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7
7화
내 말에 윤서 선배가 놀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네가 먼저 나가겠다고?”
“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기왕 나간다면 먼저 나가고 싶어요. 안 될까요?”
“굳이 안 될 것까지는 없지만, 왜?”
“제가 긴장을 많이 타서요.”
“……긴장을 타는 사람이 제일 먼저 나간다고?”
윤서 선배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설득력이 모자랐나 보다.
유감이다.
나는 즉시 다른 이유를 꺼냈다.
“옛말에 맞을 매라면 미리 맞는 게 낫다잖아요.”
“흠, 뭐 그런 이유라면 어쩔 수 없기는 한데. 일단 다른 동아리 애들한테는 내가 이야기해 볼게.”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첫 번째 순서를 움켜쥐었다.
가능한 한 저쪽 회장이랑 대결을 펼쳐 보고 싶은데, 과연 내 생각대로 될까.
됐으면 좋겠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빈 허공을 손가락으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점차 악보로 차오르며 귀에 들리지 않을 멜로디가 차차 펼쳐졌다.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연습량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 * *
공연이 시작되기를 잠시.
저 하늘이 나를 도와준 걸까.
내 계획은 심각하리만치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흠, 다 실력이 그냥 그런데.’
아르페지오의 멤버들은 딱히 연주가 특출나다고 보기 힘들었다.
‘역시 잿밥에 관심 많은 애들이라서 그런가?’
여자 좋아하고 술자리 좋아하는 회원들이 싹 다 저쪽으로 몰려갔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실력이 모자란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잘 치는 것처럼 보이기에는 딱 저 정도 실력으로도 충분할 테니까.
하지만, 내 기준으로 볼 때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여자한테 잘 보이려고 연주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실력 늘리기에 참 좋은 동기인데, 열의가 저 정도밖에 안 되나.’
여자의 마음을 의식하고 연주하는 게 꼭 나쁜 일은 아니다.
예로부터 그렇게 자기 실력을 늘린 뮤지션들이 한둘이었던가.
하지만 저들의 의지는 얕디얕았다.
유감이다.
“감사합니다.”
마침 한창 기타를 치던 사람 한 명이 무대에서 내려왔다.
하지만 관중들의 호응은 드물었다.
같은 아르페지오 멤버들이 적당히 손뼉을 쳐 주는 정도.
“멋지다!”
“후우!”
자기들끼리 떠들고, 자기들끼리 웃는다.
안 팔리는 뮤지션들 사이에서 흔히 보이는 의리였다.
‘그래도 제 식구라고 챙겨 주는군.’
그런 생각을 하며 무대를 심심하게 구경하고 있으려니 조은솔이 내게 물었다.
“어떤 것 같아?”
“뭐가요?”
“저쪽 애들 실력. 네가 보기에는 어떤 것 같아?”
“음…….”
나는 딱 대답을 꺼내지는 못했다.
예로부터 뮤지션들 사이에서는 다른 뮤지션들의 실력을 평가하는 게 여러모로 금기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속으로는 얼마든지 평가해도 된다.
깔봐도 좋고 욕해도 좋다.
하지만 그걸 입 밖으로 꺼내는 건 또 별개의 일이었다.
‘분위기 모르는데, 괜히 남 욕했다가 좋을 일이 없지.’
무난하게 칭찬하면 그만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 칭찬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가만히 있으려니 조은솔이 먼저 말했다.
“넌 은근히 신중한 것 같다.”
“그냥요. 저쪽은 잘 모르니까요.”
“그래? 그래도 너는 잘 치니까 감상도 다를 것 같은데.”
조은솔은 피식 웃더니 말했다.
“좀 별로지?”
역시 악감정이 좀 있으시군.
선배가 말을 안 감춘다면 굳이 나까지 말을 삼갈 필요는 없겠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진짜 별로네요. 발가락으로 쳐도 저것보다는 낫겠어요.”
