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00
200화
어느 분주한 스튜디오.
방청객 석에서는 개미 한 마리 비집고 들어갈 틈이 안 보일 정도로 인파가 가득 찼다.
천장에는 온갖 조명 기구가 박쥐처럼 매달려 있다.
더 먼 곳을 바라보자면 촬영 도구 수십 대가 주렁주렁 걸렸다.
그 정 반대편.
무대 위 의자에 한 사람이 비스듬하게 걸터앉아 있었다.
단순히 앉아 있을 뿐.
하지만 그런 그에게 쏟아지는 환호성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꺄아아아아아―― !!!”
“임 선우! 임 선우!”
“선우야 사랑해!”
“세! 상! 의! 빛! 임! 선! 우!”
“세! 상! 의! 빛! 임! 선! 우!”
방청객 석에서 마치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듯 쉼 없이 환호성이 쏟아졌다.
그렇다.
지금 무대 위에서 홀로 고고히 앉아 있는 사람의 이름은 임선우, 데뷔와 동시에 한국 가요계의 핵으로 떠오른 남자 아티스트였다.
[황제의 아들] [황태자] [데뷔 후 정규앨범 1집으로 차트 1위 기록] [세 가지 싱글 앨범으로 3대 차트에서 3연속 1위 달성]작은 머리에 오밀조밀하게 모인 이목구비가 고양이상의 정석을 보여 줄뿐더러, 길쭉한 팔다리 덕에 무슨 옷을 입든 잘 소화한다.
외모만 그럴까.
여리여리한 외모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굵은 음색에 기타 연주 솜씨까지 두루 갖추었다.
작곡 실력도 뛰어나 앨범 수록곡의 절반을 자작곡으로 채웠다지.
[솔직히 나 아이돌 안 좋아하는데 임선우는 좀 쩔더라] [ㄹㅇㅋㅋ 쟤는 걍 뭘 하든 떴을 듯] [근데 임선우 아이돌임?] [몰?루 걍 다 잘하지 않나? ㅋㅋㅋ] [춤 안 추고 자기 노래 작곡 작사 다 하는데 어떻게 아이돌] [근데 YTG에서는 아이돌로 분류하는 것 같던데?] [싱어송라이터 아님?]이리도 타고난 기량에 YTG의 전폭적인 마케팅까지 합쳐졌다.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임선우가 대세로 등극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Q. 한국 가요계의 차세대 스타는?] [A. 필로데포] [Q. 임선우는 빼놓은 건가?] [A. 임선우는 차세대라고 말할 것도 없다. 임선우는 이미 스타다.]그야말로 천재라는 이름에 걸맞았다.
하지만 그런 그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건 무심한 표정이었다.
주위에서 환호성을 뱉어도, 온갖 칭찬을 쏟아 내도 표정에 큰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그를 둘러싼 상황에 별 관심이 없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성격이 그의 신비주의를 더더욱 키워 나갔다.
‘역시 임선우다.’
‘숨 쉬듯 음악만 생각하고 산다던데, 지금도 머릿속으로 곡을 짜고 있을 수도 있어.’
‘졸린가?’
갖은 추측이 오간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 가득 들어찬 건 단 하나였다.
‘한영이랑 겨루기까지 며칠 안 남았네.’
김한영과의 경쟁이었다.
약 보름 전, 김한영은 그에게 음악으로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보자며 선언했다.
이번 신곡의 발매 시기를 같은 날로 짜자는 것이었다.
둘 중 누가 이기는가.
이 결과를 두고 임선우를 포함해 YTG의 이슈, 언론의 주목까지 잔뜩 쏠렸다.
[김한영 vs 임선우] [한류의 미래를 책임질 스타는 누구?] [우정보다 중요한 경쟁]김한영 측의 돌발행동 탓에 YTG도 비상사태가 되었다.
[김한영 그 새끼 우리한테 뭐 감정 있나?] [자기가 이길 줄 아나 보지?] [아오, 꼴 받아!] [요즘 좀 뜬다고 콧대가 하늘 끝까지 솟은 것 같은데, 어디 한번 두고 보자고.]가뜩이나 이번 신곡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대뜸 김한영이 장애물을 깔아 버린 셈이니 말이다.
사실, 임선우의 기준에서 보자면 촌극으로밖에 안 보이는 일이었다.
YTG는 공룡이다.
그들과 경쟁 시기가 겹친다면 사뿐히 즈려밟고 넘어가면 될 일이었다.
이렇게까지 의식하고 분노한다는 거 자체가 YTG답지 않은 일 아니겠는가.
오히려 김한영을 내심 인정한 거 아닌가.
