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9
29화
“감사합니다! 나중에 또 봐요!”
스페셜 게스트 무대가 끝났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교류회가 시작되었다.
팅의 식구들은 트레몰로와의 경쟁을 코앞에 두고 긴장한 기색이 완연했다.
“아, 이거 어쩌지.”
“뭘 해도 묻힐 것 같은데.”
몇몇 선배들이 질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당연했다.
최선을 다한 무대를 선보인들 이들은 아마추어.
프로들의 완성도 높은 무대를 본 뒤에야 아기들 재롱잔치로밖에 안 보이리라.
“…….”
말은 안 해도 성민아나 조은솔도 긴장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윤서 선배만 이 분위기를 해소하려는 듯 농담을 던지려는 듯했다.
“이야, 재들도 좀 너무하네. 이거 완전 공개처형 아니냐?”
농담이 아니었다.
나는 문득 트레몰로 쪽을 바라봤다.
그쪽도 긴장한 건 마찬가지지만, 우리보다는 사정이 많이 나은 듯했다.
‘그래도 묻히지는 않을 자신감이 있는 건가.’
그렇게 기다리기를 잠시.
곧 한 명의 학생이 무대 위로 올라갔다.
임선우였다.
이번 교류회는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순서대로 올라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임선우가 그 첫 타자를 맡은 모양.
좋은 선택이었다.
보통 이런 공연이라는 게 가장 앞자리와 가장 뒷자리가 중요한 법이니.
이 둘이 첫인상과 끝맛을 좌지우지한다.
임선우, 그가 트레몰로의 얼굴을 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럴 만한 실력이 있긴 하지.’
아까 점심에 그와 동아리 회관에서 짧게나마 연주를 견주어 본 나는 알았다.
임선우는 단순한 실용음악과 신입생의 수준을 넘어, 당장이라도 프로로 활동할 수 있을 연주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세션으로서 그렇다는 말이다.
아티스트로서 어떤지는 지금부터 봐야겠지.
“아, 아.”
그가 가볍게 마이크를 체크한 뒤 입을 열었다.
“올해 국단대학교 실용음악과에 입학한 임선우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그 순간이었다.
“멋지다!”
“임! 선! 우! 임! 선! 우!”
앞자리 트레몰로 자리에서 압도적인 호응이 쏟아졌다.
성격 보면 인간관계가 특별히 좋을 것 같지는 않은데, 아무래도 같은 동아리이니만큼 챙겨준 모양.
아니면 임대경 아들이라서 그렇거나.
아무튼, 저게 기폭제의 역할을 했다.
‘요란하네.’
트레몰로의 작은 호응은, YTG 홀에 들어찬 천 명이 넘는 관객들의 호응으로 이어졌다.
마침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쟤가 YTG 대표 아들이래.”
“진짜?”
“와, 아빠랑 하나도 안 닮았네.”
“그러게. 임대경은 모아이 석상처럼 생겼잖아. 쟤는 귀공자 인상이다.”
나도 동의한다.
고슴도치 밑에서는 고슴도치가 태어나는 법이라는데, 갑자기 고양이가 태어났다.
털이 많고 포유류라는 점을 제외하면 겹치는 점이 없었다.
이건 생물학적인 오류였다.
증명하면 노벨상을 받을 수 있으리라.
‘그래서 과연 실력은 어떨까.’
내 안에서도 작은 기대감이 은근하게 자라났다.
순수히 연주력만 보면 임대경 이상이었다.
하지만 아티스트라는 건 연주력만 보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연주력만 좋은 정도로는 부족하다.
무대 위에서 그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줄 줄 알아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자, 너희 아버지보다 낫나 한번 보자.’
그렇게 오감을 무대 위로 곤두세운 순간이었다.
임선우의 왼손이 잔잔하게 기타 현을 퉁기기 시작했고.
“유리 같이 갈라진 내 삶의 조각.”
그의 입이 노래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게 영 심상치 않았다.
‘뭐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스타일에 나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내 입에서 나온 거짓말은 갈래갈래 찢겨 모래가 되고, 메마른 입술에는 포도주가 닿아 주홍빛으로 적셔 가네.”
이게 뭐야.
임선우가 지금 무대 위에서 선보이고 있는 스타일은 내가 생각했던 그 어떤 것과도 달랐다.
저건 뭐라고 해야 할까.
‘수십 년 전 스타일이잖아.’
