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96
196화
갑작스럽게 부산으로 떠나는 길.
나는 주위에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항을 겪었다.
아니, 겪을 줄 알았다.
‘이 바쁜 시기에 갑자기 휴가 내고 부산에 내려간다고 하면 누가 믿어 줄까.’
엄밀히 말해 지금은 나, 김한영이라는 뮤지션의 커리어하이에 해당하는 시기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그래? 한번 길게 쉴 때도 됐지.”
조은솔이 웃으며 말했다.
“다녀와. 기왕 가는 김에 7박 8일로 느긋하게 쉬어.”
“진짜요?”
“내가 뭐 하러 떠보는 말을 하겠어. 그냥 다녀와. 요즘 정신이 어디로 가 있는 것 같더라니, 다 쉬려고 그러는 거였네.”
성민아도 말했다.
“번아웃(정신적인 탈진 상태)은 초기에 잡는 게 나아. 늦으면 몇 년씩 쉬어야 할 수도 있어서.”
고희범도.
“흐흐, 그럼 이제 나도 당분간은 느긋하게 쉴 수 있겠네.”
홍윤서도.
“올 때 어묵.”
나는 그렇게 조금 당황스러울 정도로 부드럽게 기약 없는 무단결근을 인정받게 되었다.
표절 시비의 진상을 털어 내러 부산에 가는 거지만 말이다.
물론, 나 혼자 가는 건 아니다.
“너랑 이렇게 어디 여행 가는 것도 진짜 오래간만이네.”
한윤태가 함께했다.
“그러게, 근데 차가 왜 이렇게 낡았냐.”
“내려.”
“다음에 새로 사 줄게.”
“가는 길에 강릉도 들렀다 갈까?”
그렇게 출발하기를 한참.
나와 한윤태는 낡아 빠진 SUV가 덜덜거리는 소음을 뱉으며 그간 쌓인 잡담을 나누기 바빴다.
“넌 옛날부터 운전도 안 하면서 사람 기분 망치는 재주가 있더라.”
“그래서 어디 가면 여행비는 다 내가 냈잖아.”
“그러니까 데리고 다녔지. 안 그랬으면 얄짤 없이 유기했다.”
생각해 보니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떠드는 것도 오래간만이다 싶다.
싸구려 커피 향 방향제 냄새도 좋다.
이대로 쭉 쉬지 않고 달려도 부산까지는 약 6시간이 걸리니 느긋한 일정이 될 터.
‘가는 길에 휴게소 들려서 회오리 감자 사 먹어야겠다.’
하지만 이유 없이 나온 건 아니다.
나는 그동안 마음속에 담아 왔던 의문을 풀기로 했다.
“야, 윤태야.”
“왜.”
한윤태의 시선은 여전히 운전대 너머 도로에 향한 상태였다.
나는 그가 동요하지 않기를 바라며 물었다.
“이번에 그 난동 부렸다는 사람, 김진산 사장님 맞겠지?”
그렇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궁금했던 것이었다.
어차피 대강 이야기를 나누고 출발한 거지만, 몇 번이고 남의 입으로 확답을 들어야 믿을 수 있을 것 같은 상황이다.
한윤태의 입에서는 대답이 없다. 그래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실종 아니면 죽었다는 사람이 부산에 버젓이 살고 있었다니 이걸 어떻게 믿어. 그것도 고급 요양까지 받으면서.”
이번에도 대답은 없다.
운전에 집중하는 건지, 집중하는 척을 하는 건지.
불편한 대답을 흘리고 싶겠지.
하지만 이번에는 꼭 확답을 들어야겠다.
나는 장철민 원장에게 배운 발성을 통해 일부러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왁!”
“……악! 왜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정신 사납게.”
“너도 알고 있었지?”
그렇게 잠시 뒤.
한윤태는 핸들을 꽉 쥔 채 내키지 않는다는 듯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아마도.”
“……언제부터?”
“꽤 예전부터. 옛날에 연락한 게 마지막이야. 살아는 있겠거니 짐작으로 알기는 했다만, 앞으로도 알 일이 없기를 바랐지.”
그는 자기 자신도 분통이 터진다는 듯 말을 이었다.
“나도 자세히는 몰랐어. 본인 요청도 있었고.”
“무슨 요청.”
“자기는 사업 다 정리하고 내려가서 살 거니까 콱 죽었든 살든 알아서 할 테니 찾지 마라잖아. 혹시라도 무슨 일 있으면 자기가 찾아온다고.”
