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01
201화
김한영.
임선우.
두 차세대 스타의 경쟁은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두 사람만의 경쟁은 아니다.
더 넓게 보자면, 두 회사의 경쟁이기도 하였다.
YTG.
3대 엔터 중 하나로서 현대 아이돌 중심 음악 시장에서 최고라고 볼 수 있을 기업.
그리고 네온 엔터.
3대 엔터보다는 한 수 아래였지만, 미튜브를 중심으로 순수 뮤지션 외에도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며 덩치를 키운 기업.
이러한 두 회사의 전쟁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하여, 두 사람이 음원을 공개하는 시각 전후로 물밑 전쟁이 일어났다.
[멜로 차트 메인페이지 프로모션 이야기 어떻게 됐어요?] [YTG에서도 같은 이야기가 들어와서 동시에 거는 건 어떻겠냐는데? 경쟁 구도로.]일차적으로는 음원 사이트 경쟁부터 시작해.
공개 날 출연할 음악 방송까지.
[뮤직룸 예약 잡아 둔 거 어떻게 됐어요?] [저쪽에서는 손을 들고 반겼습니다. 선우가 가장 좋은 시간대로 잡았어요. 사실, 선우니까 당연한 거지만요.] [거기 김한영은 출연 안 한다는데요?] [네?] [예?] [네?] [PD가 먼저 제안했는데, 자기 채널에서 생방송 진행하겠다며 거절당했다고…….] [걔 진짜 미친 거 아니에요?] [뮤직룸 시청률보다 지 방송 보는 사람이 더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 […… 진짜요?] [네. 걔 뭐 하나 올리면 100만 200만은 그냥 깔고 가는데, 요즘 음악 방송 시청률 1% 나올까 말까 하잖아요.] [아니, 음방 출연을 시청률 때문에 하는 게 아니기는 한데.]각 언론사의 메인 노출 기사와 인터뷰, 화보까지 갖은 곳에서 보이지 않는 전쟁이 일어났다.
온갖 역량이 집중된 전쟁.
두 진영은 철저하게 자기네가 잘하는 분야에 집중했다.
임선우는 지상파 방송 위주로 출연하며 기존 음악 시장 본연의 프로모션을.
김한영 측은 철저하게 미튜브 중심 활동을 이어 나갔다.
[저렇게 한다고 팔리는 게 신기하네] [남들 고생을 비웃는 것도 아니고]YTG에서는 그러한 김한영의 활동을 두고, 큰물에서 놀 줄 모른다고 비판하기도.
[아주 지 혼자 남다르지] [음악 한다는 애가 방송에 안 나오면서 어떻게 먹고살겠다는 거야] [그런다고 투어를 큼지막하게 뛰는 것도 아니고, 예능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특별 무대에 찬조 출연하는 것도 아니고.]하지만 겁에 질린 개가 크게 짖는 법이라고 하였던가.
누군가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기도 했다.
이번 경쟁을 기점으로, 김한영이 어떤 특이점이 될지도 모른다고.
아티스트 시장의 개편.
어쩌면 모두가 내심 인식은 하고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던, 그것이 김한영을 기점으로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저녁 6시.
[김한영 신곡, 미발표곡] [임선우 신곡, 양이 든 상자]두 사람의 음원이 동시에 시장에 공개되었다.
임선우는 그와 맞물려 [뮤직룸]에 출연했고.
같은 시각, 김한영은.
“날씨 되게 좋네.”
중경대학교 대학로 앞에 두 다리로 섰다.
* * *
“스읍.”
호흡을 길게 들이마신 순간, 중경대학교 대학로의 거리의 전경이 한순간에 눈에 들어왔다.
“와아아아아!”
“김! 한! 영! 김! 한! 영!”
“중경대 국문학과 역대 최고 아웃풋 김한영 파이팅!”
“한영아! 나도 카메라 좀 비춰 줘!”
온 사방에서 내 이름을 연호한다.
불빛이 쏟아지는 가로등 너머로 몇 분을 걸어야 하는 지하철 입구까지 인파가 제철 대게처럼 꽉 차 있었다.
가는 길목에 있는 상가 건물들을 보거든, 2층 3층까지도 창가 자리마다 내게 시선이 한가득 쏠려 있었다.
카메라의 수는 감히 세기도 어려울 지경.
‘이쯤 되면 어림잡아 몇천은 되겠네.’
이제 아무 데서나 공연을 해도 이만큼 사람을 끌어모을 정도는 된다 이 말인가.
하지만 이것도 약과다.
