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68
168화
밴드로서 음악계에서 활동하다 보면 가장 흔하게 듣는 말이 있었다.
[너, 솔로로 데뷔시켜 줄게.]그룹으로 활동하면 수익이 줄어들고 포텐셜도 줄어드니, 핵심 멤버 한 명만 빼내서 키워 주겠다는 말이다.
어느 정도 업계에 몸을 담아 본 사람치고 이 말을 안 들어 본 사람이 드물까.
[솔직히 다 짐 덩어리잖아.] [혼자 하면 더 잘할 수 있지?] [나는 너 같은 실력자가 왜 남들이랑 어울려 다니면서 손해 보는지 모르겠다.]밴드라면 보컬 한 명만 빼돌린다.
아이돌 그룹이라면 센터 혹은 비주얼 멤버를 빼돌린다.
어떤 식으로든 단 것만 취하려는 사람은 많은 법.
나는 권 이사의 입에서 나온 말, 개인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그렇게 추측했다.
나는 개인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싱어송라이터 김한영]이라는 미튜버가 개인이 아니었다.
‘팅이랑 한 묶음으로 보인 건가.’
아무래도 네온이 평가한 나는 그런 사람인 모양이다.
팅과 하나로 묶인 인재.
가만히 머리를 굴리는 사이 권 이사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네온, 그러니까 조만간 발족할 네온 엔터는 소속 아티스트를 위해 많은 인센티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인센티브라면?”
“미리 준비해 둔 비단길 같은 거지요. 초기에는 빠르게 확장하고 인지도를 올릴 필요가 있으니, 그만큼 공격적으로 투자를 감행할 생각입니다.”
“흠.”
가만히 듣고만 있으려니 내가 흥미가 동한 거로 판단한 걸까.
권 이사는 한층 짙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이어 나갔다.
“네온은 한 분야에 국한하지 않고, 더 넓은 방향성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해외 진출은 일도 아니지요. 빌보드에서나 만나 볼 법한 뮤지션과 협업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바란다면 레이블 설립도 가능합니다.”
“…….”
“전부 저희가 김한영이라는 뮤지션이 지금까지 해 왔던 일들과 앞으로의 가능성을 크게 봤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칭찬이 아주 간드러진다.
나를 더 칭찬해라.
“콜라보레이션도 앞으로는 더 많은 인재와 진행할 수 있을 겁니다. 예를 들자면 숲 뮤직과의 콜라보레이션도 좋겠지만…… 그것도 좋겠군요. 조만간 스트리밍 사이트를 하나 합병할 계획이 있는데, 그 사이트의 홍보 채널 역할을 한영 씨가 맡아 주신다든지.”
좋은 생각이다.
우리 채널이 스트리밍의 공급망을 맡게 된다면, 그만큼 우리 방송의 입지도 커지겠지.
어떤 뮤지션이든 전부 불러다가 양껏 써먹을 수 있으리라.
권력을 떠다가 내게 넘겨주시는군.
‘이런 대접, 나쁘지 않아.’
옆을 돌아보자 고희범의 표정이 충격에 물들어 있었다.
앞으로는 네온과 한 몸이 된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만큼 대접을 해 주겠다니, 믿기 어렵겠지.
강도수 사장도 은근히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지금 나오고 있는 말들이, 사전에 협의했던 것 이상인가 보다.
“네온의 목표는 한국을 넘어 세계 미디어, K-문화의 선두 주자가 되는 겁니다. 한영 씨라면 가능합니다.”
“제가요?”
“예.”
“왜요?”
“저희 네온이 전폭적으로 협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협력도 좋지.
든든하다.
네온이라는 뒷배를 등에 붙이고 살면, 어딜 가더라도 고개 숙일 일은 없으리라.
네온만 빼고.
“어떻습니까. 한영 씨, 저희 네온과 함께 더 크게 도약해 보시는 게. 한국을 넘어, 세계로 말입니다.”
권 이사의 마지막 멘트가 나왔다.
잘 들었다.
말은 거창했다.
하지만 내가 이에 대해서 할 말이라고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싫은데요.”
“…….”
“…….”
“…….”
잠시 정적이 찾아왔다.
