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70
70화
임대경이 김이철의 눈앞에 우뚝 섰다.
그 위상이 어마어마했다.
어느덧 중년을 넘어 노년으로 접어드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은 안광.
타고난 아우라가 김이철의 솜털을 삐쭉 서게 만들었다.
‘이 사람이 여기에 왜.’
김이철이 침을 꿀꺽 삼켰다.
물론, 음악인이 스튜디오 구경 좀 올 수 있지.
하지만 몸집이 이만치 되는 사람이라면 기지개조차도 사건이 된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임대경이 연락 없이 찾아올 만큼 자기가 뭔가 일이 있었나.
찰나에 불과한 사이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YTG 작업물 받고 까먹은 거라도 있나? 아니지, 그럼 밑에 직원을 보내야지 왜 사장이 와. 임대경이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도 아니고.’
김이철, 그가 업계에서 꽤 인정받은 레코딩 엔지니어라고는 하나, 임대경의 앞에서는 개구리와도 같은 신세.
그렇게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는 와중이었다.
“시설.”
임대경이 입을 열었다.
“네?”
“시설이 좋군.”
“아, 예? 예. 최근에 전체적으로 크게 한 번 갈아엎었습니다.”
김이철이 식은땀을 흘리며 중얼거리는데, 임대경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이번에 새 레이블을 하나 만들려고 하는데, 이쪽에서 인터넷에 올려 둔 포트폴리오를 보고 직접 한 번 둘러 보고 싶어서 방문했네.”
“아.”
“작업물이 훌륭하더군.”
그 말에 김이철이 속으로 땅이 꺼지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뭔가 문제가 있어서 온 건 아니구나.
그냥 일감 맡길 겸 작업실 둘러보러 온 거였구나.
‘그건 그렇고, 임대경 이 사람도 대단한걸.’
일개 거래처를 정하는 것도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한단 말인가.
괜히 업계 선봉장이 아니다.
누구는 회사 사무실을 자기 골프 가방 보관소처럼 쓴다는데, 이 사람은 아득히 윗급이면서도 자기 발로 뛰는구나.
“갑자기 방문해서 미안하네. 인근에 온 김에 직접 보고 싶어서.”
“예, 예. 편히 보고 가십시오.”
김이철이 다소곳하게 인사하는 와중이었다.
“흠.”
임대경이 부스로 시선을 돌렸다.
김한영이 한창 연주에 집중하고 있는 부스.
그쪽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말했다.
“저 친구는?”
“최근에 장서균 음악경연대회에서 수상한 신인입니다. 이번에 저희 스튜디오에 음원을 녹음하러 왔지요.”
어느새 입이 시원하게 뚫린 김이철이 말을 한창 늘어놓는데, 임대경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대단하군. 대화를 좀 나눠 볼 수 없겠나?”
“아.”
그 말에 김이철은 속으로 생각했다.
‘저 친구, 운이 엄청난데.’
실력만 좋은 줄 알았더니, 운까지 이 모양이다.
그냥 곡 하나 녹음하러 온 참인데, 마침 그 타이밍에 YTG 사장이 방문해서 대화를 나눠 보고 싶다고 말하다니.
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가.
행운을 아주 몰고 다니신다.
음악을 시작한 지 몇 달도 안 됐는데, 나이도 어리면서 인터넷 방송 구독자도 많다고 했지.
‘인생을 무슨 치트 쓰고 사나.’
신이 참 불공평하다.
하지만 속으로만 삼킬 뿐이었다.
이 일을 하다 보면 잘나가는 사람 정도는 셀 수도 없이 접하게 된다.
갓 신인에게 질투심을 품기에는 아직 시기가 일렀다.
“물론이죠. 지금 곡만 끝난 다음 맘껏 대화 나누십시오.”
한편, 임대경은 이런 생각을 했다.
‘너무 빠르군.’
성장이 너무 빠르다.
이번 자리에 찾아온 건 당연하지만, 다 알고 찾아온 것이었다.
지난 방송 이후 김한영을 관찰하라고 주위에 미리 일러두었는데, 행보가 들으면 들을수록 가관이었다.
YTG에서 밀어준들 저렇게 빠르게 뜨는 게 가능할까.
물론, 가능하겠지.
하지만 일반적인 신인이라면 어려울 일이었다.
‘장서균 음악경연대회라.’
이번 녹음 일정 또한 김한영이 방송에서 떠벌리고 다녀서 알았다.
그런 연유로 무거운 발을 움직여 찾아온 것.
김이철의 생각과는 달리, 임대경의 방문은 우연이 아니었다.
물론.
‘무슨 대화를 나눠야 할지도 모르겠군.’
이유 모르게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찾아왔을 뿐.
생각해 둔 것도 없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착각과는 달리, 정말로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 * *
“음.”
골때린다.
몹시 골때린다.
‘이 양반이 왜 여기에서 나와?’