“다 알고 있었으면서 그동안 물어볼 때마다 모르는 척했어?”
“나도 연락처 하나 없을 정도로 뜸했거든? 마지막으로 목소리 들었던 게 벌써 10년도 더 지났다. 게다가.”
한윤태는 뭔가 억울하다는 듯 한이 서린 목소리로 외쳤다.
“말했으면 찾아갔을 거잖아!”
“네가 그러지 말라고 언질을 줬더라면.”
“몰래 찾아갔겠지.”
“…….”
들켰다.
하지만 한윤태의 행동이 이상한 건 아니다.
본인이 숨겨 달라고 요청했고, 나 같이 죽은 사람이 돌아왔다면 못 믿을 만하기는 했겠지.
이미 한윤태를 만나서 어지간한 증거를 들이밀어 봤자 안 믿을 가능성이 컸을 테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구려.’
이 모든 일 뒤에 뭔가 모종의 이유가 있기는 있는 것도 같았다.
“아이, 씨, 사장님이 자기 찾지 말라잖아. 연락하면 아주 콱 수저 쥘 힘만 남아도 내 목을 비틀어 죽여 버리겠다고.”
“…….”
“이번에는 저쪽에서 먼저 찾는다니까 뭐라고 안 하는 거야. 숨겨서 될 일도 아닌 것 같고.”
한윤태가 마지막 변명을 뱉듯 말했다.
“그냥 그렇게 알아.”
이쯤에서 나는 이게 그에게 얻어 낼 수 있는 마지막 답이라는 걸 알았다.
막상 한윤태도 뭔가 많이 아는 건 아닌 눈치였고.
“후우.”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광경에 눈을 돌렸다.
다 스쳐 지나가는 일인가 싶다.
옛날 은인이 죽었나 살았나 모를 지경이었는데, 버젓이 살아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그걸 당사자가 철저히 숨겼고.
뒤늦게 인제 와서 표절곡이라며 길길이 날뛰는 건 이유가 뭘까.
진심으로 과거를 다 정리하고 잠적한 거라면, 남의 곡 따위 어떻게 되든 본인에게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거 아닌가.
‘왜?’
온갖 의문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많다.
저런 걸 다 떠나서, 건강하게는 살고 있을까.
이제 나이가 나이일 텐데, 인공관절을 심었다거나 투석치료를 받고 있다거나 그러는 건 아닐까.
그래도 병원비 내줄 형편은 돼서 다행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김한석이라고 말하면 믿어나 줄까.’
이건 좀처럼 확신이 안 든다.
“후우.”
고민이 깊어졌다.
창문은 가장 좋은 철학 선생님이라고 하였던가. 멍하니 창문을 보고 있으려니 나도 모르게 더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고.
자동차의 이산화탄소에 점점 눈이 감겨 왔고, 그대로 눈을 감았다.
‘모르겠다. 고민해서 더 나아질 게 없는 일은 고민하지 말라잖아.’
그러다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야, 너 코 골면서 잘 자더라.”
“…….”
부산이었다.
* * *
부산에 도착한 내가 바로 한 일은 바로.
“뭘 그렇게 칭칭 싸매?”
위장이었다.
머리에는 도둑 모자를, 얼굴에는 마스크를. 몸에는 체구를 숨길 적당한 오버핏 자켓을 걸쳤다.
당장 경찰서 앞에 검거돼도 이상하지 않을 것만 같다.
“이 정도 안 하면 요즘은 거리에 걸어 다니지도 못하거든.”
“그렇게까지 가리니까 오히려 더 수상하게 보일 지경이다만, 옛날에는 안 그랬냐?”
“그때는 지금처럼 스마트폰 같은 거 없었잖아. 요즘은 뭐만 하면 카메라부터 들이밀고 봐서 되게 골치 아파. 기사가 퍼지는 속도도 빠르고. 아침에 떡볶이 먹으면 점심에 기사 뜨고 저녁에는 바이럴 소리 듣는다니까.”
기술의 발전이 꼭 좋은 건 아니다.
소통하기 좋아졌다는 건 다른 말로 하자면 침해받기 좋아졌다는 말과도 같으니.
적당히 유명했을 때는 나름 괜찮았다.
하지만 이 정도까지 유명해지니 이제는 거동 하나도 쉽지 않다.
“올라가자.”
그렇게 병원 주차장에서 차를 세우고 나와, 병원을 타고 올라가는 길.
