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83
183화
트로트란 과연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답하자면, 가장 먼저 짚어 두어야 할 것이 있었다.
‘왜 구분해야 하는가.’
트로트라는 건 진화의 산물이었다.
어쩌면 트로트를 하나의 틀 안에 가둬 둔다는 게 오만한 발상일지도 몰랐다.
트로트가 무엇인가.
1930년대부터 엔카, 락, 블루스, 포크까지 온갖 장르와 합쳐지고 나뉘며 끝내 현대까지 명맥을 유지했다.
그사이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고, 번데기가 나비로 우화하듯 한없이 많은 변화를 겪어 왔던 게 트로트였다.
‘굳이 음악적인 특징을 꼽자면, 펜타토닉 스케일과 2박자를 잘 활용하면 트로트라고 할 수도 있겠지.’
덤으로 목소리에 떨림이 많으면 트로트라고 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꼭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트로트는 트로트면 트로트다.
굳이 틀에 가둘 필요는 없다.
당장, 일반 대중이 생각하는 트로트와 실제 트로트의 느낌은 완전히 다를 때가 잦지 않나.
이 곡 또한 그러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이게 무슨 트로트인가 했지.’
쉽게 씌어진 시.
김두영 옹이 기존 트로트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 위해 만들어 냈던 수많은 곡 중 하나였다.
특징이라면 포크와의 결합이었다.
‘흔히 트로트라고 하면 포크와의 대립 구도에서 패배하고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고들 하지만, 김두영 선배님의 생각은 조금 남다르셨지.’
그의 생각은 이러했다.
[한석아, 포크라는 것도 결국에는 하나의 장르일 뿐이다.]트로트와 합칠 수 있는 장르.
김두영 옹은 트로트 특유의 뽕끼를 적정선까지 억누르고, 박자와 음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포크의 특징을 녹여 내고자 했다.
그렇게 탄생한 게 이 노래.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쉽게 씌어진 시.
양쪽 장르의 애청자에게 동시에 사랑받을 수 있는 곡이었다.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정말 오래간만에 부르는 노래다.
그럼에도 부르면 부를수록 이 노래에 얼마나 많은 안배가 마련되었나 느껴졌다.
예를 들어 이 부분.
“대학 노트를 옆구리에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트로트의 경쾌하면서도 간결한 박자를 살리되, 포크의 굵은 혼을 담았다.
포크의 혼은 곧 민중의 혼이다.
쉽게 씌어진 시에는 저자, 윤동주의 혼이 담겼다.
혼란한 세상, 그 시대를 살아가야 했던 한 개인의 암담함 심정을 담담하게 녹여 냈다.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포크에는 정의가 없다.
민요는 곧 포크이며, 민중가요도 곧 포크다.
그렇기에 다양한 장르와 어우러져 뿌리가 될 수 있었다.
트로트는 발전을 추구한다.
이러한 두 장르가 근사하리만치 합쳐지는 건 필연이라고 봐도 무방한 일이었다.
흡사 민트와 초코가 처음부터 한 몸으로 태어난 것처럼 말이다.
“아아.”
손으로 포크를 연주한다.
입은 조금 더 트로트에 집중한다.
이 밸런스에 집중하며 노래에 집중하고 있으려니 문득 우스운 사실이 떠올랐다.
‘김두영 선배님은 이 노래가 두 장르의 교두보가 되길 바라셨는데, 대중들은 결국 이 곡을 트로트의 완성형이라고 기억해 버렸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노래라는 건 만든 당사자의 기대와 대중의 평가가 다를 때가 잦았다.
대충 만든 곡이 사랑을 받는가 하면, 혼을 담아서 만든 곡이 그저 앨범의 자투리 트랙 하나로 치부될 때도 잦았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이런 식으로라도 대중의 사랑을 받은 게 다행일지도 몰랐다.
[가수라는 게 특별한 게 아니다. 네 노래를 들어 줄 사람이 있으면 그게 가수다.]김두영 옹의 말이 파노라마처럼 계속해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네가 노래를 쉽게 부른다면 그게 진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모든 노래는 어렵게 불러야 한다. 감사한 마음으로.]모처럼 가르침을 되새기게 되었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노래가 1절의 어느 모서리에 다다랐을 무렵, 게스트하우스에는 작은 적막이 거북이처럼 조용하게 자리 잡았다.
실제로 조용한 걸까.
아니면 내가 노래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놓쳐 버린 걸까.
어느 쪽이든 중요하지 않다.
나는 이 노래를 트로트라고 믿으며, 계속해서 불러 나가기를 결심했으니.
디링――.
기타의 까슬까슬한 현이 처연한 소리를 울리며 게스트하우스의 적막을 물들였다.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평소보다 조금 더 깊은 흔들림을 담은 목소리가 그 위를 타고 놀았다.
* * *
그 노래를 듣던 정호영은 생각했다.
‘미쳤어.’
김한영, 이 사람, 미쳤다.
대뜸 견식조차 없어 보이는 트로트에 도전하겠다기에 쓸데없이 자신만만하다고 생각했다.