복고풍이었다.
세련된 인상에 아까 연주도 워낙 세련됐기에 현대적인 음악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가 선보인 연주는 수십 년 전의 그것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아버지 임대경의 스타일을 정확히 닮았다.
그래.
임대경이었다.
애초에 이 곡부터 임대경의 곡이었다.
“그대가 아는 나는 아지랑이와 같거늘 나는 무엇을 그리 연기하는지. 나는 계속해서 광대가 되어가오.”
그의 아버지가 불렀던 곡을 그의 스타일로 부르고 있다.
다름 아닌, 그와 함께 무대에서 몇 차례 부딪혔던 나이기에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노래를 듣기를 잠시.
내 입에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임대경, 자기 자식한테 자기 스타일을 계승시킨 건가?’
본인이 좋아서 그랬던 건지, 아니면 그렇게 가르친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너무나도 똑같았다.
사소한 피킹 습관부터 시작해서 악센트까지 모든 면이 같았다.
마치 분신을 보는 것만 같다.
그렇다면 이건 현대의 세습이라고 봐도 좋았다.
진시황이 영원히 살기 위해 병마용갱을 만들었듯, 임대경은 임선우라는 인물을 다듬은 셈이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그의 연주는 훌륭했다.
“……쩐다.”
표정이 굳은 팅의 식구들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임선우의 연주는 앞서 무대에 오른 프로들과 비교해서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그 사실이 관객들을 더욱 경악하게 만들었다.
“쟤는 뭔데 저렇게 잘하지?”
“워낙에 안 닮아서 혹시 했는데, 임대경 아들이 맞긴 하구나.”
“이 노래 몇 번 들어본 것 같은데.”
“어? 이게 임대경 노래였어?”
자잘하게 감탄이 번져 나갔다.
임선우의 곡은 한 곡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번 교류회는 인당 2곡까지 하는 게 관례라고 하였던가.
임선우의 다음 곡은 첫 곡보다도 더더욱 훌륭했다.
그리고.
그것 또한 임대경의 곡이었다.
‘아주 효자네. 효자. 부모 호강도 시켜 주고.’
고개를 돌려서 2층 VIP석을 바라보니 그곳에서는 임대경이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군.
“감사합니다.”
곧이어 임선우의 무대가 끝나며 관객들의 환호성이 쏟아졌다.
생각지도 않게 훌륭한 무대에 열기로 가득 찬 YTG 홀.
이곳에서 분위기가 심각한 건 팅의 식구들이 앉은 이쪽 좌석뿐이었다.
“아…….”
“…….”
아까 윤서 선배의 말마따나 누가 공개처형을 당할까 걱정되는 거겠지.
위 기수 선배들이 트레몰로에 기겁했던 것도 이해가 되네.
한번 이렇게 당해 보면 나라도 트라우마가 생기겠다.
하지만.
“제가 먼저 나갈게요.”
내가 있는 이상 그럴 일은 없다.
* * *
오디션에 대한 한 가지 편견이 있다.
그냥 실력만 좋으면 붙는다는 편견이었다.
그렇다면 실상은 어떨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지. 실력만 보면 그냥 장수생들이 다 해 먹게.’
기본 전제가 틀렸다.
작은 시험 문제를 풀더라도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시작하는 게 정석 아니겠는가.
오디션이란 건 뭐라고 해야 할까.
기본적으로 심사위원의 마음에 들어야 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이 심사위원의 마음에 든다는 기준이 마치 파도타기처럼 널뛰기가 극심했다.
잘생겨서 붙는가 하면, 노래를 잘 불러서 붙기도 했다.
인간성이 마음에 들어서 붙을 수도 있다.
또 연줄이 있어서 미리 내정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중구난방이다.
요컨대, 단순히 잘한다고 해서 붙는 게 아니었다.
‘전설적인 밴드 야생화의 보컬, 전진권도 노래를 못 부른다는 이유로 오디션에서 여러 번 탈락했다고 했지.’
그런데 이렇게 자기 멋대로인 오디션에서 그나마 정답에 근접한 기준이 있었다.
‘포텐셜을 보여주는 거지.’
내가 지금 당장은 모자라도, 앞으로 잘할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보여주면 장땡이었다.
내가 이만큼 원석이다.
조금만 더 다듬으면 그럴듯하겠지.
어떠냐, 내가 탐나지.
