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8
28화
음악을 하다 보면 매년 그런 부류가 있다.
실력이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실력이 없는 부류.
말하자면 이런 것이었다.
[연주를 잘하지, 음악을 잘하는 게 아니다.]저들의 태반이 그런 느낌이었다.
테크닉은 훌륭하다.
하지만 음악 자체에 대한 감각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한데.’
그래.
트레몰로 회원들의 실력이 딱히 좋지 않았다.
물론, 일반인 수준에서는 몹시 괜찮다.
또 프로 느낌이 강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아까 동아리 회관에서 봤던 학생에 비하자면 한참 모자랐다.
‘내가 괜히 긴장했나.’
조금 전 그 학생을 보고 솔직히 놀랐다.
제아무리 잘나가는 실용음악과가 딸린 학교라고는 하나, 길거리에 널린 학생이 그 수준이라는 게 믿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전문 동아리라면 한술 더 뜨는 게 아닐지 점쳐보기도 했다.
하지만 실상은 어떠한가.
‘잘하기는 잘하는데, 좀 미묘해.’
건조했다.
“우와…… 쟤들도 잘한다…….”
물론, 고희범은 감탄했다.
또 성민아나 조은솔, 정의선, 윤서 선배도 나름대로 긴장한 기색이 완연했다.
“역시 국단대.”
“인정하기 싫지만 잘하기는 잘해.”
“프로구나.”
“어우, 고막 울려.”
그 외에 다른 선배들도 슬슬 모였는데, 그들도 놀란 눈치였다.
“손 풀기가 저 정도란 말이지.”
“장난이 아니네.”
모두가 일관되게 감탄한다.
그렇다면 이 장소에서 이상한 건 나라고 봄이 옳았다.
‘귀가 쓸데없이 높아졌나.’
이게 전부 아까 그 학생 때문이다.
그렇게 멀뚱멀뚱 트레몰로의 리허설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조은솔이 내게 물었다.
“한영아,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에요.”
“많이 긴장돼?”
“아뇨. 딱히.”
실망스러운 마음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찰나였다.
‘어?’
공연장 대기실 방향에서 한 학생이 걸어 나오더니 성큼성큼 무대 위로 걸어 올라갔다.
그런데 그 학생의 얼굴이 조금 익숙했다.
‘쟤, 아까 걔잖아.’
나랑 동아리 회관에서 잼 아닌 잼을 연주했던 학생이었다.
그가 무뚝뚝한 얼굴로 기타 케이스를 내려놓더니, 기타를 꺼내 이내 다른 학생들의 손 풀기 연주에 동참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아, 이제 알겠네. 네가 에이스였구나.’
그렇다.
그냥 저 학생의 실력이 트레몰로 안에서 이상하리만치 특출난 것이었다.
어쩐지 수상하다 했다.
진상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참이었다.
무대 위에서 한 학생이 이쪽을 향해 달려오더니 조은솔의 앞에 멈춰 서서 말했다.
“중경대 맞죠?”
“…….”
“트레몰로 부장입니다. 김지호라고 해요.”
뒤늦게 인사를 하게 됐다.
* * *
“미안해요. 저희도 가능한 한 만나러 가려고 했는데, 동아리에 갑자기 일이 생겨서 아침부터 다 바빴지 뭐예요.”
김지호가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말과는 달리, 손님을 바람맞힌 것 치고는 퍽 당당한 표정이었다.
‘좀 날라리 같은데.’
이름이 이상혁이었나 김상혁이었나.
이제 이름조차 기억이 희미한 그 사람과는 같으면서도 달랐다.
그쪽은 범생이 느낌이 들면서 행동이 양아치라면, 이쪽은 아예 얼굴부터 행동거지 전반에 전부 노는 티가 흘러넘쳤다.
“그래요?”
조은솔은 은근히 짜증이 난 것 같으면서도 우선은 눈을 감아주겠다는 듯 말했다.
“일단 그건 그렇다 치고, 오늘 행사는 그럼 어떻게 되는 거예요?”
“예전에 말했던 대로 각자 차례대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저희 쪽이랑 그쪽이랑 한 명씩 번갈아서 나오는 방식으로.”
듣자 하니 일대일 시합과 비슷한 느낌이 있었다.
음악이라는 게 딱히 남이랑 시합을 하려고 하는 건 아니다.
또 이건 친목 목적의 교류회니까 더더욱.
하지만 기본적인 진행 구도 자체가 경쟁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신입생부터 고학년 순으로 가려고 하는데요. 그러고 보니까 인사나 하죠. 좀 늦어졌네요. 애들아!”
그가 대뜸 무대 위에서 한창 손을 풀고 있는 학생들을 불렀다.
그들이 줄줄이 아래로 내려오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회원 수가 많네.’
전체적으로 숫자가 많다.
팅은 작년에 누구 덕에 반으로 갈라져서 죽을 뻔했던 탓에 회원 수가 처참한데, 이쪽은 거의 우리 측의 2배가 넘는 수준.
