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9
19화
세스 로버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보컬 트레이너이자, 아예 보컬 트레이너라는 직업을 만들어 낸 사람.
그가 등장하기 전까지 보컬 트레이너라는 직종은 뭐라고 해야 할까.
이런 이미지였다.
[노래는 가수가 부르잖아.]보컬 트레이닝, 발성법을 배우려는 가수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애당초 자기 노래를 남에게 맡긴다는 것, 특히 비 업계인에게 배운다는 사실을 치욕스럽게 여기는 사람 또한 많았다.
노래를 배운다면 같은 가수에게 배운다.
이게 지배적인 인식이었다.
하지만 세스가 그 인식을 뒤바꾸었다.
[잭슨, 세스에게 전담으로 발성법을 배워.]당시 세계 최고의 팝스타이자, 인류사에 길이 남을 최고의 뮤지션인 잭슨이 세스에게 맨투맨 케어를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극적인 실력 향상을 거두었다.
업계인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대체 얼마나 뛰어나길래?] [잭슨만큼 성공한 가수라도 발성은 다른 사람에게 배운단 말인가] [그의 가창력의 비밀은?] [세스가 창안한 SR 발성법이 대체 뭐길래] [그것만 배우면 잭슨처럼 노래할 수 있다!]복싱 선수 옆에 코치가 따라붙듯, 보컬 트레이너가 가수 옆에 필수적인 존재로 부상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후로 세스는 그래미상 수상자만 백 명이 훌쩍 넘게 배출하며 세계 최고의 보컬 트레이너로 자리매김했다.
‘이게 70~80년대 일이라고 했나. 시간이 참 이상하게 맞물려 버렸네.’
내가 한창 활동했던 시기에만 해도 한국에서 보컬 트레이닝이라는 건 개념이 희박했다.
그런데 90년대부터 조명을 받더니 00년대 들어서는 아주 상식이 됐단다.
덕분에 평균적인 보컬 실력이 미친 듯이 늘었다나.
발성이라는 게 재능 있는 자의 전유물에서 노력의 영역으로 내려왔다.
이게 SR 발성법이 음악계에 끼친 영향이었다.
이에 대한 내 감상은.
‘부러워 죽겠네.’
배가 아팠다.
나도 저런 거 배웠으면 훨씬 나은 음악을 할 수 있었을 텐데.
과거에 태어나서 배움의 한계를 마주했던 게 아쉽다.
‘됐다. 죽은 자식 뭐 만질 필요 없어.’
이번에는 꼭 마스터하고 만다.
그런 다짐을 하는 사이.
“기본적으로 저희가 가르치는 발성법의 핵심은 믹스보이스입니다.”
JEM 발성 학원의 성인 취미반 트레이너가 입을 열었다.
“요즘 많이 들어보셨죠? 막 방송에서 공기 반 소리 반으로 소리를 내라고 그러잖아요. 말하듯이 노래를 부르라고 하기도 하고. 그게 다 접근방식은 다를지언정 한 가지를 말하는 겁니다. 믹스보이스. 이게 저희 SR 발성법의 핵심입니다. 여러분이 저희 학원에서 얻어가고 싶어 할 물건이죠.”
정확하게 공감하는 말이다.
나도 이걸 배우려고 여기에 왔으니까.
‘분위기 특이하네.’
작은 강의실 내로 나를 포함해 다섯 명의 사람이 들어찼다.
트레이너 한 명을 중심으로 세미나를 연 느낌.
이렇게 공개적으로 보컬을 배운단 말인가.
아주 예전 사람 대 사람으로 전수되던 발성법과는 거리가 있었다.
‘역시 기술은 널리 공개돼야 발전한다니까.’
비전 기술이 뛰어나리라는 건 환상에 가깝다.
기술은 널리 보급되고 분석되어야 발전한다.
당장 세상의 온갖 격투기들이 그러했다.
