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16
216화
단기간에 주가가 확 올라갔다.
원래부터 찾는 사람이 많은 몸이었는데, 이제 연락이 죽 밀려서 체크조차 하기 어려울 지경에 다다랐다.
[먼저 뉴욕 쪽 큰 언론사 하나에서 인터뷰 요청을 했고요. 네? 생각 없으시다고요?] [의류 회사에서 콜라보 제안을 보냈습니다. 아는 사람은 적지만 세계적인 명품 업체인데 한영 씨의 이미지 고려에 도움이 될 것 같지만…… 아마 생각 없으시겠죠?]매일 같이 거절만 하니 강도수 사장이 하소연을 쏟아 낼 정도로.
[생각해 보니 건당으로 말하는 게 의미가 없군요. 그냥 숫자로 따지는 게 편하겠습니다. 예, 어제 하루에 들어온 제안서만 38건입니다. 개별로는 왜 말 안 하냐고요? 어차피 안 받으실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살짝 화가 난 눈치까지 보였다.
그 순한 강도수 사장이 화를 냈다 그 말이다.
[물론, 그냥 하는 말입니다. 하고 싶으신 대로 하시면 됩니다.]좀 찔리는군.
그간 제안 들어오는 건 모조리 다 거절하기는 했다.
그게 큰 집단이 됐든, 작은 집단이 됐든.
물론, 나라고 해서 들어오는 제안에 아예 관심이 없는 건 아니었다.
불러주면 하나하나 숙지하고 검토하기도 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절로 일관했던 건 어디까지나.
“한영은 왜 일을 안 해요? 부르는 사람 많을 것 같은데.”
“별로 흥미가 안 생겨서요.”
흥미가 생기는 일이 잘 없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많을 때면 귀라도 기울여 보겠는데, 아무래도 음악을 할 때는 음악에만 집중하고 싶어서.”
그중에서도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지 못하는 성격 탓이 컸다.
“한번 음악 작업 시작하면 밥 먹는 정도 외에는 정신력을 쓰기 싫더라고요. 집 청소 귀찮고, 머리 깎기 귀찮고, 옷도 입던 것만 입고.”
“음, 확실히 귀찮기는 해요.”
레베카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저도 바쁠 때는 집에서 일주일씩 안 나가기도 하거든요. 가끔은 씻기도 귀찮아서 사흘 나흘씩…… 이건 못 들은 척해 주세요.”
“왜요? 그럴 수도 있지.”
“…….”
그녀가 안면을 씰룩거렸다.
어찌 됐든, 음악 외적으로는 신경 쓸 기운이 없기 때문이었다.
미팅이니 컨펌이니 뭐니 하나하나 고려하다 보면 신경이 분산되지 않겠나.
더욱이 이번 일은 더 그렇고.
“곧 신곡 발표하겠네요.”
“후후, 지금까지 오래 기다렸죠.”
[벡 딕슨 LA 투어]의 마지막 무대가 코앞이다.이번 공연에서 나는 레베카 로드리게즈와 함께 신곡을 공개할 예정이었다.
당장 코앞에 놓인 무대에 1분 1초를 쏟아부어도 모자랄 때인데, 다른 일을 어떻게 붙잡겠는가.
그만큼 퀄리티가 후퇴할 게 뻔히 보이는데.
“그럼 일 끝나고 나면 시간이 좀 남겠네요?”
레베카가 내 말을 귓등으로 들은 것인지 되물었다.
“모처럼 왔으니까 관광도 하고 그럴 거죠? 맛있는 거 먹고 구경도 하고.”
“글쎄요? 이번 투어가 끝나고 나면, 흠, 신곡 작업도 마저 끝내야죠.”
“…….”
“참, 한국 가서 팅 식구들 얼굴도 보고 싶고요.”
내 대답이 불만족스러웠던 걸까, 레베카 로드리게즈가 한숨을 내쉬었다.
“한영은 정말 음악이랑 팅밖에 모르네요.”
“그게 제 전부니까요.”
음악은 원래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가지고 싶었던 가족 비스무리한 것까지 생겼다.
진짜 가족도 생겼고.
이 와중에 다른 곳에 시선을 돌릴 여유라고는 없었다.
올리버 맥튼에게 배운 것도 있었고.
‘아무리 가까운 인간관계라도 너무 소홀히 하다 보면 점차 남남이 된다라.’
팅과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다.
레베카는 딱히 할 말이 없어진 건지 벤치에 앉은 채로 애꿎은 다리만 저울추처럼 앞뒤로 휘둘렀다.
그러던 와중이었다.
“한영, 혹시.”
레베카가 부산 도로에서 깜빡이를 넣듯 슬며시 물었다.