기분 좋게 한 곡 연주하고 나온 참이었다.
이번에는 삘을 받아서 좀 잘되나 싶었는데, 예상치 못한 손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네.”
임대경이었다.
모아이 석상을 닮은 그가 전혀 안 반갑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마치 위아래로 샅샅이 훑어보는 게, 딱 봐도 내가 좋아서 찾아온 건 아닌 눈치.
“초면인가?”
“아뇨.”
나는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예전에 국단대에 축제하러 한 번 갔어요. 그때 2층에 계시는 걸 봤던 기억이 나네요.”
“그렇군. 일이 너무 바쁘면 세세하게 기억이 안 나서.”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죠.”
이 친구도 이제 늙었지.
나이가 나이니까 슬슬 기억이 오락가락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옆을 보니 홍윤서가 눈가를 꿈틀거리고 있었다.
저 표정을 내 방식대로 읽어 보면 이러했다.
‘이 미친 새X.’
잘못 읽었나 보다.
그렇게 가만히 있는 찰나였다.
“그러고 보니.”
임대경이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우리 아들이 학생 방송에 가끔 나오는 걸 봤네.”
“선우요?”
“음, 몹시 친근해 보이더군.”
아닌 것 같은데.
임선우 걔, 맨날 무표정이라서 무슨 생각을 하고 사나 잘 모르겠던데.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학생에게 관심이 많네.”
“저한테요?”
“요즘 어쩌다가 학생 방송을 봤는데, 나도 모르게 계속 봤지. 나이에 비해서 실력이 아주 탁월했네.”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음.”
다시 정적이 이어졌다.
새삼 생각이 났는데, 임대경은 예나 지금이나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다.
옛날에도 무표정으로 경쟁심을 불태우면서 계속 날 쫓아오는 게 썩 기분이 이상했지.
지금도 그러했다.
30년의 세월이 흐른 탓인지, 옛날보다 표정이 더 딱딱해졌다.
“하나만 물어도 되겠나?”
“네.”
임대경은 그 두꺼운 눈매를 한 차례 감았다 뜨고는 말했다.
“혹시, 계약은 했나?”
그 말이 나온 순간이었다.
“……!”
“……!”
김이철과 홍윤서의 입이 동시에 쩍 벌어졌다.
파리가 들어갈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에 대해서 특별한 생각이 들지 않았다.
“네.”
그냥 할 말을 할 생각이었다.
“어디랑?”
“MCN이요. 저 같은 인터넷 방송인들 주로 계약하는 회사.”
“회사 이름은?”
“아직 미공개예요. 진행 단계라서 밝히기 조금 그렇네요.”
채널 테슬라에서 당장은 비밀로 해 달라고 요청했다.
초장부터 노골적으로 띄우면 바이럴 느낌이 짙어진다나.
이쪽 계통 미튜버랑 몇 번 합방을 더 가진 뒤, 느긋하게 발표해야 시청자들의 반감이 적다고 했다.
“그렇군.”
임대경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의외로군. 전문 엔터테인먼트 회사와 계약하나 싶었는데.”
“그럴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왜? 실력도 충분하지 않나?”
저 말.
짧은 말에서 나는 임대경이 인터넷 방송 업계를 바라보는 시선을 깨달았다.
‘깔보고 있군.’
엔터 회사에 갈 실력이 있다면, 굳이 발을 담글 필요가 없는 업계로 간주하고 있다.
은근한 실망이 가슴 한편에 자리 잡았다.
하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해 보니까 이쪽이 더 적성에 맞더라고요.”
“이쪽?”
“인터넷 방송이요. 이래저래 편했어요.”
“업계 구조를 생각해 보면 큰 기회를 놓친 셈일 수도 있을 텐데?”
이 사람 봐라.
이미 MCN이랑 계약한 사람 앞에서 다른 엔터랑 계약 안 한 게 실수라니.
저런 말은 안 하는 게 실례 아닌가.
‘뭔가 노골적인데.’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임대경이 원래부터 예의 차리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나도 마음 편하게 말하기로 했다.
“그쪽 업계가 저한테는 더 좋을 수도 있겠더라고요.”
“이유를 들려줄 수 있나?”
“더 자유로울 것 같아서요.”
나는 주위를 둘러보고는 말했다.
“제가 어떤 음악을 하든 제 자유고. 제가 뭔가 실수하더라도 제가 책임지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가 하면, 언제든 쉴 수도 있고. 이런 게 마음에 들었어요.”
“아직은 그럴 때지.”
“네, 나중에는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당장은 엔터 쪽으로는 생각이 없어요.”
“그렇군.”
임대경은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눈을 직시하며 말했다.
“그럼 이쪽 시장에 제대로 발을 들여 볼 생각이 없는 건가?”
어딘가 무거운 말이었다.
딱히 특별한 말도 아닌데 괜히 분위기를 잡는다고나 할까.
하지만 나에게는 딱히 대수롭지 않았기에 편히 답했다.
