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81
181화
약 30분 뒤.
우리는 계획을 세우고 참가자들이 머무는 별채로 향했다.
음악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그보다는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주류였다.
결국, 24시간을 연습 시간으로 꽉 채우지 못하고 놀자판이 되어 버린 것.
‘역시 이렇게 되네.’
음악 하는 사람들이다.
나름대로 노는 데는 관심 좀 있다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합숙을 시켜 놓았으니, 면학 분위기가 제대로 유지될 리가 만무했다.
그렇다고 내가 옆에 24시간 붙어 모든 사람을 관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건 서바이벌 오디션이니까.
‘느슨해진 참가자들에게 긴장감을 줄 때가 왔군.’
지금부터 다잡는다.
나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고희범, 성민아와 함께 방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선 내 눈에 단박에 들어온 건 뭐라고 해야 할까.
‘MT 왔나?’
화기애애하다 못해 늘어진 광경이었다.
술만 안 마셨지, 술판이다.
그들이 수학여행 중 술병 깠다가 들킨 고등학생처럼 내 등장에 일제히 움찔 놀라더니,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이어지던 와중이었다.
남자 한 명이 가까스로 말했다.
“흠흠, 한영 씨 오셨어요?”
안병선이었다.
나는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재밌는 이야기라도 하고 계셨나 보네요.”
“하하, 잠깐 쉴 겸 썰 좀 풀고 있었습니다. 연습만 하면 또 집중력이 안 생기고 그러잖아요?”
저렇게 말하면서도 내심 부끄러운지 시선이 흔들린다. 딱히 자랑스러울 일을 한 건 아니라는 인식 정도는 가진 모양.
어쩐지 조마조마한 분위기가 흐르기를 잠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죠. 연습만 너무 하기보다는 가끔은 쉬어 줘야죠.”
“예?”
“선택과 집중이라고 하잖아요. 할 때 하고 쉴 때 쉬는 게 요령 아닐까요.”
“하하…… 그렇죠?”
내 말에 그가 떨떠름한 듯 동의했다.
평상시 방송에서 연습을 강조하는 내가 할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한참이나 내 눈치를 살피던 다른 참가자들도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와중이었다.
“그런데 쉬는 것도 그냥 쉬면 재미없죠.”
나는 아예 자리에 눌러앉으며 말했다.
“이럴 게 아니라. 게임이라도 하면서 쉬어 볼까요?”
“게임이라면 어떤?”
한 사람이 손을 들며 물었다.
무리에서 조금 떨어져 있던 사람인데, 그녀의 품에는 기타가 안겨 있었다.
아무래도 희미하게나마 들려오던 음악 소리의 정체가 이 사람이었나 보다.
‘이름이 정호영이라고 했지.’
기억해 둬야겠다.
나는 속으로 그녀에게 가산점을 주며 말했다.
“야식 크래시…… 는 조금 표절 같으니까 말고, 야식 버스터 어떨까요?”
“야식?”
“출출할 시간이잖아요. 뭐라도 먹으면서 하는데, 음악인답게 야식도 조금 더 특별하게 먹어 보는 거죠.”
“오, 재밌겠다. 저도 게임 좋아하는데.”
안병선이 끼어들었다.
“제가 또 대학생 때는 술 게임으로 과에서 한 끗발 날렸거든요?”
대단하다.
이 남자, 조금이라도 말을 꺼낼 틈이 있다면 비집고 들어온다.
튀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 건가.
읽기 쉬운 성격에 나는 작게나마 감탄하며 말했다.
“규칙을 설명할게요.”
* * *
같은 시각.
서울의 어느 방송국 앞.
늦은 저녁 촬영을 마친 한 미남자가 분장조차 덜 지운 채로 밴에 올라타며 말했다.
“바로 출발해 주세요.”
임선우였다.
데뷔하자마자 YTG의 황태자라는 타이틀로 관심을 독차지하더니, 그에 걸맞은 실력을 보이며 단연 초신성으로 떠오른 그다.
근래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는 그가 거듭 말했다.
“얼른요. 시간 없어요.”
지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였다.
호흡조차 덜 가라앉힌 모습이 걱정스러웠던 걸까. 그의 매니저, 신 팀장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선우야, 그래도 조금이라도 쉬었다 가는 게 낫지 않겠어? 너 요즘 너무 무리하는데.”
“아니요.”
임선우는 고개를 젓더니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거기 가는 게 저한테는 쉬는 거예요.”
“그래도 잠깐.”
“괜찮아요. 아시잖아요.”
“……그래. 응, 출발하자.”
목소리를 듣자 더 설득해 봐야 안 될 거라는 걸 느낀 걸까.
신 팀장은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골치 아프네. 누가 임대경 아들 아니랄까 봐, 고집이 딱 자기 아빠를 닮았어.’
