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97
197화
그의 고집을 본 순간 내가 느낀 감상은 이러했다.
‘하긴, 이래야 김진산 사장이지.’
김진산 사장이 누구인가.
이 세상의 그 누구 앞에 세워 둬도 고집으로는 안 지는 사람이다.
돈 없고 마땅한 빽도 없는 주제에, 70~80년대의 그 험악했던 시장에서도 깡 하나로 살아남았다.
물론, 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
하지만 적어도 당당한 척하는 건 그 누구보다도 잘하는 사람.
그게 김진산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의 한심하다는 눈빛에 작게 안도까지 하며 말했다.
“전부 사실이에요. 제가 김한석이고, 몇십 년 전에 차 사고로 죽었다가 깨어났더니 이 몸이었어요. 기억이 깨어난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저 맞아요.”
“소설을 너무 읽었네.”
“못 믿으시겠죠.”
“잘 아네, 안 믿어.”
“옛날에 사장님이랑 저랑 윤태랑 셋이서 공연 겸 제주도 갔을 때 들렀던 흑돼지 전골집…….”
“윤태가 알려 줬냐?”
그가 더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피식 웃더니 말했다.
“나는 적어도 네가 와서 사과라도 하길 바랐다. 솔직하게 욕심이 들어 표절을 저질렀다 하거든 믿어 줄 생각은 했다. 윤태 놈은 두고 봐야겠지만…….”
한윤태가 찔끔하더니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많이 본 모습이었다.
옛날부터 김진산 사장한테 워낙 혼이 많이 나다 보니, 눈길 한 번에도 주눅 들 때가 많았지.
파블로프의 개처럼 박힌 습관이 몇십 년씩 지나서도 안 바뀌었나 보다.
그 모습에 김진산 사장이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그런데 뭐? 네가 김한석? 말이 되는 핑계를 대라.”
“사실인걸요.”
“내가 비록 노망이 나서 이 병실 구석에 박혀 있다고는 해도, 아직 고깃덩이는 아니다.”
김진산 사장이 더는 할 말이 없다는 듯 말했다.
그런데 다음으로 나온 말은, 나도 차마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표절이라는 증거는 그대로 가지고 있고, 곧 발표할 생각이다.”
“……증거요?”
“사업에서 손을 뗀 지 오래됐다고 아무것도 없을 줄 알았냐? 이것저것 보관하고 있는 게 많다. 네 거짓부렁이를 터뜨릴 정도는 되니까 걱정 붙들어 매시라고.”
내 옛날 유산을 그가 보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진짠가?’
혹시 블러핑인가 싶어 눈을 바라봤지만, 그의 눈빛은 변함없이 곧았다.
“왜, 이제 좀 피가 식는 기분이 드나? 심장이 벌렁벌렁 뛰지? 넌 사람 잘못 건드린 거야. 김한석이 죽은 사람이라서 우스웠냐? 젊은 놈이 주제 파악도 못 하고.”
말도 변함없이 험하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내 마음속에서는 꽃이 활짝 핀 것처럼 기뻤다.
‘내 작업물들이 아직 남아 있었구나.’
갑자기 떠나면서 여기저기 뿔뿔이 흩어졌다고만 들었다.
회사가 파산하면서 남는 게 없다고 했나. 그중에서 몇 개는 한윤태가 가져가서 보관한 것도 있고.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얼굴에 미소가 올라왔다.
30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내 유산은 이 세상에 남아 있다.
그것도 30년 전 사람의 손에.
“정말이죠? 김한석 자료 남아 있다는 거.”
“적어도 네가 은퇴할 정도는 남아 있으니까 썩 꺼져. 더는 보기도 싫다.”
정작 당사자는 아직 나를 안 믿는 눈치지만, 이건 상관없다.
처음부터 이럴 줄 알고 왔으니까.
김진산 사장의 고집을 알고, 알기에 더 준비해 왔다.
그가 부정하지 못할 결과물을.
‘내가 한윤태랑 맨날 붙어 다녔던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윤태랑 공유하는 추억만 있는 건 아니지.’
사장님과 나 둘만이 아는 추억 또한 존재한다.
다른 그 누구도 모르는, 나와 그만이 공유하는 기억 말이다.
나는 그것을 가슴속에서 끄집어낼 생각으로.
“알았어요. 들려드릴게요.”
“됐고, 여기서…….”
“아, 그거참 시끄럽네.”
나는 모처럼 옛날로 돌아간 기분에 잠겨 말했다.
“돈 줄 것도 아니면 그냥 잠자코 귓구멍 열고 들으시라고요.”
그 말이 나온 순간 두 명의 표정이 바뀌었다.
