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63
63화
본격적인 대회 진출을 코앞에 두고, 우리들은 조금 바뀌었다.
무엇이 바뀌었는가 하면.
심각하게 진지해졌다.
“어때?”
한참을 연주에 집중하던 조은솔이 내게 물었다.
나는 손가락을 까닥이다가 입을 열었다.
“3절 중반부 가- 소리 낼 때 손가락에 긴장이 풀렸어요. 자꾸 고음 올라갈 때 집중력이 풀리네요.”
“좀처럼 습관이 안 고쳐지네. 흐으으.”
그녀는 이내 호흡을 깊게 들이마시더니 외쳤다.
“흡! 다시 해 볼게.”
“잠깐 쉬셨다가 해도 돼요. 어제부터 한숨도 안 주무셨던 것 같은데.”
“아니, 이거 못 극복하면 잠도 못 잘 것 같아.”
좋다.
눈빛에 기합이 잔뜩 붙었다.
딱 바람직한 마음가짐 아닌가.
‘차근차근 체질이 바뀌고 있어.’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여기 다시 봐 줘.”
“박자가 살짝 나갔어.”
“응.”
성민아도.
“무지성 연습 ON.”
홍윤서도.
모두가 갑작스럽게 변했다.
나는 이 변화의 이유를 알았다.
‘이유가 생겼네.’
이번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만 할 목적이 하나씩 생겼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번 대회는 처음에만 해도 여름방학 도전 과제 느낌으로 노렸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각각 사연이 하나씩 붙었다.
‘우승을 해야 콘텐츠가 빛나겠지.’
나는 우승을 하고 싶다.
우승을 해야 시청자들에게 임팩트를 심어줄 수 있을뿐더러, 지금까지의 천재 이미지를 이어나갈 수 있다.
그리고 조은솔은.
‘다음 학기면 사실상 졸업이지.’
그녀에게는 이번 여름이 동아리에서 보낼 수 있는 마지막 여유였다.
4학년 2학기에 접어들면 그녀는 좋든 싫든 구직 활동에 집중해야 한다.
바빠지겠지.
그렇다고 3학년까지 한껏 추억을 쌓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동아리의 존폐를 걸고 이상혁과 신경전을 벌이느라 진만 잔뜩 뺐다.
성민아도 이번 대회가 중요했다.
‘어차피 동창들이랑 관계도 조졌겠다. 기왕 본선 나갔으면 수상해야 당당해질 거야.’
자존심 문제가 컸다.
마지막으로 홍윤서는.
“…….”
생각해 보니까 특별히 사연이 없네.
‘유감.’
동아리가 한창 난리 났을 적에는 입대했고, 제대한 다음에는 어찌저찌 기타 치다 보니까 본선 나갔구나.
참으로 행운의 사나이다.
스킵.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게는 또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세균이를 이렇게 만나게 됐네.’
장서균을 만나게 되겠지.
굳이 그에게 잘 보일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아니, 전해야만 할 말이라고 말함이 옳으리라.
그런 말을 하려면 멋들어진 무대를 보여 준 다음에 하는 게 맞다.
“…….”
그렇게 한창 잡념에 빠진 순간이었다.
“무슨 생각 해?”
조은솔이 내게 물었다.
“옛날 친구 생각이요.”
“친구? 희범이 말고 또 친구가 있었어?”
“야, 은솔아, 한영이한테도 친구가 있을 수 있지.”
“누구 만나러 가는 거 본 적 한 번도 없는데? 맨날 동아리방에만 있잖아.”
이 사람들 좀 봐라.
나를 대체 뭐 하는 사람으로 본 건가.
“인터넷 친구도 친구지.”
홍윤서는 자기 딴에 재밌는 농담이었는지 키득키득 웃으면서 말하는데, 조은솔이 여전히 의문에 찬 얼굴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까 한영이가 옛날 친구 만나는 건 거의 본 적이 없네.”
“살다 보니까 그렇게 됐네요.”
