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99
199화
신곡을 두고 난데없이 토론회가 열렸다.
그러니까, 굳이 말하자면 토론이라기보다는 내 일방적인 발표회가 열렸다.
“신곡은 이 곡을 편곡해서 내놓을 거야.”
“음, 김한석 신곡을?”
“그래.”
내 당당한 대답에 고희범의 눈이 꿈틀거렸다.
“편곡이라고 이야기하고?”
“아니, 일단 발표 먼저 한 다음 김한석 곡이라는 건 나중에 공개한다.”
“뭐 하러?”
“마케팅용으로.”
일단 계획은 이렇다.
저쪽에서 내가 김한석의 유작들을 가지고 있고, 그걸 이용할 예정이라는 판단을 하게끔 흘릴 것이다.
‘그리고 1~2주쯤 지나서 사실 김한석 노래라는 걸 밝히고, 동시에 원곡 미발표 음원도 같이 공개.’
그사이 저쪽에서 뭐라도 액션을 보여 주면 좋겠다.
안 그런다면 어쩔 수 없고.
나야 어떻게 되든 커리어 하나 쌓은 거니까 이득이고.
고희범은 여전히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했다.
“흠, 한영아, 당사자가 싫어하지 않을까?”
“물어봤는데 괜찮데.”
“죽은 사람한테 어떻게 물어보고 동의를 받아! 김한영, 이 미친놈아.”
“아하, 우리 희범이가 그래서 김한석한테 음악에 기초도 없다고 다시 배워 오라고 그랬냐.”
“끼야아아아아악!”
고희범이 그대로 뒤에 놓은 소파 위로 쓰러졌다. 뭘 잘했다고 상처받은 듯 누워 있길래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자업자득이라고 했다.
모처럼 작업실에 방문한 디마, 공요한이 흔치 않게 감정을 드러내며 위로하려는 듯 말했다.
“괜찮아. 원래 작곡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런 일이 많아.”
“…….”
“잘나가는 사람 작업물인 거 숨기고 익명 톡방에 평가해 달라고 올리는데, 남들이 그거 까면서 훈수 두면 그제야 옳다구나 정체를 공개하는 그런 거.”
위로라고 한 것 같기는 하다만, 고희범에게는 통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가 괴성을 지르며 한결 더 소파의 구석으로 파고 들어갔다.
‘됐다.’
가불기 하나 적립한 기분이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그래서 신곡으로는 김한석 미발표곡을 다듬어서 낼 거고, 이건 제대로 공개하기 전까지는 비밀로 하자.”
“선우는?”
조은솔이 벽에 몸을 비스듬히 기댄 채로 물었다.
“발표 시기를 선우 신곡 낼 때랑 맞춘다면서. 그거 그래도 돼? 아무리 그래도 같은 동아리 사람인데. 경쟁하는 모양이 되잖아.”
충분히 낼 수 있는 의견이었다.
음악이라는 건 시기를 안 겹치는 게 중요한 게 사실이니.
하지만 이에 관해서는 미리 의견을 맞춰 두었다.
“오히려 선우가 그렇게 하자고 했어요.”
“선우가?”
“네.”
나는 놀란 표정을 지은 조은솔을 향해 차분히 말을 이었다.
“전에 강릉에 갔을 때 이야기 나왔던 건데요. 언제 신곡 낼 거면 차트에서 정정당당하게 겨뤄 보자고 하더라고요. 앞으로 그럴 일 많지 않을 거라면서.”
“아…….”
“안 그래도 한 번쯤 기회를 만들 생각이었어요. 레베카 로드리게즈랑 부른 곡을 내도 되겠지만, 그건 조금 치사하잖아요?”
레베카 로드리게즈의 이름값은 상상 이상으로 거대했다.
나라는 뮤지션의 순수성이 사라질 정도로.
그 파급력 넘치는 이름이 이번 약속에 끼어드는 순간, 이건 임선우와 김한영의 승부가 아니게 되리라.
‘나랑 선우는 비슷한 장르 뮤지션이니까, 될 수 있으면 같은 조건에서 승부를 보고 싶다.’
딱 그 정도 마음이었다.
저쪽에서 범인이 있으니 뭐니 해도, 우선은 임선우와의 대결에 더 흥미가 크다.
미국으로 진출을 하든 뭘 하든, 일단 이거는 끝내 두고 가자.
‘그다음에 같이 듀엣을 내도 좋겠고.’
성공하거든 내 곡으로 같이 하나 내자고 했던 것도 기억한다.
그것도 언젠가는 시작해야겠지.
