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69
69화
홍윤서가 허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녹음을 해도 해도…… 끝나지를 않아.”
“녹음이 안 끝난다고요? 왜요?”
“그걸 나도 모르겠다.”
내 질문에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말을 쏟아 냈다.
“나는 모르는 사람이다. 나는 쓰레기야. 재활용도 안 되는 플라스틱 폐기물. 폐기물은 살아생전 한 번이라도 이 세상에 쓸모가 있었겠지. 나는 대체 뭘까…… 나는 왜 태어났을까…….”
하얗게 타서 재가 된 모습.
자신감이 박살이 나다 못해 가루가 된 눈치였다.
후배 앞에서 저러는 거 보니까 추하다.
‘체면이 없는 사람이다.’
어쩌다가 그가 이렇게 된 걸까.
대충 짐작은 갔다.
‘여기 엔지니어가 조금 깐깐한 사람인가 보네.’
스튜디오 엔지니어가 원래 깐깐한 사람이 많기 때문이었다.
은근 흔하지.
작업물이 자기 성에 안 차면 무한 반려 돌리는 사람.
원래는 고용주가 갑인데, 아무래도 홍윤서는 아마추어다 보니까 휘둘린 감이 있는 것 같다.
‘아니면 뭐, 시간이 흘렀으니까 시대가 달라졌을 수도 있겠고.’
이미 너무 많은 게 바뀌었다.
사소한 문화 차이를 걸고넘어지기는 귀찮았다.
이제부터 경험해야지.
나는 대충 넘기고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오, 김한석 포스터다.”
“야, 너는 이 상황에도 저런 게 눈에 들어오냐?”
“제 옛날 사진이니까요.”
“그 컨셉질 좀 버려라. 좀. 누가 들을까 무섭다.”
“그래서 중경대 김한석이라고 말하고 다니잖아요.”
“가끔 앞에 세 글자 빼먹더라.”
“저도 사람이라.”
그렇게 주위 포스터나 구경하면서 기다리고 있는 참이었다.
[쿠쿠루삥뽕].현관문에서 기묘한 소리가 들리더니 한 사람이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왔다.
“어이구, 와 계셨네.”
독특한 패션을 한 남자였다.
오버핏으로 위아래 전부 헐렁하게 입었는데, 그 위로 금속 액세서리를 잔뜩 걸친 게 은근히 힙한 인상을 풍기는 남자였다.
여기에 은근히 보이는 문신까지.
‘역시 현대.’
놀랍다.
나 때만 해도 문신을 하면 어땠던가.
신체발부 수지부모 사상에 입각해 즉시 유교 심판대에 올랐다.
하지만 이제 문신이 자유로운 세상인가 보다.
내 안의 선비가 면역 반응을 일으키려는 찰나 눈앞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김이철이라고 합니다. 이 스튜디오 사장이에요.”
사운드하우스의 엔지니어, 김이철이 내게 인사했다.
나도 마주 인사하려는 순간이었다.
“아 참.”
그가 대뜸 입을 열었다.
“지난번 무대는 잘 봤습니다.”
“제 무대요?”
나 아는 사람인가.
어디서 봤나.
은근 놀라려니 그가 낄낄 웃으며 말했다.
“장서균 음악경연대회 때요. 그때 무대도 보러 갔었는데, 너무 구석 자리라서 안 보이셨나?”
“아.”
기억 안 난다.
하지만 예의상 리액션을 해 보자, 김이철은 흡족한 눈치로 말을 이었다.
“매년 대회 수상자들 곡 녹음은 다 제 손으로 직접 하고 있거든요. 앨범 녹음은 처음이시죠?”
“네.”
물론 처음 아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되어 보기로 했다.
“너무 겁먹지 말아요. 첫 앨범이라 조금 걱정도 될 텐데, 제가 이런 거 전문가니까 믿고 따라오시면 됩니다.”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군.
