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07
207화
“…….”
김한영의 폭탄선언과 함께 쥐 죽은 듯 조용해진 공항 로비. 기자들의 이마 위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다섯 곡을 부르겠다고? 여기에서?’
‘공항인데?’
‘원래 공항에서 버스킹해도 되는 건가?’
‘애초에 이럴 계획이었나?’
‘저쪽 기자들끼리는 다 알고 온 거겠지?’
모르겠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한참 옛날부터 기획한 이벤트라고 해석함이 옳았다.
하지만 상대는 그 김한영이다.
작은 공연 하나를 하더라도 남들처럼 안 하는 걸 모토로 삼는 괴짜.
신곡을 발표했으면 본전 뽑으려 공연이나 돌 것이지, 얼굴을 비추기는커녕 방구석 방송에 더 시간을 들이는 사람이지 않나.
그런 그이기에 머리를 맞대고 어떤 추측을 쏟아 낸들 의미가 없었다.
그저.
‘특종이다!’
기쁨의 비명을 지를 뿐.
“찍어!”
“여기 내 자리야!”
“김한영이다!”
상황 파악이 끝난 순간, 가히 전쟁이라고 봐도 좋을 자리싸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기자들만 그런 게 아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공항 로비 승객들도 입을 쩍 벌렸다.
“미친.”
“김한영 공연 티케팅 난이도 X발인데 여기서 이렇게?”
“우리 곧 출국 수속이야.”
“닥쳐! 지금 그깟 비행기 푯값이 문제야?”
그렇게 공항이 공연장으로 변한 한편.
[아 ㅋㅋ 기만영도 집 밖에 나갈 줄 아냐고] [이, 샛기, 는, 공연하기 전에, 시청자들한테, 공지하는 법이라는 걸, 모르,나?] [몰?루] [누가 김한영 공항에 유기했냐] [이샛기 그냥 출국 금지 때리면 안 됨? 제발] [김포공항임? 인천공항임? 인천공항이라고 해 줘 제발] [└인천임] [└오예ㅋㅋㅋ표 취소햇다 ㄱㅅㄱㅅ] [└사실 김포임] [└??? 취소했는데?] [돈 줄 테니까 투어 좀 하라고… 제발 투어 좀… 기만영 이 갯색기야… 제발… 투어 좀 해…. 지갑 벌려….]시청자들만 혈압이 오를 뿐이었다.
* * *
인터넷에 글이 올라왔다.
[제목: 나 지금 공항인데 김한영 공연한다.] [내용: 지금 러시아 가려고 김포 공항에서 비행기 기다리는데 김한영이 갑자기 와서 공연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음원으로만 들어봤는데 ㄹㅇ 개미쳤음
실물 잘생겼고 목소리 달달하고 기타 연주 개쩐다
팅 애들도 같이 왔는데 중간중간 피처링 곁들이는 거 하모니가 장난 아니야]
바야흐로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한 지도 10년이 지났다.
이제 현장에서 일어나는 돌발사태가 인터넷에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세상.
하지만 김한영의 등장은 뭐라고 할까.
[ㅋㅋㅋㅋㅋㅋㅋㅋ 허언병 도졌네]믿어 주는 사람이 좀처럼 없었다.
[김한영이 공항에서 공연을 왜 함 ㅋㅋㅋ 한다면 돈 받고 방송에 나가거나 큰데 가서 하겠지] [ㄹㅇ 김한영 오프라인 공연 거의 안 하는 거 유명한데 관심 끌려고 별말을 다 하네] [걔 방구석 뮤지션이라고 아 ㅋㅋㅋㅋ]아무도 안 믿는다.
사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김한영 본인만 몰랐을 뿐, 그의 최근 이미지는 오프라인 공연 절대 안 하는 뮤지션에 가깝게 굳어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러던 와중.
[제목: 김한영 진짜 공항에서 버스킹하고 있다니까?] [내용: {사진 첨부}보셈 ㅡㅡ
내가 거짓말을 왜 하냐
김한영 지금 진짜로 떴고, 기자들도 엄청 많이 와서 막 사진 찍고 동영상 찍고 난리 났음
지금 방송도 켰는데?
좀 봐라]
인증 사진이 파도타기처럼 우르르 올라오기 시작하며 상황이 뒤바뀌었다.
[????] [?] [???] [???????????] [?????????????????] [진짜 김한영?] [짭한영 아님?] [짭한영이 뭐임?] [요즘 김한영 흉내 내는 애들 엄청 많잖음. 막 창법이랑 기타 따라 하는 애들] [그런 애들이 있나?] [김한영 노래가 은근 쉬워서 많이들 카피하고 그러더라 ㅇㅇㅇ] [지난번 우리 학교 축제 때도 짭한영만 한 다섯 명쯤 나왔음 ㅋㅋㅋㅋㅋㅋㅋ] [조만간 너의 음색이 보여 한번 찍어도 되겠네]본격적인 소동의 시작이었다.
어느 인디 밴드의 이야기가 있다.
1년에 공연을 두 차례도 안 여는 밴드인데, 새벽에 공연을 오픈하자마자 3분 만에 매진되었다는 이야기.