기억을 돌이켜 보는 참인데, 조은솔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사람마다 다 사정은 있는 법이지.”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시선이 어딘가 안쓰러웠다.
나를 동정하는 눈빛이라고나 할까.
왜 사람을 저렇게 보나.
“한영아, 나는 그런 거 신경 안 써.”
무슨 말이야.
저 말을 하는 저의가 뭐야.
“왜요.”
“굳이 말할 필요 없어.”
“아니, 그러니까 무슨 말인지 설명을 좀.”
“오늘은 맛있는 밥 사 줄게.”
“비싼 거요.”
“그래, 비싼 거. 일단 연습 끝나고.”
기분이 조금이나마 누그러졌다.
나는 다시금 그녀의 연주를 관찰하기를 잠시.
“누나, 아직도 습관 안 고쳐졌어요.”
“으.”
다시금 연습을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든 연습이 곧 정의다.
“이번에는 연주에 너무 집중하느라 노래에서 디테일이 사라졌어요. 이 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얇게 쳐야 해요. 집중하세요.”
“…… 한영아, 어째 아까보다 좀 엄해진 것 같다?”
“기분 탓이에요.”
기분 탓 맞다.
정말이다.
그렇게 다 같이 연습에 불타는 사이,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 * *
본선 진출 날짜가 다가왔다.
“야! 잘해라!”
“구경한다.”
“두 눈 뜨고 보고 있으니까 잘해!”
저거 다 같은 말 아닌가.
우리는 팅 식구들의 응원을 뒤로하고 앞서 출발했다.
이번 공연을 할 장소는 바로, 한국 최고의 예대.
한국예술원였다.
“여기가 한국 음악의 성지라 그 말이지.”
그런데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한국예술원의 전경은 뭐라고 해야 할까.
“…….”
아무리 봐도 국단대가 더 나은 것 같은데.
뭐지.
한국 최고의 예대 맞나.
나는 눈을 몇 번이고 비빈 다음 입을 열었다.
“누나, 뭔가 시설이 심심하네요.”
“응, 국립대니까.”
“국립대면 시설이 안 좋아요?”
“돈을 막 쓰기는 그렇지. 게다가 한국예술원은 예대잖아. 예대는 원래 돈이 안 된다는 인식이 있어서 어쩔 수 없어.”
아, 무슨 말인지 알 것도 같다.
국어국문학과 학생으로서 이따금 듣는 이야기가 있었다.
[인문계 연구소는 단칸방 하나를 주는데, 이공계 연구소는 건물 하나를 지어 준다.]연구 분야에 따라서 지원금이 천차만별로 다르다는 말이었다.
왜냐.
이공계는 돈이 되니까.
또 눈에 띄는 실적이 팡팡 나오니까.
하지만 인문계 어떠한가.
제대로 된 성과가 나올 때까지 실적을 파악하기 어려우며, 연구가 완성되더라도 경제적인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하물며 예대는 어떠할까.
‘돈은 퍼먹으면서 아웃풋은 없는 하마처럼 느껴졌겠지.’
유감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갑자기 의문 하나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성비스.”
“성비스?”
성민아가 내게 되묻길래, 내가 그녀에게 말했다.
“오늘부터 내가 널 성비스라고 부르기로 했어. 사회적인 합의가 있었어.”
“…… 아, 그래.”
그녀는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답했다.
“그래서 무슨 할 말 있어?”
“그 뭐지. 한예원은 어딘가 건물이 애매하잖아. 예대라서.”
“일단은 그렇지?”
“근데 왜 국단대는 건물이 그렇게 화려하지?”
“그야, 거기는 돈이 되니까.”
아하.
대충 감이 왔다.
“일단 등록금 자체가 두 배 넘게 차이 나기도 하지만, 같은 실용음악과라도 국단대는 더 실전성이 강하지. 대중가요 업계에 투신하려는 사람들이 가득하잖아. 애초에 YTG에서 작정하고 밀어주기도 하고.”
“그럼 한예원은?”
“음, 글쎄.”
