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36
36화
그렇게 짧은 대화가 일단락이 나고 며칠 뒤.
우리는 홍대의 어느 공연장에 방문했다.
라이브 카페 [플러그인].
내 옛 친구, 한윤태가 운영하는 가게였다.
“사장님!”
묘하게 붙임성이 좋은 고희범이 대뜸 달려가서는 한윤태에게 허리를 접었다.
“영험한 존안을 다시 뵙게 될 날을 오매불망 기다렸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기는.”
한윤태가 어처구니 없다는 듯 웃는데, 고희범이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는 말을 이었다.
“저 고희범, 그 무엇보다도 진실된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사장님이라는 사람, 제 앞의 유일한 진실.”
뻔뻔하다.
한윤태는 그걸 보고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야, 한영아, 얘 요즘 만화를 너무 본 거 아니냐?”
말만 저렇지 내심 즐거운 모양.
한편.
“와…….”
성민아는 묘하게 들뜬 눈치였다.
가게 안으로 모노의 방송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는데, 그걸 두 눈으로 계속해서 쫓았다.
‘아닌 척하는데 은근 이런 거 좋아한다니까.’
성민아의 특징이었다.
평소 고고한 척하지만, 막상 현업 필드에만 오면 새내기다운 모습이 드러나는 것.
‘하긴, 이런 게 한창 재밌을 때기는 하지.’
나이가 어릴수록 현장에 환상을 품기 마련이다.
특히 요즘 대학생들에게 잘나가는 미튜버들은 어지간한 연예인 수준으로 이미지가 좋으니 당연한 일.
“야! 나 일 보고 온다!”
“그래라.”
고희범은 이내 저쪽으로 달려갔다.
그러고 보니 연예인이라.
그 단어를 되새기고 있으려니 문득 임선우가 생각났다.
지난 방송 출연 때문에 가족들 사이에서 말이 좀 있었다고 했던가.
‘같이 못 온 게 아쉽네.’
가족한테 너무 묶여 사는 거 아닌가.
한편.
“아무리 생각해 봐도 꺼림칙해.”
한윤태는 여전히 저들이 껄끄러운 눈치였다.
여기에서 저들이란, 이번 방송의 연출과 촬영을 맡은 모노를 포함해 채널 테슬라 직원들을 일컫는 것이었다.
한윤태는 성민아와는 다른 의미가 담긴 시선으로 장내를 예의주시하기를 한참.
“야, 한영아.”
내 귀에 속닥이듯 말했다.
“저 사람들, 정말 믿을 만한 거 맞기는 하지?”
“아마도?”
나는 힐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왜, 불안해?”
“남의 가게에서 계속 뭘 들고 다니는 거야? 저런 장비가 필요한가?”
“필요하지. 애초에 네가 직접 써도 된다고 허락했으면서 무슨.”
“흥, 손님이라고 다 같은 손님은 아니지. 내 가게에서 수상한 짓을 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그러니까, 네가 써도 된다고 했다니까.”
나는 기타에서 손을 떼지 않으며 답했다.
“MCN이라고 알아?”
“MCN?”
“응, MCN.”
잠시 뒤.
한윤태는 눈을 끔벅이더니 말했다.
“그게 뭔데, 초콜릿 브랜드?”
“…….”
친구야.
그건 MNM이고요.
아무래도 한윤태는 MCN에 대해서 잘 모르는 눈치였다.
‘놀랍다.’
생각해 보면 한윤태는 60년대에 태어나서 활동했던 인물이기는 하다.
내 눈에는 그냥 옆집 친구 같지만, 현실적으로 그는 아재를 넘어 할배로 저물어 가는 단계의 나이.
이를 참작해 보거든, 그가 요즘 문화를 잘 모르는 건 지극히 정상이기는 했다.
나는 골머리를 앓다가 말했다.
“요즘 미튜버들은 네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블로거랑은 달라.”
“어떻게 다른데?”
“저쪽은 회사 소속이거든. 책임질 게 많아서 함부로 이상한 짓은 못 해. 그랬다가는 회사랑 법원에서 오붓하게 미팅을 가져야 할 텐데.”
MCN이 무엇인지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하기를 잠시.
그 모든 걸 들은 한윤태는 짧게 정리했다.
“뭐야, 그럼 그냥 기획사네.”
“말했잖아. 기획사라고.”
대충 설명이 끝났다 싶은 순간이었다.
“끄응.”
한윤태는 여전히 어딘가 불만족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 기획사 별로 안 좋아하는데.”
“왜?”
“알잖아. 그것들이 어떤 족속인지.”
“……아.”
그런 이유였나.
‘윤태라면 그럴 만도 하지.’
따지고 보면 한윤태는 기획사를 싫어할 만한 사람이었다.
아니, 그만 그런 게 아니다.