“라운드테이블이라고 알아요?”
“라운드테이블?”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은데.
분명 어디서 들어봤다.
내 뉴런의 18%와 대뇌피질의 30%를 동원해 고민하기를 잠시.
나는 곧 라운드테이블이 어디에서 나온 단어인지 떠올렸다.
“원탁의 기사 아니에요?”
그렇다.
라운드테이블이라고 하면 한국어로 원탁인데, 흔히 원탁의 기사와 함께 거론되는 단어이기도 했다.
“아더 왕 나오는 거요. 희범이가 하는 게임 보니까 요즘은 아더 왕이 칼 휘두르면 에너지빔도 나가고 그러던데.”
“으음, 비슷한데 조금 달라요.”
레베카가 고운 미간을 찌푸리더니 말했다.
“제가 말하는 라운드테이블은요. 일종의 친목 모임 같은 거거든요.”
“친목이요? 누가 누구랑?”
“음악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죠. 사교회 같은 거라고 해야 하나.”
사교회라.
그 단어를 들은 순간 머릿속으로 떠오른 바가 있었다.
뭐라고 해야 하나.
예로부터 음악계에는 조금만 뜨면 끼리끼리 무리를 만들면서 모임을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이 잦았다.
영장류의 본능이었다.
조금만 먹고살 만하다 싶으면 무리를 이루려고 하는 거.
그게 사업으로 가면 레이블이 되는 거고.
‘팅도 비슷하다고 봐야 하나?’
생각에 빠진 참인데 레베카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말을 이었다.
“팅이랑 비슷하다고 보면…… 아니네요. 팅이랑은 조금 달라요.”
“어떤 면에서요?”
“라운드테이블은 조금 더 음악 그 자체에 집중한다고 하면 될까요. 자기들이 세계 음악계를 선도한다는 그런 목적 의식이 있거든요.”
“꽤 잘난 사람들이 많이 들어가 있나 보네요.”
“그렇죠. 일단 여기에 들어가 있다 보면 빌보드 1위를 못 찍어 본 사람이 드물 정도로.”
그 정도면 자부심을 가질 만하기는 하네.
세계 음악계를 선도한다고 둘러댈 만하네.
그게 의도적으로 되는 일인지, 안 되는 일인지는 둘째 치고.
라운드테이블이 뭐 하는 곳인지는 알았다.
그렇다면 중요한 건, 레베카 로드리게즈가 왜 내게 이런 이야기를 밝혔는가 하는 것이었다.
‘듣자 하니 꽤 비밀스러운 집단 같은데.’
어쩌면 나한테도 들어오라는 거 아닐까.
“거기 소속되어 있죠?”
한번 떠볼 생각으로 물어본 순간이었다.
“네.”
레베카는 숨길 것도 없다는 듯 답했다.
“매달 정기 회의가 열리는데 이틀 전, 여기에 한영이 안건으로 올랐어요. 그리고 거기에서 정한 건데.”
“절 영입하겠다는 거군요.”
“……일단은 맞아요.”
그녀가 살짝 놀랐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영의 가입을 허락하는 방향으로 결론이 나왔어요.”
“허락?”
“정확히는 대면 면접을 한 번 거친 다음에요.”
이상한 말이었다.
나는 영 석연치 않은 단어에 고개가 갸웃해지는 걸 느끼며 물었다.
“전 거기에 가입 신청을 넣은 기억이 없는데, 허락이 먼저 나오네요? 애초에 그런 곳이 존재한다는 것도 몇 분 전에나 막 안 참이고. 면접은 또 뭐죠?”
그렇지 않나.
처음부터 신청한 적이 없는데, 뭘 허락한단 말인가.
게다가 면접까지 거쳐야 한다니.
‘나한테 뭐 맡겨 뒀나?’
만난 적도 없는 사람을 초대하는 방식치고는 영 갑을관계를 나누는 기분이 들었다.
레베카도 이 부분이 걸리기는 했던 건지, 헛기침을 뱉으며 말했다.
“제가 말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그쪽이 조금 거만하거든요. 원래 다 조사하고 초대하는 방식으로 운영돼서.”
콧대가 어지간한 인간들인가 보다.
빌보드 순위만큼이나 자신감이 대단하시네.
“하지만 전 솔직히 말하자면 한영이 여기 들어오는 게 어떨까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요? 왜요?”
“앞으로도 미국 음악계에서 활동한다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유명한 뮤지션들이 많은 건 물론이고, 큰 회사 사장이나 투자자도 소속되어 있으니까요.”
그렇군.
이후로도 레베카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 이야기들을 들으며 나는 곧 판단을 내렸다.
