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7
27화
너무 일찍 온 탓일까.
본격적인 공연을 시작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
해서, 나는 늘 하던 일을 하기로 했다.
티딩, 팅.
기타 연주를 시작했다.
‘분위기 좋고.’
이곳 동아리 회관은 중경대학교 동아리 회관과는 다른 의미에서 좋았다.
중경대학교가 은근히 지저분해서 아늑한 맛이 있다면, 이곳은 조금 더 깔끔하니 쾌적한 맛이 있다.
흥에 차서 기타 현을 퉁기는데 조은솔이 중얼거렸다.
“기타를 거의 손에서 놓질 않네. 이래서 실력이 빨리 느나?”
“한영이는 틈틈이, 시간이 날 때마다 하잖아요.”
고희범이 내 말투를 따라 하듯 말하더니 낄낄 웃었다.
나는 기타를 내려놓고 명치를 한 대 칠까 하다가 초인적인 자제심으로 견뎌냈다.
‘나중에 때려야겠다.’
우선은 적립.
그보다는 지금 기타를 치는 맛이 썩 좋았다.
‘공기가 선선하네.’
식구들은 앞에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 와서 까먹고 있다.
나는 그 앞에서 천천히 기타 현을 퉁기고 있다.
이색적인 분위기와 더불어 지금, 이 순간이 일상의 여유처럼 느껴졌다.
‘평생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는 참이었다.
“어?”
조은솔이 움찔하더니 옆을 바라봤다.
의아해 나도 연주하던 기타를 내려놓고 앞을 봤다.
그곳에는 처음 보는 얼굴의 학생 한 명이 기타 케이스를 들고 있었다.
‘누구지?’
전체적으로 고양이를 닮은 인상에 선이 얇은 학생이었다.
그가 우리를 지그시 응시하고 있었다.
‘사람 처음 보나?’
그냥 멀뚱멀뚱 서 있길래 무슨 일이 있나 싶은데, 그는 휙 고개를 돌리더니 내가 앉은 소파 건너편에 대뜸 앉았다.
그러더니 나를 바라봤다.
나도 질세라 그를 직시했다.
“…….”
“…….”
눈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눈을 마주하기를 약 10초.
나는 곧 깨달았다.
‘이 녀석, 강적이다.’
눈싸움 경력 20년이 넘었다.
내 경험상 초면에 사람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사람이면 둘 중 하나였다.
머릿속에 별생각이 없거나 아니면 제정신이 아니거나.
전자는 한윤태였다.
후자는 눈앞의 이 학생, 아마도 정상인이 아니리라.
대충 그런 생각을 하고 있기를 다시 10초.
“어, 뭐야? 둘이 아는 사이야?”
조은솔이 우리 둘의 눈싸움에 끼어들었다.
‘뭐지? 이 도리 없는 사람은?’
나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 조은솔과 눈을 마주쳤다.
그녀도 우두커니 내 눈을 마주했다.
‘머릿속에 생각이 없는 사람이로군.’
내 판단은 빠르고 간결했다.
그렇게 김이 샜다 싶은 순간이었다.
눈앞의 학생이 손가락으로 우리가 앉은 소파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여기, 원래 제가 쓰는 자린데요.”
“그래서요?”
“그냥 그렇다고요.”
아무래도 평소에 그가 쓰던 자리였나 보다.
하긴, 이상할 일은 아니다.
원래 기타 좀 친다는 사람들은 연주할 장소가 없으면 별 괴상한 곳에서 다 친다.
동아리 회관 1층 정도면 아주 양호한 장소이리라.
아니나 다를까.
그는 아무런 말도 없이 케이스에서 기타를 꺼냈다.
그러더니 대뜸 연주를 시작했다.
‘오.’
재밌는 일이 생겼다.
* * *
다단, 단.
학생이 연주를 이어나갔다.
어디서 뭘 하던 학생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내심 놀랐다.
왜냐.
그의 연주가 나름대로 훌륭했기 때문이었다.
사소한 피킹 한 번에서조차 탄탄한 기본기가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연주가 유연하네.’
자유로웠다.
기본적인 코드 체인지부터 하모닉스, 해머링, 퍼커시브까지 모든 면에서 자연스럽게 오갔다.
동시에 블루스, 보사노바, 펑크, 셔플, 폴카까지 갖은 리듬이 부드럽게 섞였다.
‘심리적인 경계가 없다.’
사실, 하나하나만 따지자면 그렇게까지 대수롭진 않다.
전공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는 하였다.
하지만 이 모든 걸 자연스럽게 오가며 그 사이에서 자연스러움을 챙기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단순히 이론에 빠삭한 걸 넘어, 말 그대로 기타와 친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겉멋으로 음악을 하는 부류는 절대 아니었다.
‘전공자인가?’
이런 사람이 대뜸 튀어나오다니, 역시 국단대학교다 이 말인가.
