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32
232화
이번 방송을 기획하기에 앞서, 내가 조건으로 걸었던 것이 있었다.
[전 어디까지나 작곡까지만 하겠습니다. 김한석의 보컬은 어떻게 가다듬든, 그건 그쪽에서 알아서 해 주세요.]나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선에서 발을 떼는 것.
이후에는 저쪽 연구소 전문가들 몫이다.
어떤 방식으로 노래를 부르는가, 어떤 멜로디로 부르는가.
김한석이 어떤 뉘앙스로, 어디에 악센트를 실어서 부르는가.
이 전부를 저쪽에 맡겼다.
[전 신경 쓰지 마세요. 알아서 맞추겠습니다.] [결과물이 한영 씨 생각과 다를 수도 있는데…….] [괜찮아요.]애초에 내가 굳이 [보오레]에 참여한 이유 자체가 ‘남들이 생각하는 나’를 느끼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조금 두근거렸다.
저쪽에서 어떤 결과물을 제시할지.
과연 내가 생각하는 나 자신과 남이 생각하는 나 자신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지.
[참, 합은 방송 당일에 맞춰 보는 거로 하지요.] [그래도 몇 번 서로 합을 맞추면서 다듬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이게 더 재밌을 것 같아서요.]정확히 말하자면.
내 의도를 최대한 배제하고 싶어서.
그렇게까지 스스로에게 제약을 걸어서 짜낸 결과물이다.
확인할 순간이 지금, 내 코앞까지 당도했다.
방송국 입구 앞.
인파로 바글거리는 바깥을 창밖으로 내다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방송국이라서 그런가, 사람 진짜 많네.”
“선생님, 저게 전부 네가 온다고 하니까 저러는 겁니다.”
고희범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말했다.
“멀리서나마 사진 한 장이라도 건지려고.”
“그런가?”
“네가 언제 온다고 미리 말을 안 해서 망정이지. 아이돌들처럼 몇 시에 온다고 말했으면 까놓고 몇천 명이 몰렸어도 이상하지 않았을걸?”
그 정도인가.
하긴, 요즘은 집 밖에 나가기도 버거울 지경이기는 하다.
‘뭐만 하면 일단 사람들이 몰려들고 보니.’
한때는 다누시아가 자기 집을 높은 담벼락 안에 숨겨 놓고 경호원들까지 잔뜩 배치한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슬슬 알겠다.
안 그러면 누가 칼날을 들이밀면서 돈 내놓으라고 협박해도 이상하지 않겠지.
아니다.
거기는 미국이니까 아마 총구일까.
‘뭐, 이런 자잘한 건 됐고.’
그보다는 이쪽이 먼저다.
미루고 미룬 연습 시간이 다가왔다.
저쪽에서 재현한 김한석과의 듀엣 시간 말이다.
여태껏 들으려면 들을 수 있을 기회가 얼마든지 쌓여 있었지만, 애써 무시했다.
어린아이가 마시멜로를 끝까지 참듯.
케이크를 먹을 때 딸기를 가장 마지막까지 아껴 두듯.
오레오오즈를 먹을 때 마시멜로만 남겨 뒀다가 한 번에 먹듯.
저쪽에서 가공한 [김한석]을 기대하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다.
“준비됐으면 바로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저쪽에서 누군가의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 내 음성합성을 총지휘한 연구소장, 최영실 소장이라고 하는 사람이었다.
“네, 오래 기다리셨죠.”
“아닙니다. 후후, 나중에 사인 한 장만 해 주시면 됩니다.”
“백지수표 사인라도 써 드릴 수 있죠.”
“예?”
그가 움찔했다.
“농담입니다.”
“…….”
그가 침묵했다.
아무래도 실패한 농담이었나 보다.
조금 기대하는 모양이었는데.
‘그건 그렇고.’
아까부터 최영실 소장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생각나는 바가 있었다.
“저기 혹시, 하나만 여쭤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마침 이번 작업물에 궁금하실 게 많을 것 같기도 했고, 너무 비밀스러운 이야기만 아니라면 뭐든 괜찮습니다.”
“그런 것보다는요. 혹시 소장님, 노래 부르시나요?”
“예?”
거듭 움찔한 그에게 나는 한마디를 더 물었다.
“목소리가 노래 부르는 사람 목소리라서요.”
뭐라고 해야 할까.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보면 그런 게 있다.
자기 목소리를 다루는 데 익숙해지니, 평상시 대화에서도 무의식적으로 발성법을 적용하게 된다고 할까.
