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93
193화
의도했던 건 아니지만 모든 준비가 차례대로 갖춰졌다.
방송 자체의 화제성에 저격 사건까지 겹쳐 완성된 세계적인 관심.
출연진 라인업.
강릉시의 협조로 얻은 무대.
그 외 기타 등등.
가히 한국 공연사에 기록될 만큼의 화제성이 겹친 탓일까, 한영 아카데미 마지막 에피소드 촬영일에는 아침부터 한국 전역이 부산하기 짝이 없었다.
[제목: 오늘 김한영 공연 보러 가는 사람 있냐?] [손] [└ 손] [ㅋㅋㅋ 최소 몇만 명은 모일 삘이던데 어떻게 봄?] [몰?루 대관령에 산 하나 알아봐 뒀음. 거기서 망원경으로 본다] [ㄹㅇ 현장 가면 김한영 머리카락 털도 못 볼 삘이라고~] [해외에서도 보러 온다던데?] [아 ㅋㅋㅋㅋㅋ 솔직히 레베카 로드리게즈 한 명만 해도 3만 명은 넉넉히 채울 것 같은데 이걸 어떻게 참냐고]신드롬이라는 게 있다.
사회 현상.
산맥 정상에서 눈이 굴러가면 그냥 구르는 거지만, 그게 점차 덩치를 부풀려 산사태가 되면 의도치 않았던 사람들조차 휩쓸리게 된다.
김한영의 이번 무대는 이미 하나의 신드롬이 되어 가고 있었다.
대중에게 이제 김한영이라는 이름 자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겠지.
그보다는 이 사건 자체가 중요했다.
무대 퀄리티야 둘째 치고 이 이벤트에 합류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에 의의를 두는 듯했다.
먼 훗날 내가 김한영 무대도 보고 왔다며 말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이득이라고나 할까.
[나 출근날인데 어쩌냐] [나는 연차 냄] [나는 사표 냄] [나는 장사 접음] [└ ㅋㅋ ㅈㄹㄴㄴ 구라도 적당히 까야지] [내가 사장인데… 히잉…]하필 무료 야외 공연이라서 더더욱 인파가 쏠린 것도 있고.
대신 강릉으로 오가는 도로는 모처럼 혼란을 맞이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우리 팅 식구들은 평화롭기 짝이 없었다.
한없이 펼쳐진 공연장.
초록빛은 풀과 나무요. 노란색은 모래사장이다. 파란 건 하늘.
“경치 좋고.”
그곳에서 우리는 막간을 활용해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다.
성민아가 멍한 표정으로 먼 하늘을 응시하더니 중얼거렸다.
“공연 열리기 전에는 이렇게 한산하구나.”
“공연하러 다니는 사람들만 볼 수 있는 광경이지. 희범아, 지금 바깥에는 뭐래?”
“지금 교통 정체 때문에 도착 예상 시각이 평소보다 3배는 더 걸린다는데?”
“음.”
“이 근방 숙소들 가격 5배씩 받고 있다.”
“음.”
고희범의 연이어진 보고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밖에 할 일이 없었다.
‘이런 오지까지 찾아오다니. 사람들이 참 열정적이군.’
여기가 그냥 오지가 아니다.
강릉시에서도 바깥으로 도는 곳인데, 무려 골프장이었다.
말 그대로, 골프장이었다.
당장 어제까지만 해도 골프장으로 운영하고 있던 골프장. 그것도 회원제로 운영하는 프리미엄 골프장.
설마 이런 장소에서 공연하게 될 거라고는 나도 의외였다.
“살다 살다 골프장에서 공연을 다 해 보네.”
“일반적으로 그럴 일 없지. 강릉시에 공연할 곳이 어지간히 없었나 봐?”
“아니, 있기는 있는데, 이번 공연이 어지간하지 않았지.”
처음에는 천 명 정도로 생각했다.
천 명을 수용할 곳은 발에 챌 만큼 널렸다.
하지만 나중에는 일만 명으로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그렇다고 해도 그리 어려운 수준은 아니었다.
강릉에는 세계적인 수준의 체육 시설이 꽤 있으니까.
그러니까 정말로 세계적인 체육 시설.
올림픽 파크라던가.
그런 곳은 만 명 단위 관객이라고 해도 넉넉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 이상의 관객이 예상되었을 때, 강릉시에는 선택지가 없었던 모양이다.
‘골프장이라.’
아직도 강릉 시장이 내게 했던 말들이 머릿속에 훤하다.
[여기 골프장 회장이 사실 아무한테나 막 빌려주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풀 상한다, 격 떨어진다 뭐다, 지금까지 행사 있을 때마다 찔러 봤는데 모조리 다 거절했어요. 그런데 한영 씨 이름 대니까 저쪽에서 뭐라고 말했는지 아십니까? 상상도 못 하실 겁니다.] [네.] [아~ 그 김한석 좋아하는 그 친구? 그 친구라면 어쩔 수 없지! 라고 말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대신 가서 식사 한 끼만 같이 하자고 부탁했으니까 같이 가시죠.]남들 공연은 안 돼도 내 공연은 된다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밥은 맛있었다.
