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20
220화
급발진이었다.
“이 바닥에서 더 이상 먹고살 생각이 없는 모양이지?”
급발진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대사가 다누시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눈빛만 봐도 차게 식은 게 어지간히 화가 난 모양.
“간이 제대로 부었네. 위에다가 삿대질을 할 줄도 알고. 남의 음악을 지적할 줄도 알고.”
“그쪽이 먼저 했잖아요?”
“봐, 그런 자세도 좋지 못해. 남이 충분히 배려했으면 최소한의 예의는 보여야 하는 거 아닌가?”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까지 나눈 대화 어디에서 예의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다누시아 본인만큼은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또.
‘흥분한 것 같은데.’
많이 열이 오른 눈치였고.
차곡차곡 쌓은 분노가 터지기 일보 직전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 또한 내 잘못은 아니다.
명명백백히 저쪽 잘못이지.
나는 저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라고는 한 점도 없…… 는 사람이기에, 마음 편하게 말했다.
“우리 가치관이 많이 다른 것 같네요. 이쯤으로 이야기를 정리하고 일어나는 게 어떨까요?”
교양인답게 중재하려는 순간이었다.
쾅!
다누시아가 책상 위에 포크를 내려찍으며 말했다.
“XX X.”
뭐라고 말한 것 같은데.
잘 모르겠지만, 나쁜 말이라는 거 하나는 기가 막히게 알아들었다.
“이거 비싼 테이블 아닌가.”
괜한 마음에 중얼거리는데 다누시아가 호랑이가 으르르 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난 충분한 호의를 보였는데 그쪽에서 거절한 거야.”
“…….”
“내가 이쪽 바닥에서 발이 얼마나 넓은지 모르는가 보군. 뮤지션, 공연업체, 유통사까지 내 영향력이 못 뻗는 곳이라고는 없다.”
“대단하네요.”
“아직도 우스워? 내 통화 한 통이면, 넌 끝이란 말이야. 조금 더 진지해져 보는 게 어때?”
그다음 순간.
다누시아가 손가락을 들어 나를 가리키더니, 이어서 바닥을 가리키며 말했다.
“무릎 꿇어.”
“…….”
“그럼 다시 생각해 보지.”
그러라고 하신다.
내 심기에 거스르면 이 바닥에서 매장시켜 주겠다라. 싫으면 꿇고 사죄하라니.
흔한 협박이었다.
너무 흔한 레퍼토리여서, 귀에 딱지가 내려앉을 정도로 말이다.
‘옛날에 많이 겪었지.’
찍소리만 내도 정말로 매장당하던 시대에 음악을 했었다.
방송사 직원과 싸우면 그날부로 방송 출연은 끝이었다. 음반사 거물과 싸우면 전국 음반 가게에서 매대가 빠졌다.
그런 시대였다.
마침 나라고 어디 가서 고개를 숙이는 사람은 아니라 김진산 사장의 주 업무가 사과였고.
그런 일이 있고 나면, 그가 꼭 내게 하던 말이 있었다.
[이 새끼야, 잘못한 게 없으면 고개 펴. 옳은 일을 했는데 사내자식이 뭘 남의 눈치를 살펴? 당당하게 살아, 임마. 단, 굶어 죽을 것 같을 때는 빼고.]나는 그 가르침을 되새겨 보았다.
다누시아에게 밉보인다면 내가 정말로 이 바닥에서 굶어 죽을까.
‘흠.’
계산해 보기를 잠시.
곧 결론이 나왔다.
‘먹고사는 데 지장은 없겠네.’
굶을 일은 없었다.
저쪽이 유통 쪽을 꽉 붙잡고 있다고 해서 한국까지 영향력을 끼칠 리가.
하물며 미튜브 같은 조 단위 매출로 나오는 초대형 업체가 일개 뮤지션한테 부탁 좀 받았다고, 나 같이 목소리 큰 사람을 잘라 내려 하지도 않을 것 같고.
해서.
“못 꿇겠는데요.”
나는 오히려 당당해지기로 결심했다.
