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44
44화
짧은 소동도 잠시.
준비를 마치고 도착한 숙소는.
“……와.”
“시설이 환상이네.”
끝내줬다.
“진짜 여행 온 기분 제대로다.”
“우리가 이런 곳에 묵는다고?”
계곡에 딱 적당하게 안긴 지형부터 고급스러운 독채 건물까지.
마치 유럽의 마을에 온 듯한 기분.
“희범이가 알아봤다고 했지? 자, 박수.”
“박수.”
“이제 가자.”
“칭찬 좀 더 길게 해 줘도 되지 않아요?”
“박수.”
“한 번 더.”
“박수 박수.”
“이제 가자.”
그렇게 짐을 풀고 난 뒤, 우리는 펜션 내부에 설치된 실내 공연장에 집결했다.
“이런 곳이 다 있네.”
조은솔이 놀란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실제로 이 공연장의 시설은 썩 훌륭했다.
일개 펜션에 딸린 이벤트성 공연장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
“시설이 말도 안 된다. 이런 곳을 어떻게 그 가격에 구했어?”
조은솔의 감탄에 고희범이 의기양양하게 답했다.
“요즘은 다 호캉스다 모캉스다 멀리 안 가려고 해서 그런가. 이런 외지 펜션들은 경쟁이 심한가 봐요. 찾아보면 할인하는 곳이 많더라고요.”
“취업하고 나면 이동하는 것도 귀찮은 거네.”
“그렇죠.”
홍윤서의 질문에 고희범이 답한 순간이었다.
조은솔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취업이라…….”
“…….”
그 순간 조은솔의 어깨가 축 처졌다.
‘그러고 보면 은솔이 누나는 4학년이었지.’
2학기가 되면 그녀는 본격적으로 구직을 시작해야 한다.
어찌 보면 이번 1학기 여름방학이 그녀에게는 동아리에서 마음 편히 보내는 마지막 시간일지도 모를 일.
동아리에서 고생만 했다 싶다.
작년까지는 이상혁한테 휘둘렸는데, 이제 나아지나 싶었더니 4학년이라 시간이 없다.
유감이다.
뭐라도 추억 하나쯤은 남기고 싶겠지.
이번 여름에 큰 대회를 노린 건, 그만큼 뭔가를 남기고 싶은 마음의 표출일지도 몰랐다.
아님 말고.
“으으, 됐어. 여기까지 와서 취업은 무슨 취업이야.”
조은솔은 기지개를 켜더니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한영아, 보컬 강사님은 언제 오신대?”
“일이 있어서 조금 늦게 도착하신대요. 이따가 다시 연락 주시기로 했어요.”
“그래?”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말했다.
“그럼 그동안은 놀아야 하나?”
“아니죠.”
나는 기타 케이스에서 기타를 꺼내며 말했다.
“지금부터가 시작이죠.”
식구들이 눈만 깜빡거리길래 한마디를 덧붙였다.
“약속했죠? 이번 합숙은 방송 콘텐츠로 이용하기로.”
행동이 굼뜨다.
나는 재차 말했다.
“바로 시작할게요. 참, 희범아. 카메라 좀 준비해 줘.”
“카메라? 왜??”
“비포애프터 영상 찍어야지.”
본격적인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 * *
‘어디 시작해 볼까.’
이번 프로젝트는 [싱어송라이터 김한영] 채널의 첫 번째 대형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MT부터 시작해서 공연까지 이어지는 에피소드형 프로젝트.
그 서막이 시작되었다.
나는 본격적으로 연습에 들어서기에 앞서, 이들에게 한 가지를 요구했다.
“각자 이번 대회에 쓸 곡은 준비해 왔죠? 지금 바로 연주해 주세요.”
장서균 음악경연대회 예선 심사에 보낼 곡을 촬영하는 것이었다.
본선부터는 창작곡이지만, 예선은 기성곡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고 했던가.
그 첫 타자는 홍윤서였다.
“연습 많이 해 오셨네요.”
“그래도 방송에 나오는 거잖아. 부끄러워서라도 열심히 했지.”
홍윤서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연주를 이어나갔다.
그런데 그게.
‘괜찮은데.’
생각보다 완성도가 높다.
내가 기억하는 그의 실력은 특별할 게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완성도는, 그만큼 연습을 많이 했다는 거겠지.
조은솔도 마찬가지였다.
“어때?”
“굿.”
원래 잘했으니까 할 말이 없다.
성민아도.
하지만 그녀는 뭔가 못마땅한 눈치로 내게 말했다.
“왜 말이 없어?”
“잘 쳐서.”
“진짜지?”
“아마도.”