성민아는 턱을 괴고 곰곰이 고민하는 듯하더니 말했다.
“돈 안 되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해야 하나?”
“돈 안 되는 음악?”
음악은 원래 돈 안 되는 거 아닌가.
의구심에 빠지려니 그녀가 말을 이었다.
“너무 실험적인 음악을 하는 사람이 많아. 라디오 잡음으로 곡을 만든다거나. 박자 자체를 바꿔 본다거나. 대중 입장에서는 난해한 음악을 많이 하지.”
“흠.”
“그런데 그런 게 나중에 시간 지나서 보면 앞서간 음악인 경우가 많다더라. 왜, 요즘 유행하는 로파이도 그렇지?”
로파이.
의도적으로 음질을 낮춘 것마냥 만든 음악을 의미했다.
“옛날에는 이런 걸 왜 듣냐고 놀림 받았는데, 지금은 대박 났잖아.”
그 말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장서균이네.’
당장은 못 받아들여 주지만, 미래에는 인정받는 음악이라.
한예원은 일견 장서균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해야겠네.”
“잘해야지. 우승하려면.”
“손 풀러 가자.”
그렇게 은근한 투지를 불태우며 본선 접수처 건물로 이동하는 와중이었다.
“어?”
음대 건물 인근 부속 건물에서 재밌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소리는.’
날카롭지만 비단처럼 부드러운 선율이 느껴졌다.
모순되는 두 표현이 공존하는 소리.
이 소리의 이름은.
‘뭐지?’
모르겠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다.
그런데 놀라운 건 바이올린만이 아니었다.
지이잉-
그 소리가 불과 몇 초 뒤 조금 더 묵직해졌다.
마치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사이에 있는 것만 같은 소리인데, 그것이 시종일관 변화하며 복합적인 색채를 선보였다.
‘이렇게까지 소리의 스펙트럼이 넓다고?’
놀랍다.
문제는 저 악기가 대체 무슨 악기인지 모르겠다는 것.
나는 제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다가 말했다.
“누나.”
“들어보러 가자고?”
“네.”
그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웃더니 말했다.
“못 말리겠네. 그래, 시간 여유도 있으니까 보러 가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소리를 따라가서는, 빈 강의실을 슬쩍 엿본 순간이었다.
‘…….’
알았다.
앞서서 울린 부드러운 악기의 정체는.
‘저게 뭐지?’
모르는 악기였다.
분명 현악기다.
그런데 여태까지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형태를 하고 있었다.
‘기타랑 리라를 섞어 놓은 것 같은데.’
뭐지.
30년 사이에 내가 모르는 새로운 악기가 등장했나.
“누나, 저게 뭐예요?”
“나도 모르겠는데?”
“성비스.”
“그렇게 부르지 마. 그리고 나도 몰라.”
“유감.”
두 사람도 모르는 눈치다.
혹시나 하는 눈치에 연주를 한참 구경하고 있는 참이었다.
“……!”
악기를 든 연주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연주가 끊겼다.
“아.”
“아.”
어딘가 민망한 분위기에 잠식되기를 잠시.
나는 헛기침을 뱉으며 물었다.
“저희, 수상한 사람 아닙니다.”
“…….”
말을 잘못 꺼냈나 보다.
* * *
“그러니까.”
나는 다소 들뜬 가슴을 억지로 억누르며 물었다.
“이게 국악기라고요?”
“네.”
아까 그 수상한 악기를 들고 있었던 여성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처음 보셨죠?”
그녀의 품에 담긴 악기는 다시 봐도 참 독특했다.
기타를 닮았으면서도 훨씬 거대했다.
“여기서 그 부드러운 소리가 나왔다고요?”
“네!”
그녀가 작게 현을 퉁겨 보았다.
그러자 아까 들었던 그 소리가 부드럽게 흘러나왔다.
가까이서 듣자 질감이 조금 더 확실하게 느껴졌다.
‘청아하다.’
맑은 걸 넘어 정갈하다는 인상을 주는 소리.