“당분간은 그럴 것 같아요.”
“잘 알겠네.”
임대경은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우리 회사도 그리 나쁜 곳은 아닌데 아쉽군.”
아하.
나 꼬시려고 오셨구나.
그런데 임대경의 얼굴은 어딘가 안도한 눈치였다.
귀로 들리는 긴장이 많이 풀렸다.
청각에 예민한 나이기에 간신히 눈치챌 수 있을 정도의 차이였다.
“그럼 녹음 잘하고, 음원 기대하겠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자기 할 말을 마치고 아예 돌아가는 건가 싶은 순간이었다.
“혹시 김한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임대경이 툭 던지듯 말했다.
이에 대해서 할 말이라면, 진즉 정해져 있었다.
“한국 최고의 뮤지션이죠.”
“흠.”
그 대답이 불만족스러웠던 걸까.
임대경은 눈을 미세하게 좁게 뜨더니 말했다.
“나보다도?”
“제 개인 취향에는요.”
“그럴 수도 있겠군.”
이 부분은 배려했다.
그런데 질문 하나 받았으니 나도 하나 물어보고 싶어졌다.
“저도 하나 물어봐도 되나요?”
내 말에 김이철이 기겁하듯 눈을 떴다.
심장이 약한 사람이다.
잠시 뒤.
임대경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입을 열었다.
“너무 민감하지 않은 범위 안이라면.”
“그러면요.”
나는 헛기침을 뱉고는 말했다.
“혹시, 대표님은 김한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 순간이었다.
“……!”
임대경의 얼굴에 확연한 동요가 나타났다.
왜 이러지.
어딘가 불편한가.
내가 좀 싫었나 보다.
대충 그 정도로 짐작하는 참인데 임대경이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존경할만한 업계 동료이자, 동시에 좋은 라이벌이었지.”
전자는 맞다.
하지만 후자를 말하자면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아마 그쪽도 나를 그렇게 생각했을 걸세.”
아니다.
딱히 그렇게 생각 안 했다.
“우리 둘은 당시 한국 음악 시장의 주도권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했지. 신곡을 낼 때마다 엎치락뒤치락하기를 반복했네.”
“…….”
이 사람 봐라.
이미 죽은 사람이라고 대놓고 날조를 하고 앉았네.
‘당신, 내가 신곡만 발표하면 무조건 2등이었잖아.’
앨범 판매량부터 2배 이상 차이 났는데 그게 어떻게 경쟁인가.
대놓고 따질 수 없는 게 아쉬울 노릇.
하지만 임대경의 말이 나름대로 재밌기는 하였다.
‘이거 은근히 중독되네.’
내 평가를 남의 입으로 듣는 게 은근히 재밌다.
관점의 차이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사실, 사소한 걸 다 떠나서 임대경이 나를 마냥 싫어하지만은 않았다는 사실 하나로도 만족스러웠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어서 안타깝지만, 다시 또 만날 수 있으면 좋겠군.”
만나고 계십니다.
나는 속으로 작게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오래 사셔야죠.”
“…….”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래, 그럼 조금 뒤에 회의가 있어서 먼저 일어나 보겠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식사라도 하지.”
“네.”
“우리 아들도 잘 부탁하고.”
“네.”
그는 이번에는 정말로 용건이 끝났는지, 김이철에게 한 마디를 남기고는 떠났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딱 자기 용건만 마치고 가네. 영업하러 왔으면 마실 거라도 하나 들고 올 것이지. 쯔쯔.’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일관성 있게 자기 앞길만 바라본다.
하긴, 저래야 임대경이기는 하다.
대충 머릿속에서 지워 버리고 기타나 더 치려는 순간이었다.
“야, 이 미친놈아!”
홍윤서가 내 어깨를 붙잡더니 말했다.
“너, 너, 너, 왜 이렇게 당당해? 듣는 내가 다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나는야 우당탕탕 어디서나 당당한 중경 인재…….”
“아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말했다.
“후, 그건 그렇고 나 진짜 임대경 실물 구경한 거 맞지? 이거 나중에 동아리 애들한테 자랑해야겠다.”
아.
그러고 보니 임대경이 한 번 만난 거로도 자랑할 만한 사람이기는 했지.
* * *
첫 녹음은 그렇게 끝났다.
[녹음 자체는 아주 잘 됐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한 번만 더 오세요. 두 번 더 와도 되고!]김이철은 내게 조금만 더 와 보라고 말했다.
첫 녹음은 여러 번 더 불러 보는 게 좋다나.
‘역시, 만만하지가 않군.’
내심 한 번에 끝날 줄 알았더니, 내가 날 너무 과대평가했나 보다.
역시 현대 음악 시장은 다르다.
나도 더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노력해야겠군.
그렇게 다음 날 저녁.
인터넷에 두 번째 핵폭탄이 떨어졌다.
[우리도 가수다 ep.2]–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