성격이 퍽 흥미로워서 고개를 끄덕이려니 김이철이 낄낄 웃더니 말했다.
“김한석 좋아한다고 했죠?”
“네.”
“잘됐네. 저도 김한석 어마어마하게 좋아하거든요. 같은 팬끼리 잘해 보죠.”
오.
홍윤서가 당한 거 보고 마냥 깐깐한 줄 알았더니, 갑자기 마음에 드네.
그렇게 생각한 찰나였다.
“그럼 이번 녹음에 들어가기 전에, 가져야 할 마음가짐부터 간단하게 설명할게요.”
김이철의 분위기가 자못 바뀌는가 싶더니.
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먼저, 이번 달 안에 녹음을 끝낸다는 생각은 버리세요.”
* * *
“이번 달이요?”
이게 무슨 말이지.
녹음하러 왔는데 갑자기 하루 만에 끝낼 생각을 접으라니.
이건 또 예상치 못한 말에 조금 놀랐는데 김이철이 말을 이었다.
“학생을 무시해서 하는 말은 아니고, 녹음이 익숙한 사람이면 또 금방 하기도 하거든요. 하루가 뭐야, 10분 만에 후딱 끝내기도 하지.”
그렇지.
나도 그렇게 떼웠던 적이 한 번 있었다.
몸이 안 좋았을 때 그랬는데, 오히려 그게 감성이 살아서 한 방에 끝났지.
공감이 돼서 고개를 끄덕이려니 김이철이 말했다.
“그런데 그거 알아요? 처음 녹음하는 사람들은 다 특징이 있거든요.”
“특징이요?”
“아무리 평소에 잘하는 사람이어도, 마이크만 앞에 두면 몸이 굳어서 실력 발휘를 못 한다는 거죠.”
김이철이 낄낄 웃더니 말했다.
“무대랑 스튜디오는 다르거든요. 무대에서 백전노장이어도, 스튜디오에서는 곡 하나만 1,000번씩 녹음해도 그 감정선을 못 뽑는 사람들이 있죠.”
“흐음.”
대충 어떤 타입을 말하는 건지 감이 왔다.
나 또한 자주 봤다.
스튜디오에서만 잘하는 보컬이 있는가 하면, 역으로 스튜디오에서만 못 하는 보컬이 있기도 했지.
‘보통 대중은 스튜디오 특화 가수를 무시하기 마련이지만.’
이건 어떻게 보면 편견이기도 하였다.
실제로 대중이 그 가수의 노래를 들을 때 어떻게 듣는가.
1,000번 들으면 999번은 음원으로 듣는다.
이 사실을 감안하거든, 스튜디오 특화 가수라고 해서 마냥 무시할 건 못 되었다.
“저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에이, 저건 좀 극단적인 예시고, 우리는 잘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시간 넉넉하게 잡고 천천히 하세요. 메이낏 슬로울리.”
김이철은 이런 말이 익숙한 듯 설명을 덧붙였다.
“더불어서, 이번 녹음에 들어가는 비용은 전액 대회 측에서 부담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몇 달씩 걸려도요?”
“오래 걸리면 사실 나야 좋지. 돈도 많이 받고. 하지만 아마 중간에 학생이 힘들어서 못 버틸걸요? 일주일만 녹음으로 날려도 죽을 맛이거든요.”
그랬나.
솔직히 말하자면, 스튜디오 경험이 풍부한 나로서도 내심 걱정이 들었다.
왜.
옛날과 지금 스튜디오는 요구하는 능력이 다를 수도 있으니까.
‘쉽게 넘어갈 생각은 버리는 게 좋겠네.’
요즘 사람들이 만드는 음원 퀄리티는 30년 전보다 훨씬 좋아졌지.
오죽하면 일반인조차도 옛날 정상급 프로들보다 좋은 소리를 들려줄 지경이었다.