어느 집안 고유의 무술, 어느 지방의 무술, 이런 게 실전 앞에서 얼마나 힘을 발휘했던가.
결국, 종합격투기를 중심으로 다 섞어서 배우는 게 낫다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내 생각에는 발성법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SR은 가장 널리 보급되었다.
그 과정에서 가장 널리 발전했으리라는 게 내 판단.
‘자, 어디 한번 나를 가르쳐 봐라!’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두근 뛰는데 트레이너가 말을 이었다.
“저희 학원을 찾아오신 분들은 단기간에 뭔가를 얻어가고 싶은 분들이 많을 겁니다.”
정확하게 맞는 말이다.
“그래서 저희도 단기간에 실력을 향상할 수 있게끔 최적화된 커리큘럼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아, 이것 또한 맘에 드는 말이다.
“일단 한 가지를 말씀드리자면, 여러분은 이미 믹스보이스를 지금도 다루고 계십니다.”
“……!”
수강생들이 살짝 놀라는데 트레이너가 말을 이었다.
“놀라셨나요? 하지만 사실입니다. 믹스보이스는 특정한 발성법을 말하는 게 아니라, 사람의 목소리의 비율을 말하는 용어거든요. 흉성과 두성을 얼마나 믹스했는가 그런 거 말입니다. 즉, 저희는 그 어떤 사람이라도 평소 말하면서 믹스보이스를 자연스럽게 구사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가르칠 건 그 비율을 조절하는 방법이죠. 그러니, 저희는 올바른 발성이란 만드는 게 아니라 찾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찾는 거요?”
“예.”
한 학생이 의아해하자 트레이너가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좋은 소리를 낼 기본적인 근육을 갖추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 근육을 다루는 법을 찾는 겁니다.”
그럴 듯한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어떤 방식으로 그걸 가르치느냐가 중요하겠지.
그 다음 순간이었다.
“한영 씨, 여기로 와 보실래요?”
“네.”
그가 나를 불렀다.
그러더니 피아노를 쿡 찍으며 말했다.
“제 피아노 소리에 맞춰서, 뻡 소리를 내 보세요.”
“뻡이요?”
“네, 보여드릴게요. 뻡, 뻡.”
트레이너의 입에서 마치 물방울이 터지는 것만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얼핏 듣기에는 우스운 것 같기도 한 소리.
트레이너는 그 소리를 몇 번이고 내더니 말했다.
“이 뻡이라는 발음이 적당히 성대에 부담이 걸리면서도 사람이 가장 자연스럽게 낼 수 있는 소리거든요. 이걸 기점으로 성대접지, 그러니까 성대를 붙이는 감을 잡는 겁니다. 일단 한번 감을 잡고 나면.”
트레이너는 다시 한번 피아노를 치며 뻡 하는 소리를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았다.
“뻐어어어어어어아아아아아아아아아.”
입을 연 채로 그대로 목소리를 유지하며 다른 발음으로, 옥타브로 천천히 변화시켰다.
그의 목소리에 따라 키보드의 음계가 점점 올라갔다.
2옥타브 라.
2옥타브 시.
3옥타브 도.
이어서 3옥타브 솔.
그리고 그 이상까지.
‘엄청나게 올라가네. 게다가 안정적이야.’
나는 속으로 작게 감탄했다.
내가 살았던 시대의 그 발성과는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뭐라고 해야 할까.
소리의 질은 둘째치고, 훨씬 더 안정적이었다.
‘이게 믹스보이스라는 거지?’
트레이너의 목소리는 일반인이 감히 소화할 수 없을 정도의 고음역에 다다라서야 그의 목소리가 끊겼다.
하지만 그 순간에 다다랐을 때조차 그의 목소리에는 여유가 가득했다.
“보셨죠? 이렇게 하는 겁니다.”
트레이너가 웃으며 말했다.