모든 대화는 한윤태가 나를 대신했다.
“702A 병실이고요. 예, 예, 방문객입니다. 네, 주차증 떼 주세요.”
“저기 그 혹시 김한…….”
“얘가 그 사람 닮았다는 말 자주 들어요. 워낙 흐리멍덩하게 생겨서. 하하.”
워낙 머릿속에 생각이 많아서 가는 길에 무슨 말이 흘렀는지는 잘 기억도 안 난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도 흐린 창문처럼 스쳐 지나갔다.
다시금 정신을 차렸을 때는 병실 문 앞이었다.
나도 모르게 심장이 쿵쾅거린다.
미친 듯이 뛴다.
여기에서 조금만 더 긴장하면, 심장이 터져 피가 뽁 튀어나오지 않을까.
‘뭐라고 말을 해야 하지.’
할 말이 없어서 고민했던 일이 드물었는데 이번에는 좀 다르다. 첫사랑을 고백하는 고등학생처럼 입에서 말이 안 나왔다.
남한테 자랑해 본 적은 없지만.
한윤태는 그런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팔꿈치로 툭 치며 말했다.
“마음의 준비는 됐지?”
“내가 애도 아니고.”
“상대적으로 따지면 애가 맞지. 게다가 그동안 많이 보고 싶어 했잖아.”
“후우.”
나는 마지막으로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들어가자.”
끼익.
문이 열렸다.
세상에서 가장 천천히 열리는 문은 백화점 회전 자동문인 줄 알았는데, 병실 문이 그보다 더 느린 것 같다.
찰나의 시간, 아주 찰나의 시간.
유리가 고체이자 액체이기에 수년의 시간에 걸쳐 천천히 흐르듯 내 시간도 그러했고.
잠시 뒤.
병실의 내부 광경을 눈에 담았을 때 나는 비로소 입을 열 수 있었다.
“아무도 없는데?”
그렇다.
병실 내에는 그 누구도 없었다.
그냥 열린 창문에서 들어오는 바람에 펄럭거리는 커튼 정도만 보일 뿐.
“응? 뭐지?”
한윤태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병실 안팎으로 오가기를 반복했다.
“뭐지? 여기 맞는데? 702A실 맞잖아. 잘못 알려줬나? 아닌데, 아까 카운터에서 여기 김진산 환자님 병실 맞다고 했는데.”
그렇게 한윤태가 경거망동하는 찰나였다.
그의 뒤에서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놈이 남의 이름을 그렇게 씨부렁거려?”
살짝 힘이 빠진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억센 뉘앙스.
그것만큼은 당장 어제 들었던 것처럼 잊을 수가 없었다.
‘맞다.’
김진산 사장이었다.
분명 늙고 병들고 허리까지 굽었다.
하지만 그는 분명 내가 기억하는 김진산 사장이었다.
까다롭기 짝이 없는 눈매와 굳게 다물린 턱.
그걸 본 순간 머릿속에 한참이나 되새겼던 모든 고민이 사라지며, 내 입 밖으로 한 단어가 튀어 나왔다.
“사장님.”
그 순간이었다.
김진산 사장이 혀를 차며 말했다.
“하이고, 젊은 놈이 초면부터 사장이랜다. 내가 너 고용한 사람이냐?”
응.
김진산 사장님 맞네.
* * *
상황이 다소 소강되었다.
나와 한윤태는 병실 문을 닫고 그 안에서 셋이 앉은 뒤, 본격적인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김진산 사장의 첫 말은 이러했다.
“그러니까, 이놈이 그 표절을 저지른 놈이다 그거네.”
“…….”
“부끄럽지도 않냐? 음악 한다는 놈이 남의 노래나 훔쳐서 쓰고. 응? 사람이 죽어서 저작권이 우스워? 그런 편의주의적인 자세가 자기 영혼을 오염시키는 거야.”
지극히 공격적이었다.
잠시 휘청했지만, 나는 아슬아슬하게 내 정신을 도로 붙잡을 수 있었다.
그야 그렇겠지.
‘사장님 눈에 비친 나는 자기가 애지중지했던 가수, 그것도 죽은 고인의 노래를 훔쳐다가 자기 노래라고 발표해서 해 먹고 있는 사람이니까.
천하에 그런 쌍놈이 다 없겠네.
김진산 사장의 분노는 이해할 수 있는 범위 안이다.
아니, 오히려 분노해야 다행이다.