“솔직히 그 쪽한테 찍힌다고 당장 밥줄 날아가지는 않을 것 같아서.”
“이 자식이!”
그가 마침내 혈압이 올라 머리가 마비되었는지 외쳤다.
“넌 이제 끝이다. 나도 관용을 보이려고 했는데, 더는 안 되겠어. 이제 끝이야.”
마치 어린아이와도 같은 태도였다.
미국이니까 총이라도 꺼내서 협박한다면 또 모르겠는데, 말로만 저러는 걸 누가 못 하겠나.
되려 옴짝달싹 안 하고 말로만 협박하니까 친절하게마저 느껴졌다.
경호원들도 많겠다, 이 자리에서 무력행사로 나와도 될 텐데.
‘뮤지션이자 사업가지만, 깡패는 아니라는 건가.’
의외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황 자체가 해결된 건 아니다.
또, 이번만큼은 나도 할 말이 아직 남아 있기도 하고.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까닥거리며 말했다.
“정 분하다면, 음악으로 증명해 보는 건 어떨까요?”
* * *
짧은 정적이 흘렀다.
그렇게 시계 째깍거리는 시계가 다섯 번 정도 들려왔을 무렵.
“……뭐?”
다누시아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짧게 중얼거렸다.
“음악으로? 증명해?”
“네.”
좀처럼 내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친절한 설명을 곁들이기로 결심하고는 말을 이었다.
“피차 음악인이잖아요? 그럼 음악으로 승부를 봐야죠. 치사하게 권력으로 상대방을 찍어 누르느니 뭐니 하지 말고. 저랑 그쪽이랑 누구 말이 맞나.”
그 말에 다누시아가 조금 전까지 화를 냈다는 건 까먹었는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내가 그쪽이랑 굳이 승부를 겨뤄야 할 만큼 동등해 보이나 보지?”
“무서우면 피하셔도 상관없기는 한데.”
“무서워? 내가?”
“고작 신인이 무섭지는 않겠죠. 그보다는…… 생각보다 히트작을 못 낼까 자기 자신이 무섭다면 모를까.”
겉보기에는 도발에 안 걸린 행색을 하고 있으나, 내 목소리에 들린 모습은 조금 달랐다.
“……!”
다누시아는 명백히 동요하고 있었다.
그가 내 말의 어떤 부분에서 분노를 터뜨렸는가.
바로, 자기 음악을 무시했던 때였다.
‘자존심이 강하다면, 그만큼 역린도 민감한 법이지.’
아무리 사업가 기질이 강하다고는 하나, 그가 보이는 자신감의 태반은 음악에서 기인했다.
자기가 만든 음악이라면 무조건 성공하리라는 강한 자신감.
곡을 만드는 대로 성공할 수 있을 리가.
어지간한 초일류 뮤지션이라도 확신하지 못하는 부분이었다.
‘한 시대의 최고라고 해도 다음 앨범에서는 망할 수도 있는 노릇이니.’
하지만 다누시아는 달랐다.
그는 절대적인 자신감을 전제로 깔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 파고들 수 있었다.
“래퍼로서 부끄럽지 않아요?”
그가 가진 자신감의 원천을.
“사이퍼라고 하나? 래퍼들이 하는 거 있잖아요? 의견이 다를 때 말이 아니라 음악으로 승부를 보는 거.”
“…….”
“인터넷에서 보니까 당신도 신인 때는 빈민가에서 붐박스 하나 들고 다니면서 생활비를 벌었다면서요? 싸구려 테이프 만들어서 팔고 다니고. 아직 기억해요? 그거 다 음악에 자신이 있어서 그랬던 거잖아요.”
다누시아의 시작을 조사했다.
본인이 워낙에 인터뷰에서 떠벌리고 다녀서 찾는 게 그리 어렵지도 않았다.
힘든 시절을 겪었느니,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어머니는 절도범에 아버지는 폭력범이었느니 하는 것들.
과거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났기에, 그만큼 부에 더 집착하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음악으로 증명할 생각 아니었어요? 자기 인생이 옳다는 걸.”
솔직히 말하자면, 저쪽이 내 말을 받아들이든 말든 상관없다.