“말 나온 김에 옛날 스타일로 가죠.”
* * *
작업 방식은 예전에 공요한과 한 차례 시도했던 적 있는 그것으로 하기로 했다.
아날로그 녹음.
“김한석의 [미발표 신곡]이 아날로그 녹음으로 만들어진 작업물이잖아요. 그러니까 이번 곡도 김한석에 대한 트리뷰트(헌정곡) 컨셉으로 만들자는 거죠.”
공요한은 내 말을 듣고는 별다른 반응 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옛날 소리를 재현해 보자는 거군요.”
정확하다.
김한석의 그 느낌을 이 시대에 정확하게 재현할 생각이었다.
“보컬이나 기타는 그렇다 치더라도, 세션은 전부 새로 구해야 할 텐데. 그것도 저 곡과 같은 삘링으로 연주할 수 있는 실력자만 섭렵해서.”
“어려울까요?”
“글쎄요.”
공요한은 뺨을 긁적이더니 말했다.
“해 볼 만한 가치는 있네요. 크게 어려울 것 같지도 않고.”
역시.
이쪽이라면 내 아이디어를 최대한 실현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공요한은 여기에 한 마디를 덧붙였다.
“하지만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다듬어 보죠. 옛날 기술들은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구닥다리인 부분이 많으니까요.”
“아하.”
이번에는 나도 마음에 드는 말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는데 공요한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혹시 애니메이션 보세요?”
“가끔 보죠. 윤서 형이 좋아해서.”
“애니메이션에 보면 요즘 최신 기술로 80~90년대 느낌을 재현하려는 사람들 많잖아요. 그거랑 같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굳이 비유를 들 필요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느낌은 와닿았다.
결과물은 아날로그를 지향하되, 수단은 옛것이든 요즘 것이든 안 가리고 최대한 좋은 것만 골라 쓰겠다는 것.
‘그렇지. 옛날 음악이라고 해서 꼭 옛날 방식대로만 하리라는 법은 없지.’
크게 동의하는 바다.
하지만 기술적으로는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문제는 세션이었다.
이번 [미발표곡]은 나 혼자 지지고 볶는 곡이 아니기 때문.
밴드 사운드를 기반으로 만든 곡이기에, 일렉기타와 베이스, 드러머까지 몇몇 세션을 더 찾을 필요가 있었다.
김한석의 퀄리티를 쫓아갈 수 있는 사람들로.
하지만 이것 또한 방법을 구상해 두었다.
그건 바로.
“이 친구가 한석이 곡을 재현하겠다고?”
당사자들을 찾는 것이었다.
“꼬맹이가 재밌는 짓을 하네.”
그 당시 세션을 맡았던 기타리스트, 박창서가 웃음을 터뜨렸다.
익숙한 웃음이었다.
박창서는 당시에도 나보다 연상이었는데, 바람이 불면 부는 방향으로 걸어갈 것만 같이 나긋나긋한 사람이었다.
‘나이는 많이 먹었지만, 그때 그 사람이 맞다.’
김진산 사장에게 소개를 받았다.
내게 바로 연락을 준 건 아니고, 한윤태에게 전달을 준 걸 한윤태가 내게 다시 전달을 줬다는 식으로.
이번 미발표 음원도 마찬가지였다.
한윤태에게 전달한 걸 내가 2차로 받았다.
‘굳이 한 다리 걸쳐서 일을 복잡하게 하는 이유는 모르겠다만.’
김진산 사장이 원래 솔직한 사람이 아니었으니, 그러려니 했다.
일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벌써 나이로 60~70에 달한 세션들이 추억을 늘어놓듯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었다.
“죽은 줄 알았던 사람한테 갑자기 연락이 와서 놀랐더니, 설마 이런 일감이 있을 줄은 또 몰랐네.”
“살다 보니까 별일이 다 있어.”
“몇십 년 전에 했던 거라 기억도 안 나는데, 할 수 있을는지.”
김진산 사장의 회사 소속으로, 안에서 세션으로 자주 참여했던 사람들이었다.
이름은 대외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음악에서만큼은 타협하지 않는 김진산 사장이 직접 뽑은 만큼, 그 실력은 진짜배기였다.
흔히 말하는, 노장들이었다.
‘어떻게든 연락이 닿는구나.’
그 시절의 실력자들을 눈앞에서 마주했다는 것.
그렇기에 내 마음속에도 기대감이 있었다.
이 사람들이 김한석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하는 그거.
내친김에 물어보았다.
“저기, 선배님들은 김한석을 직접 만나 보셨죠?”