“그냥 둘러대는 거 아니야?”
이보쇼.
왜 그렇게 꼬치꼬치 캐물으십니까.
“잘 쳤어.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그런데 왜 말에서 진심이 안 느껴지지.”
“유감.”
애초에 성민아와 조은솔, 이 둘에게는 걱정 따위 하지도 않았다.
원래부터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 준프로의 영역을 넘봤던 두 사람이다.
‘문제는…….’
나머지 회원들이었다.
“나 악보 까먹었는데…….”
“보면서 하세요.”
아니나 다를까.
가장 기본조차 안 된 사람이 잦았다.
연주는 서투르지만 적어도 악보라도 외워온 정의선이 양반으로 보일 정도.
“으, 나 실수 많이 하지 같았냐?”
“괜찮아.”
“내가 안 괜찮아.”
“그러니까 나는 괜찮아.”
“야, 또 실수했다.”
“푸훕.”
딱히 진지한 모습은 아니다.
부족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그냥 놀러 나온 분위기.
얼핏 보기에는 방송을 빌미로 회비를 날로 먹으려는 자세로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뭐라고 해야 할까.
내 눈에는 노다지로 보였다.
‘못 하는 만큼 빠르게 늘겠지.’
이미 충분히 잘하는 사람이 한 걸음 나아가기는 어렵다.
하지만 못하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박자만 맞출 수 있게 되어도 성장이 확 느껴지기 마련이었다.
1등급이 2점 늘리기는 어렵다.
하지만 7등급이 20점 올리기는 쉽지 않은가.
‘이번 콘텐츠, 예감이 좋네.’
고작 3박 4일짜리 합숙이다.
하지만 합숙을 마치고 대회 출전을 준비할 시기가 되거든, 그때쯤에는 일반인 시선에 ‘그럴듯한’ 연주가 가능하지 않을까.
우선은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최근 팅에 정식으로 들어온 고희범도 예외는 아니었다.
“희범이 파이팅!”
“우리 편집자님 믿습니다!”
식구들이 반쯤 농담으로 응원을 던지는데, 그는 연주에 자신이 없는 듯 기타를 쥔 채 머뭇거렸다.
“으음, 나 못 쳐서 자신 없는데.”
“그럼 더 좋지.”
더 극적인 대비가 가능하다.
비포애프터 영상용으로 최적 아닌가.
애초에 못 치는 게 당연하다.
기타를 손에 쥐고 이제 막 두 달도 안 되었다.
잘 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듣고 실망하지 마.”
“실망할 거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너무해…….”
좋은 의미에서 한 말인데.
나는 헛기침을 뱉고는 말했다.
“내 말은, 초보자 연주를 듣고 실망할 사람은 없을 거라고.”
“너무해…….”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연주나 시작해라.”
“네, 주인님.”
고희범은 이내 연주를 시작했다.
그가 이번 대회에 준비한 곡의 제목은 [시간이 멈춰 버린 것만 같아].
쉬운 멜로디에도 불구하고 썩 그럴듯해서 초보자들에게 기타 입문 곡으로 주로 추천하는 곡이었다.
하지만 고희범은 말 그대로 초심자.
그간 연습을 해도 남한테 들려주기 부끄럽다고 몰래 하는 성격이었다.
“후우, 후우.”
고희범은 팅 회원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몇 번이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평소 워낙 사람이 방정맞아서 촬영도 잘할 줄 알았더니, 막상 카메라에 오르자 떨리는 모양.
하지만 그가 연주를 시작했을 때.
‘역시.’
나는 내심 웃음을 지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고희범의 연주라는 것은.
‘나랑 색깔이 비슷하네.’
내 연주를 닮아 있었다.
백번 좋게 말하더라도 실력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기타 연주에서 기대할 수 있는 모든 면이 미숙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는 장점이 있었다.
감각.
‘기본적인 감각이 있어.’
방향성이었다.
자기가 어떤 연주를 하고 싶어 하는지 확실한 청사진이 있기에 가능한 연주.
초심자에 불과한 그이거늘, 어째서 이게 가능한 걸까.
이유라면 뻔했다.
‘매일 나랑 붙어 다니면서 익혔네.’
지난 3개월.
지겹도록 내 옆에 붙어 다니면서 내 연주가 귀에 익어 버린 게 아닐까.
그러면서 본능적으로 따라 했겠지.
이건 아기가 부모의 행동을 닮는 것과도 같았다.
‘잠깐, 그럼 고희범이…….’
소름.
저 비유는 머릿속에서 지워야겠다.
디릭.
짧디짧은 몇십 초짜리 연주가 끝났을 무렵, 고희범의 얼굴에서는 혼이 빠져나가 있었다.