신인한테 반박 한마디를 못 하겠다.
애초에 신 팀장, 그가 신인의 로드 매니저를 할 짬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임선우를 직접 밀착 관리하는 건, 임대경이 YTG 내에서도 그를 특별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단 한 명의 연예인을 위한 매니저인 셈이었다.
‘그게 독이 든 감자, 아니, 뜨거운 성배라서 그렇지. 응? 이거 맞나?’
김한영 방송에 출연하겠다고 했지.
비록 임선우가 스스로 결정한 일이라고는 하나, 덜 말렸다며 나중에 임대경이 뭐라고 문책할 게 두렵다.
신 팀장은 운전대를 잡고 심란한 마음으로 길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저기, 선우야, 내가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네.”
“그쪽을 왜 그렇게 좋아해?”
“그쪽이요?”
“김한영네 말이야.”
신 팀장은 기왕 말이 나온 김에 평소 궁금했던 걸 묻기로 했다.
“솔직히 말해서 거기 출연하는 게 너한테 크게 도움이 안 되잖아.”
“그래요?”
“같은 시간이면 어떻게 쓰는지가 중요하지. 연예인한테는 시간이 금이거든. 일반적인 사람들이 몇십 년 동안 살면서 점점 우상향을 누릴 때, 너 같은 사람들은 몇 년 동안 피크를 찍을 때가 많다 보니까.”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지 않겠냐는 말이었다.
연예인이 잘나갈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제아무리 히트곡을 내놓은 뮤지션이라고 한들, 무한한 우상향을 그릴 수는 없다.
시간이 지나면 내리막길을 걷게 되는 법이니까. 간혹 예외도 있지만, 역사에 거론된 그 어떤 전설들도 그러했다.
신 팀장이 에둘러 김한영에게 쓰는 시간이 낭비라고 지적한 순간이었다.
“그래서 하는 말이에요.”
임선우는 미동조차 하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 얼마 없는 시간이잖아요. 저쪽에 쓰는 게 저한테는 더 좋아요.”
“…….”
“그리고요.”
다음 한마디는 어딘가 상쾌했다.
“친구 만나는 데 시간이 효율적이고 그런 걸 따지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렇다.
임선우는 김한영 방송 촬영을 두고, 일이 아닌 친구를 만나러 가는 거라고 여기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듣는다면 그를 기특하게 여길 수도 있는 말.
하지만 정작 그 대답을 들은 장본인인 신 팀장은 속이 타올라서 죽을 것만 같았다.
‘당연히 친구 만나는 데도 효율성을 신경 써야지!’
철이 없다.
우정 놀이도 적당히 해야지, 너무 꿈속에서 사는 거 아닌가.
회사에서 자기 위치를 모르는 건가.
임대경이 김한영을 얼마나 경계하는지, 짐작은 하고 있나.
‘지금 자기 몸값을 만들려고 회사에서 얼마나 많은 돈을 쏟아부었는지 모르나. 진짜 자기 노력만으로 이룬 입지라고 생각하나?’
내심 답답하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바깥으로 표출할 수도 없는 게 그의 입지였다.
임선우의 비위에 거슬리거든, 그는 신인의 한마디로도 업계에서 매장될 수도 있는 처지였으니까.
그렇게 되거든 그의 일화는 두고두고 교보재로 쓰이겠지.
‘군대 후임으로 장군의 아들이 들어오면 이런 기분일까.’
물론, 임선우는 권위 의식이 없다 못해 그런 걸 혐오하는 사람이니 상관없는 일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또요.”
임선우가 말을 덧붙였다.
“김한영 방송에 나가는 게 어지간한 지상파 방송 출연보다 나을 거라고 믿어요.”
“그…… 아니다. 그래, 선우야, 나도 네 선택을 존중할게. 딱히 네가 못 미더워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라는 거 알지?”
“팀장님한테는 늘 고마워하고 있어요.”
“하하, 그래, 알아줘서 고맙다.”
신 팀장은 울며 겨자 먹기로, 호랑이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미는 심정으로 어두운 대관령 고속도로를 달렸다.
마침 대관령은 호랑이로 유명한 동네이기도 했다.
“선우야, 잠깐이라도 눈 붙이자. 피부 상하겠다.”
“아뇨.”
임선우는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제가 잠들면 목도 잠들어서 안 돼요.”
“…….”
저놈의 프로 의식.
* * *
“그러니까 미션 내용이.”
정호영이 눈을 깜빡이더니 말했다.
“한영 씨를 쓰러뜨리는 거…… 맞나요?”