“…….”
한윤태의 눈빛은 미친놈을 바라볼 때의 그것이었고.
김진산 사장은.
“…….”
마찬가지로 미친놈 보는 눈이 맞지만, 거기에서 조금 더 복합적인 감정이 담긴 눈빛이었다.
그 시끄럽게 말이 튀어나오던 입을 잠깐이나마 멈출 정도로.
‘아직 기억하고 계셨구나.’
나는 등에 짊어진 검정 기타 케이스에서 기타를 꺼내며 말을 이었다.
“내가 아저씨 같은 진상 하루 이틀 보는 줄 아나.”
“야, 너 지금 선 넘…….”
한윤태가 화들짝 놀라서는 날 저지하려는 순간이었다.
“쉿.”
정작 김진산 사장이 그를 저지했다.
그리고는 우두커니 내 눈을 바라보기를 잠시, 짧게 말했다.
“계속해 봐.”
“네.”
그의 짧은 말에서 나는 직감했다.
마침내 변화의 시간이 왔다.
“기꺼이 해 드려야죠.”
* * *
엄밀히 말해서, 윤태는 내 동기다.
내가 뮤지션으로서 커리어를 쌓기 시작한 극 초기부터 함께한 동기가 맞다.
길거리 뮤지션 시절부터 함께했는데, 김진산 사장보다 먼저 만났던 건 물론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내 모든 걸 아는 건 아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숨기고 싶은 기억이 있기 마련이고, 내게도 또한 숨기고 싶은 기억이 있었다.
이건 내 흑역사다.
누구에게도 말을 못 했던 흑역사.
하지만 김진산 사장만큼은 아는 그런 흑역사였다.
그렇기에 지금 꺼내 볼 생각이었다.
‘내 손으로 이걸 직접 꺼내게 될 줄이야.’
아직도 볼이 화끈거린다.
하지만 개똥이라도 약으로 필요하다면 꺼내다가 써먹어야지.
“힘내세요.”
이게 그러한 곡이었다.
손끝으로 감기는 기타의 현이 무겁다.
평소 숨 쉬는 것처럼 가벼웠던 피킹이 지금만큼은 거대한 소 힘줄을 누르듯 무겁기 짝이 없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넘어져요.”
이번 곡은, 내가 김진산 사장에게 준 곡이었다.
“실패가 있기에 성공이 있다는 사람은 아픔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넘어지는 고통이 눈에 보인다는 사람들을 마음속으로는 동의하기 어려워요. 아픔을 자랑하는 사람들은 거짓말쟁이입니다.”
김진산 사장이라고 해서 언제나 잘나가는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와 처음 만났을 때는 가진 것 하나 없는 밑바닥이었고, 그렇기에 맨땅에 헤딩할 수밖에 없었다.
디링.
피킹의 수가 극도로 적다.
가벼운 10번의 피킹, 적당한 5번의 피킹 대신 1번의 깊은 피킹을 선택했다.
멜로디의 비중을 낮췄다.
이는 곧, 노래의 비중이 올라가는 결과로 이어졌다.
즉 메시지를 키웠다.
“남모르게 내린 비는 조용히 마른다고 했습니다.”
김진산 사장의 태도는 늘 같았다.
강한 척하는 걸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좋아했지. 겉으로만 보면 대통령 앞에서도 멱살을 잡을 것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이제는 나도 안다.
이 시장에서 가진 거라고는 쥐뿔도 없는 사람이 뻣뻣하게 고개를 세우고 다니기는 쉽지 않다는 걸.
‘아마 많이도 숙였겠지.’
이 노래를 부른 날.
그날도 그런 날이었을 것이다.
[술 사 오셨네요. 윤태한테는 사무실에서는 마시지 말라면서.] [걔랑 내가 같냐?] [저도 줘요.] [가수가 뭔 술? 벌써 싹수가 노랗네. 쯧, 됐고, 노래나 한 곡 뽑아 봐.] [저 술 시중드는 사람 아닌데.] [아주 한마디를 안 지려고 난리네. 임마, 아무거나 신곡 하나 만들어서 불러 보라고. 곡이 있어야 돈을 벌 거 아니야.]김진산 사장은 그럴 때가 잦았다.
소속 뮤지션들에게 입을 험하게 굴리지만, 정작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게 있었다.
회사에서 영업 일을 하면서 뒤에 어떤 고충이 있었는가.
그는 이것에 대해서는 절대 말하지 않았다.
[굳이 알 필요 없어. 이런 일 하라고 회사가 있는 거지. 너희들은 너희 할 일만 잘하면 돼. 신경 끄고 할 일 하라고.]고집일 수도 있고, 철학일 수도 있고, 신념일 수도 있다.