“푸흐흐.”
조은솔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어 다시 입을 열었다.
“너도 기타를 조금 칠 줄 아니까 알겠지만, 사실 아르페지오 애들이 그렇게 기타를 잘 치지는 못해.”
“기타 자체보다는 잿밥에 관심 있는 애들이라서요?”
“잘 아네.”
그녀는 내 말에 다시 웃고는 말했다.
“작년에 아르페지오가 팅이랑 원래 하나였다는 건 들었지?”
“네, 윤서 형한테 들었어요.”
“그렇게 분리될 당시에 기타를 진짜 좋아하는 애들은 거의 여기에 남았거든. 지금 아르페지오는 사실 제대로 된 기타 동아리라고 부르기도 조금 민망할 정도지. 헌팅 동아리라면 모를까.”
촌철살인이었다.
하지만 내 생각도 그녀의 생각과 정확히 일치했다.
‘관객들에게 저런 무대를 보여 주면 안 부끄럽나?’
연주를 못 하는 것 자체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연주자로서 최선을 다하는 건 또 별개의 이야기였다.
지금 저들의 무대에서는 진심이라고 할 게 마땅히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저게 일반적인 대학생들의 수준일 수도 있고.’
기왕이면 진심이 좋은데.
그런 걸 바라기에는 내 눈이 너무 높은 걸까.
우두커니 생각에 잠겨 있으려니 조은솔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저쪽 회장은 조금 다르지.”
그녀는 이어 무대 저쪽에 앉아서 호응을 넣고 있는 남자를 가리켰다.
아까 본 그 잘생긴 사람이었다.
“그래요?”
“응, 쟤는 어쨌든 실력 하나는 봐 줄 만했거든. 여자한테 너무 미친 것만 빼면 참 괜찮은 친구였어.”
그렇구나.
불과 하루 알고 지낸 사이치고는 조금 많은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그만큼 나를 신뢰하는 걸 수도 있겠다.
어차피 팅의 식구로 지내려면 앞으로 자연히 알게 될 일이니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쪽이 안 맞으면 저쪽으로 가라고 미리 마음의 선을 긋는 거겠지.
“대단하네요.”
그렇게 중얼거린 순간이었다.
“네가 팅에서는 제일 먼저 무대에 올라간다고 했지?”
“네.”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조금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앞에 연주자가 너무 잘하면 뒤 연주자가 어떻게 되는지 알아?”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말했다.
“묻히죠.”
묻힌다.
철저하게 묻힌다.
무대라는 게 꼭 남이랑 경쟁하려고 하는 일은 아니다만, 앞 무대와 다음 무대가 순서상 겹쳐지면 일종의 승부가 되는 법이었다.
‘앞 무대가 너무 잘하면 다음 무대가 초라하게 느껴지고, 반대로 다음 무대가 너무 잘해도 마찬가지지.’
조은솔은 내가 저쪽에 밀릴 걸 걱정하는 게 아닐까.
그럼, 조금 실망스러운데.
저쪽이 내 연주만큼 한다는 건가.
문득 저쪽 실력이 궁금해져서, 나는 그냥 대놓고 물어봤다.
“저쪽이 그렇게 잘해요? 저보다도?”
“아마 그렇지는 않을 거야.”
“그런데 왜요?”
“무대라는 게 단순히 연주 실력이 전부는 아니거든.”
“그럼요?”
“저쪽 회장, 그러니까 상혁이는 관중을 조금 다룰 줄 알아.”
“관중이요?”
“타고난 외모도 있고, 또 목소리의 뉘앙스나 자연스러운 멘트나 그런 거. 천성이 원래 그런 건지 긴장도 없지.”
아.
듣고 있으려니 느낌을 알 것도 같았다.
‘저 사람, 무대에 익숙하구나.’
이름이 상혁이라고 했나.
아마 다른 학생들과는 달리 무대를 즐길 줄 아는 것이리라.
