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79
179화
분위기가 딱 알맞게 무르익었다.
어느새 사람이 차다 못해 넘쳐흐르는 공원.
바야흐로 교동은 평일 낮부터 공연장을 연상시키는 현장이 되었다.
“김한영이다.”
“강릉 왔다더니 진짜네.”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다.
계속해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사람, 동영상을 찍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 말인즉슨, 지금이 시작하기에 적기라는 뜻이었다.
‘슬슬 에피타이저도 끝났겠다. 바로 본편 진행하면 될 것 같은데.’
어쩐지 참가자 넷에게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그건 저들이 알아서 극복해야 할 일이다.
고작 500명 앞이라고 긴장하는 새가슴으로는 앞으로 애로사항이 꽃필 테니까.
그렇게 응원하는 마음으로 저들을 바라보던 와중이었다.
“한영이 형.”
한여름이 내게 말했다.
“왜.”
“저 하나만 말해도 돼요?”
“해.”
평소 말수가 그리 많지 않은 한여름이 내게 직접 질문을 하겠다니.
무슨 말을 하려나 기대되는 찰나였다.
“못됐어요. 엄청.”
“…….”
내가 뭐 했나.
못된 건 빌보드 1위 점령이고.
“또한영. 진짜 남의 마음은 모르지.”
“왕은 서민의 마음을 모르나니.”
고희범이랑 윤서 형은 또 왜 저러나 모르겠고.
설마 분위기를 띄워 준 게 문제인가.
일단 사람은 모으고 봐야지. 그럼 관객 하나 없이 휑한 공터에서 노래를 부르라고 해야 하나.
이건 내 나름의 배려였다.
하지만 식구들의 표정을 보니 반박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시청자분들도 많이 모였는데, 오디션 시작하죠.”
나는 그들의 시선을 흘리며 외쳤다.
“지금부터 시청자분들과 현장 관객분들의 손으로 한영 아카데미 마지막 멤버를 뽑겠습니다!”
* * *
이번 마지막 오디션은 그렇다.
인터넷 시청자의 반응.
그리고 현장 관객들의 반응을 취합해서 최종 합격자를 결정하기로 했다.
“투표는 방송에서 후원을 넣어 주시면 됩니다. 액수는 상관없습니다. 한 계정에 한 번만 인정하며, 투표 양이 아닌 비율로 환산해서 적용하겠습니다.”
아무리 대낮이라고는 하나 내 방송의 시청자 수는 현장 관객들과 비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많았다.
지금도 이미 1만 명은 넘긴 수준.
“참가자분들은 각자 자신 있는 곡을 한 곡씩 불러 주시면 됩니다. 순번은 자신 있는 분부터 나와 주세요.”
보통 이럴 때는 먼저 나온 사람이 가장 유리하다.
아무래도 공연이라는 것은, 처음 노래를 부른 사람의 실력을 기준 삼아 뒤에 참가자들을 평가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
“…….”
어째서인지 반응이 없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선뜻 나서려는 사람이 없었다.
왜 그럴까.
나는 오래 지나지 않아 채팅창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미김한영친놈아!!! 너라면 네 뒤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겠냐!!!!]내가 이미 앞서서 기준치를 올려놨기 때문이었다.
‘흠.’
이건 좀 예상 못 했다.
나 때문에 참가자들이 주눅 들었다는 건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진행할 오디션은 진행해야 하는 법.
억지로라도 한 명을 골라내서 부르게 하려는 순간이었다.
“제가 먼저 할게요.”
대뜸 먼저 앞으로 걸어 나온 사람이 있었다.
바로.
“김소연 참가자님이 첫 순서를 맡아 주셨습니다.”
김소연이었다.
오늘의 참가자 중 제일 어린 그녀가 용기 있게 앞으로 나왔다. 하지만 행동과는 달리 몸에서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당장이라도 누가 툭 치면 고꾸라질 것만 같은 모습.
뭐라고 응원이라도 해 줘야 하나 싶은 순간이었다.
“저 하나만 부탁드려도 돼요?”
김소연이 대뜸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에 제가 붙으면, 제 방송에 한 번만 출연해 주세요.”
“…….”
“저도 방송하고 있는데요. 예전부터 게스트 한 분 모시고 싶었거든요. 근데 강릉까지 와서 방송하려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를 완전히 억누르지 못하고 말했다.
“한영 님같이 잘나가는 게스트 한 번만 모실 수 있으면 진짜 행복할 것 같아요. 제 꿈이에요.”
방송과 현장을 합쳐 1만을 넘기는 군중 앞에서 제안을 던졌다.
어찌 보면 영악하게 느껴지는 행동.
하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달랐다.
[이걸 설계한다고?]그들에게는 이런 이벤트 자체가 즐거운 일이었다.