어찌 됐든, 그런 비화까지 감수하며 만든 공연장이 이곳이었다.
‘고생을 감수한 보람은 있네.’
시원하게 트인 필드에 초목이 우거졌다.
속이 다 뻥 뚫릴 만큼의 장관이었다.
그 위로 홀 대신 공연 단상만 세워져 있지 않았다면 말이다. 가히 셀 수 없을 정도로 놓인 플라스틱 의자도 그렇고.
‘그래도 나름대로 감상은 있네.’
나는 이 광경을 한눈에 담으며 눈을 깜빡거리다가 말했다.
“다음에는 페스티벌을 열자.”
“페스티벌?”
그 말을 들은 성민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말했다.
“무슨 페스티벌.”
“락페 같은 거. 리조트 하나 빌려서 부설 무대를 한 두세 개씩 만들고, 무대마다 우리 팅 멤버들을 세우는 거야.”
나는 멀리 보이는 필드를 하나씩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에서는 네가 공연하고, 저기는 의선이, 저기는 선우, 저기는 은솔이 누나. 그리고 여기 제일 큰 곳에서는 내가 공연하는 거야.”
“……하나하나 반박할 구석이 너무 많지만, 이번에는 그런 건 일단 집어치워 두고.”
성민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말했다.
“재밌겠네.”
내 의견에 공감한다는 것이었다.
매사에 불만이 많은 성민아의 말치고는 산뜻한 맛이 있는 대답이다 싶은데, 뒤에 한마디가 뒤따랐다.
“쉽지는 않겠지만.”
“뭐, 지금 당장은 그렇겠지.”
그녀의 말마따나 그리 쉽지는 않은 계획이다.
페스티벌을 열려면 무대마다 8명만 잡아도 최소 24명의 참가자가 필요하니까.
더 많은 사람을 모아야겠지.
더 많은 브랜드도.
김한영이라는 이름이 단순한 채널을 넘어, 하나의 상징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거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 오는 데도 고작 2년 남짓밖에 안 걸렸으니까.
안 될 건 없고,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작은 카트 하나가 달달거리며 달려왔다.
그 안에서 한 사람이 빼꼼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아, 여기에 다 계셨네!”
강릉시장이었다.
그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지금 밖에 기자들 다 모여 있거든요? 얼른 가서 한마디만 해 주고 옵시다!”
“지금이요?”
“내가 이번 행사 유치하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르죠? 협조 안 해 주시면 나도 서운합니다.”
서운하시단다.
나는 이유 모를 즐거움에 피식 웃고는 말했다.
“들었지? 딱 한 마디씩만 하고 오자.”
* * *
공연을 시작한 건 땅거미가 지기 시작할 무렵이 되어서였다.
낮부터 시작해도 되겠지만, 이번에는 무대 퀄리티를 위해 일부러 예외를 뒀다.
이번 무대에서 활용하기 위해 준비한 비장의 연출이 있으니까.
무대를 열고 나가기 전, 나는 무대 뒤편의 대기실에서 슬쩍 물었다.
“잘할 수 있지?”
그 말에 한 사람이 마른침을 삼키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안재명이었다.
지난 숲 뮤직과의 경연에서 크게 도움이 되어 주었던 학생.
비디오아트를 비롯해 미술과 과학을 접목하는 데 관심이 많았다고 했던가.
이번에도 그의 역량을 한껏 발휘해 주길 바랄 뿐이었다.
“맡겨만 둬.”
그가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그러는 것치고는 은근히 덜덜 떠는 게 자신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혹시 긴장되면 순서라도.”
뭐라고 말하려는데, 그의 옆에서 한 중년이 튀어나와 안재명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학생, 걱정 붙들어 매. 준비할 만큼 했어.”
배영수 교수였다.
옛날부터 아주 잘나갔던 연출가인데, 이쪽도 지난번 숲 뮤직 공연에서 큰 도움을 주었던 사람.
더욱이 그때 일을 계기로 안재명의 스승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지.
그가 낄낄 웃더니 말했다.
“우리 재명이 친구도 그렇지만, 이번에는 나도 단단히 준비했다니까. 난 이번 공연이 내 커리어하이가 될 거라고 믿고 있어.”
“교수님께서는 워낙 경력이 화려하셔서.”
“예산이 역대 최대잖아.”
아 그런 이유.
하지만 돈이 많이 들어간 건 사실이다.
규모 자체가 남다르니 실패는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나보다 실패에 민감할 사람들이다. 실패하지 않는 걸 도덕으로 여기며 살아왔던 사람들.
“지난번 같은 일은 없을 거야.”
배영수 교수가 안광을 빛냈다.
숲 뮤직에서의 일을 아직 기억하고 있는 눈치.
하지만 결과적으로 잘 됐을뿐더러, 내 손으로 내가 맡겼으니 뒤늦게 탓할 생각은 없다.
그게 책임지는 사람이 할 일이니까.
