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6
16화
“지금부터 콘텐츠 회의를 시작한다.”
고희범이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걸 왜 여기서?”
“왜겠냐.”
내 말에 그는 그윽한 시선으로 동아리방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말했다.
“여기가 제일 편하잖아.”
“…….”
이것 봐라.
공식적으로 팅에 입부한 것도 아닌 주제에 참 당당하게도 말한다.
“이제 학교 끝나고 동아리방 외에 다른 곳에 간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어.”
뻔뻔하기 짝이 없다.
나는 저것을 지적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어차피 윤서 선배가 입을 열 것 같아서 다물었다.
“하이고, 저것 봐라 저거.”
아니나 다를까.
윤서 선배가 기다렸다는 듯 혀를 끌끌 차더니 말했다.
“입부나 하고 저런 말을 하면 밉지라도 않지. 스스로 말하면서 안 찔리냐?”
그 말에 고희범이 싱글벙글 웃으며 답했다.
“에이, 전 기타가 없잖아요.”
“없으면 빌리면 그만이지. 동아리 예산으로 산 거 있잖아.”
“그건 한영이 전용이죠. 사양지심이 있어야지 어찌 사람 된 도리로서 다른 사람의 것을 탐하겠습니까.”
“아주 말은 잘해요. 희범이 임마, 너 그것도 병이야.”
“윗물을 공경하는 게 병이라면 전 기꺼이 유교 사회의 환자가 되겠습니다.”
헛소리가 물 흐르듯 나온다.
이 둘은 이러한 대화가 이미 하나의 레퍼토리가 된 듯 낄낄 웃었다.
고희범은 그러다가 진정한 듯 말했다.
“아무튼, 한영아, 중간고사 기간 동안 우리가 앞으로 할 방송 콘텐츠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봤다.”
“한번 말해 봐.”
“거, 뭐야, 방송 콘텐츠를 기획할 때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할 게 있어.”
“그게 뭔데?”
내 질문에 고희범은 씨익 웃더니 말했다.
“지속성이지.”
“지속성?”
“그래, 지속성.”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가락에 낀 펜을 현란하게 돌리며 말을 이었다.
“내가 이 콘텐츠를 앞으로 얼마나 꾸준히 이어나갈 수 있을지. 또 안정적으로 할 수 있을지. 그런 걸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한다는 거지. 단순히 재밌기만 한 콘텐츠는 수명이 짧아.”
대충 듣고 생각해 보니 공감 가는 부분이 있었다.
원 패턴 개그맨들이 수명이 짧은 이유와도 같지 않은가.
잠깐은 재밌어도, 시청자들이 적응할 시점이 되면 빠르게 시장에서 사라지고는 했다.
“지속성이라.”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일회성 콘텐츠는 안 된다는 거지?”
“바-로 그거야.”
고희범이 손가락을 딱 튕겼다.
“왜, 가끔 방송 보면 진짜 재밌고 알찬 컨텐츠들 있잖아. 시청자들도 보고 싶어 하고. 그런데 막상 방송하는 사람들은 몇 번 하고는 마는 그런 거 알지?”
그 말을 들으려니 바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방송이 하나 있었다.
“침착토론 같은 거?”
침착토론.
두 명의 남자가 정말 쓸모없는 주제로 승패를 겨루는 토론 방송이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게 있었다.
[민트초코 vs 파인애플 피자.] [여포 vs 동탁.] [순댓국 vs 설렁탕.]어딘가 맛이 간 주제로 토론을 나누는데, 정작 두 사람은 한없이 진지하다는 점이 웃음 포인트였다.
“맞아. 그런 거.”
고희범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사실, 시청자들 반응만 보면 진짜 엄청났잖아. 조회수는 기본 백만 단위에, 인터넷 커뮤니티마다 돌아다니고 난리지. 그런데 왜 장기 프로젝트로 안 끌고 가고 단발성으로 끝냈던 걸까?”
나한테 한번 맞춰보라는 듯했다.
이번에는 그리 어려운 질문이 아니었다.
“매주 이어나가기는 어려워서.”
아까 고희범이 말했던 데 힌트가 있었다.
지속성.
그게 바로 정답이었다.
“응, 응, 바로 그거지.”
고희범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재밌는 방송이라도 대본 준비하고, 촬영 장소 준비하고, 그러기를 매주 반복하려면 어려웠겠지. 매일 그것만 준비하면서 살 수도 없고. 또 매번 재밌으리라는 확신도 없고. 인터넷 방송은 어쨌든 지속성이 핵심이야. 뭐든 꾸준하게 이어나가는 게 미덕이거든. 그래서 내가 생각을 해 봤는데 말이야.”
드디어 본론이다.
고희범은 씨익 웃더니 말했다.
“지금부터 우리가 노려야 할 방송 콘텐츠는 바로, 켜 놓기 좋은 방송이야.”