아직 어리다.
어리기에 호기에 잡혀 제대로 걸려 넘어졌다고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오산이었다.
‘……이게 트로트라고?’
김한영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그만의 트로트를 살려내는 데 성공했다.
이게 트로트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훨씬 듣기 편하고 가벼워.’
보통 생각하는 그 굵은 트로트라기에는 마시기 쉬운 술처럼 편하게 넘어갔다.
하지만 이건 트로트였다.
머릿속으로 이해하기 전에, 그녀의 가슴이 그렇다고 말했다.
“하아.”
감정이 옮았다.
자기도 모르게 숨을 멈춰, 의식적으로 숨을 쉬어 줘야 할 지경으로.
노래를 부르는 김한영의 암담함이, 수치스러움이 그녀에게도 절절하게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자기만의 트로트를 만들어 냈구나.’
아니다.
김한영은 수십 년 전 원류를 재현한 것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그게 이 시대에는 또 다른 신선함으로 비췄을 뿐.
‘아쉽다.’
그런 생각까지 이르니 아쉬움이 들었다.
‘여기서 듣기 아쉽다.’
누군가의 라이브를 듣고 이렇게 생각한 건 처음이었다.
‘더 큰 무대, 제대로 된 무대에서 들어야 할 노래다.’
인방 무대가 정식 무대라 할 수 없냐 하면 그것도 아니지만, 정호영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 사람의 노래는 과분하구나.’
식견이 좁았던 자신에게는 과분한 노래구나. 정호연은 생각했다. 어쩐지,
‘계속 듣고 싶다.’
그렇게 생각해 버렸다.
마침내는 하나의 생각으로 귀결되었다.
이 서바이벌에서 살아남아서 김한영의 노래를 더욱 듣고 싶다는 생각만이 가득하게 되었다.
이용의 대상이 추종의 대상으로 바뀐 순간이었다.
그렇게 정호영이 감탄한 한편, 옴짝달싹 못 하고 이만 덜덜 떠는 사람이 있었다.
‘미친 재능충 같으니.’
안병선이었다.
김한영을 자기 홈그라운드로 끌어들였으니, 아무리 날고 기는 사람이라고 해도 꼼짝도 못 하리라 생각했다.
적어도 그는 김한영이 트로트를 부른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으니까.
팔다리를 잘라 놓고 승부하는 셈이라고 봤으니까.
잘못된 판단이었다.
아니, 섣부른 판단이었다.
‘더러운 세상이다. 노력하는 사람보다 재능 있는 사람이 다 해 먹는 세상.’
한평생 남몰래 추구했던 장르를 한순간에 남에게 빼앗겨 버렸다.
분한 마음에 입술까지 물고야 말았다.
안병선의 머릿속에는 허탈한 마음이 똬리를 틀었다.
지금 그의 동공에 비친 김한영은 극한의 재능충이었다.
다른 사람이 몇 년을 할애한 음악조차도 불과 십 분이면 따라잡는 재능충.
분하다.
하지만 동시에 자리 잡은 감정이 있었다.
그건 바로.
‘여기 사람들한테 별말을 다 해 놨는데. 어쩌지?’
창피함이었다.
얼마나 호언장담을 했던가.
김한영은 자본주의 음악에서 잘나갈 뿐이며, 진짜 음악으로 오거든 그리 특별하지 못할 것이라고 얼마나 확신했던가.
하지만 현실이 이러하다.
조금 전까지 흥에 취해 편하게 쏟아 냈던 말들이, 불과 이십여 분 만에 날카로운 칼날로 변해 그에게 다시 쏟아졌다.
‘……포기할까.’
그는 여기에서 더 버틸 자신이 없었다.
‘다들 속으로 나를 얼마나 병신 취급하겠어.’
속이 쓰라리다.
가슴 한켠이 공복에 커피를 10리터는 마신 것처럼 시큰거렸다.
물론, 참가자들은 김한영의 실력에 놀라느라 안병선을 탓할 생각은 차마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눈앞에서 그간 쏟아 낸 모든 시간을 부정당한 그의 머릿속에는 온전한 판단력이라고 할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ㅋㅋㅋㅋㅋㅋㅋ]반면, 채팅창은 너무나도 이성적이었다.
[진짜 김한영 미친놈 맞다고 본다] [트로트 맞음?] [내가 아는 그것보다 훨씬 듣기 편한데] [ㅇㅇ 어딘가 세련됐음] [ㅁㄹㅋㅋ 음악이 뭐든 듣기 좋으면 장땡이지 ㅋㅋㅋ] [문제는 10분 연습하고 ㅇㅈㄹ이라는 점이다] [킹 받아 돌아가시겠네? 어? 화가 나네?] [기만영 어쩐지 요즘 좀 잠잠하다 했다] [처음부터 짜고 친 거 아님? 10분만에 이렇게 한다는 게 말이나 돼?] [ㄹㅇ 이 샛기 조작방송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한다니까] [김한영은 조속히 해명하라!] [아니 조작무새들아, 무대마다 조작이면 그게 실력 아니냐고;; 방송 한두 번 보나] [↑ 뉴비 어서오고] [킁킁 신선한 뉴비 냄새] [아 ㅋㅋㅋㅋ 김한영은 아무튼 조작 맞다고 ㅋㅋㅋ 얼른 ‘노래로’ 해명하라고 ㅋㅋㅋㅋ]처음부터 사람에게 기대를 해야 실망도 하는 것이다.
