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30
230화
회의실로 이동해서 겉치레를 겸한 대화를 나누기를 몇 분.
“……그러니까.”
문선욱 PD가 간신히 본론을 입에 담았다.
“한영 씨께서 저희 방송에 출연하고 싶으시다. 이 말씀이신가요?”
“네.”
김한영이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재밌어 보이더라고요.”
그 방송의 존재를 알게 된 지 몇 시간, 아니, 몇십 분도 안 지났지만 말이다.
“보이스 오브 레전드 말씀하시는 거 맞으시죠?”
“네.”
“가수들이 나와서 옛날에 유명했던 가수들이랑 듀엣하는 방송. 그 보이스 오브 레전드 말씀이죠?”
“네.”
“미국에 있는 동명의 프로그램(Voice of legend: 뮤지컬 가수 발굴 오디션)을 말씀하시는 게 아니라.”
“맞다니까요.”
연이어진 질문에 김한영이 귀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PD님이 연출하고 계신 그 방송에 출연하고 싶은 게 맞습니다.”
확답이었다.
그야말로 확답이었다.
김한영이 자기 방송에 출연하겠다고 먼저 제안했는데, 그게 환청이 아니었다.
사실을 확인한 문선욱 PD가 자리에 앉은 채 고개를 사각으로 15도 정도 돌리고는 부르르 떨었다.
‘나한테도 이런 행운이 오는구나.’
대박이다.
그간 착하게 산 보람이 있었다.
남아프리카 결식 아동에게 매달 3만 원씩 후원한 게 드디어 복이 되어 돌아온 걸까.
그냥 복이 아니다.
복이 호박째로 굴러들어 왔다.
호박째라고 말하기도 모자란 것 같다. 호박밭이 3헥타르쯤 저절로 굴러들어 왔다.
그렇게 마냥 기쁨에 취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김한영이 손을 들었다.
“조건…… 이라면?”
“제가 이번 방송에 출연하는 조건입니다.”
입에서 천천히 흘러나온 조건이라는 단어에 문선욱 PD가 침을 꿀꺽 삼켰다.
‘하긴, 그러면 그렇지.’
김한영씩이나 되는 사람이 조건 없이 출연하겠다고 할 리가 없지.
자기가 먼저 제안했다지만, 몸값만큼은 받아갈 것이다.
아무리 저렴해도 한국에서 최고 수준의 출연료는 제공해야 하리라.
하지만.
‘김한영을 내 방송에 앉힐 수만 있다면 그깟 출연료쯤이야.’
어차피 내 돈도 아닌데.
좀 거액으로 부르면 방송국에서 난리를 치겠지만, 그래 봤자 그간 온갖 러브콜을 보내도 다 거절했던 김한영이다.
김한영이 출연하겠다는데 자기들이 뭐라고 하겠는가.
‘와 봐라. 억대 출연료? 초대형 마케팅? 제작 간섭? 뭐가 됐든 내 방송 인생을 걸고 받아내 주마.’
그의 등장에 혈안이 된 순간이었다.
“제 파트너는 김한석이 돼야 합니다.”
“예?”
김한영의 입에서 너무나도 예상치 못했던 답이 흘러나왔다.
“보오레(보이스 오브 레전드)는 옛날에 죽은 가수들도 기술로 목소리를 되살려서 노래 부르게 하는 프로그램 맞죠?”
“아, 그거라면 저희 방송 포맷 중 하나입니다만.”
“네, 그걸 하고 싶어요. 김한석으로.”
PD의 입으로 확인을 받은 김한영이 물이 오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함께 부를 곡은 제가 고를 거고, 작곡도 제가 김한석의 목소리에 맞춰서 따로 만들 생각입니다.”
그 말에 문선욱 PD의 눈이 한 차례 더 휘둥그레졌다.
김한영을 방송에 데려오는, 아니, 모시는 것만 해도 큰일인데 여기에 작곡까지 해 주겠다니.
“하지만 김한석의 그 목소리를 재현하거나 하는 건 전적으로 그쪽 전문가분에게 맡기겠습니다. 전 어디까지나 곡만 제공할 겁니다.”
그렇다고 하신다.
도저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아니, 거절하면 방송국 사장이 자기 머리에 총구를 들이밀고 방아쇠라도 당길 상황.
하지만 만에 하나를 위해, 이 자리에서 확인해 두고 싶은 게 있었다.
“정말 그거 하나면 되겠습니까?”
도장이었다.
“네.”
“출연료라든가는?”
“돈 많습니다.”
“언론에 뭐라고 발표할까요?”
“그건 이쪽 저희 강도수 대표님과 상의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표님이셨나요?”
강도수 부사장 아니었나.