나는 이 지긋지긋한 대화를 멈추고, 집으로 돌아가서 편하게 쉬고 싶을 뿐.
“또 모르잖아요. 그쪽이 그 뭐지? 유니버스? 그런 거로 정말로 대박을 터뜨려 버린다면 저도 무릎 한 번쯤이야 꿇어 줄지도.”
그렇기에 입에서 나오는 대로 대충대충 중얼거렸다.
하지만 다누시아는 그저 아무런 말도 없었다.
한마디조차 말이 없었다.
그저, 내 말을 가만히 들으면서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그렇게 정체를 알 수 없는 침묵이 이어지기를 한참.
다누시아의 입에서 한풀 꺾인 말이 흘러나왔다.
“하나도 재미없는 농담이야.”
짜증에 일그러진 얼굴로.
그가 질긴 철골을 잘근잘근 비틀어 씹듯 뱉으며 말했다.
“이번에 앨범을 낸다고 했나?”
“……아마도요? 마침 곡도 대부분 준비해 뒀으니까 올해 안에 내겠죠.”
“나도 앨범 발표가 조만간이라서 말이야.”
다누시아가 뜨거운 숨을 몰아쉬었다.
다음 순간.
그의 입에서 썩 인상적인 말이 흘러나왔다.
“누구 말이 맞나, 음악으로 가려 보자고. 앨범 성적으로.”
“…….”
“그쪽 말대로 나는 래퍼니까, 음악으로 당당히 승부를 보지.”
말 그대로 놀라웠다.
다누시아가 내 도발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이게 진짜로 먹히네.’
와,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한 말인데, 이걸 진짜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사람이 생각보다 순진한 구석이 있네.
나는 혹시나 해서 더 떠보기로 했다.
“불공평하지 않아요? 그쪽에서 절 압박하면 팔다리 잘라 놓고 경쟁하는 셈일 텐데.”
“꼼수는 안 부린다. 공증인을 세우면 믿겠나? 내일 오후, 언론에 우리 둘의 차트 승부를 정식으로 밝히지.”
“오.”
“그 대신, 지거든 자기 말에 책임을 져야 할 거야.”
이마저도 스스로 보험을 둬 주지 않았나.
상황이 더 재밌어졌다.
‘굳이 앨범 성적으로 승부를 보자는 게 유치하게 느껴지기는 하는데.’
당연히 저쪽이 더 유리하겠지.
그쪽은 이 시장이 본진이고, 나는 이제 막 이름값 좀 알린 응애니까.
어지간하면 패배할 게 뻔한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저쪽에서도 선뜻 제안을 내놓은 걸 테고.
하지만.
‘어떻게 되든 손해 볼 건 없겠는데?’
내 기준에선 누구 성적이 좋든 나쁘든 그리 나쁠 게 없었다.
어차피 내야 할 앨범이니까.
다누시아가 그 잘난 마당발로 내 앨범을 홍보해 준다면 나야 이득일 뿐이다.
아마 불리하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기면 좋겠다는 생각 정도는 들었다.
무릎을 꿇고 싶은 마음은 없기도 하고.
[게임을 하면, 이겨야지!]고희범의 말 습관조차도 그렇다.
기왕 승부를 본다면 승리를 노리는 게 맞았다.
‘안 그래도 궁금했던 참이었지.’
현대 음악 시장의 한 분야에서 최고로 꼽히는 뮤지션의 실력은 과연 어떨까.
얼마나 높고 견고한 벽일까.
내 실력으로 비빌 구석이 있을까.
확인한다면 이번이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됐다.
오히려 이게 본론이었다.
“좋아요. 받아들이죠.”
나나 저쪽이나 사업 이야기를 할 때는 무미건조했던 대화였다.
그랬던 것이 음악 이야기로 넘어가자마자 눈에 생기가 돌고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걸 느끼며, 나는 입을 열었다.
“설마 중간에 문제가 생긴다고 총으로 쏜다거나 그러진 않겠죠?”
그 말에 다누시아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나는 뮤지션이야. 갱이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조금 전에 내가 했던 생각과 동일한 그것이었다.