조금 긴 정적이었다.
즐겁다.
* * *
‘아, 이렇게 될 줄 알았지.’
대충 이런 이야기가 나오리라고는 처음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높으신 분이 따로 부른다니까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이거였지.
하지만 할 대답도 정해져 있었다.
“흠흠.”
권 이사가 헛기침을 뱉더니 말했다.
“조금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만, 김한영 개인에게 주는 호의입니다.”
“그래도 싫어요.”
나는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지금까지 해 왔던 대로 하는 게 좋아요. 전 보수적인 사람이라.”
뭐라고 하면 좋을까.
권 이사는 내가 음악을 하는 이유를 착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음악을 했던 이유.
그건 바로.
“전 성공을 위해서 음악을 하는 게 아니라, 음악을 하는데, 성공도 하면 좋은 거라서요.”
그냥 재밌어서 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성공은 좋다.
가능하면 그 누구보다도 성공해서, 최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한국을 넘어, 세계를 넘어, 지구를 넘어, 우주 최고까지 갈 용의도 충분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는 전제 조건이 따랐다.
“우선, 제가 재밌어야 할 것 같아요.”
재미였다.
초점을 성공에 뒀다면 음악 따위, 처음부터 안 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 끝에 성공이 뒤따라오니까 의미가 있는 것이다.
미튜브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다.
팅 식구들과의 협업 또한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다.
아무리 사소하고 유치한 일이라고 한들 내가 재밌어서, 내 손으로 내가 선택한 일이었다.
“하지만.”
권 이사가 머뭇거리듯 말했다.
“네온은 지금까지와 비교도 할 수 없이 좋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물밑에서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상상도 못 하실 겁니다.”
“그래도 당분간은 하던 대로 해 보고 싶어서요.”
다른 이유도 있었다.
‘내가 미쳤다고 남의 손아귀에 내 목을 내어 주겠나.’
투자라는 건 단순히 호의로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만큼의 책임과 권리를 요구했다.
내가 이들의 손에서 뭔가를 얻어 낸다면, 나 또한 그만큼 무언가를 내어 줄 필요가 있었다.
‘이걸 윤서 형 표현으로 말하자면 등가 교환이 되겠네.’
내는 앨범에는 간섭을 받으리라.
콜라보를 하더라도 어떤 곡을 콜라보할지 이들의 요구를 따라야 하겠지.
서고 싶은 무대도 마음대로 못 고를 것이다.
내가 무슨, 어떠한 음악을 하고 싶든 이들의 검토를 따라야겠지.
딱 봐도 재미없어 보이는 일이다.
이득은 되겠지.
네온에게는 고개를 숙이는 대가로 말이다.
‘김진산 사장님도 이런 일로 고개 많이 숙이셨겠네.’
새삼 그쪽이 얼마나 마음고생 했는지 알 것 같다.
그 당시의 시대는 지금과 또 다르다.
카메라를 쥔 사람의 힘이 너무나도 강해서, 출연자는 꼭두각시와 다를 바도 없던 세상이었다.
미튜브 같은 것도 없지.
그런 팍팍한 세상에서 내가 즐겁게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었던 건, 사장님이 무대 뒤에서 내 몫까지 고개를 숙였기에 가능했던 일이겠지.
자존심만 내세웠다가는 내가 설 자리마저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고개를 숙일 생각이 없다.
내게는 이미 설 자리가 있었다.
남이 만들어 준 자리가 아닌, 내 손으로 내가 직접 일군 자리가 말이다.
‘통째로 떠먹여 줄 생각은 없다.’
그렇기에 목을 빳빳하게 세우고 말을 이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전 지금 식구들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아요. 김한영 채널 자체도 저 혼자서 이룬 것도 아니라서요.”
우습다.
내가 남들의 삶까지 고려할 입장이 될 줄이야.
나도 참 많이 컸다 싶다.
한윤태가 보면 코에서 눈물을 흘리겠네.
“…….”
한편, 권 이사는 할 말을 잃었는지 잠시 아무런 말도 없었다.
고희범도 마찬가지였다.
어째서인지 감동한 표정이 기분 나빠 시력을 상실할 뻔했다.