“켜 놓기 좋은 방송?”
의아한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가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동아리방을 들락날락하면서 느낀 건데, 한영이, 너한테는 특이한 재능이 있더라고.”
“그게 뭔데?”
“기타 하나만 손에 쥐여 주면 알아서 시간 잘 보낸다는 거지. 누가 말 걸기 전까지는 혼자서 질리지도 않고. 밥도 안 먹고. 그래, 네가 가진 재능은 혼자 놀기의 재능이야.”
“…….”
지금 무슨 애 취급하나.
어이가 없어서 좁은 눈으로 째려보자, 고희범은 찔끔해서 살짝 물러나더니 말했다.
“야! 그렇게 보지 마!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잘 설명해야 할 거야.”
“그러니까 봐 봐. 한영아, 너 하루에 보통 기타를 몇 시간 정도 치냐?”
“글쎄.”
나는 잠시 고민해 보다가 말했다.
“나도 모르겠는데.”
그렇다.
나도 모르겠다.
‘기타는 그냥 아무 때나 치는 거 아닌가.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그냥 생각날 때는 언제나 기타를 손에 쥐고 살다시피 했다.
내가 아는 취미 중에서 가장 재밌는 게 음악이다.
발성 연습이라면 그래도 목이라도 쉬니까 적당히 하겠는데, 기타는 그런 것도 없었다.
손가락 관절이 좀 아플 뿐.
사람이 살아가면서 하루에 몇 번을 호흡하는지 새겠는가.
내게 기타라는 것은 생활 그 자체였다.
“딱히 세어 본 적이 없어서.”
솔직히 말하자면 이게 특이한 일인가 싶을 정도인데, 고희범은 마치 이 반응을 기대했다는 듯 말했다.
“바로 그거야. 지속성.”
“지속성?”
“너는 기타 하나만 있으면 몇 시간이고 알아서 잘 놀잖아. 혼자서도.”
다시 째려보려는데 그는 다급히 말했다.
“……그리고 그게 남이 보기에도 꽤 재밌고.”
“재밌다고?”
살짝 의아한 말인데 고희범이 말을 이었다.
“그래, 봐. 여기 동아리방 사람들은 맨날 보면 너 기타 치는 동안 자기 할 일 알아서 잘하잖아. 다른 동아리에서 슬쩍 보러 올 때도 있고.”
그랬던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랬던 것 같기도 했다.
내가 혼자 기타를 치고 있으면 동아리방에 사람들이 조금씩 들어차더니, 나중에는 아주 대여섯 명이 굴러들어와서 알아서 자기 일할 때가 많았다.
동아리 회관 복도 쪽에서 연주할 때도 그랬다.
혼자 이것저것 흥얼거리고 있다 보면, 주변에 사람이 조금씩 모여 있을 때가 많았다.
“확실히 한영이 연주를 듣고 있으면 그냥 눌러앉게 되더라.”
윤서 선배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딱히 정신 사납지도 않고, 오히려 배경음악 같아서 느긋하게 시간 보내기 좋아. 은솔아, 안 그래?”
“한영이가 좀 그런 면이 있지.”
“맞아요. 정신 차리고 보면 시간 훅 지났더라고요.”
조은솔과 정의선도 그의 말을 거들었다.
“연주를 한번 시작하면 밑도 끝도 없이 그냥 계속하는데, 공부할 때 그거 듣고 있으면 은근 집중이 잘 돼. ASMR 같다니까.”
가만.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순간이었다.
나는 고희범이 내게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깨달았다.
“그러니까, 네 말은 그냥 평소에 기타 치듯 방송 켜 놓고 치라는 말 아냐?”
“바로 그거야.”
고희범은 마침내 안도했다는 듯 말했다.
“그냥 평소 하던 대로만 하자는 거지. 지속성 면에서는 이만한 게 없잖아. 너 그거 종일 한다 쳐도 몇 달 정도는 계속할 수 있지?”
“음, 아마도?”
솔직히 말하자면 몇 달이 문제가 아니다.
이미 수십 년을 그러고 살았다.
애초에 이게 무슨 콘텐츠가 될 거라고 생각도 안 한 참이었는데, 이게 고희범의 눈에는 꽤 괜찮게 비친 듯했다.
‘시대가 많이 변했네.’
묘한 기분이다.
옛날에는 제아무리 잘난 뮤지션이라고 해도 시청자들에게 노출될 기회가 극히 드물었다.
왜냐.
100시간을 연습하더라도 방송에서는 몇 분 남짓 노출될 뿐이기 때문이었다.
연습을 콘텐츠로 삼는다는 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건 너무 사치스러우니까.
“한영이 네가 평소 하던 대로 해. 그러다가 가끔 시청자들이 하는 말도 한 번쯤 대화도 나눠주고, 뭐 선곡 요청 들어오면 한 곡쯤 연주하고. 그럼 되잖아. 예전에 보니까 카메라 앞에서 잘 떠들던데. 남들은 이거 한 시간 정도는 어떻게 소화해도 몇 시간씩은 잘 못 한다.”
