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5
5화
“저라면 가능한 방법이라고요?”
의아한 말이었다.
남들은 안 되는데, 나는 되는 방법이 따로 있단 말인가.
조은솔은 내 질문에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이 방법은 기타를 좀 잘 쳐야 하거든.”
“저는 잘 치니까 된다는 거네요.”
“어…… 그렇지?”
그녀는 눈을 깜빡이더니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넌 뭔가 자신감이 충만한 것 같다.”
“가끔 들어요.”
당연하다.
관객들에게 내 음악을 들려주려면 무엇보다도 실력이 필요하다.
그러니 나 자신이 뮤지션으로서 자신감을 가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 방법을 알려주기 전에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 돈은 왜 필요한 거야?”
“큰 건 아니고요.”
나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다.
“기타를 치려는데, 기타가 없어서요.”
“뭐?”
조은솔이 눈을 크게 떴다.
“기타가 없어? 집에 있다면서.”
“있기는 있죠. 그런데 그게 조금 많이 안 좋아요. 넥도 휘었고 바디도 많이 갈라졌고 그래서 제대로 쓰기에는 조금 그래요.”
“음, 그렇구나. 그럼 막 알려 줄 수 있겠다. 아무튼, 그 방법이 뭐냐면.”
그다음 순간이었다.
조은솔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우리 동아리 행사야.”
“동아리 행사요?”
동아리에서 무슨 돈을 번다는 건가.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고 있으니 그녀가 말을 이었다.
“팅은 매년 학기 초마다 대학로에서 후원 버스킹 행사를 열거든.”
“……그게 돈이 꽤 되나요?”
버스킹이라.
길거리를 무대로 연주를 하는 걸 의미하는데, 이게 딱히 돈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사람들의 지갑이라는 건 생각보다 굳건한 법이니.
그런데 조은솔은 내가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는 듯 말했다.
“팅의 버스킹은 조금 특별하지.”
“왜요?”
“대학로에서 그동안 워낙에 많이 열었다 보니까 고정 관객들이 있는 것도 그렇고, 행사 수입을 보통 동아리 예산으로 많이 쓰다 보니까 졸업한 선배들이 찾아와서 두둑하게 쏘거든.”
아.
이제 조금 이해가 될 것 같다.
신입생이라고 어느 정도 봐주는 게 있구나.
그런데 나는 그녀의 말에서 의아한 부분이 있어 물었다.
“그렇게 번 돈을 절 위해 쓰는 건가요?”
“그건 아니지.”
“그럼 이 행사에서 돈을 벌어도 큰 의미는 없지 않아요? 저는 기타가 필요해서 그러는 건데.”
“아니지, 그러니까 의미가 있지.”
그녀는 고개를 젓더니 말했다.
“말했잖아. 이렇게 번 돈은 동아리 예산으로 쓰는 거라고.”
“그 말은…… 아.”
문득 그녀가 하려는 말을 알 것도 같았다.
나는 입을 열었다.
“혹시, 기타를 동아리 비품으로 사는 건가요?”
“바로 그거야.”
조은솔은 기쁜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안 그래도 지금 동아리에 비치해 둘 기타가 필요한 참이었거든. 이번에 하나 구해서 네가 필요할 때 대여하는 방식으로 사용하면 어떨까?”
“지금까지는 없었나 봐요.”
“작년에는 있었는데, 없어졌어. 그래도 우리 회원들은 다 자기 기타가 하나씩 있어서 신경 안 썼는데, 마침 새로 하나 마련할 때였지.”
“흠…….”
나는 그녀의 말에 곰곰이 고민해 보았다.
확실히, 천천히 곱씹어 보니 합리적인 제안이기는 했다.
‘어지간한 기타 한 대를 사려면 50으로는 부족하지. 더욱이 내 입맛에 맞는 건 100도 넘어.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아르바이트를 뛰어도 돈 모으는 데만 한 세월 걸리겠지.’
돈을 벌기 힘들 건 걱정하지 않는다.
애초에 어렸을 때는 더 가난하게 자라면서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해봤다.
문제는, 기타를 살 동안 참아야 할 시간이었다.
남들 신나게 연주하는 걸 들으면서 손가락만 쪽쪽 빨아야 한다니.
그건 싫다.
참을 수 없다.
‘일단은 이걸로 참자. 제대로 돈을 모으고 나서 그때 진짜 내 기타를 사는 거야.’
결심했다.
나는 마음을 굳히고 조은솔에게 말했다.
“알았어요. 이번 행사는 참가할게요.”
“잘 생각했어.”
그런데 어째서일까.
내 말에 조은솔의 표정이 생각 이상으로 환해졌다.
뭔가 수상한데.