강도수 사장은 안절부절못하는 눈치.
‘아차.’
이쪽 밥줄도 걸려 있었지.
하지만 이쪽까지 고려할 처지는 아니었다.
원래 우리 사이는 반년 짜리 계약으로 묶인 비즈니스 관계니까.
‘대충 패는 다 깠다.’
이제 선택만 남았다.
나라는 사람을, 아니, 우리라는 채널을 씹든 삼키든 뱉든 그건 권 이사가 지금부터 선택할 일이리라.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내게는 무한…… 하지는 않고, 저작권법이 허용하는 한도 안에서 창작의 자유가 있으니까.
그렇게 가만히 있기를 한참이었다.
“알겠습니다.”
권 이사가 마침내 바위처럼 닫고 있었던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게 한영 씨의 생각이군요.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제가 무리한 요구를 했군요. 의견을 존중하겠습니다.”
끝이었다.
뭐라고 더 요구하거나 화를 내거나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걸로 끝.
‘진짜로?’
더 설득할 줄 알았는데.
너무 시원하게 받아들인 것 같아서 내심 의아한 셈인데, 권 이사가 웃으며 말했다.
“솔직히 말씀을 드리자면, 저희 입장에서도 더 좋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흠.”
“어디까지나 저희 사는 한영 씨를 세상에 알리고 싶은 욕심에 제안을 드렸던 것이니, 너무 담아 두지 않으셨으면 하는 제 바람입니다.”
그렇게까지 말을 한다면야.
나도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이 정도에서 마무리 지을까.’
아직 불안 요소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좋게좋게 해결을 보는 게 최선이니 넘어가려고 한다.
어찌 되었든 우리는 앞으로도 반년간은 계약서로 얽혀 있으니 말했다.
‘이후에는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네온이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지 조금은 알았다. 반년 뒤에는 또 다른 선택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지.
이쯤 결론을 내리고 다시 음식에 손을 대려는 참이었다.
“사장님께서 어떻게 이런 분을 발굴하셨는지 궁금하네요. 하하.”
권 이사가 웃으며 말했다.
“아, 그게, 훕!”
강도수 사장은 체했던 게 급히 풀린 사람처럼 쿨럭쿨럭 기침을 토해 내더니 입을 열었다.
“한영 씨의 진솔한 면모에 반해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워낙 음악을 좋아하시고, 사람도 좋아하시고 그러는 게.”
“그렇군요. 덕분에 저희도 좋은 분을 모시게 되어서 즐겁습니다. 사장님 덕분입니다.”
“하하…… 별말씀을.”
흠, 저거 아무리 봐도 맥이는 것 같은데.
또 체하겠다.
그렇게 대충 끝났다 싶은 순간, 권 이사가 내게 물었다.
“말이 나온 김에 한영 씨에게도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 * *
약 두 시간 뒤.
김한영과 있었던 미팅이 끝난 뒤.
네온 본사로 돌아간 권 이사는 다급히 그의 담배 친구, 박 팀장을 찾았다.
할 이야기가 산처럼 쌓여서 할 말이 넘쳐 나는데, 어서 누군가에게 쏟아 내고 싶은 마음이 화산 같았다.
“오늘 미팅에서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나 봐요?”
“아, 있었지. 엄청 있었지.”
권 이사는 허겁지겁 담배에 불을 붙이더니, 깊게 한 모금을 빤 뒤 후련하다는 듯 말했다.
“김한영 그거, 완전 또라이야.”
“…….”
그 말에 박 팀장은 짧게 정색하더니 말했다.
“싸웠어요?”
“응.”
“아이고.”
박 팀장은 일본이 오열하고 미국이 무릎을 꿇은 국뽕 방송 속 게스트처럼 이마를 찰싹 치더니 말했다.
“주먹 휘두른 건 아니죠?”
“박 팀장, 내가 조폭이야? 그런 거 말고 말로 싸웠다고. 말로. 지성인답게.”
권 이사는 혀를 쯔쯔 차더니 말했다.
“그쪽이 거 뭐야, 이쪽에서 퍼다 주겠다는데 하나같이 다 거절하더라고.”
“거절해요? 왜요?”