언제 네온 엔터에서 대표 됐나 싶은 찰나.
“한영 씨가 절 일방적으로 대표님이라고 부르고 있을 뿐입니다. 공식적인 직함으로는 부사장이 맞습니다. 오해하지 말아 주십시오.”
강도수 대표가 손까지 저어 가며 극구 부인했다.
그 목소리가 농담이라기에는 다소 긴박해 보였다.
하지만 김한영의 목소리는 편안했다.
“제 입에서는 대표님이 편해서요.”
“…….”
대표님이라고 부르고 싶으니까 대표님이라고 부른다고?
이게 말이 되나.
참으로 놀랍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다.
‘진짜 대표가 저 말을 들으면 어떻게 생각할 줄 알고.’
회사 내에서 이 얼마나 민망한 행위인가.
간판 가수쯤 되면 이 정도 갑질도 할 수 있다는 건가.
‘이것이 권력.’
나 또한 이런 권력을 손안에 쥐고 싶다.
어쩌면 그 권력으로 향하는 길이 지금, 내 앞에 있을지도 모른다.
문선욱 PD는 그런 생각을 하며, 김한영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제 방송 인생을 걸고, 최고의 방송으로 모시겠습니다.”
* * *
김한영의 [보이스 오브 레전드] 방송 출연이 확정되었다.
보이스 오브 레전드.
과거의 전설적인 가수를 재현해 현대의 후배 가수와 듀엣을 시키는 프로그램.
김한영을 섭외하는 데 성공했다는 게 어마어마한 일이기 때문이었을까.
방송국은 계약서 도장을 찍은 첫날부터 미친듯한 마케팅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빌보드 9주 연속 1위 한류 스타, 김한영이 보이스 오브 레전드로 다가온다] [김한영의 파트너는 누구?] [죽어 버린 안방 시청률에도 봄은 찾아오는가] [본방 사수 확정]그 김한영이다.
TV 방송은 [유마온] 이후로 눈길조차도 안 줬던 김한영이 [보이스 오브 레전드]에 와서야 비로소 돌아온 것이었다.
하물며 입지마저도 달랐다.
유마온 시절에는 일개 인터넷 방송인이 공중파 방송에 출연한 게 의외였다면.
이번에는.
[아 ㅋㅋㅋㅋㅋㅋ 대체 김한영을 어떻게 섭외했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글로벌 가수 김한영께서 일개 지상파 방송에 행차해 주신 게 의외였다.
[무슨 한남동에 아파트라도 사다가 바친 거 아님?] [그런다고 올 사람이 아님] [ㄹㅇ 나 김한영이 TV 나오는 거 죽기 전까지 못 볼 줄 알았는데] [업계인들 인터뷰 보니까 김한영은 그냥 산속 자유인이라면서] [아무리 불러도 안 온대] [와 싯팔 김한영이 내한을 다 하네?]김한영이 등장한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별도의 마케팅이 필요가 없을 지경이었다.
왜?
사람들이 인터넷에 알아서 퍼다 나르고 있으니까.
[나 연차 냈다] [아니 ㅅㅂ 나 식당 사장인데 우리 가게에서만만 알바생 세 명이 갑자기 휴가 신청했다고] [아 ㅋㅋㅋ 이건 못 참지] [ㅋㅋㅋㅋㅋㅋㅋ 그냥 사장님도 가게 닫고 보러 가십쇼 ㅋㅋㅋㅋ] [이거 해외에서도 몰래 돌아와서 보는 거 아님?]마케팅이 필요가 없다.
김한영이라는 이름 자체가 이미 마케팅이니까.
이미 실시간 검색어 1위부터 5위까지 김한영의 [보오레] 출연 소식으로 뒤덮인 상황이었다.
그런데.
예로부터 [보오레]에 출연했다면 그다음으로 추측해야 할 것이 있었다.
과연, 누구랑 파트너를 이루는가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멀리 나갈 것도 없이 다 알았다.
[김한석이겠지] [김한석 확정] [김한석 빼고 또 없지] [이건 김한석 맞다]기껏 예고편까지 만들며 미리 마케팅을 꺼낸 보람도 없이, 모두가 김한석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진짜, 김한영이 세긴 세구나.’
전례 없는 관심도에 민선욱 PD가 모니터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간 [보오레]에 모신 스타가 한둘이었나.
유명한 아이돌,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 예능과 연기 그리고 가수까지 삼대 분야를 점령한 멀티 엔터테이너까지.
좀 잘나간다는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얼굴을 비춘 방송이었다.
‘참 많이도 모셨네.’
하지만 그중 누구를 데려오더라도 김한영의 앞에 세워 두거든 조족지혈에 불과한 듯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어쩌면 이 시대가 곧 김한영의 시대 아닐까?’