김한영이 지금 마침 그러했다.
[지금 출발한다] [?] [다섯 곡만 부르고 튄다는데?] [택시타고 가면 됨] [아니 그러니까 택시타고 출발해도 시간이 안 맞을 거 아님] [ㅋㅋㅋㅋ 앵콜 한 번은 하겠지] [김한영 냄새만 맡아도 개이득 아님? ㅋㅋ] [ㄹㅇ 김한영 왔다 간 곳 인증샷 찍으면 된다고 ㅋㅋㅋㅋ]공항이 사람으로 점점 차오르기 시작했다.
원래 사람이 많은 장소이기는 하나, 지금은 평일 점심 시간대.
상대적으로 한적해야 정상일 시간이었다.
그것이.
“언제 사람이 이렇게 늘었지?”
가히 콘서트장을 연상시키듯 붐비기 시작했다.
김한영 본인마저도 이상 상황에 조금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흠.”
놀라운 일이다.
그의 공연을 보고 싶은 사람이 많은 건 당연한 일이라지만, 이렇게까지 달려온단 말인가.
문득, 여기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 김한영의 머릿속에 떠오른 장난기가 하나 있었다.
원래대로였다면 안 했겠지만, 괜히 질러 보고 싶은 그런 거.
‘어디 보자. 비행기가 언제 출발이지.’
한 40분 남았다.
수속을 생각하면 지금 바로 정리하고 출발해도 아슬아슬한 상황.
하지만 비행기 시간 핑계 대면서 뒤꽁무니에 불나게 달아나는 건 별로 로망이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진짜 뮤지션이라면 뭐라고 해야 할까.
‘그거 좋네.’
마땅히 해야 할 행동이 있었다.
김한영이 손을 하늘 높이 들어 올리며 큼지막한 목소리로 외쳤다.
“앵콜 듣고 싶은 사람 손?”
“……!”
그 짧은 한마디에 파도타기를 하듯 김한영을 중심으로 바깥까지 무수한 팔이 가시밭처럼 돋아났다.
이어서 흔히 공연장에 가면 따라오는 그 구호까지 함께.
“앵! 콜! 앵! 콜! 앵! 콜! 앵! 콜!”
“앵! 콜! 앵! 콜!”
“앵콜!”
“와―― !!!”
“김한영 그는 신이야!!!”
귀가 쩌렁쩌렁 울릴 만큼의 목소리.
김한영은 그 목소리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식구들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물었다.
“그렇다는데?”
“……야, 김한영 너 설마.”
고희범이 눈가를 씰룩거리더니 말했다.
“그거 아니지?”
“그거 맞을걸.”
“아니라고 해 주라.”
“응, 아니야.”
김한영이 평소 표정 변화가 잘 없는 그답지 않게 빙그레 웃음을 지어 보였다.
딱 다섯 곡만 부르고 갈 생각이었는데, 마음을 바꿨다.
김한영이 손을 들고 외쳤다.
“저 비행기 출발까지 한 삼사십 분 남았거든요?”
“……!”
짧은 한마디에 관객들의 시선이 휘둥그레졌다.
그 남은 시간, 얼마 안 되는 시간 동안이나마 어떻게든 추가로 한 곡이라도 더 불러 주겠다는 건가.
승객들이 일말의 감동마저 느낀 찰나, 김한영이 말을 이었다.
“근데 그냥 안 타려고요.”
“…….”
그럼 설마.
“텐트 칠 준비 하세요.”
역시, 비행기 티켓값은 너무 싸다.
좋은 자리를 택한 탓인지 왕복으로 천만 원쯤 했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성원에 비해 지나치게 저렴했다.
‘까짓거, 다시 사면 그만이지, 뭐.’
그러고 보니까 나중에 여기 공항 책임자가 와서 뭐라고 따질 것 같은데.
‘그럼 공항 밖에서 해야겠다.’
김한영이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여기서 이러면 실례니까, 나가면서 해 보죠.”
그렇게 공항 바깥을 향한 순간이었다.
기적.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 수많은 관객들이 반으로 갈라지며 길을 만들어 주었다.
저벅저벅.
그 틈을 천천히 걸어나가는 김한영.
이어서, 그의 뒤를 쫓는 사람들이 부채꼴로 줄지어 거대한 행렬을 이루기 시작했다.
마치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연상시키는 광경.
그 모습에 차마 근무지를 이탈할 수 없는 공항 직원들만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비행기를 만들라니까 기차를 타고 있냐 ㅋㅋㅋㅋ] [솔직히 공항에서 기차놀이는 못 참지 ㅋㅋㅋ] [ㅋㅋㅋ기어코 해외토픽을 만들고 가는 쉑 ㅋㅋㅋㅋ]* * *
공항에서의 사건이 끝났다.
본격적으로 비행기에 오른 건 무려 4시간이 더 지난 뒤였다.
콘서트 한 방 부셨다.
하지만 막상 비행기에 올랐을 무렵, 기내에서 말을 거는 사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묘하게 아쉽네.’
