 쥐었다.
숲 뮤직 사람들은 그렇게 문을 열고는 바깥으로 사라졌다.
갑작스럽게 조용해진 대기실.
성민아는 극히 내려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김한영.”
“왜.”
“후우.”
그녀가 짧게 호흡을 내쉬더니 말했다.
“이번에는 꼭 이겨야겠어. 아니, 이길 거야.”
“…….”
평소 여유로운 척 허세를 부리는 그녀답지 않게, 전의가 살벌하리만치 가득 찬 목소리였다.
그래, 의욕은 많을수록 좋지.
까득.
이까지 가는 건 조금 그렇고.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