[아 ㅋㅋ] [시작부터 가불기 걸고 들어가네?] [이거 패배 플래그 세운 거 아닌?] [ㄹㅇㅋㅋ 꼭 저렇게 말하고 나면 탈락한 다음 눈물 흘리면서 아쉬워하는 장면으로 연결되잖아 ㅋㅋㅋㅋ] [그거 심사위원이 특별히 봐준다면서 와일드카드로 합격시켜주고?] [ㄲㅓ억 소설 한 편 다 봤네] [방송잘알 ㅇㅈ]딱 몇 초였다.
하지만 김소연은 그 몇 초 만에 화제의 방향성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
‘역시 감각이 있다니까.’
떨어지더라도 화제가 되고, 붙더라도 화제가 되겠지.
‘애초에 자기가 방송을 하고 있다는 걸 알려 버렸다는 데서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을 테고.’
물론, 나를 소재 삼은 건 괘씸한 일이다.
나를 자기 방송에 일일 게스트로 섭외하겠다니.
어지간한 지상파 방송국에서 돈을 싸매고 와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나쁘지 않네.’
꽤 재밌을 듯했다.
방송국에서 돈을 받고 출연하는 건 그리 즐거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지방 소도시 미튜버의 방송에 출연하는 건 생각 외로 즐거운 일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기꺼이 제공할 수 있었다.
“저 몸값 비싼데요.”
김소연이라는 미튜버가 조금이라도 더 시청자들에게서 호응을 끌어낼 기회를.
이번에는 어떤 대답을 할 테냐.
반은 농담으로, 반은 진심으로 던진 장난에 그녀는 찰나의 고민조차 하지 않고 악동 같은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괜찮아요. 제가 더 비싸거든요.”
“풋.”
대중 사이에서 짧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정도면 간은 충분히 봤다.
“그렇다고 하시니까 어쩔 수 없겠네요. 붙으면 나갈게요. 붙으면.”
“네!”
김소연은 그것만으로도 족하다는 듯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마이크를 잡고는 말했다.
“29164번 눌러 주세요.”
“노래방 번호를 아예 외워 왔네.”
“국룰이거든요.”
잠시 뒤.
그녀의 노래가 시작되었을 때.
‘믿는 구석이 있었네.’
나는 그녀가 괜히 당당하게 나왔던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 * *
어느 인터넷 게시판.
[너네 김한영 이번 방송 봤냐?]그곳에서는 김한영의 최근 방송을 두고 열띤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방송했나?] [라이브만 하고 영상은 안 올렸음] [아 ㅡㅡ 또 아이플러스인가 거기 계약 때문 아님?] [ㄴㄴ 비공식 방송이라 그냥 방송분량 자체를 지워버림] [ㄲㅂ 그럼 못 보나?] [미튜브에 검색해 보면 남들이 업로드해 둔 거 금방 나옴 ㅋㅋㅋ] [근데 그게 왜?] [왜기는]한 시청자가 웃으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졸라 잘 불러서 그렇지]그 말대로였다.
이번 김한영 방송에 깜짝 출연한 게스트, 김소연의 노래 실력이 걸출했다.
어디에나 재능충은 있다고 하였던가.
노래뿐만 아니라 대중의 호감을 이끄는 데 타고난 재능을 갖춘 부류도 있었다.
김소연이야말로 그런 부류였다.
[진짜 방송 알차게도 했네 ㅋㅋㅋ] [장칼국수 리뷰 영상만 20개 되는 거 실화냐?] [무슨 입맛이 이렇게 구수함?]앞서 김한영이 그러했듯.
충분한 자질을 갖춘 사람이 뜨기에는 아주 작은 계기 하나로도 충분했다.
[강원도 노래자랑 대회 1위 했네] [거기서는 트로트 불렀음] [ㅋㅋㅋㅋㅋㅋ] [아니 웅변대회는 또 뭐냐] [목소리 졸라 우렁차네 ㅋㅋㅋ 화통 삶아 먹었나 ㅋㅋㅋㅋ 무슨 북한에서 왔음?] [ㄹㅇ 대홍단감자 잘 부를 것 같다고 ㅋㅋㅋㅋㅋㅋㅋ]불과 하루 만에 구독자 수가 7천에서 1.2만 명으로 증가했다.
객관적으로 얻어 간 게 많았다.
하지만 그녀만 얻어 간 건 아니고, 어찌 보면 김한영이 얻어 간 게 더 많았다고 볼 수도 있었다.
사실, 이번 한영 아카데미는 시작하기 전부터 한 가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었다.
바로.
[그나마 이번 참가자 중 제일 기억에 남는다]참가자 풀이 약하다는 것이었다.
기존 합격자들의 실력이 일정 수준 이상 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노래 실력을 갖췄을지언정, 화제성에서는 한계를 보였다.
음악은 복합 예술이다.
아티스트가 뜨기 위해서는 화제성도 함께 갖출 필요성이 있었다.
한영 아카데미가 여기에서 결함을 갖춘 건 당연한 일이었다.
지상파 오디션 방송을 보아라.
한국 땅으로는 모자라, 해외에서까지 오디션 참가자를 빨아 오면서도 화제성이 모자라 시즌 하나를 말아먹을 때가 태반이다.
실력이야 있다 쳐도, 화제가 안 되는 게 진짜 문제였다.