‘아버지도 이상하게 한영이 관한 일이면 사람이 바뀐다니까.’
평소 차분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 감정적인 행동을 일삼았다.
어쩌면 그는 김한영에게서 과거의 누군가를 비춰 보는 거 아닐까.
누구일지 추측하기 어렵지도 않다.
아마 김한석이리라.
‘김한석한테 매번 밀렸다고 했나.’
YTG 차원에서는 그의 아버지와 김한석이 70년대 내내 라이벌 관계였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동시기에 활동하며 같은 조건으로는 단 한 번도 앞선 적이 없었다.
객관적인 자료가 증명할뿐더러, 굳이 그런 게 없더라도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았다.
두 사람 사이에 결코 뒤집을 수 없는 차이가 있었다는 걸.
‘아버지한테도 콤플렉스가 있겠지.’
그게 요즘 들어 마케팅에 가열 차게 공을 들이는 이유일 테고.
마침 오늘 이 자리도 그런 자리다.
‘시끄럽네.’
귀찮다.
세상일이 그의 의사와 상관없이 숨 가쁘게 돌아가는 걸 보면, 매사가 공허하게 느껴지고는 했다.
그렇게 빈 허공을 부유하는 먼지만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만 있는 와중이었다.
“오늘도 좋은 무대 잘 봤습니다.”
MC가 마이크를 들이밀며 물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요즘 레베카 로드리게즈와 콜라보를 진행하며 유명해진 김한영과 같은 날에 신곡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혹시 그에 대한 소감 한마디만 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임선우의 입에서 준비한 대답이 또박또박 흘러나왔다.
“제가 이길 것 같네요.”
“역시 자신감이 있으시군요.”
“오랫동안 준비했으니까요. 이번 곡은 자신 있어요. 저희 대표님께서 직접 곡을 다듬어 주셨거든요.”
“하하, 아버님 음악 실력은 전 국민이 다 알죠.”
“음악에 관해서는 가족 관계를 넘어 한 사람의 대선배님으로서 존경하고 있습니다.”
YTG에서 사전에 이렇게 대답하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정작 임선우 본인의 생각은 뭐라고 해야 할까.
솔직히 말하자면, 그와 김한영 중에서 누가 이기든 큰 상관은 없다는 정도.
‘기왕이면 이기면 좋겠지만, 이기든 지든 딱히.’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다.
기대된다.
국단대 대학교 축제에서 만났을 때부터 한 번쯤 같은 무대에 서서 맞겨뤄 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와서 기쁘다.
임선우는 그런 생각을 품으며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다음 곡은 제 신곡입니다. 초반부만 맛보기로 살짝 들려드리겠습니다.”
* * *
시간이 흐르고 흘러.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발표 당일이 되었다.
‘와, 시간 개 빨리 가네.’
지나치게 집중한 탓이었다.
작업에 한껏 집중하다 보면 일 년이 한 달 같고, 한 달이 한 주 같다.
더욱이 좋은 음악을 만들 때는 더더욱 그러했다.
“좀 어떤 것 같아?”
김한영은 [미발표곡]의 최종 결과물을 두고 공요한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흐음…… 일단 더 들어보고.”
그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눈을 깜빡거렸다. 곧 나올 대답을 기다리는 김한영의 심장이 작게 요동쳤다.
‘유독 심혈을 기울였지.’
그야 내 노래를 원래 좋아하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공요한은 이 노래를 두고 어떤 과제처럼 여기는 듯했다.
요즘 기술을 적용해 옛날 노래의 맛을 그대로 재현한다는 과제.
옛 맛이 나면서도 촌스럽지 않게.
다룰 수 있는 온갖 악기와 온갖 효과를 전부 적용해가며 샅샅이 비교했고, 그걸로 모자라 해외 음향 연구소 논문까지 뒤적거렸다고 했다.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이번 음원의 완성도를 두고 가장 엄격한 잣대를 가진 건 공요한이 맞다.’
김한영은 속으로 이 사실을 인정했다.
하물며 공요한의 대답을 기다리는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제 슬슬 통과겠지?’
‘손목이 뼛속까지 시리다.’
스튜디오로 모신 세 명의 세션도 슬슬 죽으려는 기세였다.
처음에만 해도 옛 신화를 재현한다는 느낌으로 열정에 불타올랐던 사람들이다.
그야말로 노익장의 기세를 보여 주었지.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거의 매일 출근시키기를 어느덧 보름이 넘으니 시들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놈들은 노인공경을 모르나?’
‘한창 현역으로 활동했을 때도 이렇게까지 곡 하나를 빡세게 다듬은 적은 없는데. 이것들은 대체 어디까지 완성도를 올리려는 건지.’