단순히 연주를 잘하는 정도라면 세션이라도 충분하다.
뮤지션에게는 그 이상이 필요하다.
연주력은 정말 형편없는데도 무대 위에만 올라가면 훨훨 날아다니는 사람이 간혹 있지 않았던가.
왜, 섹스 피스톨즈의 시드 비셔스처럼.
“…….”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려니 조은솔이 말을 이었다.
“네가 알지 모르겠지만, 사실 이번 버스킹은 우리 동아리에도 중요한 일이야. 저쪽을 이기고 말고 하는 것보다도 중요할 수 있어.”
“왜요?”
“이건 우리가 학기 초에 할 수 있는 동아리 홍보 중 가장 큰 행사거든.”
“음, 이 행사 보고 동아리 찾아오는 사람이 좀 많은가 봐요.”
“엄청나게 많지. 기타를 조금이라도 쳐 본 사람이라면 입부 문의 정도는 해 보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같은 동아리가 둘 있다면 보통은 실력 있는 쪽으로 쏠리겠지?”
“혹시라도 신입생들이 저쪽으로 갈까 봐 걱정하시는 거네요.”
“응, 맞아.”
조은솔은 부정하지 않고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 한영이가 잘해 줘야지.”
“…….”
문득 기분이 이상해졌다.
내가 이 동아리에 들어온 게 어제였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이 동아리의 운명이 내 어깨 위에 걸린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무게감이 장난 아니네.’
조은솔은 온갖 말을 쏟아 낸 주제에 뒤늦게 위로하듯 내게 말했다.
“그렇다고 너한테 부담을 주려는 건 아니고.”
아니, 이 양반 보소.
지금까지 부담 잔뜩 줘 놓고는 무슨 말이야.
어이가 없어서 바라보려니 그녀는 낄낄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신입생은 앞 순번이고, 우리 같은 고학번들이 뒤 순번이잖아? 결국에는 우리가 잘하면 그만이지. 마음 편히 먹어도 돼.”
거참 엄청나게 안심됩니다그려.
하지만 어쨌든 사정은 알았다.
‘일단 내 잘못은 없는 것 같고, 잘하면 잘할수록 좋다는 거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 무대 위로 시선을 돌렸다.
마침 그때쯤 저쪽 동아리의 회장, 상혁이 한 손에 기타를 들고 무대 위로 올라왔다.
“안녕하세요! 중경대학교 기타 동아리 아르페지오의 회장, 이상혁이라고 합니다.”
그가 환하게 웃었다.
가뜩이나 잘생긴 사람이 서글서글하게 웃음까지 짓자, 무대 주변으로 한순간에 꽃밭이 펼쳐졌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무대의 흐름 자체가 바뀌었다.
‘비율이 생각보다 엄청 좋네.’
역시 저게 크다.
가수들의 피지컬은 무대 위에서 한층 더 큰 힘을 발휘하기 마련이었다.
왜냐.
통상 관객들의 시선보다 조금 더 위에서 무대를 하게 되는 뮤지션들의 특성상, 다리는 길어 보이고 머리는 작아 보이게 된다는 게 상식.
그러니 원래부터 피지컬이 좋았던 이상혁은 지금 거의 모델급의 포스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는 유들유들 웃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 제 무대가 저희 아르페지오의 마지막 무대가 될 것 같은데요.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서 한 가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관객들이 그에게 다시 한번 쏠렸다.
이상혁은 가볍게 헛기침을 뱉더니 말을 이었다.
“저희 아르페지오는 현재 신입생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동아리 회관에서 새로운 회원을 기다리고 있으니, 제 무대를 보시고 마음에 들었다. 나도 저렇게 해 보고 싶다. 나도 기타 코드는 짚어 봤다. 하는 분들은 누구든 한번 찾아와 주시길 바랍니다. 꼭 밴드에 가입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와서 같이 음악 이야기 나누고 친구처럼 지내요.”