역시, 이 사람은 뮤지션이 맞나 보다.
나는 작게 피식 웃으며 말했다.
“좋네요. 이쪽도 준비할 시간은 필요하니까, 앨범 발매일은 따로 계획을 잡고 보낼게요.”
“질질 미루다가 도망치는 건 아니겠지?”
“안 그래요. 사람 못 믿나. 내친김에 숙소 가서 작업하게 미리 가 보겠습니다.”
생각보다 평화롭게 끝나서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옆을 둘러봤는데, 그 자리에 옴짝달싹 못 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레베카 로드리게즈였다.
“같이 가죠.”
“아, 네. 잠시…….”
내가 말한 순간이었다.
“레베카, 너는 남아. 할 이야기가 있다.”
다누시아가 그녀를 잡아 세웠다.
그러고 보면 레베카도 SBR의 멤버였던가.
명색이 자기가 리더로 있는 집단의 부하라서 그런지,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자존심 싸움을 벌여 보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이긴다.
내게는 그녀를 데려가야만 할 이유가 있으니까.
“안 돼요.”
나는 다누시아를 째려보며 말했다.
“나 운전할 줄 몰라서 이 사람 없으면 집 못 가거든요.”
“……운전할 줄을 몰라?”
다누시아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국인의 대부분은 면허가 없거든요. 땅이 워낙에 좁아서.”
진심을 담아 말하려니 레베카가 게슴츠레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한영 씨, 정말요?”
“물론이죠. 저 한국인입니다.”
한국은 아무튼 그렇다.
한국은.
* * *
공항으로 가는 길.
다누시아와의 경쟁이 결정된 뒤, 내 머릿속은 당장이라도 과열될 듯 분주하게 돌아갔다.
‘순진하게 음악으로만 승부를 볼 리가 있나.’
저쪽은 유니버스로 나오겠다고 했다.
온갖 마케팅을 다 동원하겠지.
그 잘난 인맥을 모조리 써먹어서라도 빌보드 1위를 목표로 달릴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라는 사람이 뭘 할 수 있을까.’
고민이 이어지고 또 이어졌다.
저 정도 되는 사람을 꺾으려면, 대체 뭘 해서 화제성을 끌어와야 할까.
내가 최근에 미국에서 벡 딕슨의 투어 게스트로 인지도를 올렸다고는 하나, 그래 봤자 다누시아에 비하면 턱도 없는 게 현실이었다.
이걸 극복하려면 무언가.
무언가가 됐든 아주 강력한 훅이 필요했다.
세상 사람들이 나라는 뮤지션을 제대로 인지하게 만들, 그런 훅이.
“…….”
모르겠다.
솔직히 모르겠다.
자신감은 있지만, 수단은 보이지 않았다.
뭔가 없을까.
“…….”
없는 것 같다.
“으.”
무리수를 뒀나.
아니면 요즘 너무 일만 하느라 고생해서 뇌가 과열됐나.
‘우선 한국으로 돌아가서 쉬면서 천천히 생각할까.’
그렇게 우선 생각을 접어 두고, 나는 핸드폰을 꺼내 메일함을 확인했다.
강도수 사장이 정리해서 보낸 제안들이 담겨 있을 터.
어차피 받아들이는 건 거의 없지만, 그래도 읽어 둘 생각이었다.
혹시 또 모르니까.
그중에 하고 싶어지는 일감이 있을지 누가 알겠나.
‘이건 아니고, 방송국 출연…… 별로 안 끌리고, 대선 출마 도우미? 이건 또 뭐야.’
아니나 다를까.
좀처럼 마음에 드는 일감이 없다.
그럼에도 우선 잡히는 대로 스크롤을 내리며 읽어 내리던 와중이었다.
“아.”
나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저 밑에, 한참 저 밑에, 그동안 내가 찾아왔던 일감이 있었다.
[발신인: 아이플러스 코리아] [제목: 다큐멘터리 제작 스튜디오 관련해서 정리해 보냅니다!]있었다.
단기간에 화제를 끌어올릴 수단이, 눈앞에 있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