“가정교육을 대체 어떻게 받았길래 그런 짓을 눈도 깜빡 안 하고 저질러? 돈이면 다 되는 줄 알아? 보니까 김한석 좋아한다더니만, 네가 그 곡으로 돈을 벌면 김한석이 좋아할 것 같아?”
“그건, 네.”
“네?”
“아니, 그러니까, 네, 사장님 말씀이 맞으시다고요.”
허겁지겁 말을 바꾸려니 김진산 사장의 얼굴이 다시 한번 일그러졌다.
“누가 네 사장님이야. 아직도 정신 못 차리지?”
“…….”
“보니까 찔려서 갑자기 찾아온 것 같은데, 그래서 윤태 너는 대체 하는 게 뭐냐?”
“네? 사장님, 저는.”
“그러니까 네가 얘랑 잘 아는 사이라며? 그럼 말렸어야지. 아니다, 네가 주도했겠지? 네 친구한테 미안하지도 않냐?”
“딱히…… 는 아니고, 이게 다 사정이 있었습니다.”
“하이고, 잘도 사정이 있었겠다. 뭐, 돈이 급했어? 돈이 급하면 범죄 저질러도 돼? 돈 없으면 정육점에서 고기 훔치고 달아나도 용서해 줘야 되냐? 네가 장발장이야? 이야, 너도 장사꾼이 다 됐네. 아주 자랑스럽다! 이 새끼야! 네가 제일 나쁜 놈이야!”
익숙한 맛이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옛날의 그 독설이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일관됐다니.
나도 모르게 감탄해서 고개를 끄덕이려니, 한윤태가 나를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저 시선도 익숙했기에 흘렸다.
“후.”
그렇게 한참이나 꾸중이 이어지는 와중이었다.
김진산 사장이 눈을 감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말했다.
“윤태야, 난 네가 많이 실망스럽다.”
“저기, 그 사정이.”
“사정이 뭐든, 나는 적어도 네가 친구를 배신할 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음악 못하고 요리 못해도 어찌 됐든 의리는 있는 놈이었으니까. 아무리 못 해도 돈 앞에 친구를 저버리지는 않으리라고 믿었다.”
동의한다.
한윤태라는 사람이 가진 건 없어도 사람 하나는 끔찍하게 믿고 따르지.
“그런데 윤태, 네가 오히려 이런 짓을 해 버렸으니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내가 헛산 거냐?”
“잠시만요! 사장님! 사장님!”
“김한석 그놈이 아무리 사람이 막돼먹고 사회성이 없었다고는 해도, 적어도 너를 친구라고 여겼다. 아마 죽었다가 살아 돌아와도 너랑 또 친구 먹겠지.”
“그러니까, 그게 맞는 것 같기는 한데요. 동의합니다! 그런데 사장님!”
“아는 놈이 왜 그런 짓…….”
“잠시만요! 제가 먼저 말하겠습니다! 딱 한마디! 한마디만! 부탁합니다! 사장님!”
한윤태가 다급히 김진산 사장의 말을 끊었다.
이대로면 끝이 안 날 거라고 판단한 모양.
절박하기까지 한 목소리에 김진산 사장이 마침내 코웃음을 치더니 말했다.
“그래, 말해 봐라. 노친네가 젊은 놈 유언 정도는 들어 줘야지.”
“예, 말하겠습니다.”
그가 깊게 호흡을 들이마시기를 찰나.
손가락을 쭉 뻗더니, 나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얘가 김한석이 그 자식입니다.”
“…….”
잠시 정적이 다가왔다.
봄바람이 우리에게 꽃잎을 살포시 전달하듯, 부드러운 정적이 찾아왔다.
김진산 사장이 주름살이 깊게 진 눈을 깜빡이더니 말했다.
“한석이한테 자식 놈이 있었나?”
“그런 게 아니라, 나이도 안 맞잖아요. 아니, 아무튼, 얘가 김한석입니다.”
“너도 나 노망난 사람 취급하냐?”
“그러니까 그게 아니라, 아오. 진짜. 아! 사장님!”
끝이 없어 보인다.
나는 답답해서 당장이라도 폭발하려고 하는 한윤태를 한 손으로 물리며 말했다.
“잠시만요.”
그냥 내가 내 입으로 말해야겠다.
“제가 김한석 맞아요.”
그 순간이었다.
“염병.”
“…….”
아무래도.
이번 설득은 절대 쉽지 않을 것 같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