“아 만나 보기만 했을까. 밥도 자주 같이 먹었지.”
“혹시 그 사람 어땠어요?”
은근히 기대감이 느껴지는 참이었다.
“흠, 김한석이 말이지.”
박창서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말했다.
“재수 없었어.”
“…….”
첫마디가 저거다.
눈가에 경련이 일려 하는데 그 뒤를 이어 베이시스트가 말했다.
“좀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 있었지.”
“…….”
“지나치게 자기 음악에 자신감이 새서 대화하면 좀 부담스러운 감이 있었어. 뭐든 다 아래로 깔본다니까.”
한술 더 떴다.
드러머를 맡은 노인도 말했다.
“이름이 윤태였나? 맨날 옆에 붙어 다니는 친구가 존경스럽더라. 어떻게 저거 비위를 다 맞추지?”
가슴이 아프다.
옛날 사람들이 설마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니.
한 명쯤은 좋게 말해 줄 줄 알았더니마는.
정확하게 명치에 꽂힌 화살이 얼얼해 휘청거리는 참이었다.
“그래도.”
박창서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좋은 사람이었지.”
“…….”
앞서 나온 말들과 완벽하게 대비되는 말.
그 짧은 말에 갈피를 못 잡고 우두커니 서 있는데, 그가 말을 이었다.
“매사에 서툴러서 그렇지, 은근히 주위 사람 챙기려는 게 있었어. 밥도 비싼 것만 사 줬고.”
그의 뒤를 이어 베이시스트 노인이 말했다.
“음악을 깔보기는 깔보는데, 그 직후에 자기가 돈 다 내줄 테니까 우선 앨범부터 내자고 해서 미친놈인가 했다니까. 욕을 할 거면 욕을 하고, 칭찬할 거면 칭찬을 하지. 사람이 참. 그렇게, 아니, 그립네.”
드러머도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 윤태라는 사람이 가끔 부러웠지. 걔는 김한석이랑 매일 붙어 다녔잖아. 그렇게 일찍 갈 줄 알았으면 나도 김한석 음악 좀 라이브로 더 많이 듣는 건데.”
“그래, 음악은 참 잘했지.”
“어떻게 그 나이에 그렇게까지 했는지 몰라.”
“딱 듣자마자 알았다니까. 이런 애들이 음악을 하는 거구나. 나도 김한석이랑 작업한 날에는 밤새 쉬지도 않고 연습했잖아. 뮤지션으로서의 기량으로 밀리는 게 너무 분해서.”
“아, 나만 그런 거 아니었어?”
전체적으로 옛날 노인들의 너스레 같은 것이었다.
김한석은 성격의 결함이 있는 사람이 분명했지만, 나름의 좋은 요소도 함께 갖춘 사람이었다는 그거.
요컨대, 내 삶이 완전히 엉망이진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말했다.
“일단 한번 들어 보세요.”
“바로 시작하게?”
“시간이 별로 없어서요.”
나는 세션들을 의자에 앉혀 둔 채로 김한석의 미발표 음원을 재생했다.
치직―――.
음원이 안 좋았다.
그 시대가 원래 그랬던 건지, 보관 상태가 안 좋았던 건지 음질이 영 아니다.
자잘한 노이즈가 꼈을뿐더러 전체적으로 안개가 낀 듯 선명하지 못한 음향.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살아나는 감성이 있었다.
“진공관 앰프로 노래를 듣는 것 같네.”
따뜻한 느낌이었다.
“그래, 김한석 목소리가 이랬지. 실물로 들으면 훨씬 절절한 게 있었어.”
세 세션들의 목소리에 한결 짙은 추억이 머물렀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노래를 듣는 건 듣는 거고,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이 세션으로서의 역량을 보존하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저 때 저 소리를 그대로 현대식으로 녹음해 보려고 하는데, 소화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흐으음, 해 봐야 알 것 같은데.”
세션들의 리더격, 박창서 되는 사람이 가방에서 낡은 기타를 꺼냈다.
본 순간 알았다.
저거, 수십 년 전 녹음할 때 사용했던 그 기타 그대로였다.
“나름대로 기억을 더듬어서 준비를 좀 해 왔지.”
그가 낄낄 웃으며 앰프에 기타를 연결했다.
그렇게 연주를 시작하고 몇 초.
박창서가 길게 호흡을 마시더니, 내쉬며 말했다.
“아직 쓸 만하지?”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까.
나는 짧게 고민한 뒤 입 밖으로 뱉었다.
“음원보다 훨씬 낫네요.”
뮤지션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극찬이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