반대로.
걱정이 없어서 안심도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 저럴 줄 알았다.’
‘저러니까 의선이가 자기 재능 없다고 폭발하고 그러지.’
‘그나마 내 편이라 다행이야.’
‘트로트도 생각보다 들을 만하네.’
팅 식구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만 가득했다.
한편, 한여름은 김한영이 곡에서 작은 위화감을 눈치채는 데 성공했다.
‘……1절은 옛날 옛적에 끝나지 않았나?’
이거 분명 1절만 부르기로 했던 것 같은데.
왜 아무도 뭐라고 안 하지.
이거 나만 눈치챈 건가.
난데없는 깨달음에 이 반칙을 지적할까 말까 고민하기를 잠시.
‘응, 입 닫고 있으면 평타는 친다고 했지.’
후환을 넘기기 위해 가까스로 융통성을 발휘한 한여름이었다.
* * *
“솔직히 트로트는 너무 오래간만이라 자신이 없었는데, 제가 느낌을 제대로 살렸을지 모르겠네요.”
“…….”
곡을 마칠 무렵, 이번 승부의 결과는 따로 확인할 것도 없었다.
이번 승부는 오로지 현장 인원들만으로 심사를 집행했는데.
“약 스무 분 중 한 분 빼고는 전부 제 편을 들어 주셨네요.”
나와 안병선은 당사자니까 제외하고, 한 명을 제외하고는 전부 내게 손을 들어 준 것이었다.
그렇다면 내게 반대한 나머지 한 명은 누구인가 하면.
“형?”
“음악은 취향인 거 모르냐?”
의외로 홍윤서였다.
“하여간 자기 뽑아 줘야 한다고 당연히 생각하는 저 뻔뻔함. 쯔쯔쯔.”
“카메라 돌아가고 있어요.”
“이게 네 매력이야…… 라고 할 줄 알았냐? 오늘 내가 소신 발언하고 꼭 천국 간다.”
그렇다고 하신다.
아무튼, 결과는 명확해 보였다.
“이번 야식 블래스터는 제 승리로 끝났습니다.”
“블래스터가 아니라 버스터. 야식 버스터.”
“편집자가…… 말대꾸?”
“엑.”
“아무튼, 이렇게 해서 야식 버스터는 제 승리로 끝났습니다.”
내 승리다.
그 말인즉슨, 야식 경품으로 참치를 살 이유는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경품으로 걸었을 때 이야기였다.
‘슬슬 때가 됐는데.’
위이잉.
고요한 창밖 저 멀리서 구성진 자동차 엔진음이 들려왔다.
‘왔구나.’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 커튼을 걷고 바깥을 보자, 그곳에는 이내 승합차 한 대가 멀리서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아마도 내가 미리 준비해 둔 그것일 확률이 높았다.
“어?”
“누구 더 오는 사람 있나?”
참가자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의문을 뱉었다.
이것 또한 내가 기대했던 그 리액션이기도 했다.
나는 불과 10초 뒤 진실을 알게 될 이들이 보일 반응을 작게나마 기대하면서 말했다.
“사람이 정이라는 게 있는데, 어떻게 밥 가지고 야박하게 굴어요.”
“……!”
“멀리까지 왔는데 밥이라도 잘 먹어야죠. 이건 제가 드리는 겁니다. 내기랑은 상관없이 그냥 야참으로 드시라고.”
그렇다.
그깟 경기가 잘 안 풀렸다고 쩨쩨하게 굴 수는 없지.
예로부터 한민족의 맑고 올바른 정기는 밥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1882년 임오군란부터가 밥으로 차별해서 생긴 일 아닌가.
쌀에 모래를 섞어 줬으니 말이 안 나올 수가 있나.
무엇보다도, 나도 슬슬 이미지를 관리할 때가 왔다.
‘장난만 친다는 이미지도 슬슬 벗어던져 보자.’
좀 더 좋은 이미지를 가져 보자.
기존 이미지는 굳어 버렸으니까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앞으로의 팬들에게는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가 볼 생각.
특히나 해외 팬들에게는 말이다.
‘자, 와라.’
그 첫 신호탄으로 승합차에서 내릴 참치집 사장님을 기다리는 순간이었다.
‘음?’
승합차에서 내린 사람은 내가 예상했던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부른 사람이 맞기는 한데.
참치집 사장님이 아닌 다른 사람.
한 참가자가 놀란 표정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임선우?”
그렇다.
승합차에서 내리고 모습을 드러낸 건 현재 나와 함께 가장 뜨거운 신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 뮤지션, 임선우였다.
“임선우가 야식?”
그건 아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