그런데 어째서일까.
나는 그의 연주에서 묘하게 실력을 과시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필요 이상으로 연주를 비틀어 꺾는다고나 할까.
그래도 음악인이라는 게 원래 과시욕을 달고 사는 인종이니 별생각 없이 듣고 있는데, 그러고 있으려니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뭐지? 연주를 끝낼 생각이 없나?’
이 녀석, 연주를 끝내질 않는다.
멜로디 하나를 연주하다가도 조금 끝나나 싶으면 자연스럽게 다음 멜로디로 넘어가기를 계속해서 반복했다.
그 사이에서도 변화가 이어졌다.
부드럽다가 딱딱하고, 쫄깃하다가 번갯불처럼 팍팍 튀었다.
마치 무한 도돌이표의 다른 버전을 보는 듯한 연주.
“우와…….”
고희범이 은근한 감탄을 흘렸다.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다만, 그걸 보는 내 속에서는 은근한 짜증이 올라왔다.
왜냐.
‘내가 먼저 연주하고 있었는데.’
차례를 뺏겼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내가 먼저 연주하고 있지 않았던가.
잠깐 쉬는 참이었는데, 갑자기 난입해서는 순서를 가져가 버리다니.
이건 조금 너무하지 않은가.
그래도 마땅히 따질 건덕지는 없어서 뚱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참인데, 그와 눈이 마주쳤다.
“…….”
“…….”
그는 두 눈으로는 내 눈을 바라보면서도 손은 연주를 마치지 않았다.
그 눈빛이 마치 나를 도발하는 듯했다.
‘뭐지? 한번 너도 해 보라는 말인가?’
하려면 당연히 할 수 있다.
다만, 지금처럼 차례를 내어주지 않는다면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보고만 있겠는가.
스륵.
나는 내 기타를 들고 허벅지 위에 올렸다.
‘남이 연주하는 중이라고 못 끼어들 것도 없지.’
나는 그대로 현을 퉁겼다.
팅!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연주와 불협화음을 만드는 건 아니었다.
그저, 어울렸다.
잼.
학생의 솔로에 즉흥 합주로 참여했다.
‘어디 한번 해 보자.’
그렇게 갑작스러운 즉석 합주가 시작되었다.
또,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그가 리듬을 주도하는가 하면, 내가 빠르게 따라붙으며 더 인상적인 멜로디로 치고 들어갔다.
“…….”
곧이어 그의 연주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마치 후발주자로 참여한 나를 따돌리려는 듯 변화무쌍한 리듬을 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타이밍을 놓칠 내가 아니다.
‘어림도 없지.’
그가 기타와 어느 정도로 친한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 정도는 아닐 것이다.
왜냐.
나는 입으로 말하는 것보다 기타 연주가 더 익숙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보통 잼이라고 하면 한 사람이 솔로를 주도하고 다른 한 사람이 백킹을 넣는 둥 하여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게 정석이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 둘의 잼은 조금 달랐다.
띠리링- 탁.
다당, 타다다닥. 팅.
서로가 주도권을 가져가겠다는 듯 싸웠다.
‘치사하게 구네. 혼자서 좀 이만큼 했으면 양보 좀 하지.’
혼자서만 다 해 먹겠다는 건가.
우리 사회라는 게 서로 한 대씩 주고받고 해야 정겨운 맛이 있을진대, 그의 연주에는 이러한 의식이 없었다.
마치 혼자서 다 해 먹고야 말겠다는 고약한 심보가 엿보였다.
한마디로, 고집이 셌다.
‘그렇다면, 좋다.’
꼭 솔로를 가져가야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다.
솔로를 내주더라도 연주의 주도권은 얼마나 가질 수 있다.
나는 접근하는 방향을 바꾸었다.
틱.
멜로디는 포기했다.
그 대신.
타다다다다닥, 타닥, 투두둑, 툭, 툭. 착!
철저하게 퍼커시브 중심으로 연주를 바꾸었다.
‘멜로디는 네가 가져가라. 리듬은 내가 다 가져간다.’
리듬에서 곡의 판도를 장악한 셈이었다.
덕분에 자유롭게 날뛰던 그의 연주가 점차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구조적으로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리 자유롭게 연주하려고 한들 리듬에서 제약이 걸리면 다룰 수 있는 솔로에도 한계가 발생한다.
“…….”
그가 미묘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이 상황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였다.
물론, 여기서 내 리듬을 무시하고 자기 갈 길을 가면 그만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러면 이 잼에는 균열이 일어난다.
불협화음이라는 이름의 균열이.
그의 자존심은 불협화음을 용납하지 못했다.
‘이런 부분에서도 고집이 있네.’
이건 좋은 고집이다.
그렇게 비정상적으로 시작한 잼은 끝내 정상적인 잼으로 끝났다.