오프라인 무대는 어디까지나 빙산의 일각일 뿐, 본체라고 볼 수 있을 온라인 무대는 숫자를 세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현재 시청자 수: 334,412] [현재 시청자 수: 345,115] [현재 시청자 수: 378,881]방송을 본격적으로 시작도 안 했음에도, 화면을 볼 때마다 시청자 수가 실시간으로 불어났다.
숫자만 봐도 배가 부를 지경.
이 흐름이 유지된다면 50만은 어지간하면 넘기겠지.
그리 생각하면 30만이라는 지금의 시청자 수도 그리 많게 느껴지지 않았다.
“김한영!!!!!”
“김한영 존나 사랑해!!”
최근 레베카 로드리게즈를 끌어들여서 크게 방송을 했을 무렵에는 100만까지도 찍어 봤고.
그럼에도 30만이다.
‘대충 잠실 올림픽 경기장의 4배 정도 되겠네.’
잠실 올림픽 경기장이 그냥 공연장인가.
아니다.
한국에서 가장 큰 공연장, 그게 바로 잠실 올림픽 경기장이었다.
그곳을 꽉 채우고도 3배로 넘칠 만큼의 관객이 내 방송을 보러 온 셈이었다.
처음 이 자리에서 공연했을 때는 어땠더라.
아르페지오인가 하는 동아리랑 경쟁했었는데, 그때는 50명이나 보러 왔었나.
단 2년 만에 관중 수를 1만 배로 불렸다.
‘역시 인터넷 방송으로 방향을 튼 게 맞았네.’
내 선택이 옳았다는 게 느껴진다.
음악 방송만 이런 게 아니라, 다른 방송들도 갈수록 이렇다고 한다.
TGA(The Game Awards) 같은 게임쇼는 동시 시청자 수로 근 1,000만 관객을 유치했다고 했던가.
“엄마! 나 미튜브 나왔어!!”
롤드컵은 무려 7,386만 명이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나도 아직 갈 길이 먼 듯하다.
더 크게 키워야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입을 열었다.
“요즘은 미세먼지도 없고, 이래서 추운 게 차라리 낫다니까요. 윤서 형, 나중에 다 같이 러시아 여행이나 한번 다녀오죠.”
“응, 안 가.”
“출장비로 보너스 2개월분 챙겨 드림.”
“비행기 예매는 내가 할까?”
짧은 대화에 웃음이 번져 나가며 방송 후원이 비 내리듯 쏟아졌다.
[2만 원 후원!] [윤서야 가기 싫으면 나랑 바꿔 주라] [5만 원 후원!] [한영아 나도 데려가 줘 한영아 나도 데려가 줘 한영아 나도 데려가 줘] [3만 원 후원!] [Приезжай в Россию] [천 원 후원!] [Korea No.1]너무 쏟아져서 읽기도 힘들다.
누적액을 보아하니 불과 1분 만에 홍윤서에게 제공할 보너스만큼 쌓여 있었다.
‘간은 이 정도면 볼 만큼 본 것 같고.’
특별히 공연 시간을 미루려고 질질 끈 건 아니다.
그보다는 6시 직후면 임선우 공연 있을 시간이라, 아주 조금만 뒤로 미뤘다.
특별히 밀릴 것 같아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내 나름의 배려라고나 할까.
“지금부터 하나, 둘, 셋을 세면 합죽이가 됩시다. 하나, 둘, 셋, 합.”
슬슬 시작할 생각으로 마이크에 중얼거린 순간이었다.
[합!] [합!] [합!] [합!] [합!]채팅창으로는 한 글자짜리 리액션으로 덮여 버렸으며.
이 대학로 거리는.
“…….”
“…….”
인적 드문 시골의 새벽길처럼 적막에 감싸였다.
우리 관객님들은 말도 잘 듣지.
나는 빙그레 웃으며 기타를 들고 말했다.
“15분 전 공개한 제 신곡입니다. 제목은 미발표곡. 지금부터 들려드리겠습니다.”
정말로 시작할 순간이 왔다.
* * *
미발표곡.
제목은 말 그대로, 미발표곡이다.
다른 제목을 붙일까 고민도 해 봤지만, 결국에는 원래 제목을 활용하기로 했다.
추후 김한석의 [미발표곡]이라는 복선으로 삼을 수도 있고.
내가 만든 원곡을 존중한다는 느낌을 주고 싶어서.
“들리지 않는 목소리가 있다고 해요.”
또한, 메시지를 담지 않고서는 가사가 도저히 안 써지는 버릇도 있었다.
“그 목소리는 남모르게 묻혀서, 한껏 들려주려고 해도 저 두꺼운 진흙 아래 가라앉아 숨도 못 쉬고.”