단순히 스튜디오의 기술적인 발전도 있겠지만,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더 있을지도 모르지.
그래, 기왕 하는 일이다.
경력자니까 느긋하게 한다는 생각은 버리자.
초심으로 돌아가서 처음부터 한다는 생각으로 진지하게 해 보자.
‘시키는 대로 깔끔하게 해 보자.’
그런 다짐을 하는 사이 김이철이 입을 열었다.
“긴장 많이 되죠?”
“네.”
“거기서부터 시작이에요. 적당한 텐션. 우선은 느낌부터 잡죠. 저기 부스 안에 들어가서 헤드폰 쓰세요.”
나는 그의 말마따나 스튜디오 내부 부스의 마이크 앞으로 가서 헤드폰을 썼다.
그러자 헤드폰을 통해 김이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아, 제 목소리 들리죠?]“네.”
[그럼 가볍게 몸풀기부터 하겠습니다. 아직 좀 스튜디오가 어색할 텐데, 지금 바로 녹음할 거 아니니까 제일 편한 거 아무거나 하나 불러 볼래요? 애국가도 좋고. 동요도 좋고. MR 있으면 틀어 드릴게요.]“잠시만요. 고민 좀 해 볼게요.”
편한 곡이라.
나한테 편한 곡이 뭐가 있을까.
그렇게 곰곰이 생각하던 찰나였다.
‘그게 있었네.’
나한테 눈 감고도 흥얼거릴 만한 노래라고 하면 딱 떠오르는 게 있었다.
자유인.
60년대에 크게 유행했던 발라드 송인데, 한때 나는 이걸 질리도록 입에 달고 살고는 했다.
“자유인 있나요?”
[자유인이요?]“네, 진국영이 부른 자유인.”
그렇게 말한 순간이었다.
[와우, 그거 되게 옛날 노래 아닌가?]김이철이 깜짝 놀란 목소리로 답했다.
[거의 학생 아버지 때. 아니지, 할아버지 때 노래일 것 같은데.]“맞을걸요.”
[취향이 조금 올드하시네. 하긴, 학생 김한석 좋아한다고 했죠? 김한석이나 진국영이나 시대 차이가 그렇게 크진 않죠.]아니야!
차이 많이 나.
10년의 차이를 무시하지 마.
속이 울컥하는 걸 참으려니 김이철이 웃으며 외쳤다.
“괜찮아요.”
[네?]나는 그의 말을 거절하며 말했다.
“직접 연주할게요.”
[흠, MR이 더 편할 텐데. 어차피 보컬이랑 기타는 나중에 녹음 따로 해도 돼요.]“목 푸는 김에 손도 같이 풀려고요.”
나는 그 말과 함께 이제 손에 익숙해진 테일러 기타를 집어 들었다.
방학 들어 이래저래 일이 많았다 보니 손에 꽤 익었다.
얼마 전까지 그냥 친구였다면, 이제 요즘 말로 썸 정도는 되는 것 같은 느낌.
‘그러고 보니까 이거 빌린 거였지.’
팅에서 빌렸던가.
어쩌다 보니까 내 전용 기타처럼 쓰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바꾸기도 조금 그런데, 그냥 돈 주고 살까.
그런 상상을 하기를 잠시.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나는 속으로 작게 중얼거리며 현을 가볍게 퉁겼다.
디링.
스튜디오에 오기 전 작업실에서 이미 튜닝을 맞춰 둔 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이 소리를 기준으로 음정을 잡고.
탁, 탁, 탁.
바닥을 템포에 맞춰 밟으며 작게 입을 열었다.
“자유인, 나 어디서든 자유롭게 살아가리. 언제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날이 내게도 오길 하기를 바라며 목놓아 울었네. 내 몸에 붙은 상표를 떼어 낼 날을 꿈꾸며 울었네.”
자유인의 시작이었다.
요즘 노래에 비하면 낡았다.