“내가 알아? 재미가 없을 것 같다잖아.”
“…….”
영 납득하기 어려운 제안에 박 팀장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와, 아직도 재미를 찾아요? 나이가 어려서 그런가?”
“그럴 수도 있고.”
그는 말을 끊고는,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이고는 뱉더니 찡그리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나이가 어린 사람 같지가 않더라고. 사람이 목석이야. 무슨 말을 하든 담담하고 들뜨지를 않아. 하, 그게 사람인가.”
김한영과 한창 대화를 나누면서 가장 의아했던 점이었다.
보통, 대기업이 뒤를 밀어줄 테니 손을 잡자고 하면 들뜨거나 긴장해야 정상 아닌가.
김한영은 그렇지 않았다.
“쫄아서 굳은 거 아닙니까?”
“아니, 오히려 가소롭다는 눈치였는데.”
“……가소로워요?”
“응, 어디까지 하나 보자 하는 그 표정 있잖아. 재롱 잔치 구경하는 것도 아니고 되게 짜증 나더라고.”
김한영의 태도가 그러했다.
그는 자기 혼자 힘으로도 어련히 뜰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으며, 실제로 하나하나 행동에 옮기고 있었다.
스스로 꿀릴 게 없으니, 자연히 겉으로도 배어 나는 법이랄까.
물론, 타고난 성격이 재수 없는 것도 맞았다.
“게다가.”
“게다가?”
“그 뭐야, 나중에 뭐 하나 바라는 거 하나 있냐고 말해 보라고 했는데, 그게 또 대답이 걸작이었지.”
권 이사가 큭큭 웃음을 터뜨렸다.
“뭐라고 했길래요?”
박 팀장은 별로 궁금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한들 상사이니 예의상 되물었다.
이에 권 이사는 먼 빌딩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자기는 됐으니까, 강도수 사장 잘 챙겨 달라고 그러더라.”
“…….”
“자기는 테슬라가 아니라 강도수 사장을 보고 계약한 거라고 말하더라.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전부 강도수 사장 덕이라면서.”
권 이사는 아예 헛웃음마저 터뜨리며 말했다.
“이야, 그게 스물하나 입에서 나올 말인가? 정치하나? 아니면 정치 드라마를 많이 봤나?”
사람을 보고 계약했다는 말이 중요했다.
얼핏 보기에는 우습지만, 그 어떠한 손해도 안 볼 대답이었다.
앞으로는 무슨 일을 하든, 강도수 사장을 먼저 구워삶지 않는 이상 미동도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완곡하게 전달한 것.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네온에 큰 미련이 없다는 말과도 같았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한 건지 알고는 하는 말인가?’
김한영의 말은 의미가 남달랐다.
왜냐.
조만간 테슬라와 숲 뮤직은 네온 엔터로 합쳐지며 대대적인 인사 개편이 이루어질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종래 어느 조직에 소속되어 있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개개인의 능력과 효율에 따라 모든 게 재분배될 예정이며, 오늘의 미팅 또한 이를 위한 떡밥이었다.
그런데 김한영이 여기에서 명백하게 선을 그은 것이었다.
‘언제까지고 강도수 사장의 옆을 고수하겠다는 건가.’
즉, 김한영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가장 중요한 시기에 강도수 사장에게 힘을 실어 준 셈.
강도수 사장에게서 어떠한 언질이 있었던 건 아닐까.
기껏 해 봐야 스물한 살짜리니까 얼마든지 구워삶을 수 있었겠지.
하지만 아까 그가 본 김한영이 구워삶으려고 한들 삶아질 사람이었던가.
‘내가 고작 해 봐야 신인 하나 때문에 이런 고민을 할 줄이야.’
머릿속이 복잡하게 맞물리기를 한참.
권 이사는 담배를 재떨이에 눌러 끄며 말했다.
“일이 재밌게 돌아가네. 앞으로는 뭐 하나 그 사람 방송 좀 자주 챙겨 봐야겠어.”
물론, 저 말이 박 팀장의 눈에는 이렇게 보였다.
‘이 양반, 자기 맘대로 안 되니까 삐져서 나한테 이러는 거군.’
정답이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