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65
165화
“그럼 방송에서 다시 만나요. 유-하(유리 하이의 줄임말).”
유리는 그렇게 마지막까지 웃는 얼굴로 무대를 마치고는 내려갔다.
무대 퀄리티는 나무랄 게 없다.
그녀가 부른 곡 [꾸민 듯 안 꾸민 듯]는 원래부터 차트 2위까지 올라간 히트곡이었으니, 인지도 면에서도 탁월했다.
하물며 텐션이야 어찌 되었든 클라스는 영원하다.
평소 무대와 달랐다고 해도 유리의 기본기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즉, 폭발적인 성원이 뒤따른 건 당연한 일이었다.
“우와아아아아아!”
“유! 리! 유! 리! 유리 빛깔 유! 리!”
“사랑해요!”
현장에서 관객들의 목소리 크기부터가 남다른 건 물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 오늘부터 유리 팬 할래] [나도 유리랑 오늘부터 1일♥] [유리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러세요] [아 ㅋㅋㅋㅋ 오늘 본 무대 중에 최고였다]채팅도 전례를 알아보기 힘든 수준으로 쌓이고 있었다.
더 놀라운 건 현재 시청자의 수.
[106,392]그녀의 무대 하나로 몇만이 추가로 붙더니, 기어코 10만을 넘겨 버린 것이었다.
‘이것도 기록이네. 기록이야.’
10만.
얼핏 보기에는 그냥 크기만 한 숫자일 수 있지만, 인터넷 방송인들 사이에서는 기념비적인 숫자였다.
구독자 수 100만이 대기업의 상징이라면, 시청자 수 10만 또한 다른 방면에서 흥한 방송의 상징이라고나 할까.
비록 유리의 힘을 빌리기는 했지만.
‘어쨌든 온 손님은 내 손님이지.’
원래 게스트 초청하는 것도 방송인의 실력에 포함된다.
잠깐 화제성 보고 온 사람이라도, 결국에는 내 사람이 될 사람들이다.
나는 그런 마음을 담아서 유리가 떠난 무대 위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곧 느꼈다.
‘역시, 아직은 약하네.’
관객들의 환호성이 쏟아졌다.
“기만영! 기만영! 기만영!”
“여기 좀 봐 주세요!”
하지만 그 환호성의 크기가 유리의 그것에 비해서는 확연히 작았다.
상관없다.
내 무대는 우상향을 그린다.
어차피 이번 무대가 끝날 때쯤이면, 유리의 그것을 넘어서기에 부족하지 않으리라.
‘어디 보자.’
나는 슬쩍 뒤를 돌아보며 무대를 확인해 보았다.
그곳에는 연출팀 직원들이 분주히 무대 연출에 사용할 설비를 설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었다.
[뭐임?] [모니터가 엄청 많네] [저걸로 뭐 하는 건가?]모니터가 많다는 것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안재명이 고안하고, 내가 기획하였으며, 배영수 교수가 완성한 그것.
공들여 지난 시간 준비한 비밀병기들이었다.
뮤지션의 노래를 실시간으로 반영해서 스크린으로 띄워 주는 그것.
그 위력은 내 몸으로 직접 체감했다.
하지만.
‘제대로 될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불안요소가 있었다.
‘최근까지 소프트웨어 오류가 있다고 했었지.’
제작과정에서 나온 이야기였다.
[이게 아무래도 아직 완벽하지는 않아서요. 갑자기 기능을 추가한 게 있기도 하고. 불안정해서 블루 스크린이나 프리징이 터질 수도 있어요.]이건 미술품이지만 단순한 미술품이 아니다.
비디오 아트면서도 다른 물건들과는 조금 다르다.
안재명이 밑바닥부터 프로그래밍을 공부하며 다듬은 물건.
대기업 직원들이 수천 명씩 달라붙는 게임도 에러가 터지는데, 이건 일개 대학생이 만든 프로그램이니만큼 간혹 에러가 따를 때가 있었다.
[대충 하루에 두세 번 빈도로…… 아! 그래도 걱정은 하지 마세요. 이거 테스트는 많이 했거든요.]적어도 내 무대 4분 남짓 하는 시간 동안만큼이라도 잘 버텨 줘야 할 텐데.
살펴보고 있으려니 눈이 마주친 배영수 교수가 내게 대뜸 윙크를 날렸다.
‘갑자기 텐션이 죽는군.’
비위가 안 좋아졌다.
날렵하게 머릿속에서 삭제했다.
좋은 것만 보고 살아도 부족한 세상이니까.
그렇게 배영수 교수를 외면하며 정면을 보자, 이번에는 숲 뮤직 일동이 눈에 들어왔다.