하지만 나는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뭐, 일단 나한테 피해 갈 일은 없겠지.’
대충 생각하고 넘기는데 조은솔이 내게 물었다.
“아 참, 한영아, 그러고 보니까 너 혹시 버스킹에서 연주할 곡은 있지?”
“네, 김한석 곡으로 하려고요.”
“그래? 그럼 노래도 부를 줄 알겠네.”
“음…….”
확실히 내 노래는 대부분 보컬이 필요하기는 했지.
하지만 지금의 내 목 상태로는 노래가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기에,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건 봐서요.”
“그래, 그럼 그렇게 알게. 내일 저녁에 회관에서 다시 보자.”
“네.”
이번 생 첫 무대는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왔다.
* * *
다음날.
우리는 본격적인 행사 시작을 앞두고 동아리 회관에서 미팅을 가졌다.
그런데 이 동아리 멤버라는 사람들이 조금 뚱한 표정이었다.
“신입 회원을 받았네요?”
“응, 한영이 기타 진짜 잘 치더라.”
조은솔이 싱글벙글 웃으며 답했다.
그런데 그 말에 다른 멤버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특히 성민아가 그러했다.
‘사람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군.’
남이 나를 쳐다보는데 내가 시선을 피할 필요는 없다.
나는 질세라 눈을 마주했다.
그러자 본의 아니게 눈싸움이 되었다.
“…….”
“…….”
먼저 눈을 치운 건 성민아였다.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싸움에서 조용한 승리를 거둔 참인데 조은솔이 입을 열었다.
“이제 같은 동아리 식구니까 잘해주고, 일단 급하니까 안건부터 먼저 이야기할게.”
“네.”
“조금 있다가 우리 대학로 나가서 버스킹 하는 거 알지?”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조은솔은 거기에 한 마디를 덧붙였다.
“거기 한영이도 참여할 거야.”
“네?”
그 말에 다른 멤버들이 놀란 듯 중얼거렸다.
“오늘 입부했는데, 오늘 갑자기 동아리 행사에 참여한다고요?”
그들의 눈빛은 마치 그녀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했다.
조은솔은 개의치 않는 듯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응, 같은 회원이잖아.”
“하지만 버스킹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아무래도 신입 회원한테는 버겁지 않을까요? 아직 실력도 모르겠고.”
아무나라.
말투에는 묘하게 가시가 섰지만, 그 내용에는 확실히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다.
‘실력도 안 되는 사람을 함부로 무대 위에 올린다니, 그건 안 될 일이지.’
인정한다.
그건 나라도 싫다.
그래서 실력을 보여줘야 하나 긴가민가한 참인데 조은솔이 입을 열었다.
“한영이 기타 실력은 어제 내가 확인했어. 잘 치더라.”
그 순간이었다.
나름대로 의문이 있는 모양이었던 동아리 멤버들이 일제히 입을 닫았다.
아무래도 조은솔은 이 동아리 내에서 나름대로 신뢰를 얻은 모양이었다.
‘사람 됨됨이는 있나 보군.’
그런데 이게 또 괜히 번거로워졌다.
‘그냥 실력으로 보여주는 게 더 빠른데.’
무엇 하러 돌아가나.
하지만 내가 여기서 굳이 기타를 연주하겠다고 나서면 또 눈에 띄겠지.
나쁠 건 없지만 번거롭다.
어차피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실력 자랑은 얼마든지 할 수 있을 테니까.
‘굳이 앞정서서 과시할 필요는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아쉬운 마음을 달래는 와중이었다.
“그래도 한번 확인은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한 회원이 입을 열었다.
성민아였다.
그녀는 납득했다는 다른 식구들과는 달리, 여전히 내게 의심을 품은 듯했다.
“민아야.”
“언니, 사람이 많을 때 연주하는 건 또 다르잖아요.”
오.
마음에 드는 자세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만, 적어도 내 시선에는 그러했다.
‘제법 맹랑하네. 또 합리적이기도 하고.’
이틀 전 술자리에서 내가 성민아에게 어떤 허세를 떨었는지는 대충 기억난다.
코드도 못 짚는 주제에 코드에 대해 떠들고, 일렉 기타와 어쿠스틱 기타의 차이점도 모르면서 연주 테크닉에 대해 떠들었다.
그런 추태를 바로 눈앞에서 봤으니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겠지.
거기에 대뜸 고백하기까지.
‘나였더라도 등신 취급했겠다.’
여기서 그 등신이 나다.
유감이다.
“알았어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한 곡만 연주하면 되죠?”
그 순간 동아리 멤버들의 시선이 조금 바뀌었다.
설마 당당하게 나설 줄은 몰랐다는 눈치.