80년대.
우리가 한창 활동했던 그 시대를 살아본 사람이라면 기획사를 좋게 생각하기 어려웠다.
기획사의 갑질이 오죽했던가.
‘제대로 정산을 받은 뮤지션이 손에 꼽을 수준이었지.’
돈 떼먹는 건 상식에, 폭언이나 노예 계약은 교양.
바깥에 잘 안 알려져서 그렇지, 접대 같은 대형 사건도 심심하면 터졌다.
그럼에도 한 마디 불평조차 어려웠다.
그들의 공고한 카르텔에 도전했다가는, 하루아침에 은퇴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
스타 소리를 듣는 사람들조차도 그랬다.
하물며 한윤태 같은 무명 뮤지션이라면 따로 말할 필요가 있을까.
‘온갖 수모를 다 당했지.’
오디션을 보러 갔더니 바지 벗고 춤춰보라는 사람도 있었던가.
문득, 한윤태가 이 업계에서 아직도 정을 못 버린 게 신기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가 말을 이었다.
“그 기획사 놈들이 건방지게 굴면 어쩌지? 나는 그런 놈들 질색인데. 쫓아내도 되냐?”
나는 그 질문에 고민하다가 말했다.
“때려.”
“때리라고?”
“기왕 때릴 거면 확실하게 급소를 노려. 그래야 후환이 없지.”
“무서운 소리를 하네.”
그렇게 짧은 정적이 흐르길 잠시.
한윤태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내게 힐끔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진짜로?”
“진짜겠냐.”
그렇게 할 일 없이 잡담이나 떠들고 있는 순간이었다.
짤랑!
곧 가게 문이 열리더니 젊은 사람 한 명이 가게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러더니, 이내 우리 앞에 멈춰서서 말했다.
“안녕하세요. 혹시 사장님이신가요?”
“예, 그렇습니다만.”
“아! 처음 뵙겠습니다!”
훤칠한 외모의 청년.
놀라운 건 그다음 순간이었다.
그가 명함을 꺼내더니 인사했다.
“채널 테슬라를 운영하고 있는 강도수라고 합니다.”
강도수.
모노가 소속된 MCN, 채널 테슬라의 사장이었다.
이번 행사는 원래 모노의 단독 주관이었지만, 그가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다면서 참관을 요청한 것.
‘생각보다 많이 젊네.’
나도 그를 처음 본다.
지난번 스튜디오에 촬영하러 갔을 때는 얼굴을 못 봤지.
강도수를 처음 본 내 인상은 이러했다.
‘이게 요즘 말하는 영 앤 리치라는 건가?’
쓸데없이 선한 얼굴에 훤칠한 키, 거기에 잘나가는 회사의 사장이라는 타이틀까지.
하다못해 목소리까지 나긋나긋하다.
“한영 님, 지난 방송은 너무 재밌게 봤습니다. 오늘도 좋은 방송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예의 바르기까지.
대학생 신입생에 불과한 내게 이렇게까지 깍듯하다니.
눈빛부터 사람 좋음이 묻어났다.
그런데.
“사장님?”
“아, 예.”
한윤태는 어딘가 경직된 눈치였다.
껄끄러운 티가 묻어 나온다.
하지만 강도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가게를 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깨끗이 사용하겠습니다!”
“……그러쇼.”
놀라운 건 그다음 순간이었다.
“저, 이건 약소하지만 성의입니다!”
강도수가 한윤태에게 작은 가방을 건넸다.
안에 뭐가 들어 있는 걸까.
대충 곁눈질로 봤더니.
‘오.’
선물세트였다.
그것도 아마 술.
복숭아 와인부터 국산 전통주를 몇 개 골라서 담아온 모양.
술이라면 잘 마시지도 못하는 주제에 사족을 못 쓰는 윤태니까 마음에 들어 하겠지.
‘픽이 좋네.’
초면에 술을 건네는 게 무례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텐데, 운이 좋았던 걸까.
아니면 가게 곳곳에 널린 양주병을 보고 감을 잡은 걸까.
어느 쪽이든 썩 괜찮은 선택이었다.
“크흠, 잘 마시겠습니다.”
“네! 그럼 나중에 다시 뵙겠습니다! 그리고 한영 님.”
그는 이번에는 시선을 돌려 나를 보더니 말했다.
“혹시 잠깐 시간 괜찮으신가요?”
나한테 볼일 있나.
뭔가 분위기가 묘해서 눈을 깜빡거리는데, 그가 거듭 말했다.
“잠깐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서요. 밖에 나가서 이야기 나누시는 거 어떨까요?”
“안 될 건 없는데.”
MCN의 사장이 나와 따로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그렇다면 어떤 이야기가 오갈지는 뻔했다.