멘트가 길다.
그런데 청산유수처럼 흘러나오는 말을 듣고 있으려니 확실히 조은솔 선배가 말했던 게 이해는 되었다.
‘능숙하긴 하네.’
능숙한 척하는 것과 정말로 능숙한 건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지금 이상혁의 목소리에서는 떨림이라는 걸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더군다나 그 외 부분에서도 훌륭했다.
비언어적 표현이라는 말이 있다.
말 외에도 몸짓, 손짓, 표정 등으로 의사를 나타낼 수 있다는 말인데, 지금 이상혁은 이 부분에서 상당한 강점을 보여 주고 있었다.
‘거의 자기네 집 앞마당 나온 것처럼 편안해 보이네.’
긴장이 없다.
이는 뮤지션으로서 굉장한 장점인데, 뮤지션이 편안하면 관객도 편안해지기 때문이었다.
저렇게 한번 마음을 풀어 놓은 상태에서 곡을 들려 주면, 같은 곡이라도 위력이 크게 다르리라.
“그럼, 지금부터 무대 시작하겠습니다.”
이상혁은 곧 연주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선곡한 곡은 내게도 심히 익숙한 곡이었다.
‘이것 봐라. 김한석을 좋아한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은 아니었나 보네.’
그가 이어서 꺼내 든 곡은, 전생에 내가 만든 곡이었다.
“저 호숫가의 갈대처럼 나 그대에게 흔들리고 싶어. 그대가 바람이라면 나는 기꺼이 그 위에 올라타 춤을 추리.”
[갈대].가성과 진성을 부드럽게 넘나들며 실랑이를 벌이는 노래였다.
처음 곡을 만들 때부터 여자 관객들을 대상으로 만든 곡이기는 했다.
애간장을 녹여 보겠다는 생각으로.
‘확실히 실력이 괜찮기는 하네.’
조은솔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이상혁의 실력은 실제로 다른 아르페지오 회원들과는 궤를 달리했다.
다른 사람들이 취미 수준이라면, 이상혁은 여기서 조금만 더 잘하면 아마추어 상위권은 되겠다 싶은 정도.
훌륭하다.
여자한테 잘 보이려고 음악을 한다는 말과는 달리, 연주 자체는 기본기에 충실했다.
평소 연습을 많이 했는지 연주의 기복도 없는 수준.
하지만 여기서 그와 나의 차이가 드러났다.
“감사합니다. 이상혁이었습니다.”
연주를 마친 이상혁이 가벼운 멘트와 함께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의 앞으로 박수가 쏟아졌다.
또 아르페지오 앞으로 놓인 모금함에도 지폐가 쏟아졌다.
잠시 뒤.
나는 이상혁의 바로 뒤를 이어 무대 위에 올라가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중경대학교 어쿠스틱 기타 동아리 팅의 김한영이라고 합니다. 저도 올해 가입한 신입생입니다.”
나는 뭐라고 인사하면 좋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하던 멘트를 멈추자 모두의 이목이 내게 쏠렸다.
“정확히는 어제 가입했습니다. 그런데 저희 선배님들이 뭐라고 하셨는지 아십니까? 가입한 게 어젠데 오늘 무대 위에 올라가라고 시키다니. 이거 조금 너무한 거 아닌가요? 솔직히 너무한 것 같습니다.”
선배들의 눈빛이 당혹스러운 감정에 물들었다.
‘이것도 다 필요해서 하는 겁니다.’
이상혁과 나의 차이.
그건 수도 없이 많지만, 줄여서 말하자면 단 하나였다.
그는 아마추어다. 상당히 잘하는 아마추어.
그리고 나는.
프로다.
그것도 프로 중에서도 제일 잘하는 프로.
그게 나다.
“그래도 까라면 까야죠. 시작하겠습니다.”
번지는 웃음소리와 함께, 나는 굳게 기타를 붙들었다.
공연 시작이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