“믿을게요.”
“암, 맡겨만 둬.”
그렇게 나는 이들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돌려 뚜벅뚜벅 걸어갔다.
저 짧은 계단, 저 위로 올라가 커튼을 걷으면 그때부터는 무대다.
거기까지 걸어가는 몇 초.
내가 무대에서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었다.
‘가자.’
나는 짧게 만끽하고는 발걸음을 마저 이어 나갔다.
그리고 커튼을 걷은 순간.
내 시야를 통째로 삼켜 버리겠다는 듯 펼쳐진 광경이 있었다.
인파.
감히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모인 인파가 골프장 필드 전역에 가득 차 있었다.
나도 저들도 경직되기를 잠시.
“김한영이다.”
“와!!!”
내가 등장한 그 순간 목소리가 흘러넘쳤다.
바닥이 흔들릴 만큼의 함성. 가히 지진으로 착각하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아니, 이건 실제로 지진이 맞았다.
사람이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지진. 감정과 감정의 파도가 휘몰아쳐 거대한 벽이 되어 무대 위를 덮쳐왔다.
살덩어리 몸이 부서질 것만 같은 함성 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반갑네.’
오래간만이다.
이런 무대.
“김한영!”
“김한영!”
“김! 한! 영!”
“김한영! 기만 한마디만 해 줘요!”
사방에서 내 이름을 연호하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가득하다고 말하기도 부족하다.
필드만으로는 부족해, 펜스를 넘어 숲에 들어간 사람들도 보였다.
너무 많아 제재하기도 힘들겠지.
저들 하나하나가 나라는 사람에게 열광하는 사람들이었다.
‘이 정도면 대충, 목표치의 허리 정도까지는 왔나.’
불과 2년 걸렸다.
발성부터 기타까지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이 자리에 서기까지 걸린 시간이 2년이었다.
내가 존재한다는 걸 알리며 구독자를 모으는 게 몇 달.
미튜버들 사이에서 경쟁하며 몇 달.
숲 뮤직과 경쟁하며 또 몇 달.
최종적으로 세계 무대에 도전자로서 다다르기까지 2년.
‘공기가 맑네.’
이번 무대가 끝나고 나면 그다음에는 어디로 갈까.
빌보드 1위는 찍고 싶은데, 그때까지 또 얼마나 걸릴까.
‘응, 내년에 찍어야지.’
그 정도면 적당하겠다.
하지만 이건 나 혼자서만 몰래 결심하기로 했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내년에 빌보드 1위 찍겠다고 남들한테 말하면 미친놈 취급을 받을 걸 안다.
그러니까 말만 안 하면 된다.
모르면 장땡이다.
어느 현자 가라사대 병X짓도 은밀하게 하면 괜찮다고 하지 않았나.
“씁.”
나는 호흡을 짧게 들이마신 뒤 입을 열었다.
“김한영입니다.”
“와아아아아아아――!!!!”
“김한영!”
“김 한 영! 김 한 영! 김 한 영!”
“임선우!”
“김한영!”
“기만영!”
내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잠깐이나마 가라앉았던 목소리가.
그 목소리가 몇 배로 커지며 다시 한번 거세게 폭발했다.
“제가 한 가지만 확실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그 목소리 위에 오롯이 서는 목소리로서 손가락을 쭉 뻗으며 말했다.
“오늘 하루만큼은 바로 여기, 여러분과 제가 서 있는 이곳이 바로 세계의 중심입니다.”
“와아아아――!!!!”
다시 한번 함성이 폭발한다.
귀가 멍할 정도로 울린다.
이대로 조금만 더 관객 조련을 즐기고 싶지만, 여기에서 더 끌다가는 아예 영영 붙잡힐 것만 같은 기분.
하지만 뭐든 다 끝이 있다.
누가 했던 말마따나,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더 좋은 걸 누리려면 선택을 해야 한다.
나는 작은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손을 높이 들어 올리고 말했다.
“제 손끝을 봐 주시길 바랍니다.”
관객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내 손끝에 시선을 집중한다.
수만 명의 눈빛이 오롯이 집중되었다.
카메라 너머까지 합치면 수십만, 그 이상, 어쩌면 수백만이겠지.
좋다.
나는 다음으로 관객들 너머 저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에는 고개를 돌려, 뒤를 봐 주세요. 그리고 숫자 10을 1부터 차례대로 세시면 됩니다. 우리끼리 약속한 겁니다. 거기, 카메라도 잠깐만 뒤로 돌려 주세요.”
만 단위로 쌓인 관객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어찌 됐든 말은 따랐다. 필드 위로 깔린 관객들의 몸이 파도타기처럼 일제히 뒤로 돌아갔다.
그렇게 10초.
나는 내 가슴이 다 두근거리는 걸 느끼며 말했다.
“이제, 다시 앞을 봐 주시길 바랍니다.”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저들의 눈에는 보일 것이다.
“……와.”
성공했나 보다.
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내 머리 위 상공에서 수백 개의 드론이 부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