숫자 자체가 다르다.
하지만 내 시선은 그중 한 명에게만 향했다.
다름 아닌, 아까 동아리 회관에서 나와 마주했던 학생이었다.
“…….”
“…….”
그도 멀뚱멀뚱 서 있다가 나를 바라봤다.
그렇게 눈을 마주하고 있기를 잠시, 조은솔이 입을 열었다.
“아, 이 학생도 트레몰로 소속이었나 보네요.”
“선우 알아요?”
“아까 잠깐 마주쳤는데요.”
“그렇구나.”
너 이름이 선우였구나.
그러고 보니까 아까 통성명도 안 했네.
그런데 그 이름을 속으로 되새긴 순간이었다.
‘잠깐, 선우? 트레몰로에 소속된 선우?’
이름이 어딘가 익숙했다.
머릿속이 조금 복잡한데 김지호는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말했다.
“선우가 올해 트레몰로 신입생 중에 에이스거든요.”
아.
떠올랐다.
나는 살짝 놀라면서 말했다.
“혹시, 임대경의…….”
“아, 아시는구나.”
김지호가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말했다.
“네, 이 친구가 그 YTG 엔터의 아들 임선우가 맞아요.”
그렇다.
트레몰로에 소속된 선우라면 한 명밖에 없었다.
임선우.
YTG 엔터의 아들이자, 음악 영재로 나름 이름을 알렸다는 그 수재였다.
‘어쩐지, 연주가 비범하더라니.’
왜 못 알아봤을까.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다.
우선, YTG 엔터는 자기 황태자에게 쏟아질 대중의 관심을 고려했는지 그의 사생활을 철저하게 보호했다.
아주 어렸을 때 영상을 제외하고 근래는 사진 한 장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리고 내 기준에서는 무엇보다도.
‘임대경이랑 하나도 안 닮았네.’
그가 자기 부모랑 안 닮은 탓이 컸다.
‘임대경은 더 무겁고 단단한 인상이었는데, 이쪽은 완전히 반대잖아.’
얇고 세련됐다.
요즘 흔히 말하는 아이돌 상인데, 동물로 치자면 고양이를 연상시켰다.
솔직히 얼굴 생김새 따위야 내 알 바 아니다.
중요한 건 그가 임대경이랑 쥐뿔도 안 닮았다는 사실이었다.
‘같은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는 거 맞아? 이건 아무리 그래도 너무 다른데?’
어머니 쪽의 힘이 강했나.
어처구니가 없어서 빤히 쳐다보고 있으려니 이번에는 조은솔이 입을 열었다.
“같은 신입생들끼리 공통점도 많네요. 마침 우리 한영이도 신입생이면서 팅의 에이스거든요.”
“아, 이쪽이 김한영이에요?”
“아세요?”
“미튜브에서 봤거든요. 방송하는 거.”
김지호는 나를 안다는 듯 중얼거렸다.
“연주 실력 듣고 깜짝 놀랐는데 반갑네요. 한영 씨 영상 우리 동아리 애들한테도 다 한 번씩 들려줬어요.”
그가 싱긋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그런데 그 웃음이 어쩐지 썩 달갑지만은 않았다.
‘얘는 뭐 이렇게 기분 나쁘게 웃지?’
얼굴부터 꺼림칙하다.
나 악역이요,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단순히 내 선입견이라고 말해도 좋다.
하지만 나는 이런 부류의 사람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약속을 바람맞혔으면 조금이나마 미안한 뉘앙스가 있어야 하지 않는가.
이 김지호라는 사람에게는 그런 마음이 추호도 느껴지지 않았다.
‘도리가 없군. 측은지심이 없고, 수오지심도 없어.’
그렇게 인사도 뭣도 아닌 눈치싸움이 일어나기를 잠시.
김지호는 헛기침을 뱉더니 말했다.
“일단 리허설 먼저 진행하죠. 공연도 곧 시작이니까 슬슬.”
“네.”
어쨌든, 자주 볼 사람은 아닌 듯했다.
* * *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되기에 앞서, 조짐이 영 심상치 않았다.
‘뭐 이렇게 관객이 많이 오지?’
교류회 관객은 많아야 몇백이라고 했던가.
그 말은 완전히 잘못된 말이었다.
적어도 지금 내 눈을 보기에, 이미 관객 수는 천 가까이 찍은 듯했다.
심지어 이게 아직 끝난 게 아니다.
계속해서 증가 추세였다.
‘무슨 일 있나.’
아무리 수준이 있다고는 하나 일개 교류회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보러 올 이유가 있는가.
의아하기를 잠시.
공연이 시작한 직후, 나는 사람들이 잔뜩 모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유현입니다!”
현직 프로로 활동 중인 국단대생들이 무대 위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원래부터 이랬었나.
공연 순서에 이런 과정이 포함되어 있었나.
정답을 찾아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조은솔도 놀란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있었다.
“누나, 몰랐어요?”
“어…… 전혀 예상 못 했는데…….”