김한영의 한영 아카데미도 같은 전철을 밟을 뻔했다.
[김소연 쟤 좀 독특하네]와일드카드로 운 좋게 기사회생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물론, 싹이 트기 위해서는 토양이 따라야 하는 법.
운이 제대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환경과 노력 또한 필요하다.
즉, 김한영이 충분히 인파를 끌어모아 분위기를 만들어 둔 덕에 김소연의 도발이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런 그녀가 추합 오디션 4명 중에서 뽑히는 건 당연한 일이기도 하였다.
[소연단 모여라] [그르까~~?]대중의 반응이 그녀의 몸값을 증명했으니.
‘김한영,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었군.’
노심초사하던 강릉시장도 의도치 않게 한숨을 놓았다.
그가 김소연을 밀었던 이유.
그건 바로.
“소연 님 드디어 구독자 1만 찢었다…….”
모략도 혈연도 뭣도 아닌 순수한 팬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오디션이 있고 다음 날.
나는 어제까지 있었던 일에 대해 최종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일정이 급한데, 어떻게 잘 풀렸다.’
결과적으로 오디션을 열기를 잘했다.
과정은 다사다난했지만, 결과가 풀리면 다 잘 풀린 것과 다르지 않다.
‘시장님 권유를 받아들이기를 잘했어.’
김소연의 합류가 호재가 됐다.
아예 거절하거나, 아예 받아들였다면 이런 결과는 없었겠지.
하지만 이제 다음 일을 준비해야 할 시간.
‘어떻게 해야 방송이 더 뜬다.’
기존 합격자들과 함께 방송을 진행해야 할 순간이 왔다.
오는 대로 받아먹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나는 찾아다가 떠먹이는 쪽이 더 취향이다.
그렇기에 오늘의 방송부터 조금 더 특별하게 진행해 볼 생각이었다.
하여.
“한영 아카데미에 참가한 걸 환영합니다.”
나는 게스트하우스 마당에 일렬로 들어선 참가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부터 다음 주까지, 여러분은 저 김한영과 함께 자고 먹고 쉬며 최후의 1인이 남을 때까지 승부를 겨룰 겁니다.”
김소연을 포함해 앞서 방송을 통해 실력을 검증한 참가자 열둘.
긴장한 참가자들의 이마 위로 적막이 흘렀다.
나는 그들을 향해, [한영 아카데미] 첫 방송의 끝마침이 될 대사를 외쳤다.
“지금부터 24시간 동안, 여러분은 각자 자유롭게 제가 만들어 드리는 곡 하나를 외우겠습니다.”
“…….”
“쉬어도 좋고, 놀아도 됩니다. 결과물만 좋으면 됩니다.”
내 말에 언뜻 참가자들의 표정에 황당하다는 기색이 흘렀다.
그중 한 명이 손을 들어 올렸다.
단정한 외모를 한 여성 참가자였다.
“말하세요.”
“저기, 저분은 미성년자 아닌가요?”
그의 손끝이 김소연에게 향해져 있었다.
“저희야 성인이니까 그렇다 쳐도, 미성년자는 24시간을 못 채우잖아요.”
“맞아요.”
그녀의 말에 남자 사람 한 명이 거들었다.
“아무래도 이건 조금 문제가 있지 않나 싶은데요.”
그렇다.
법적으로 미성년자에게는 이런 노동을 못 시키게끔 되어 있었다.
물론, 내가 그걸 몰라서 이걸 지시했던 건 아니다.
“괜찮습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아직 미성년자인 소연 참가자를 제외한 나머지 분들만 무수면 24시간 연습을 하게 될 겁니다.”
“…….”
“소연 참가자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지정한 아동 청소년 보호 지침에 따라 휴식을 취하며 진행할 예정입니다.”
“잠시만요. 그러면요.”
이번에는 또 다른 반발이 나왔다.
“소연 씨만 너무 유리한 거 아닌가요?”
당연하지만, 이것 또한 예상한 그대로였다.
쉬는 시간이 있으니까, 더 연습 시간을 많이 주지 않겠냐는 말.
저렇게 생각할 수 있겠지.
나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죠. 소연 씨는 12시간 무휴식 연습을 하게 될 겁니다.”
“그럼 더 유리…….”
“그 대신.”
나는 불만이 유독 많은 저 사람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연습 강도는 여러분의 두 배입니다.”
이제 김한영의 연습 방송을 보지 않은 사람은 참가자와 시청자 중 한 명도 없다고 봐도 좋았다.
따라서.
내 말에는 설득력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제가 옆에서 책임지고, 딱 두 배만 빡세게 진행하겠습니다. 보증하겠습니다.”
무척이나 당황한 분위기가 이어지기에, 나는 김소연을 안심시키기 위해 한마디를 덧붙였다.
“소연 씨, 걱정 마세요.”
“……네?”
“싱어송라이터 김한영 방송은 아동 청소년 보호 지침을 준수합니다.”
“…….”
“젊을 때는 회복이 빨라요.”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