더욱이 이 사람의 톤은 노래 부르기에 좋은 톤이었다.
“그게. 조금 부끄럽습니다만.”
최영실 소장이 작게 기침을 뱉더니 말했다.
“소싯적에 밴드를 하나 하기는 했습니다. 작게. 대학 친구들이랑.”
“그 친구들은 지금 뭐 하고 지내신대요?”
“각자 생업에 종사하고 있죠.”
음악을 포기했다는 거군.
그렇다면 눈앞의 남자는 그 와중에도 홀로 남아 어떻게든 자기 길을 개척해 온 사람이었다.
나와 분야는 다르다.
하지만 소리를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명백히 존경할 만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지.
한때 무명 밴드를 했고 해체했다고는 하나, 그 경험이 지금의 그를 쌓아 올릴 비료가 됐을지도 모르고.
‘나한테 재밌는 물건을 안겨 줬으니까, 나도 보답 하나 해 볼까.’
나는 그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고 있기를 잠시.
툭 던지듯 물었다.
“백지수표는 농담이었고. 대신 악보 하나 써 드릴게요.”
“……악보라면?”
“소장님 목소리를 제가 들어 보니까, 머릿속에 영감이 떠올라서요. 꼭 불러주셨으면 좋겠네요.”
“하, 하하. 저야 곡을 주신다면 오히려 감사합니다만.”
그렇다고 하신다.
나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나중에 따로 연락드릴게요. 바로 시작하죠.”
“예, 알겠습니다.”
어쩐지 그렇게 말하는 최영실 소장의 목소리에서는 힘이 한껏 붙어 있었다.
“우선은 한 번 들어 보시고, 합은 그다음에 맞춰 보지요.”
그렇게 잠시 뒤.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멜로디에 한껏 집중하고 리듬에 맞춰 다리를 까닥이며 노래를 듣기를 잠시.
나는 곧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게 남들이 생각하는 김한석이었구나.’
내가 생각해 왔던 김한석이랑 좀 다르기는 하네.
틀리다는 건 아니고, 달랐다.
나도 아니고.
내가 생각했던 김한석도 아니고.
제3의 인물의 목소리를 듣는 느낌.
그 목소리를 귀에 담은 순간.
‘이게 내가 앞으로 할 일이겠다.’
알 수 있었다.
이제부터 내가 죽을 때까지 쉬지 않고 걸어가도 좋을 목적지를.
* * *
김한영이 빌보드 정복한 이래.
9주 연속 1위라는 기록을 남기고 10주 차에는 들어서는 아마도 2위로 추락할 조짐을 보이는 상황.
국내에서 네 번째 공연이 기획됐다.
하지만 이 공연이라는 것이 수천, 수만 명이 함께하는 자리는 아니었다.
극히 일부.
많아야 수백 명 남짓한 사람만 보러 올 수 있는 공연.
즉, 방송국 지정 홀 방청객 공연이었다.
“내가 김한영 공연을 진짜 라이브로 보게 될 줄이야.”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느님이랑 김한영 중에 누가 더 좋아?”
“그것은 때와 상황에 따라 다르다.”
방청객들은 이번 공연을 두고 당장이라도 기절하고 싶은 마음을 가라앉히며, 부푼 가슴을 자제하기 바쁜 모양새였다.
[제목: 김한영 보레아 ㅂㅊ 보러왔다] [내용:(티켓인증)
아직 무대에는 안 올라왔음 ㅋㅋㅋㅋ 직원들만 막 있음
아까 고가놈 지나가더라
사인해 달라고 하려니까 사과하면서 도망감
추격하려다가 간심히 참았다
아 진짜 나 미칠 것 같애
호흡곤란 올 것 같다] [댓글(51)]
-개부럽다]
-진짜 지 혼자만 좋은 거 보러 다니네]
-아 김한영 진짜 아]
-저거
-나도 돈 내면 볼 수 있냐?
-ㅋㅋㅋㅋㅋ 몇백 내도 될까말까일걸?
-몇백이 뭐임 그렇게 싸면 미국에서도 원정으로 보러 온다
불과 1년도 안 되는 사이 몸값이 극적으로 변화한 김한영이었다.
강릉에서 [한영 아카데미]를 개최할 때만 해도 공연이 드물어서 그렇지, 일단 공연을 열었다 하면 못 볼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 다르다.
김한영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특권이자 스펙이 된 세상이었다.
“나 김한영 데뷔했을 때부터 봤잖아.”
“난 김한영 학교 동창이다.”