“으하하.”
“박자 다 나갔네.”
“그래도 이만하면 잘했다.”
“내가 처음 기타 쳤을 때보다는 훨씬 낫다.”
회원들은 우스갯소리로 그를 칭찬하지만, 그게 사실상 놀리는 거라는 사실 정도야 유치원생도 알았다.
“으으.”
고희범이 항의하듯 중얼거렸다.
“저 못 친다니까요.”
“아니야, 희범이 잘 쳤어.”
“그럼, 이제 막 3개월인데 저 정도면 괜찮지.”
“으으으으…….”
놀림이 이어진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저들은 아직 몰랐다.
방향성이 잡힌 사람이 연습을 쌓으면 얼마나 폭발적으로 성장하는지.
나는 그 순간을 기대하며 말했다.
“잘했어.”
“야, 너까지 나를 놀려?”
“진심으로 한 말인데.”
“구라치시네.”
“뻡.”
“지금 욕했냐?”
그냥 발성 훈련인데.
유감이다.
나는 아쉬운 마음을 감추면서 내 기타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카메라를 고희범에게 넘겼다.
“자.”
그 모습에 고희범이 의아한 듯 물었다.
“어? 너도 하게?”
“당연하지. 내 방송인데.”
내가 안 할 이유는 단 하나도 없다.
그리고 나도 이번 방송에서는 자그마한 도전을 하나 해 볼 생각이었다.
‘우리 세균이, 모처럼 덕 좀 볼까.’
장서균.
내가 이번 경연대회에 던질 곡은, 장서균의 곡.
그가 만든 곡을 연주할 생각이었다.
* * *
미로.
장서균이 만든 곡.
발매 당시 무려 8주간 차트 1위를 달성했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국민에게 명곡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살아생전 몰랐던 곡이었다.
왜냐.
‘이런 곡을 만들었단 말이지.’
이 곡은 내가 사망한 뒤에 발표한 곡이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무려 2000년대에.
그러니 알 수가 있나.
하지만 곡의 가치만큼은 충분히 알았다.
이 곡은 잘 만든 곡이며, 그와 동시에 한 사람의 영혼이 담긴 곡이었다.
‘남들한테 놀림 받으면서도 자기 스타일을 밀어붙이더니 이런 방향으로 성공을 할 줄이야.’
김한석 시절 내가 듣고 느낀 그의 연주를 말하자면, 살짝 튀는 음악이었다.
기타를 다소 과하게 가지고 논다고 할까.
이게 문제였다.
80년대의 보수적이었던 한국 음악 시장은 이런 음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미안하네.’
30년의 세월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그의 연주가 사실은 시대를 앞서갔던 거라는 사실을.
“계속 도망쳐 봐. 이건 우리 둘만의 보이지 않는 술래잡기.”
하지만 장서균은 인내했다.
그가 시대에 맞추는 것이 아닌, 시대가 그의 음악에 맞출 때까지.
10년이 넘는 시간을 버티고 또 버텼다.
그 결과물이 이것.
‘비틀고, 꺾고, 때린다.’
정열이 깃든 음악.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라틴 팝이었다.
다라라라라락.
타닥.
탕!
철저하게 테크닉에 의존한 연주.
어찌 보면 내 스타일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편이었다.
내 스타일은 충분한 표현력을 곁들여 느긋하게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
하지만 이번에는 장서균의 스타일을 공부해 볼 생각이었다.
‘비포애프터 영상을 찍기에는 원래 잘하던 걸 하는 것보다는, 못하던 걸 할 수 있게 되는 게 낫겠지.’
이런 목적이 있었다.
나라고 실력이 완성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앞으로 갈 길이 먼 사람.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했나.’
이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지난 3개월간 멈춰 있었다.
귀찮아서 그랬을까.
아니다.
지금까지의 나는 가진 몸을 활용하기에도 바빴기 때문이었다.
김한영이라는 미숙한 몸에 적응하기에 급급했던 것.
“앞길 보이지 않는 이곳에서 두 눈은 판단력을 잃고 헛걸음질만 반복해.”
하지만 이제 여유가 생겼다.
현과 현을 건너뛰는 손가락의 거리감.
톤을 만지는 청각.
기타를 안는 몸의 감각.
지난 3개월.
기타를 품에 안고 살면서 저 모든 면에서 진보를 거뒀다.
또한.
이 여유를 발디딤대 삼아 다음 단계로 나아갈 준비를 마쳤다.
‘미래의 음악 트렌드를 흡수한다.’
과거와 현재, 양쪽의 장점을 취해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가는 것.
지금이야말로 그 시작이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