“한영 씨 파이팅!”
누군가가 크게 함성을 지르길래 봤더니 유리였다.
이화와 고든은 그녀를 못 말리겠다는 듯 하하 웃었으며, 김수경은 어딘가 못마땅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 너머로 관객들의 기대감을 한 몸으로 받기를 잠시.
“오래 기다렸습니다.”
나는 비로소 입을 열었다.
“갑작스럽지만, 오늘은 신곡을 들고 왔습니다.”
* * *
새삼스럽지만, 이번 생에 내가 부른 곡들 태반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김한영은 왜 리메이크밖에 안 함?]뭐든 다 전생에 불렀던 곡들이라는 사실이었다.
옛날에 불렀던 걸 그대로 부르든.
아니면 미완성곡이었던 것에 현대적인 요소를 접목해서 완성했든.
내가 불렀던 것들은 거의 전부 전생에 한차례 발표했던 곡들이었다.
예외라면 한두 곡 정도일까.
일부러 의도했던 건 아니고, 그냥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말이 30년 전이지 내게는 체감상 몇 달 전, 몇 년 전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이번 무대는 조금 다른 마음가짐으로 접근해 볼 생각이었다.
‘아예 신곡을 하나 꺼내 볼까.’
구상만 했던 곡이 있었다.
옛날부터 수없이 구상만 하면서도 결국에는 꺼내지 못했던 곡.
먼 훗날 적절한 순간이 오면 불러야지 하고 기다렸던 곡이 있었다.
그게 지금인 듯했다.
“당신이 입으셨던 양복 한 벌.”
나는 노래를 부를 때 늘 생각한다.
어찌 되었든, 노래라면 우선 진심이 담겨야 한다고.
미국의 어느 유명한 가수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노래를 부를 때 기술을 고려하지 않는다. 어떻게 불러야지 하고 미리 계산하지도 않는다. 그저 언제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진심을 전력으로 토해 낼 뿐이다.]그저 진심으로 부르는 것.
물론, 저건 저쪽이 그냥 천재라서 그런 거고 보통은 곡의 청사진 정도는 신경을 쓰는 게 맞기는 하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노래를 부르는 데 진심이 중요하다는 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었다.
진심 없는 대화는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처럼.
노래 또한 마찬가지니까.
“어깨에 내려앉은 먼지가 오늘따라 선명하게 보이네요.”
당장 유리가 곡을 진심으로 부르지 못하였다.
피로감에 눅진하게 젖어 든 채로 상쾌한 짝사랑 곡을 부르니 이질감이 들 수밖에.
그래서 나는 진심을 가져왔다.
내게 있어서도 가장 진심을 담았다고 할 수 있을 그런 곡이다.
“생각해 보면 함께 우산을 쓰고 걷는 당신의 어깨는 언제나 젖어 있었죠. 그렇게 밀려난 걸까요. 얼마나 많이 삼켰을까요. 어떤 배려를 코트 뒤에 숨겼을까요.”
이번 곡은.
“날 위해 헌신짝이 되어 주었던 그대. 이제는 알 수 있어요.”
김진산 사장을 위해 만든 곡이다.
한참 무명이었던 나를 발굴하고, 끝내 세상의 빛을 보게 해 준 사람이었다.
뾰족한 돌멩이였던 나를 꾸짖고 갈아 내, 사람으로 만든 사람.
그게 김진산이라는 사람이었다.
‘윤태랑 같이 고생 많이 하셨지.’
감사 인사를 할 생각은 언제나 했었다.
하지만 사춘기 자식이 부모에게 편히 마음을 터놓지 못하는 것처럼, 나 또한 괜히 불편했다.
애초에 그가 감사 인사를 들었을 때의 표정이 머릿속에 잘 안 그려지기도 했고.
굳이 상상해 보자면.
[이 새끼가 지금 병 주고 약 주네.]이 정도 아닐까.
어찌 되었든 감사 인사를 하고 싶은 마음은 언제나 있었다.
그래서 이 곡을 만들었다.
김진산 사장에게 이 곡의 진짜 의미는 숨긴 채로, 다듬고 계속해서 다듬었다.
완성하고 큰 무대에서 부른 뒤, 사실 당신을 위해 만든 곡이었다고 발표할 그런 공산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기회가 없었다.
‘설마, 그런 식으로 갈 줄이야.’
내가 죽었다.
운 좋게 돌아왔더니 그는 사라졌다.
이런 아이러니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하물며 내가 교통사고로 죽은 그날은, 이 곡을 처음으로 대중에게 발표하러 가던 그 날이기도 하였다.
그 직전에 죽어 버렸지.