그녀는 우물쭈물하더니 말했다.
“공연 중간에 트레몰로에서 준비한 스페셜 무대가 있을 거라고 말은 들었지만, 설마 이런 식이 될 줄은 전혀 몰랐지.”
나는 그녀의 말에서 깨달았다.
저쪽에서는 팅에 구체적인 사안을 전달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원래 평소에도 이랬어요?”
“아니, 관례상 OB들이 축하 공연을 오는 경우는 가끔 있어도, 이번처럼 대놓고 프로들을 투하하진 않았는데…….”
원래는 없었던 일이군.
아무래도 저들은 오늘 무대를 정말 작정하고 준비한 모양이다.
그런데 대체 왜.
중경대와의 무대가 이들에게 그렇게까지 중요하단 말인가.
그냥 다른 학교와의 교류회 아닌가.
‘이상하군.’
적당히 성공한 선배를 초청하는 정도라면 이해할 수 있는 범주다.
현역으로 활동하는 후배들 공연에 졸업생들이 날뛰는 게 나잇값 못 하는 느낌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크게 잘못된 일은 아니니까.
하지만 지금 분위기는 살짝 과열된 감이 있었다.
“저 사람도 이름은 없지만, 인디에서 데뷔한 프로야. 싱글만 5장 냈다는데?”
프로의 수준에 달한 졸업생들의 공연에 관객들의 환호성이 쏟아졌다.
그에 팅의 선배들은 자연스레 주눅 든 눈치.
설마 트레몰로에서 우리 기를 죽이려고 이런 진행을 구성한 걸까.
나는 몇 가지 가능성을 점치다가 피식 웃고야 말았다.
‘에이, 설마.’
아니다.
우리는 그렇게까지 강력한 상대가 아니다. 강력하다기보다는, 중요한 상대가 아니다.
다른 뭔가가 있겠지.
나는 단서를 찾아 아직 무대 밖에서 대기 중인 여타 트레몰로 회원들을 바라봤다.
그렇게 그들의 시선을 쫓기를 잠시.
‘오?’
나는 한 가지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관객석에 앉은 학생 중 몇몇은 무대가 아닌, 관객석의 어느 한 장소만 잔뜩 의식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은 [YTG 홀]의 위층이었다.
이 공연장은 지하 2층에서 지하 1층까지 두 개의 층을 사용하는 구조였는데, 그곳 2층 맨 앞의 VIP 좌석쯤 될 자리에 한 사람이 팔짱을 낀 채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 얼굴이 조금 익숙했다.
‘임대경?’
임대경이었다.
내가 아는 그 얼굴보다 다소 늙은 감이 있지만, 분명 그 얼굴이었다.
공연에서 눈을 떼고 다른 곳만 바라보는 내가 이상했던 걸까. 성민아가 내게 슬쩍 물었다.
“한영아, 왜 그래?”
“저기 좀 봐.”
“저기는 왜…… 어?”
순간 그녀의 동공이 순간적으로 크게 뜨였다.
“임대경?”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임대경이 공연을 보러 직접 행차했어.”
“저 사람이 왜 여기에…….”
“글쎄.”
나는 잠시 턱을 괴고 고민하다가 말했다.
“자기 자식 공연을 보러 온 거 아닐까? 이번 공연에는 임선우가 참여하니까.”
이게 내 추측이었다.
부모가 자기 자식의 재롱잔치를 보러 오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또 공연장 관계자가 공연을 보러 오는 것도 그러하다.
가능성 있는 신인을 발굴하기 좋은 기회일 테니.
그렇다면 이번 공연에 유독 힘이 쏠린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번 교류회는 단순한 친목의 장이 아니었다.
이 교류회는.
3대 엔터의 황제 중 한 명이 직접 바라보는 심사의 자리이기도 하였다.
‘자기들끼리는 알음알음 다 알았겠군.’
우리에게만 통보를 안 했다.
오늘 국단대 학부생들이 유독 많이 온 건 여기가 저들의 홈그라운드라서 아닐까.
당장 홍대 한복판에서 어느 유명인이 버스킹을 한다면 수백 명이 한 번에 몰리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니.
그렇게 마저 생각하고 있는데 고희범이 인터넷을 뒤적이더니 말했다.
“야, 진짜다. 아까 애타(애니 타임, 대학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SNS)에 글 올라왔어. 게스트 맛집이라고 난린데? 봐 봐.”
아니나 다를까.
이야기가 풀린 지 얼마 안 된 모양.
‘이거 머리 아프네.’
적당히 실력 발휘 좀 하고 나가려고 했더니, 생각보다 규모가 커졌다.
오늘 무대에서는 여차하면 들러리로 전락할 상황.
또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지금 당장 저들의 음악은 임대경의 눈에 어떻게든 한 번 들고 보겠다는 듯 화려하기 짝이 없으니.
하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이런 일은 전생에도 수도 없이 겪었다.
‘원래 그 어떤 스타도 들러리부터 시작하는 법이지.’
들러리에게는 들러리의 방식이 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