미발표곡의 메시지는 이랬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도저히 말하지 못 하는 심정을 그려 넣어 보았다.
원곡의 가사와는 분명 달랐다.
하지만 어차피 원곡 가사 쓴 사람도 나다.
그러니까 가사 좀 바꾼다고 한들 큰 상관은 없지 싶다.
디링-.
연주 스타일은 옛날의 오리지널을 추구하되,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을 살짝 섞었다.
‘더 빠른 템포.’
김한석의 연주라고 하면 속도보다는 디테일이었다. 한 번의 피킹에도 최대한 많은 변주를 추구하는 것.
그것을 이번에는 살짝 뒤틀어 보았다.
‘디테일을 조금 줄이고, 대신 피킹의 절대적인 양을 늘려 보자.’
숫자를 늘렸다.
바로 핑거스타일로 연주를 하며 말이다.
핑거스타일.
피크가 아닌 손가락에 의존해 현을 치는 기법이었다.
디딩――! 팅! 타다닥.
몇십 년 전에는 하는 사람만 하는 기법이었지만, 이제는 핑거스타일로 기타를 접하는 사람마저 생길 정도로 대중적인 주법으로 떠올랐다.
피킹 한 번의 디테일은 포기한다.
대신 피킹의 숫자 그 자체로 절대적인 정보량을 늘렸다.
한 번의 정교한 펀치보다, 열 번의 다채로운 변주를 넣은 펀치와도 같았다.
“그 사람은 아래에 있어서, 그 사람은 이제 없어서, 그 사람은 어제와는 달라서, 그 사람은 사라져서도 쇠하지 않아서.”
내가 김한석이 되었다는 컨셉으로 가사를 지어 보았다.
죽은 김한석이 억울한 감정을 호소하는 듯한 가사로 들리게끔 구성했다.
물론, 모르는 사람이 듣는다면 그저 호소하는 노래일 뿐이었다.
“왜 나는 그런 사람이어야 하나요. 아직 하지 못한 말이 많았는데. 눈에 바느질하고, 귀를 테이프로 막고, 입을 가리고.”
대중적인 곡이 아닐 수도 있겠다.
하지만 원래 나라는 사람이 대중적인 노래를 부르려는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하고 싶은 노래를 하는 겸, 들어 주는 사람이 많으면 좋겠다 정도일까.
대중성은 어디까지나 수단이다.
이것만큼은 처음 음악을 시작했을 때의 초심을 그대로 이어 왔다.
‘세상이 내 노래를 반기지 않을 때,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했었나.’
김진산 사장이 내게 한 말이었다.
[네가 세상에 맞추든가, 아니면 세상을 너한테 맞추든가.]후자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음악이라는 게 장르에 따라서는, 세계적인 일인자라고 하여도 생계를 보장하지 못할 때도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한다.
이게 내 오리진(origin)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운이 좋았다.
30년 전 음악 시장을 말하자면 세상이 내 취향에 맞춰 주었으며.
그 시대가 저문 지금은.
“너는 내게 비극을 주고, 시련을 주고, 그림자로 가려 살지 못하게 하고. 하루살이로 살아가게 하고.”
이런 내 노래라도 귀를 기울여 주겠다는 사람들을 끌어모을 방법이 생겼으니 말이다.
그것도.
[현재 시청자 수: 523,588명]50만 명이 넘게 말이다.
‘음악으로 먹고사는데 이 정도면 차고 넘치지.’
나는 모처럼 솟아오르는 보람을 느끼며 노래를 이어 나갔다.
“난 가라앉고 있지만, 조만간 다시 일어서 볼 생각이에요.”
어느덧 곡이 끝에 다다랐다.
그리고.
곡이 끝났다.
분명히 끝을 맞이했다.
목소리를 멈추고 손을 내려놓은 지 5초가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거리에는 적막이 가득했다.
‘흠.’
이걸 뭐라고 하더라.
실망이라고 했나.
아니면.
‘여운?’
여기까지 생각이 닿은 순간이었다.
“우아아!”
“크아아아악!”
“김한영!!!”
곧 거리가 함성에 잠기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후자가 맞았나 보다.
비로소 작은 안도감과 성취감이 함께 가슴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고 보니까 참.’
슬슬 순위 갱신됐겠네.
그런 생각으로 음원 사이트를 슬쩍 본 순간이었다.
[x1 – 김한영 / 미발표곡 (new!)] [x2 – 임선우 / 양이 든 상자 (new!)]첫 스타트는 내 승리인 듯하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