‘단순 친목 집단을 한참 넘어서는 단체이기는 한 모양이네.’
빌보드를 놀이터 삼는 뮤지션이 약 스물 이상에 재벌급 투자자들이 또 그만큼 소속되어 있다라.
듣자 하니 이름만 얹어 놔도 이득이 생기기는 할 것 같다.
하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굳이?’
큰 욕심은 안 드는 게 사실이었다.
잘난 놈들이 있으면 있는 거지, 내가 굳이 그 잘난 놈들 사이에 끼어야만 할 필요가 있을까.
친목이라는 게 어중간하게 엮이면 피곤하기만 한 법이었다.
내가 남 인정에 목을 매는 것도 아니고, 잘난 놈들 사이에 있어야만 내 존재가치를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저쪽에서 나한테 먼저 손을 벌렸다는 건, 내가 필요하다고 느꼈다는 거잖아.’
향후 활동에 도움이 된다기는 하다만, 어차피 선택의 길은 넓었다.
정말로 내가 필요했더라면 자기네가 직접 왔겠지. 다른 사람을 대리로 내세워서 초대하는 게 아니라.
그렇기에 나는 레베카에게 다소 편안한 마음으로 말했다.
“거기 가입 조건은 어떻게 되나요?”
“주기적으로 보고회에 참석해야 하고, 단체로 방침을 정하면 의무적으로 따라야 해요. 보이콧이라거나. 보통 그러는 일은 잘 없지만요.”
다 좋은데 의무라는 단어 하나가 귀에 밟혔다.
어림도 없지.
누구한테 의무를 들이미나.
“제안은 고마워요. 하지만.”
나는 잠깐이나마 생겼던 흥미가 식어 버리는 걸 느끼며 말했다.
“당장 선택할 일은 아닌 것 같고, 더 생각해 보고 말해 줄게요.”
사실상의 거절이었다.
그런데 내게 제안을 건넨 당사자인 레베카도 큰 기대는 안 했던 걸까.
오히려 안도하는 표정을 짓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충분히 이해해요. 저쪽에는 더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고 전할게요.”
딱 그 정도였다.
나는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우선은 신곡 발표부터 끝내고 생각하죠.”
무대가 코앞이다.
* * *
무대가 커졌다.
LA 투어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무대 관객이 2만에 온라인 관객 수는…… 잘 기억 안 나지만 몇십만이었던가.
그렇게까지 엄청 크지는 않았다.
크긴 크지만, 막 역대급이라는 느낌은 아니었지.
하지만 최근 2주일.
투어를 진행하며 점차 대중과 언론의 시선이 하나둘씩 차곡차곡 쌓였고, 그 결과는 이러했다.
“와아아아아아아!”
“김! 한! 영! 김! 한! 영!”
내게 호의적인 응원을 보내는 현장 관객 수가 약 5만 이상.
그리고 인터넷 관객 수가.
[현재 시청자 수: 2.1m]210만 명.
도합 215만 명 이상의 관객들이 내 앞에 몰렸다.
‘경치 좋고.’
눈앞으로 수만 명의 인파가 인간의 물결을 이루었다.
목소리의 파도가 무대 위를 덮치다 못해 조금만 긴장해도 질식할 것만 같을 지경.
새삼스럽지만, 지금 이 숫자는 내가 음악 활동을 시작한 이래 마주한 관객 수 중 1위라고 봐도 좋았다.
‘어떻게 보면 김한석 시절을 뛰어넘은 건가.’
발목까지 왔느니, 허리까지 왔느니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지난번 강릉 공연에서 머리 언저리까지 왔다고 느꼈는데, 이제 정수리를 뚫고 그 위로 나아가는 와중인가 보다.
‘슬슬 시작해 볼까.’
나는 팔을 길게 뻗어, 관객들 정중앙 너머 전광판을 손끝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레이디즈 앤 잰틀맨, 코리아 넘버 원.”
그다음 순간이었다.
“코리아 넘버 원!”
“코리아 넘버 원!”
내 목소리에 환호하듯 굉음이 울렸다.
코리아 넘버 원.
이번 투어를 시작하며 나 스스로 정한 트레이드마크 같은 대사였다.
그걸 따라 하는 사람들이 등장한 것.
‘학습력도 좋으셔라.’
다음에는 뭘 해 볼까.
고민하려니 레베카가 옆구리를 쿡 찔렀다.
“일단 곡부터 먼저요. 심장 떨리니까.”
“떨릴 때는 마그네슘.”
“…….”
나는 안면을 기이하게 꿈틀거리는 그녀를 뒤로하며 외쳤다.
“다 그 노래 들으러 왔죠?”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