“그 거룩한 몸을 기꺼이 바쳐 한 움큼 거름이 되어 주었던 당신, 헌 옷을 자랑스럽게 걸쳤던 당신, 그 위에 피어난 나는 아직도 그런 당신의 이름 석 자를 입에 담기가 낯섭니다.”
결국, 이 곡은 이 세상에 아는 사람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곡이다.
한윤태도 모른다.
아는 사람이라면 김진산 사장 정도.
‘듣고 알아주면 좋으련만.’
기왕 큰 무대에서 불렀다.
차트 1위 정도를 찍을 무대가 아니라면, 이 곡을 부르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다.
이번 무대가 그 기회가 되어 주기를 바란다.
더욱이 김진산 사장이 아직 어딘가에 있다면, 이 곡을 통해서 나를 찾아 주었으면 한다.
저작권 도둑질을 했냐며 노발대발해도 좋다.
이미 들었던 말이니까.
어디 어설프게 남을 따라하냐고, 네가 따라쟁이냐고 혼쭐을 내도 좋다.
그것 또한 말씨 하나하나 귀에 밟힐 듯 익숙하니까.
“사진 속 풍선을 들고 활짝 웃는 아이. 그 액자 바깥에 사진사가 있었다는 걸 이제 알았네.”
다랑-
이쯤에서 간주 구간이 왔다.
나는 한 손으로 기타에 집중한 채, 슬쩍 고개를 돌려 등 뒤를 바라보았다.
안재명이 고안한 기구가 차분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곡에 맞춰 이미지를 변화시키는 기구.
‘내 곡은 이런 느낌이었구나.’
차분한 회색과 갈색의 조화.
모니터 위로 모래 먼지를 연상시키는 패턴이 나직하게 흘렀다.
좋은 연출이다.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이 정도면 지금 할 수 있는 무대에서는 최선이라고.
―그렇게 생각한 찰나였다.
“……!”
화면이 멈추더니, 이내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기어코 에러가 발생한 것.
사전에 만에 하나 일이 터질 수 있다고 주의를 듣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만에 하나라고 말했던 그것이었다.
‘왜 하필 지금.’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다 된 밥에 재를 뿌릴 멍청이는 아니었다.
실수 따위는 언제든 흔했다.
정말로 중요한 건, 실수한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인가.
‘연출에 정성을 기울이되, 기대지는 말라고 했지.’
김진산 사장의 명언을 가슴에 되새기며.
“어설펐던 내게 뿌리 깊은 나무는 천천히 자라고, 큰 그릇은 천천히 만들어진다고 해 주었던.”
계속해서 이어 나갔다.
* * *
한창 김한영 방송에 집중하고 있던 채팅방.
그곳이 한 가지 화제로 술렁였다.
[저거 연출 맞냐?]김한영의 무대 중간에 장치가 돌연 에러를 일으킨 탓이었다.
[갑자기 프리징 걸렸는데?] [원래 저런 거 아님?] [곡이랑 어울리기는 하는데.]명백한 에러다.
하지만 그 누구도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왜냐.
[돌발사고라고 치기에는 김한영이 너무 태연함.]김한영에게는 미동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에러가 터지기 전에도, 그 후에도 연주를 이어 나갔다.
오히려 한층 더 깊어졌다.
[나 이거 곡 뭔가 이상해] [갑자기 울적해진다] [노래 좋다…]곡이 짙다.
누구든 가끔 노래를 듣다 보면 그럴 때가 있었다.
곡이 유독 짙게 느껴져, 모든 감정을 뒤엎어 버릴 때가 있었다.
몰입이 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이건 흰색 도화지 위에 물감을 들이붓듯, 감히 저항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감정을 담아서 부르지]감정.
더없이 짙은 감정의 파도가 무대를 침식하고, 카메라 너머까지 침식했다.
김한영이 곡 속에 담은 진심이 기어코 세상을 덮어씌웠다.
[김한영이 원래 잘하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잘했나] [차원이 다르다] [이건 뭐라고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네]평가의 대상이 아니다.
그렇게 홀린 마음으로 귀를 기울인 채 마지막 사비에 집중한 찰나였다.
탕!
에러로 점멸되었던 화면에 차례차례 불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마치 파도가 치듯 천천히 모니터에 빛이 돌아왔다.
동시에 시작된 김한영의 마지막 사비.
“내가 살아온 모든 순간에 당신의 헌신이 함께했음을.”
처음부터 다 연출이었구나.
모두가 그리 확신하며 터지는 소름에 몸을 맡긴 찰나.
마음이 편해진 사람 또한 있었다.
‘……다르구나.’
유리.
그가 이 순간에 품은 감정은 경외였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