아마 허세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어찌 됐든 그는 모든 걸 뒤로 삼키는 사람이었다.
다만, 어느 정도 달아오른 얼굴과 분한 목소리를 완벽하게 감추지는 못했다.
‘그런 날이면 언제나 사장님 습관이 발동했지.’
사무실에 안주도 없이 술을 사 왔으며, 그대로 퍼마셨다. 그리고 내게 자작곡을 술안주 대신 내놓으라며 요구했다.
이것 또한 그렇게 부른 곡 중 하나.
쪽팔려서 윤태 앞에서는 도저히 못 부를 곡들이 김진산 사장의 앞에서 무수히 탄생하고 사라졌다.
“넌 노래를 그렇게밖에 못 하냐?”
가만히 듣고만 있던 김진산 사장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응수했다.
“가만히 앉아서 술 마시는 법밖에 모르면서 귀는 밝아서.”
대신 다음 곡으로 넘어갔다.
“빰빠라빰빰, 빰빰빰.”
이건 부르면서 내가 부끄러워서 얼굴을 다 못 들어 올리겠다.
하지만 김진산 사장이 좋아하는 곡 중 하나였다.
좀 전통 트로트.
“크으대여, 나를 노옥코 카아시거든 나라고 마음이 펴언하겠쏘오.”
가끔 흥이 올라서 부르거든, 그가 웃음을 터뜨릴 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
정작 한윤태는 웃지도 못하고 가만히 보고 있지도 못하는 모양새지만, 김진산 사장의 입꼬리가 씰룩거리는 게 보인다.
이번 곡이 잘 먹히고 있다는 증거였다.
‘다음으로는 뭐 부를까.’
미공개 곡은 많고도 많다.
적어도 내가 살아오면서 나눴던 대화의 수만큼은 되었다.
그중 김진산 사장이 좋아했던 곡들.
적어도 내가 듣기에는 그렇게 생각했던 곡들을 차례차례 이어나갔다.
본인이 이 곡들 사이의 ‘공통점’을 알아채 주길 바라면서.
그렇게 한참.
“후우.”
약 네 곡을 마치고 기타를 내려놓았을 때였다.
김진산 사장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눈길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왜 그만해? 더 안 하고.”
“쪽팔려서요.”
“별게 다 쪽팔린다. 그래가지고 가수는 어떻게 할래?”
똑같이 훈계하는 말투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뉘앙스는 완전히 달랐다.
대충 지구온난화를 맞이한 시베리아의 부동항만큼이나 달랐다.
당장은 몰라도 수십 년 뒤에는 또 모르는 그거.
끝내, 김진산 사장이 마침내 말했다.
“솔직히 아직도 별로 믿지는 못하겠는데, 윤태야, 너는 이거 어떻게 생각하냐.”
“이 새끼가 원래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렇지? 사람이 좀 철도 안 들었고, 애초에 일반적인 사람이랑 사고관이 좀 달라. 검은 머리 짐승이 따로 없다니까.”
“자주 느낍니다. 그래도 요즘은 살짝 달라졌어요. 정말 놀랍게도 지 옷은 지 돈으로 사 입는다니까요?”
“장족의 발전이네. 아주 대단해.”
뭐라냐.
왜 둘이서 나를 욕하고 있어.
하지만 어찌 되었든, 그 짧은 대화가 끝날 무렵 김진산 사장이 말했다.
“네가 김한석의 환생인지 지랄인지 나발인지는 몰라도, 김한석 흉내를 좀 잘내기는 하네.”
“음.”
“아무리 그래도 여전히 못 믿겠다.”
“…….”
여전히 못 믿겠다고 하신다.
맥이 빠졌다기보다는 그냥 좀 그런 마음에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기야, 노래 몇 개 불렀다고 바로 믿을 정도면 말이 안 되기는 하지.’
한윤태는 바로 믿었지만, 그건 그냥 쟤가 이상한 거고.
일반적으로는 이게 맞으리라고 본다.
그는 눈이 침침한지 마른세수를 하더니 말했다.
“지금 머릿속이 좀 복잡해. 생각을 정리하려면 앞으로도 시간이 좀 걸릴 것 같기는 한데.”
그가 고개를 돌리더니 입을 열었다.
“됐다. 어차피 오늘 부른 건 표절 그 문제도 있지만 다른 게 하나 더 있어서인데, 기왕 만난 김에 네가 아니라 윤태 보고 뭣 좀 말해야겠다.”
“그러세요.”
“윤태야.”
다음 순간.
김진산 사장의 목소리가 조금 바뀌었다.
“한석이가 그냥 사고로 죽은 건 아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