“그렇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참가자 중에서 한 분을 선정해, 그분과 곡 1절로 단판 승부를 보겠습니다. 제가 지거든 야식으로 이 근방의 참치를 주문하겠습니다. 인당 10만 원대가 나오는 고오급 참치입니다. 사장님이 직접 출장 와서 썰어 주신다고 하네요.”
요는 이러했다.
저쪽에서 한 명을 골라서, 그 사람이 나를 이기면 된다.
음악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냥 하면 섭섭하지.
“장르부터 곡까지 선곡은 완전히 넘기겠습니다. 제가 그걸 10분 동안 연습해서 겨루는 거 어떨까요?”
철저하게 저쪽에 맞춘 조건으로 내놓았다.
저쪽 입장에서는 이겨도 좋고, 지더라도 손해는 없으리라.
어찌 됐든 방송 분량은 타 가는 거니까.
나를 이긴다면 이겼다는 타이틀을 가져갈 수 있다.
욕심이 생길 수밖에 없겠지.
실제로 참가자들의 눈에는 이미 욕심이 가득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바로 손을 들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이유라면 뻔했다.
‘이미 앞서서 떠들어 둔 사람이 있으니까.’
안병선이었다.
실력이라면 나를 바를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던 만큼, 그가 나서기를 내심 기대하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 나서면 다음 기회를 보면 그만이고.’
나 또한 어떻게 되든 큰 손해는 없다.
그렇게 간을 보는 와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제가 할게요.”
가장 먼저 손을 든 사람은.
‘월척이네.’
다름 아닌 안병선이었다.
당사자가 바로 나와 주셨다.
기특하게 느껴질 지경인데, 그는 주위 시선을 의식하듯 헛기침을 뱉더니 말했다.
“심사 기준은요?”
“지금 이 게스트하우스에 있는 스무 명이 투표로 뽑을 겁니다.”
“흠, 선곡은 이쪽에서 맘대로 해도 되는 거 맞죠?”
“네.”
나는 어딘지 모를 악동 같은 기분에 잡히며 입을 열었다.
“뭐든 큰 상관이 없습니다. 뭣하면 메탈이나 유로비트, 올드팝도 좋아요. 레게도 좋겠네요.”
무엇이 됐든 상관없다.
내게 익숙하지 못한 장르라면, 그럴수록 수준이 좀 떨어지더라도 시청자들이 고려해 주겠지.
적어도 이 방송에 있어서 장르라는 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안병선은 심히 깊게 고민하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러면요.”
다음 순간.
그의 입에서 나온 장르는, 나로서는 실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혹시 트로트도 괜찮아요?”
“아, 트로트 좋죠.”
트로트.
요즘 들어서는 썩 옛날 음악 취급을 받는 장르였다.
최근 TV를 통해서 재조명을 받기는 했지만, 여전히 젊은 나이대에는 거리감이 있는 장르.
안병선이 그것을 자신만만하게 고른 것이었다.
‘왜 자기 영역에 그렇게까지 자부심을 드러내나 했더니.’
트로트라면 그럴 수 있지.
안 해 본 사람은 해 본 사람에게 무조건 진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장르니까.
발성부터 표현법까지 천지 차이다.
그 사소한 뉘앙스는 해 본 사람만이 알기 때문.
하지만
나 또한 트로트라는 음악을 조금 아는 건 마찬가지였다.
‘트로트라, 되게 오래간만이네.’
왜냐, 내가 듣고 자란 음악이기 때문이었다.
“곡만 정해서 말해 주세요. 말씀드린 대로 딱 10분 연습하고 부르겠습니다.”
“그럼.”
하지만 다음에 나온 말도 가관인 건 마찬가지였다.
“김두영이 부른 ‘쉽게 씌어진 시’ 어때요?”
“……큽.”
“왜요?”
“아뇨, 코가 간지러워서.”
이번에는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김두영, 내가 잘 아는 사람이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와 서로 잘 아는 사이였다.
‘윤태 생각나네. 김두영 옹한테 트로트는 음악 취급 안 한다고 했다가 대가리 제대로 깨졌었는데.’
김두영, 한국 트로트의 대부이자 레전드.
그는 그리 많지 않은 내 음악적 스승 중 한 명이었다.
먼 옛날 일이지만 말이다.
자기 무덤을 제 손으로 판 줄도 모르는 걸까.
안병선은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이게 되게 옛날 노랜데, 한영 씨가 이걸 아실는지 모르겠네.”
“알기는 알아요.”
“아, 다행이다. 그럼 이걸로 하시죠? 혹시 정 못하시겠으면 다른 곡으로 해도 전 상관없…….”
“아뇨, 괜찮아요.”
나는 더 대화를 이어 나가는 대신, 기타를 손에 쥐며 말했다.
“제가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어려워야 게임 아니겠어요?”
물론, 그 게임이 내가 어려운 게임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