하지만 낡았다는 게 꼭 나쁜 건 아니었다.
자동차도 나이를 먹으면 고물이 되는 게 아닌, 올드 카가 되지 않나.
그렇기에 이 노래는 내게 편안한 노래이기도 하였다.
‘재밌네.’
근래 들어 한창 세련된 노래만 너무 들은 탓일까, 옛 노래를 부르자 빠르게 머리에 흥이 돌았다.
그렇게 편안하게 흥얼거리는 기분으로.
“그날이 온다면, 아아, 그날이 온다면 나 밭 가꾸고 터를 나누어 그대와 함께 살아가리라.”
한 곡을 마친 순간이었다.
‘음?’
조용했다.
온 사방이 조용했다.
한 곡을 끝냈으니 뭐라고 반응이 있을 법도 한데, 아무런 말이 없었다.
‘뭐지? 마이크에 전달이 안 됐나?’
위화감을 느끼며 마이크에 다시 물어본 순간이었다.
“들리세요?”
[어, 아? 응. 잘 들었어요. 괜찮네. 응.]김이철은 정신을 차린 듯 대답하더니,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그. 혹시 하나만 물을게요. 괜찮죠?]“네.”
[혹시 전공이 실용 음악과 아니죠?]음.
반응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아닌데요.”
[…….]반응이 미적지근한 걸 보니 잘못 대답했나 보다.
유감이다.
* * *
녹음이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홍윤서는 생각했다.
‘저 재능충.’
모처럼 고생하는 모습을 보나 했더니, 실패했다.
한편, 김이철은 심히 복잡미묘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어디서 저런 게 튀어나왔지?’
홍윤서가 아니다.
김한영을 두고 하는 생각이었다.
보통, 그가 경험하기로 처음 스튜디오를 경험하는 사람은 몸이 굳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할 때가 잦았다.
홍윤서를 두고 하는 말이다.
반면, 저 학생은 어떠한가.
‘끄응, 엄청 잘했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감상에 빠진 상황이었다.
이게 말이 되나.
라이브에서도 썩 잘하기는 잘했지.
하지만 스튜디오 첫 녹음을 이 수준으로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왜냐.
그가 20년 가까이 음향 업계에 종사하면서 그런 사람을 본 적이 거의 없었으니까.
‘평소에 인터넷 방송을 해서 그런가?’
원래 첫 녹음이면 플라스틱 인형이 삐걱거리듯 위화감이 묻기 마련이었다.
홍윤서처럼.
자연스럽고 털털한 게 매력적인 가수라도, 마이크만 앞에 두면 이상하게 인위적인 연주가 튀어나와서 고생할 때가 많았다.
홍윤서처럼.
‘저 친구는 왜 안 그러지?’
이쯤 되자 고민이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단순히 스튜디오 연주에 적응할 수 있는가를 넘어서, 어떻게 하면 연주를 살려 볼 수 있을까 하는 단계.
다소 모험이지만 원테이크(악기와 보컬을 한 번에 녹음하는 방식)로 가 볼까.
세션을 불러 볼까.
기타 연주를 다른 사람한테 맡기고 노래에만 집중하면 또 얼마나 잘하겠어.
‘아니야, 오히려 그러면 어색해질 수도 있어.’
홍윤서처럼.
그렇게 한참 고민에 빠진 와중이었다.
똑똑.
누군가가 컨트롤 룸(스튜디오에서 엔지니어가 거주하는 방) 문을 두드렸다.
‘한창 집중하는 와중인데 누구지?’
어쩐지 짜증이 치솟으면서도, 그래도 용무가 있는 사람이겠지 싶어 문을 열어 본 순간이었다.
‘어?’
몸값이 조금, 아니, 많이 높은 사람이 거기에 서 있었다.
‘이 사람이 왜 여기에 있어?’
임대경.
YTG의 황제.
한국 대중음악계를 주무르는 3대 거물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