“뻡, 이 발음으로 한번 성대의 감각을 잡은 다음. 이 감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소리를 만지는 거죠. 찰흙 놀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어떤 형태로 만들든 처음 점성을 그대로 유지하면 됩니다.”
놀랍다.
80년대에는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던 기법 아닌가.
그때는 머리로 가는 소리를 찾으라니, 소리를 코로 보내라니, 더 멀리 보내라니, 가슴으로 삼키라니. 이런 추상적인 말로 가르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역시 발전은 좋아.’
미래로 오길 잘했다.
내가 선택한 건 아니지만, 아무튼 잘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강사가 말을 이었다.
“이 감각을 잡는 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느냐에 따라서 여러분이 바라는 발성을 한 달이 아닌, 일주일 만에 터득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가장 빠른 사람은 딱 1시간만 다니고 이 학원을 나가기도 했습니다. 수강료도 당연히 환불해 드렸죠.”
“……!”
그의 입에서 폭탄 발언이 나왔다.
빠른 사람은 1시간이면 충분하다.
물론, 저건 어디까지나 극단적인 예시에 불과하리라.
정말로 그런 사람이 흔하면 학원을 유지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일 테니까.
몇 년씩 배우면서도 노래가 제대로 안 되는 사람이 널렸다는 점을 감안하거든, 그의 말에는 다분히 서비스적인 면모가 있었다.
“여러분들도 충분히 해낼 수 있습니다. 자, 그럼 한번 시작해 볼까요? 한영 씨, 뻡!입니다. 제 피아노 소리에 맞춰서 발음해 보세요.”
나는 기대감을 가슴에 품고 그의 피아노에 맞춰 소리를 냈다.
“뻡.”
그다음 순간이었다.
“…….”
“…….”
강의실에 짧은 정적이 찾아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른 수강생들은 원래 말이 없었으니 트레이너의 말만 사라졌다고 말함이 옳았다.
그는 아무런 말도 없이 눈만 깜빡거리기를 잠시.
내게 말했다.
“다시 한번 해 봅시다. 뻡.”
“뻡.”
“……이번에는 더 높은 소리로. 뻡.”
“뻡.”
“…….”
그는 정말로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혹시 어디서 좀 배우고 오셨나요?”
네.
조금 배웠죠.
30년 전에요.
나는 그 모든 생각을 갈무리해서 말했다.
“오늘이 처음이에요.”
* * *
JEM 발성 학원의 원장.
장영민.
그는 일찍이 자신이 발성에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분명 같은 시기에 음악을 시작한 지인들과 비교해서도, 그는 다섯 걸음, 아니, 열 걸음씩 뒤쳐저 있을 때가 잦았다.
너무나도 화가 났다.
분통이 터졌다.
온갖 잘나간다는 가수, 보컬 트레이너를 만나 봤지만 그의 갈증을 풀어 줄 사람은 없었다.
이 갈증을 어떻게든 음악으로 승화시켜 보고자 연습실에 박혀 살았지만, 그를 반겨주는 건 성대결절뿐이었다.
‘관둘까.’
그는 벽을 마주했다.
절대적인 재능의 차이라는 벽.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하기에는 아직 안 해 본 방법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SR 발성법의 창시자 세스를 직접 만나는 일이었다.
‘어차피 가만히 있어 봤자 더 나아질 일은 없다. 해 보고, 안 되면 차라리 죽자.’
장영민은 그날로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세스를 만나고 불과 반년.
그는 극적으로 변화했다.
못 내던 소리를 내게 되었으며, 더욱이 그 소리를 그의 입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평생의 난제를 풀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그에게 세스는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바라는 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이어서 그는 말했다.
[세상에는 영민 씨와 같은 곤란을 겪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니 그들을 위해 힘을 써 주십시오.]장영민은 정식으로 세스의 제자가 되었다.
SR 발성법 교육 자격증의 최고 단계인 레벨5를 달성했으며, 현업에서 몇 년간의 경험을 쌓은 뒤 한국으로 귀국했다.