대충 이해는 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요즘 방송은 꾸준한 방송도 방송이지만, 큼직한 한 방이 있어야 인터넷을 떠돌면서 흥하지 않던가.
나는 그 부분을 꼬집어서 물었다.
“그럼 너무 한 방이 없는 방송이 되지 않을까?”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고희범은 또 나름의 정답을 준비해 온 모양이었다.
“꼭 실시간 방송으로만 한 방을 만들 필요는 없지.”
“그럼?”
“음악 동아리 좋은 게 뭐야.”
고희범은 씨익 웃더니 말했다.
“콘텐츠는 여기도 널렸잖아.”
* * *
“여기서 하라고?”
“그래.”
중경대학교 동아리 회관 앞 호수공원.
어느새 중간고사를 마친 학생들이 저마다 앉아 노가리를 까며 쉬고 있었다.
‘평화롭네.’
나는 손가락을 꺾으며 말했다.
“카메라가 있으니까 좀 신경 쓰이는데.”
“되도 않는 말은 하지도 말고.”
고희범은 어디서 났는지, 촬영용 캠코더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냥 평소에 하던 대로 하면 돼.”
“뭐, 그럼…….”
나는 동아리 식구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바로 시작하죠.”
곧 호수를 바라보고는 기타 현을 가볍게 퉁겨보았다.
티링.
테일러 기타 특유의 단단하면서도 안정감 있는 고음 소리가 울린 순간이었다.
“너와 돌아가는 갈림길.”
나는 입을 열었다.
“나는 그 앞이 너무 아쉬워. 왼쪽으로 돌면 너와 있을 시간이 줄어들까 그게 싫어.”
조금이나마 안정된 발성이 흘러나왔다.
발성을 연습하기 시작한 게 어느덧 한 달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아직은 목이 덜 풀렸지만, 그래도 반주에 편승하는 정도라면 아슬아슬하게 가능해졌다.
‘목을 제대로 쓴 적이 없어서 그렇지, 가진 음색 자체가 썩 나쁘지는 않아.’
전생의 내 음색과는 다르다.
그 당시의 내 목소리는 뭐라고 해야 할까, 조금 슬픈 목소리였다.
아무런 노래를 불러도 울먹이듯이 들리는 그런 음색.
그게 개성으로 먹혀들어 발라드를 부르기에는 제격이었지만, 개인적으로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
한계가 명확했기 때문이었다.
‘뭘 불러도 비슷하게 들렸지. 또 목의 내구성이 약하기도 했고.’
하지만 이번 목은 그와는 정반대였다.
“너에게 간다. 깃털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루랄라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달려간다.”
훨씬 가볍다.
더 미성이 되었다.
전생의 그 감성이 씻겨 나간 건 아쉽지만, 대신 범용성을 손에 넣었다.
“넌 그거 아니, 나는 하루에도 네게 수백 번 반한다는 거.”
이 노래만 해도 그렇다.
평범한 사랑 노래지만, 전생에는 공식 선상에서 제대로 부른 적이 없었다.
즉, 미발표곡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잘 만든 곡이다.
그런데 왜 만들어 놓고 안 썼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기 짝이 없었다.
내 목소리에 안 어울렸기 때문이었다.
‘너무 밝아.’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구름처럼 밝아서 내 음색에는 안 어울렸다.
반면, 지금 목소리에는 어울렸다.
‘쓰면 쓸수록 마음에 들어.’
여기서 더 갈고닦으면 어떻게 될까.
또 현대의 발성을 적용한다면 또 어떨까.
모르기는 몰라도, 꽤 그럴듯한 소리를 낼 수 있지 않을까.
타다닥, 타닥.
하이라이트로 기타를 빠르게 긁었다.
그렇게 한 곡을 마쳤을 무렵이었다.
우리 팅 앞에는 대학생들이 여럿 몰려와서 감탄을 터뜨리고 있었다.
‘버스킹이 이건 좋네.’
그들이 박수를 터뜨렸다.
“와.”
“대박이다.”
나는 그들에게 머리 숙여 인사하며 동시에 어느 한 곳을 바라봤다.
관객들의 사이에서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고희범이었다.
그가 한 손에 캠을 든 채로 내게 엄지를 내밀었다.
‘해냈다는 건가?’
곧 우리 다음으로 조은솔이 기타를 손에 쥐었다.
그녀는 마치 카메라를 의식하듯 몸의 각도를 살짝 틀었다.
그렇다.
우리 방송의 또 다른 콘텐츠는, 평소 팅의 활동을 촬영하여 영상으로 다듬고 올리는 것이었다.
‘이게 첫 영상이겠네.’
이번 생의 음악 인생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