악기를 연주한 여성이 입을 열었다.
“이 아이는 전자 가야금이라고 해요.”
“가야금이요?”
내가 아는 가야금은 이렇게 안 생겼는데.
은근히 놀라려니 그녀가 말을 이었다.
“아시는 그 가야금이 맞아요. 다만 현대식으로 개량했죠. 전기를 통해서 소리를 튜닝하기 좋게끔. 그리고 들고 사용할 수 있게요.”
“그러고 보니까 안 무거우세요?”
들고 연주하던데.
이만한 걸 들고 연주하면 어깨 안 부러지나 싶은 순간이었다.
“소재를 많이 고쳤어요. 알루미늄과 카본 위주로 아예 새로 만들다시피 했죠.”
그렇구나.
너무 고친 나머지 이미 가야금이라 불러 마땅한 악기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멋진 악기인 건 분명해 보였다.
“특이하네요. 어쩌다가 이런 악기를 연주하게 되셨나요?”
조은솔이 감탄하며 한 마디를 묻자, 그녀가 말을 이었다.
“저희 전공이 이거거든요.”
“전공이요?”
“국악과예요.”
“아.”
그렇지.
여기 대학교지.
연주에 홀려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렸는데, 그녀가 말을 이었다.
“사실 이런 전자 국악기가 나온 게 10년이 넘었거든요.”
“그렇게나요?”
“그런데 아는 사람이 잘 없어요. 당장 여러분도 처음 들었죠?”
“음, 그렇죠.”
“그런데 소리가 너무 아름답잖아요. 저희만 이걸 아는 게 너무 아쉬운 거예요.”
하기야.
나라도 이런 소리를 나만 알고 있으면 못 버티리라.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데 그녀가 팔뚝을 드러내며 말했다.
“그래서 제가 직접 나섰죠. 세상 사람들한테 이런 악기가 존재한다는 걸 알려주려고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엄청난 자부심이 흘러넘쳤다.
자기가 하는 음악을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할 수 있는 말들.
국악은 까놓고 말해서 안 팔리는 장르다.
하물며 이런 생소한 악기라면 더더욱 입지가 좋겠지.
하지만.
“불쌍하잖아요. 이렇게 멋진 악기가 빛을 볼 기회조차 못 얻는다면.”
그럼에도 시도하고 있었다.
자기가 느끼는 감동을 타인들에게도 알려 주기 위해서.
감상의 공유.
뮤지션의 본질이었다.
‘좋은데.’
이런 사람은 좋다.
근본이 있다고나 할까.
이 세상에는 근본 있는 뮤지션과 근본 없는 뮤지션이 존재하는데, 이들에게는 근본이 느껴졌다.
‘실력도 좋고, 연주도 참신하고. 성공했으면 좋겠네.’
나는 옛날부터 이런 뮤지션이 마음에 들었다.
호감상이라고나 할까.
“응원할게요. 많은 사람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모처럼 마음에 들어 칭찬을 남긴 순간이었다.
“고마워요.”
그녀가 환하게 웃더니 말했다.
“그래도 이번에 좋은 기회를 얻었어요.”
“좋은 기회요?”
“네, 잘하면 더 많은 사람에게 전자 국악기를 소개할 수 있을지도 모를 기회요. 이번에 대회 하나 나가거든요.”
그게 뭐지.
어딘가 불길한데.
뭔가, 뭔가 감이 올락 말락 하는 순간이었다.
“학교에서 해요.”
“음.”
감이 조금 더 뚜렷해진 것 같다.
“개최가 오늘인데 구경하러 오실래요?”
“혹시, 그 대회 이름이 뭔가요?”
“들으셔도 아마 모를 거예요. 아는 사람만 아는 대회라서.”
내가 그 아는 사람 같은데.
에이, 그래도 설마 이렇게까지 상황이 클리셰적으로 흘러가겠어.
혹시나 하는 순간이었다.
“장서균 음악경연대회라고 하는데요.”
맞았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