요즘은 이런 쪽으로 교육이 잘 되어 있다고 했던가.
승무원이 승객에게 아는 척하며 말을 거는 게 일종의 금기라고 했다.
‘나야 편하니까 장땡이기는 한데.’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한껏 에너지를 빼낸 만큼, 눈을 감자 그대로 깊은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손님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저희 에어밴 항공과 함께해 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어느새 비행기가 미국에 도착했다는 안내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흐아암.”
뭘 했다고 벌써 도착이다.
‘모처럼 외국 나왔는데도 그다지 감흥이 없네.’
안내에 따라 눈을 벅벅 비비며 바깥으로 나가자, 바깥에서 픽업 예약을 잡은 차량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차를 타고 몇 시간.
자동차에 몸을 실은 채 물 흐르듯 시내에 도착했을 때.
나는 조금이나마 편하게 거리를 걸을 수 있었다.
‘알아보는 사람이 별로 없네.’
한영 아카데미가 꽤 흥행했음에도 알아보는 사람이 드물다.
그렇게 편안하게 걸어 마침내 도착한 고급 주택가의 인근 카페,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요오오오오오.”
손을 번쩍 든 사람.
그러니까, 레베카 로드리게즈 되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마스크를 쓰고 선글라스를 낀 채로 내게 팔을 휘둘렀다.
한국에서 봤을 때나 지금이나 유명인이라고는 전혀 짐작되지 않는 몸놀림이다.
오히려 화장기라고는 전혀 없는 얼굴 탓에 살짝 낯설기까지.
“웰컴 투 USA. 메이크 아메리카 그레이트 어게인.”
뭐라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좀 심하게 반가워하는 그녀의 모습이 신기해 물었다.
“저 그래도 지각 좀 한 셈인데, 화 안 내네요?”
“왜 화가 나요?”
“이유라도 좀 물어보지.”
“알아요. 공연하느라 늦은 거.”
“어떻게 알았어요?”
내 질문에 레베카가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방송 봤으니까요.”
응, 그렇구나.
이 사람도 내 방송 봤구나.
대충 안부 인사 겸 잡담을 나누기를 잠시, 우리는 지체할 거 없이 업무 이야기로 나아갔다.
“일단 좀 급한 이야기지만, 오늘이나 내일 저녁에 바로 출연해 줬으면 하는 TV 프로그램이 있어요.”
그녀가 대뜸 내민 일정이 있었다.
“TV 프로그램?”
“도라 마그리트 쇼.”
짧게 물어본 순간, 레베카 로드리게즈의 얼굴에 배시시 웃음이 올라왔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저녁 시간대 라이브 토크 쇼 방송 중 하나죠. 운 좋게 자리가 비었거든요. 한영 씨만 괜찮다면 게스트로 초대해서 인터뷰를 진행하면 어떨까 싶어요.”
토크 쇼라.
그러고 보니까 미국이 토크 쇼의 천국이기는 했지.
한국의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의 지위를 미국에서는 토크 쇼가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도라 마그리트 쇼라면 나도 이름을 들어보았다.
‘도라 마그리트, 그 사람 꽤 유명한 뮤지션이었지.’
나 때는 뮤지션으로 한창 활동했던 사람이었다.
장르는 포크.
그러다가 방송에 재능을 보이더니, 아예 음악을 접고 토크 쇼 호스트로 직종을 변경했다나.
그게 벌써 20년 전.
덕분에 요즘 사람 중에서는 그가 노래를 불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드물다고 했다.
아니면 한물간 옛사람 정도로 보거나.
‘방송이 크게 달갑지는 않지만, 일단 인지도 한번 띄워 둬서 나쁠 건 없겠지. 아니, 그보다는 내가 어느 정도의 인지도를 가졌는지 확인하고 싶기도 했고.’
출연을 두고 짧게 고민하고 있으려니 레베카가 내게 물었다.
“기획사랑 계약상에 문제가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죠?”
“아뇨, 그런 쪽으로는 좀 자유로워서.”
네온 엔터와 계약할 때 조건이었다.
수익 활동에 있어서 회사 측이 제안은 할 수 있되 무엇을 선택할지는 전적으로 내 자율인 것.
수익 비율부터 시작해 독립권까지.
특혜라고 봐도 좋았다.
옛날 테슬라 시절부터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기에 가능한 일.
“나쁠 거 없네요. 출연하죠.”
그래서 결론을 내린 순간이었다.
“완벽해요. 하지만 한 가지 미리 말해 둘 게 있어요.”
레베카가 이거 하나는 꼭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라이브쇼잖아요. 진짜 라이브쇼. 거기에서 한영 씨한테 어떤 실력 검증을 하려고 들지도 몰라요. 꽤 가혹한 방식으로.”
“예를 들면?”
실력 검증이라.
실력에 자신이 있으니 무서울 거라고는 없다.
어느 쪽인가를 묻는다면 오히려 환영이지만, 그 레퍼토리 정도는 알아 두고 싶다.
그렇게 생각한 찰나.
레베카가 기다렸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도라가 자기 노래를 한번 불러 보라고 할 수도 있어요.”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