베이스와 드럼을 맡은 두 노인이 비틀거리는 사이.
이번 곡의 일렉기타 세션을 맡은 기타리스트, 박창서가 속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결과물은 확실해. 처음 녹음했던 것도 충분히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걸 보면 그동안 했던 것들이 전부 잡동사니로 보일 정도다.’
인정했다.
그의 눈앞에 서 있는 이 젊은 뮤지션은 단순히 김한석을 추종하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김한석이 되려 한다.
아니, 그 이상으로 김한석 본인을 뛰어넘으려 하는 듯했다.
‘그러는 게 아니고서야 이런 광기에 가까운 열정은 받아들이기 어렵지.’
처음 만났을 때만 그의 눈에 비친 김한영은 그저 어린 후배에 불과했다.
재밌는 일감에 돈도 많이 준다니까 찾아왔지, 그의 솜씨를 인정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이제 아니다.
불과 몇 주 사이, 그는 자신이 어엿한 아티스트라는 걸 증명했다.
그것도 아주 특별한 기량을 갖춘 아티스트.
‘이런 것들이 심심하면 한 번씩 튀어나오니까 나 같은 정상인은 음악으로 밥벌이하기 어렵지.’
그저 웃음만 나올 뿐이다.
이렇게 모든 감정이 빈 허공을 오가는 사이.
공요한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음원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기를 잠시.
“됐어요.”
비로소 결과를 입 밖으로 꺼냈다.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네요.”
그 순간이었다.
“흐아아아…….”
“크어억.”
“휴.”
세 명의 세션들이 일제히 긴 숨을 토해 냈다.
“마참내.”
“정말 이러다가 자연사하는 거 아닌가 싶었고만.”
“지긋지긋했다. 손가락 지문이 닮아 버리는 줄 알았어.”
지난 몇 주간 갈려 나간 반동이 뒤늦게 몸을 덮치며 몸이 폭싹 주저앉았다.
공요한은 그런 세션들을 뒤로하고 못마땅하다는 듯 덧붙였다.
“마음만 같아서는 이렇게 저렇게 더 만져 보고 싶은데, 시간이 안 돼서 화나네요.”
아직 성에 안 차는데, 시간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넘긴다는 말이었다.
그 말에 박창서가 움찔하더니 말했다.
“……여기서 더 만지려 했다고?”
“시간만 있었다면요.”
“후, 후후, 그래, 시간이 없어서 참 아쉽구먼.”
간신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니 이번에는 김한영이 말했다.
“방법이 없진 않죠.”
“뭣이?”
“일단 정식으로 공개하고, 시간 좀 지난 다음에 추가 녹음해서 재녹음판을 내놓는 것도 방법이기는 한데요.”
“…….”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경우도 종종 있잖아요. 10주년 기념 앨범이라면서. 상술이라며 반응이 별로 좋지는 않지만요.”
그렇게 말하는 김한영의 눈빛에서는 어떤 광기가 돋보였다.
저건 그거다.
필요하다면 정말로 재녹음을 고사하겠다는 목소리였다.
‘진심이다.’
태연하기 짝이 없는 말투 속에 감춰진 심연을 본능적으로 감지한 박창서가 침을 꼴깍 삼키더니 말했다.
“후후, 후, 아니야, 한영 군, 지금 이대로도 충분한 것 같네. 이보다 더 나은 결과물은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어.”
“그래요? 그래도 더 해 보면.”
“아니, 더 할 필요 없을 듯해.”
“그래도.”
“난 이만 약속이 있어서 가 봐야겠네. 여봐, 친구들, 가 보자고.”
그렇게 세 사람은 바로 떠나겠다는 듯 지체 없이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김한영은 그 모습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
‘저 사람들, 몇십 년이 지났는데 참 한 톨도 안 바뀌었네.’
옛날에도 같았다.
그의 무리한 작업량에 볼멘소리를 뱉으면서도, 막상 요구하는 일정만큼은 끝까지 따라왔었지.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들은 늘 기대 그 이상이었다.
한마디로, 최고의 세션맨들이었다.
‘참 즐거웠지.’
김한영은 그 시절을 되새기기를 잠시, 공요한에게 물었다.
“이제 정말로 끝이죠?”
“자잘하게 더 만질 거 있기는 한데, 오늘 하루 안에 될 것 같네요.”
“그럼 슬슬 정리해서 보내죠.”
김한영이 씨익 웃음을 지었다.
앞으로 이틀만 지나면 세상이 온통 그의 노래로 뒤덮이리라.
딱 그 정도의 작업물이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