민선욱 PD는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에 천장을 바라보기를 잠시.
너무 나갔다는 생각에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우리 막내야.”
“…….”
“막내야?”
“…….”
“나 지금 혼잣말하니?”
“……예, 선배님.”
“내가 김한영 데려오면 뭐 어떻게 한다고 했더라?”
“……제가 한우 사겠다고 했죠.”
“그래, 팀원들 다 데려가서 회식 한번 뛰기로 했지. 그렇지?”
“…….”
“종로에 한우 오마카세 인당 25만 원 하는 가게 있다더라.”
“…….”
“에이, 내가 봐줬다. 그건 너무 비싸니까 18만 원짜리 다른 가게 가자.”
한 사람의 성공은 다른 한 사람의 실패를 의미했다.
후배 PD는 통장 잔고를 보며 피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선배라는 사람이 이거 하나도 안 봐주고.’
김한영이 밉다.
죽고 싶을 만큼 밉다.
김한영이 팬들에게 매일 까이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 *
보오레 출연을 확정 짓고 며칠 뒤.
나는 작업실에 처박혀서 내 일을 하기 시작했다.
바로.
디링-
작곡이었다.
‘은근 재밌네.’
어느새 손때가 묻은 기타를 쥐고 느긋하게 곡을 만지고 있으려니, 슬슬 가슴속에 불씨가 살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간 댐에 가로막혀 있던 물줄기에 퐁! 하고 구멍이 뚫렸다.
‘또 다른 내가 연주할 내 노래라.’
남들이 바라보는 나는 어떤 가수일까.
그런 내 이미지에 부합시키려면, 어떤 곡을 만들면 될까.
흡사 메타인지로 이어지는 듯한 작곡 과정에 나는 흠뻑 빠져들었다.
물론.
“괜찮겠어?”
다른 식구들은 그 모습이 이상하게 보인 모양이기도 했고.
조은솔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너는 곡만 대고, 김한석을 어떻게 만들지는 저쪽에 맡긴다며.”
“그런 건 저쪽이 전문가일 것 같아서요.”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가수들끼리 같이 듀엣하는 거랑 같죠. 곡을 만드는 과정까지는 제가 하겠지만, 노래를 조율하고 창법을 어떻게 하고, 그런 건 저쪽에 맡기는 게 정답일 것 같아요.”
사실은 그걸 위해서 이 난리를 치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
“결과물이 생각보다 안 나오면?”
“그럼 그것도 제 운명이죠.”
실패를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세상에 오르막길만 있는 사람은 없는 법.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중 어느 게 먼저인가를 굳이 따지자면, 나는 내리막길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남들이 인지하는 나]를 이번 기회에 제대로 인지해 두면 앞으로도 두고두고 도움이 될 거야.’
그러니까 우선은 작곡이다.
최대한 좋은 곡을 만들어서 저쪽에 넘겨야겠다.
[나]와 [나]가 듀엣하는 곡을 말이다.‘어떻게 하면 좋을까.’
굳이 말하자면, 지금의 나는 예전의 나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길어진 손가락 탓에 연주는 유연해졌다.
몸이 어색했을 때는 디테일이 부족했지만, 구르면서 차차 적응됐다.
목소리 또한 현대적인 발성을 적용하며 극적으로 발전했다.
작곡도 현대에서 배웠다.
믹싱에서도 디마에게 많이 배우며 식견을 넓혔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무엇 하나 발전하지 않은 게 없었다고 해석해야겠다.
‘그렇다면, 과거의 나는 그저 다운그레이드 된 가수였나.’
목을 죄는 창법에 짧고 뭉툭한 손가락, 포크송 원툴밖에 못 하는 사람이었을까.
어째서일까.
꼭 그렇지만도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얻은 게 있다면, 잃은 것도 있었지.’
찾아보자.
나라는 사람을 더 깊게 찾아보자.
그 대답이 나를 다음 경지에 이끌어 줄 것이다.
팅-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기타 줄을 퉁겼다.
“참.”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에 조은솔에게 물어보았다.
“누나는 저랑 김한석 중에 누가 더 나은 것 같아요?”
“……갑자기?”
“네. 갑자기.”
“하하…… 글쎄.”
조은솔은 실없이 웃더니 말했다.
“이거 어디 가서 말하면 욕 엄청 먹을 것 같은데.”
“여기에 저랑 누나밖에 없어요.”
“음, 비밀이다.”
잠시 뒤.
조은솔의 입에서 차분하게 말이 흘러나왔고.
나는 그 대답이 내가 간절히 찾고 있던 무언가로 향하는 힌트라는 걸 알았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