내가 지금 당장은 이 오디션에 제 발로 찾아왔을 정도로 몸값이 낮다만, 나중에는 그쪽에서 찾아와야 할 거다.
이렇게 호소하는 듯한 포텐셜.
포텐셜을 보여주는 게 핵심이었다.
애당초 오디션이라는 건 상품을 평가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상품이 될 수 있는 사람을 탐색하는 자리였다.
그렇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Once in a lifetime(살면서 단 한 번).”
포텐셜.
이 공연장을 채운 수많은 사람을 포텐셜로 매혹하는 일이었다.
성장 가능성을 엿보여주며 유혹하는 것.
그런데 이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기대치가 낮을수록 좋지.’
신인이어야 한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신인이어야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당연히 잘해야 할 사람이 잘한들 그건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야.’
프로 가수가 프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건 당연하다.
못 하면 그건 핀잔을 살 일이다.
하지만 못할 것 같은 사람이 잘한다면 어떨까.
‘기대치가 바닥까지 내려간 만큼, 정말 별것 아닌 무대여도 으리으리해진다.’
관객들이 볼 때 이 자리에서 기댓값이 제일 낮은 사람이 누굴까.
나다.
나는 프로가 아니다.
나는 신입생이다.
하물며 나는 음악 전공자조차도 아니다.
또 나는 임선우라는 괴물 뒤에 따라붙은 불운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나이기에 할 수 있다.
오직 나만이, 이 자리에서 가장 위력적인 반전을 보여줄 수 있었다.
“Boys, just be brave. You can change you world in 10 seconds. Only you can do it.”
이 곡, [Bravery]를 선곡한 이유도 그중 하나였다.
Bravery.
현시대의 가장 공신력 있는 차트, 빌보드 차트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전 세계에 위명을 떨친 노래였다.
나는 이 시대의 최신곡을 선택했다.
모두의 머릿속에 이미 완성된 상태로 각인된 이 노래.
이걸 내 나름의 스타일로 소화해 버린다면 어떨까.
그것도 80년대 싱어송라이터의 감성으로 새롭게 벼려낸다면 어떨까.
‘고작 신인이 말이지.’
이것 또한 반전의 묘미이리라.
“Hey, boy, don’t be afraid. It’s golden time.”
현시대의 가장 세련된 노래가 옛 싱어송라이터의 스타일로 재해석되었다.
내가 이번 생에 들어서 집중한 일이 있었다.
최신형 음악을 듣고, 그걸 어떻게 하면 내 스타일로 새로이 벼려낼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일이었다.
흡수할 건 전부 흡수한다.
버릴 건 버린다.
나는 그렇게 나 자신을 새로운 시대에 맞춰 새롭게 조율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결과물이 지금 이 무대였다.
김한석과 김한영의 조화.
나는 이 곡을 통해 관객들에게 실력을 자랑하려는 게 아니었다.
그저, 내가 새롭게 다듬은 스타일을 들려주려 할 뿐이었다.
‘이게 내 음악이다.’
나라는 아티스트가 이런 음악을 한다는 걸 저들에게 보여주었다.
이상혁 때와 같았다.
단순히 실력 과시에만 몰두해서야 더 실력 있는 사람 앞에서 묻힐 뿐이다.
그럴 때는 방향 자체를 틀어 버리면 된다.
반응은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
무대는 조용했다.
관객들은 어느새 멍한 표정으로 내 무대만 응시했다.
티릭.
나는 간단한 뮤트와 함께 노래를 끝마치면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 * *
임대경.
그의 눈이 흔들렸다.
‘내가 지금 헛것을 보는 건가?’
그의 자식, 임선우가 무대를 가졌다.
두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은 자식이 그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훌륭한 무대를 선보여 주었다.
여기서 이미 만족했다.
오늘 이 교류회의 주인공은 그의 아들이다.
더 볼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무대는 무엇인가.
‘김한석?’
지난 수십 년간 그를 괴롭혀왔던 악몽의 주인공, 김한석을 쏙 빼닮은 노래가 무대 위에서 울려 퍼졌다.
음색이 다르고 연주 스타일도 미묘하게 다르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그 시절을 살았다면 누구나 옅은 회상에 잠길 무대였다.
젊은 사람에게는 신선하고, 나이 든 사람에게는 옛 향수를 느낄 무대.
“…….”
하지만 임대경의 안색은 시체처럼 창백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