그리고 SR 발성법을 기반으로 학원을 세웠고.
“…….”
장사가 안 되었다.
그는 한 가지 사실을 몰랐다.
기술은 이성의 영역이지만, 마케팅은 감성의 영역이라는 사실을.
[비포 애프터 1달 변화 영상 공개!]거의 다 사기였다.
대부분 실용음악과 전공생을 데려와다가 푼돈을 쥐어 주고 촬영했다.
[TOP 가수 임재진에게 직접 시사 받은 보컬 트레이너가 가르칩니다.]이것 또한 사기였다.
말 한 번 섞어 보고는 시사 받았다고 말하는 강사가 10 중 9이었다.
아무리 장영민 그가 세스에게 직접 교육을 받았다고는 하나, 시장에는 그보다도 화려한 미사여구로 자기 자신을 치장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20년의 시간, 10년의 연구, 그리고 변화]앨범은커녕 자기 노래 하나 못 들려주는 사람이 자기 경력 20년이라고 주장하는 건 우습지도 않았다.
결국, 장영민은 인정했다.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실력만으로는 부족하다.
뭐든, 뭐든 좋으니까 사람들의 이목을 한 번에 잡을 확실한 결과물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기에는 조금 찔린다.
보컬 트레이너로서 그가 가진 최후의 양심이 거짓말을 못 하게 만들었다.
그가 누구 제자고, 어떤 변화를 경험했고 그게 진실이라고 말한들 과장 광고 사이에서는 처참하게 묻힐 뿐.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다.
‘드디어 복덩어리가 굴러 들어왔다.’
저기 강의실에서 시큰둥한 표정으로 소리를 내고 있는 사람을 보라.
불과 20살 학생이다.
자기가 미튜버라고 했던가.
음악을 시작한 것도 몇 달 안 되었다고 하는데, 미튜브에 올라온 영상을 보니 실제로 발성이 일반인과 다를 게 없었다.
‘저 사람이다. 저 사람을 우리 학원의 홍보 모델로 만드는 거야.’
장영민의 눈빛이 번뜩였다.
* * *
‘아, 역시 성공한 발성법은 뭐가 다르긴 다르네.’
재밌다.
소리를 만드는 게 아니라 찾는 거라고 했던가.
그 말은 실로 맞았다.
뻡인지 뭔지 저 기묘한 소리를 몇 번 내고 나니까 확실히 깨달았다.
‘내가 전생에 소리를 좀 잘못 내고 있었구나.’
처음부터 감각은 있었다.
하지만 지금 몸이 워낙 달라졌다 보니 감각이 틀어져 제대로 된 소리를 못 내고 있었다.
이론 없이 본능적인 감으로 소리를 내니 더더욱 그런 부분이 있었는데, 트레이너 앞에서 소리 몇 번 내니까 자동으로 최적화되면서 빠르게 길이 트였다.
“저기, 이렇게 하면 되나요?”
“아, 예. 그럼 다음으로는…….”
자신만만했던 트레이너는 어딘가 놀란 눈치였다.
“뻡 다음 발음으로 더 어려운 게 뺍이 있는데.”
“뺍, 뺍.”
“……진짜 어디서 배우신 거 아니죠?”
“뺍.”
몇 번 해 보니까 감이 왔다.
내가 타 수강생 대비 유독 발전이 빠른 감이 있었다.
아마, SR 발성법과는 방향이 다를지언정 더 좋은 소리를 내 본 경험이 있기 때문 아닐까.
‘할 맛 나네.’
그렇게 첫 수업이 끝났다.
그리고 다음 수업 때는 뭘 배울 수 있을까 기대하며, 짐을 챙겨 집에 돌아가려는 참이었다.
“저기, 한영 씨는 시간 괜찮으시면 잠깐만 남아 주실 수 있으신가요?”
트레이너가 날 붙잡았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