“후우.”
어쨌든 한 번 일을 마쳤다는 생각에 피로감과 보람이 동시에 느껴진 순간이었다.
‘어?’
박수 소리가 쏟아졌다.
보아하니 어느새 소리를 듣고 찾아온 동아리 회관 학생들이 손바닥을 두드리고 있었다.
“와.”
“멋지다.”
“이런 거 처음 봐요.”
난데없이 칭찬을 들으니 심히 민망한 기분.
그와 내가 주도권 다툼을 벌인 건데, 저들의 눈에는 이게 그럴듯한 합주로 보인 모양이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고희범을 바라본 순간이었다.
“…….”
핸드폰으로 우리를 찍고 있었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였는지 우리 연주 영상을 정신없이 촬영한 모양이었다.
‘그래, 너도 프로구나.’
아무렴, 허튼짓만 아니면 됐다.
그렇게 긍정적으로 넘기고 다음 연주를 시작하려는 참인데, 조은솔이 핸드폰으로 시계를 보며 말했다.
“한영아, 슬슬 갈 시간 됐다.”
“벌써요?”
나는 그게 다소 뜬금없어서 놀란 눈으로 시계를 봤는데, 이미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그녀의 말마따나 슬슬 공연을 준비하러 갈 시간.
그런데 뭔가 찝찝해서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저희 여기서 만나기로 한 거는요. 회관에서 인사 좀 나누자면서요.”
약속이 깨졌나.
썩 의아한 참인데 그녀는 눈을 얇게 뜨며 말했다.
“으음, 그게 저쪽에 갑작스럽게 일정이 생겨서 먼저 공연장으로 가 있겠다네.”
“약속 터졌어요?”
“그런 셈이지. 지금 막 문자로 연락 왔어.”
“얄밉네.”
순간적으로 어이가 없었다.
손님을 초대해 놓고 자기들은 멋대로 빠지다니.
그건 그렇고, 당장 연주가 모자랐다.
‘아, 이거 묘하게 아쉬운데.’
흥이 한참 오르던 참이었는데, 불완전연소 상태로 끝나버렸다.
그렇다고 또 어쩔 수 있나. 남은 건 무대에서 풀어야지.
드륵.
나는 짐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멀뚱멀뚱 앉아 있는 학생을 바라보며 말했다.
“먼저 갈게요. 재밌었어요.”
그도 눈을 크게 뜨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동아리 회관을 떠나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또 만날 것 같네.
* * *
‘안에서 보니까 더 넓네.’
[YTG 홀] 공연장에 들어온 첫 감상은 이러했다.바깥에서 보고 시설이 넓은 것 정도야 진즉 알았다.
하지만 지하로 들어와서 직접 두 눈으로 보니 기대했던 것 그 이상이었다.
‘이만하면 진짜 2천 명도 수용할 수 있겠는데.’
나도 전생에 어지간한 고급 공연장은 다 돌아봤는데, 이곳은 기대했던 것 그 이상이었다.
“건설비만 수백억대로 들었다고 하더라. YTG 엔터가 여기에 투자 많이 했다고.”
어느새 국단대 전문 가이드로 전직한 성민아가 부연 설명을 달았다.
“특히 여기 벽이 대단한데, 유럽에서 장인을 직접 모셔와서 벽의 반사 각도를 하나하나 계산하고 만들었다고 해. 대단하지?”
“어.”
“이게 다 사소한 디테일인데, 이런 게 쌓이면 공연의 인상 자체가 바뀌는 거잖아. 괜히 국단대 실용음악과가 명문이 아니야.”
이거 봐라.
신났네.
아까는 아는 척하기를 부끄러워하더니, 이제는 그것도 그냥 집어치운 모양.
하지만 이것도 썩 즐거웠다.
평소 그녀가 말을 많이 하지 않는 편인 탓일까. 이게 되려 신선하기까지 했다.
‘뭐, 누구나 자기 관심사가 나오면 말이 많아지는 법이지.’
그녀는 실용음악과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다.
무대 위로 시선을 돌리니 그곳에서는 이미 트레몰로의 몇몇 멤버가 간단하게 손을 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실력이 뭐라고 해야 할까.
‘저 정도인가.’
아까 동아리 회관에서 봤던 그 학생의 연주와 비교하자면, 심심했다.
그것도 꽤 많이.
뭐라고 해야 할까.
그 연주를 듣고 있으려니 슬쩍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기 어려웠다.
그러자 조은솔과 고희범의 눈이 나를 향했다.
“한영아,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는 서둘러 입을 가리며 손을 내저었다.
이거 참 웃긴 일이다.
잠깐이나마 긴장했던 나 자신이 우스워졌던 것이다.
“그냥 오늘 공연 재밌겠구나 싶어서요.”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트레몰로.
생각보다 별거 없는 동아리였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