‘비즈니스 이야기겠지. 미튜버 활동과 관련된.’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나 혼자 나눌 이야기가 아니다.
동석해야 할 사람이 있다.
나는 고개를 돌려, 현장 구경에 바쁜 고희범과 성민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 친구들도 같이 가도 되죠?”
“저 친구들이요?”
“네, 제 방송 도와 주는 친구들이에요.”
설명이 부족한 것 같아서 나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컨텐츠 기획도 보통 저 친구들이랑 같이 해서요.”
“아하, 알겠습니다.”
* * *
라이브 카페 [플러그인]의 인근 카페.
강도수가 내게 물었다.
“어떤 거로 드실래요?”
그 말에 나는 메뉴판을 훑다가 말했다.
“모과차요.”
“취향이 독특하시네요. 모과차를 시켜보는 건 저도 처음인데.”
“노래 부를 때 좋거든요.”
“그럼 이쪽 분은.”
강도수의 질문에 고희범이 덜덜 떨며 말했다.
“저, 저, 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네, 알겠습니다.”
다음은 성민아.
“저는 녹차 라떼요!”
“네, 저기, 주문이요.”
그렇게 잠시 뒤.
주문을 마친 강도수가 잠시 통화를 하고 오겠다며 가게 바깥으로 나간 순간이었다.
고희범과 나만 자리에 앉은 상황인데, 그가 눈을 부릅뜨더니 말했다.
“……야, 야, 야!”
“왜, 왜, 왜.”
“저 사람, 그, 내가 아는 사람 맞지?”
“네가 아는 사람이 누군데?”
고희범은 침을 꿀꺽 삼키더니 말했다.
“채널 테슬라 사장, 강도수! 맞잖아!”
“맞겠지?”
“저 사람이 왜 너를 만나러 왔대?”
뭔가 호들갑이다.
나는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만나러 온 게 아니라, 모노 만나러 온 김에 겸사겸사 이야기 좀 나누는 거지.”
“너무 태연한 거 아니야?”
“너는 왜 그렇게 호들갑이고.”
“놀라는 게 정상이지! 갑자기 강도수가 같이 커피 한잔하자고 불렀는데!”
고희범이 하얗게 바랜 얼굴로 말을 이었다.
“테슬라 사장이잖아! 이 업계에서 제일 핫한 사람!”
“잘나가나?”
“두말하면 잔소리지!”
그는 말하다가 사레가 들렸는지 기침을 하더니 말했다.
“왜, 지금까지 MCN이 많았잖아. 잠깐 떴다가 논란에 멤버들이 다 빠져나가서 망한 곳도 있고. 그럭저럭 친목 팸 느낌으로 쭉 나가는 곳도 있고.”
“테슬라는 어떤데.”
“테슬라는…….”
고희범은 작게 신음을 흘리더니 말했다.
“압도적이지.”
“…….”
“요즘 잘나간다는 신인들은 모조리 다 테슬라 소속이야.”
“조건을 세게 불렀나?”
“외부에 자세한 계약 조건이 안 알려져서 모르겠는데, 흔히 그런 말이 있어. 강도수가 마이다스의 손이라고.”
“사람을 잘 본다는 거네.”
“그렇지.”
고희범치고는 유식한 비유가 나왔다.
그는 들뜬 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그거 알아? 강도수가 점 찍은 사람은 언제가 됐든 무조건 뜬대. 모노도 그랬고. 게다가 이미 업계에서 잘나간다는 사람들도 하나둘씩 섭외하고 있는데, 뒤에서 도는 소문이 많아.”
오.
소문 좋지.
호기심이 살짝 생겼는데 성민아가 묘하게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소문? 무슨 소문인데?”
“막 대기업의 후원을 받고 있다거나. 3대 엔터 중 하나가 뒷배라거나.”
“3대 엔터?”
“강도수가 재벌 3세라는 소문이 있거든.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공격적으로 영업을 펼칠 수가 없지!”
저거 합리적인 추론이 맞기는 한가.
결국에는 다 소문이잖아.
“게다가 요즘에는 아예 TV에 나오는 진짜 연예인이 테슬라에 합류하기도 했잖아!”
고희범의 말에는 두서가 좀 심하게 없었다.
그 말의 태반이 루머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 모든 루머를 관통하는 핵심만 추려내면, 그의 모든 횡설수설은 한 문장으로 귀결되었다.
채널 테슬라.
이 회사가 상당히 잘나간다는 것.
“괜찮은 곳 같네.”
“괜찮은 수준이 아니라니까! 그 잘나가는 곳의 사장이 너한테 직접 미팅을 하자고 한 거야.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어?”
“네가 알려 주면 되지.”
“……후, 그래.”
고희범은 침을 꿀꺽 삼키더니 말했다.
“채널 테슬라가 한영이, 널 영입하려고 할지도 몰라.”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