“나는 쟤랑 같은 동네 출신인데.”
“나는 전생에 김한영이랑 같은 인종이었음.”
무게감 없는 말이 계속해서 나온다.
그만큼 김한영에 대한 기대감이 큰 탓이었다.
가슴 끝까지 부푼 긴장감을 어떻게든 해소하고 싶어, 무의식중에 말이 많아진 것.
그렇게 부산한 방송국 내부 홀에서 갈피 없이 잡담만 흐르는 와중이었다.
팅!
불이 꺼지면서 무대 위로 조명 하나가 외로이 비쳤다.
그 위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까 안내드린 것 숙지하고 계시지요?”
관객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방청객들을 안내하는 스태프였다.
본격적인 촬영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런 거 하면 안 되고, 저런 거 하면 되고 일러주는 스태프.
“제가 신호를 보내면 환호성을 질러 주십시오. 이 신호는 박수를 치라는 신호입니다.”
제아무리 뮤지션이 잘났다고는 해도, 늘 똑같은 무대가 나오는 건 아니다.
한국 최고로 꼽히는 보컬이라도 조질 때는 조지는 법.
음향은 후편집으로 어떻게 때우면 된다.
하지만 방청객들이 자아내는 현장 분위기는 조금 경우가 다르다.
그렇기에 방청객들의 반응을 기계적으로나마 조율할 필요가 있었다.
‘아, 지겨워.’
‘얼른 무대나 보여 줄 것이지.’
평소에도 늘상 있던 것이지만, 오늘은 한층 더했다.
‘벌써 네 번째야.’
같은 안내만 네 번째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김한영이라지만 이건 조금 선을 넘은 거 아닌가.
방송 잘 찍고 싶은 거 알지.
안내 멘트가 중요한 것도 안다.
그렇다지만 이건 방청객들을 거의 범죄자나 멋모르는 어린이 취급하는 수준 아닌가.
“무대 위로 올라오시면 안 됩니다. 핸드폰도 꺼 주시고요. 혹시라도 외부로 유출될 경우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저 말을 듣는 사이 무대 시작 예정 시간을 1시간이나 훌쩍 넘겼다.
방청객들은 슬슬 지루할 법한데도 이제 곧 김한영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스태프의 인솔을 착실히 따라갔다.
하지만.
‘아, 언제 끝나.’
안내라는 게 지루한 건 지루한 거다.
큰 무대 직전이라면 더 그렇지.
그리고.
이 과정이 도저히 지루해서 못 견디겠다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바로.
“슬슬 됐나요?”
김한영이었다.
그가 무대 뒤쪽 커튼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는 홀을 전체적으로 두리번거렸다.
“……!”
“……!”
그의 등장에 놀란 표정이 홀 전체에 파도처럼 번져나갔다.
하지만 정작 이 상황을 만든 당사자는 주위에서 어떻게 보든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는 듯, 자기 집안을 산책한다는 양 편안한 걸음으로 무대 중앙에 나타났다.
“헉.”
뒤늦게 정신을 차린 진행 스태프가 식겁해서는 말했다.
“저기 아직 시작하려면 과정이.”
“그 말을 다섯 번째 들었어요.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말을 계속 들으려니까 몸에 좀이 나서.”
“그래도 조금만 더.”
“20분 동안이나 가만히 앉아만 있었는데요. 구체적으로 언제 시작하나요? 리허설도 끝났는데. 관객분들도 기다리시고요.”
김한영의 난데없는 말에 진행 스태프가 당황해서는 촬영장 저 먼 곳에 시선을 보냈다.
민선욱 PD가 있는 곳이었다.
그가 헛웃음을 짓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 표정을 인간의 말로 번역하자면 아마 이런 거 아닐까.
‘응, 포기해.’
방송국 편의에 맞춰 절차를 들이밀기에는, 김한영의 몸값이 너무 커져 버렸다.
이 자리에 모신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상황이니까.
방송국에서 손절을 치면 어쩔 텐가.
자기 방송 켜면 그만인 사람인데.
그 방송 시청률이 어지간한 지상파 방송보다도 더 잘 나오는 사람인데.
‘모르겠다. 솔직히 이 정도면 할 만큼 했지.’
민선욱 PD가 쓴웃음을 짓고는 말했다.
“지금 막 장비 점검이 다 끝났습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그 말에 김한영이 기다렸다는 듯 팔을 풍차처럼 돌려 어깨를 뚜두둑 풀더니, 기타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렇다고 하시니까,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