“한영아.”
“오래 안 걸리잖아요.”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조은솔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렇게 잠시.
동아리실에 정적이 맴도는데, 조은솔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물었다.
“……왜?”
나는 담담히 말했다.
“저 기타가 없어서요.”
“…….”
어째서일까.
잠시나마 따뜻해졌던 동아리 멤버들의 시선이 도로 차게 식었다.
“잘 쓸게요.”
“응.”
기타는 조은솔의 것을 빌렸다.
어제 연주했던 마틴 기타였다.
불과 한 시간 가볍게 만졌다고 적당히 손에 익은 것이, 어쩐지 부쩍 친한 사이가 된 것만 같았다.
‘역시 기타는 마틴이 좋아.’
마틴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어쿠스틱 기타 제조사인데, 흔히 마틴의 역사를 어쿠스틱의 역사라고 말하고는 했다.
이는 비유가 아니었다.
실제로 마틴의 어쿠스틱 기타는 모든 어쿠스틱 기타의 프로토타입과도 같았다.
‘스탠다드 그 자체. 언제 만져봐도 정직하지.’
마틴의 음색은 모든 어쿠스틱 기타의 표준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새삼 느끼면서 현을 가볍게 퉁겨 보았다.
디링.
특유의 따뜻하면서도 단단한 심지가 느껴지는 소리가 동아리방에서 가볍게 울려 퍼졌다.
‘이게 악기지.’
소리만 들어도 기분이 좋다.
가볍게 그 선율을 느끼고 있으려니 동아리 멤버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대충 해석해 보자면, ‘연주는 언제 시작하게?’가 되리라.
걱정하지 마라.
안 그래도 바로 시작하려는 참이었다.
탁, 탁, 탁.
나는 기타 바디를 세 차례 두드리고는 바로 현을 긁기 시작했다.
타당! 탕!
흡사 총탄을 쏘아내는 듯한 강렬한 탄성음이 마틴의 사운드홀을 타고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 소리가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망할, 손가락이 전혀 안 나았잖아.’
손가락의 붓기가 안 빠졌다.
은은한 통증이 손가락을 타고 올라왔다.
최대한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도 연주가 조심스러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큰 상관은 없다.
지금부터 부를 노래는 기타도 기타지만 어디까지나 노래가 메인이니까.
“널 집에 바래다주고 돌아가는 길.”
나는 입을 열었다.
“혼자 벤치에 앉아 생각하고는 한다. 오늘 하루는 어땠을까. 네게 부끄럽지 않은 하루였을까. 나는 네게 어떤 남자였을까.”
담담한 가사가 읊조리듯 흘러나왔다.
노래가 맞다.
하지만 노래라고 부르기에는 멜로디라고 부를 것이 없었다.
그저 시를 외듯 가사를 천천히 읊조리기만 할 뿐인 노래.
[돌아가는 길.]포크송이라기보다는 랩에 가까운 곡이자, 내가 전생에 주특기로 삼았던 곡이었다.
“가끔은 네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참는다. 한 번 입 밖으로 꺼내면 쏟아져 내릴까 봐. 다시 주워 담을 수 없게 될까 봐. 그렇게 너와 대화하는 순간은 매 순간이 설렘과 인내의 시간이다.”
얼핏 듣기에는 심심한 곡이다.
하지만 지금의 내게는 이 곡이 가장 잘 맞았다.
왜냐.
어차피 지금 목으로 다른 노래는 못 부르기 때문이었다.
‘목 상태가 생각보다 안 좋아.’
어제 하루 사이 검증은 끝냈다.
아직 개발이 덜 돼서 확신을 가지기는 어렵지만, 음색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목의 근육이었다.
노래를 부르는 데 필요한 근육이라고는 아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우선은 이 정도가 한계였다.
‘천천히, 천천히 나아가자.’
당장은 기타 연주에 중점을 둔다.
발성은 그다음이다.
그런 생각으로 1절을 마친 무렵이었다.
드륵.
기타를 내려놓고 앞을 봤을 때, 동아리 멤버들의 시선은 정처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중에서 유독 동요가 큰 사람이 있었다.
‘아이고, 또 이게 이렇게 됐네.’
성민아였다.
“…….”
“…….”
저걸 세상이 무너진 표정이라고 하던가.
깜짝 놀라서는 아무런 말도 못 하는 눈치.
나는 그녀와 잠시 눈싸움을 벌이다가, 이번에는 그냥 내가 피해 주었다.
대신 고개를 돌려 조은솔에게 말을 걸었다.
“저희 언제 출발하나요?”
“응, 지금 바로 가면 될 것 같다.”
조은솔이 해맑게 웃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