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77
77화
충분히 준비했다.
가히 여름 내내 이번 무대 하나만 준비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지경.
‘역시 기획이 쉬운 일이 아니야.’
사람 관리라는 게 영 쉽지가 않았다.
무대 조율.
각 참가자의 시간과 무대 준비 체크.
홍보까지.
솔직히 중간부터는 영 답이 없다 싶을 정도였다.
‘이런 수십 명짜리 공연도 이런데, 수천 명 규모로 가면 또 얼마나 많은 이해관계가 엮여 있을까.’
새삼스럽게 김진산 사장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들기를 잠시.
나는 호흡을 다듬으며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고즈넉한 주황색 조명을 뒤집어쓴 60명의 관객이 눈에 들어왔다.
숫자가 적당하다.
[플러그인]은 스탠딩 관람객 한정이라면 100명까지도 받을 수 있지만, 공연의 질을 위해서 타협했다.‘어차피 본진은 이쪽이 아니지.’
현장 관객도 소중하다.
그간 우리 방송을 위해 헌신해 준 고정 시청자들을 엄선했으니까.
하지만 이번 무대의 본진은 온라인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오오오오오 방송 켜졌다] [강유미 어딨음?] [김한영 그는 신이야!] [가게 은근히 좁네 ㅋㅋㅋㅋㅋㅋ] [아 나 여기 가본 적 있음]수백 명의 시청자.
앞서 떠들썩하게 예고했던 만큼, 벌써 500명이 넘는 시청자들이 우리 방송으로 몰려들었다.
숫자가 붙자 어느덧 축제 분위기를 연상시킬 정도.
[아니 현장 간 놈들 왜 다 폰으로 채팅만 치고 있어ㅋㅋ 옆 사람이랑 인사하라고ㅋㅋㅋ] [쉽지 않음] [쉽지 않음 ㅇㅈㄹ] [타자가 더 편함] [ㄹㅇㅋㅋ] [두사123456789 행님 어디 계심?]오프라인 60에 온라인 500.
양쪽을 합쳐 벌써 600명을 넘어섰다.
물론, 입장료가 무료이니 유료 공연과 비교할 바는 안 되겠지.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유료 공연보다 나을 수도 있으리라.
왜, 유료 공연은 우리 규모에서는 기껏해야 티켓값 인당 1.5만 원 아닌가.
60명을 꽉꽉 채워 봐야 누릴 수 있는 매출은 최대 90만 원이지.
하지만 온라인은 천장이 없지 않겠나.
‘시작해 보자.’
나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치타는 웃고 있다.”
그 순간 관객들이 일제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누군가는 작게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 말에 왜 웃지.
나는 작은 의문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경주견들이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뒤늦게 달리는 치타가 더 빠르다는 말인데요. 저는 이 말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 치타는 사냥 한두 번 실패하면 죽잖아요. 달릴 때마다 목숨을 거는 거예요.”
이 대본은 전적으로 채널 테슬라의 강도수 사장이 직접 짜 주었다.
토크가 안 되니까 차라리 직접 쓰겠다나.
그가 정색하며 말했다.
[한영 씨는 은근히 방송에서 유행어를 쓰려고 하는데, 안 어울립니다. 특히 그 형님! 형님! 하는 거 하지 마세요. 그것도 맞는 사람이 있고 안 맞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영 씨 캐릭터라면 차라리 차분하게 가는 게 낫습니다. 자기 이미지를 생각하세요!]내 토크가 그렇게 별로인가.
아닌 것 같은데.
나름대로 잘한 것 같은데.
하지만 전문가가 그렇다니 그런 거겠지 뭐.
나는 그런 생각으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런 치타의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서 봤습니다. 여러분에게 큰 감동을 못 줄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 대충 그렇습니다. 치타는 웃고 있습니다. 김한영도 웃고 있습니다. 유감입니다.”
순간 관객들 사이로 작게 웃음이 번졌다.
왜 웃는지 잘 모르겠다.
오프닝 멘트는 이만하면 됐다.
나는 원래 말보다는 음악이 더 편한 성격이니까.
“첫 곡을 들려 드리겠습니다.”
이번 무대를 앞두고.
내가 어떤 곡을 들려주면 좋을지 많이 고민해 봤다.
그리고 결정했다.
“별빛 아이의 오프닝, 별바라기입니다.”
가장 유명한 곡을 부르기로.
‘이게 맞아.’
내 방송의 정체성이 이번 첫 곡에서 드러날 터.
누구든 자기가 부르고 싶은 곡을 제약 없이 편하게 부를 수 있어야 한다.
격식이나 분위기 같은 것에 사로잡히지 않고, 편하게 말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모범을 보여야 한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어느 날 내게 찾아온 검푸른 고래, 불가사리와 함께 하늘을 나는 꿈.”
* * *
엄밀히 말해서, 김한영이 시도한 방송 포멧은 흔한 포맷이었다.
그냥 흔한 것도 아니지.
널리고 널렸다.
음악 잘하는 사람을 초대해서 무대를 꾸린다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던가.
어렵다면 어렵지.
하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발상이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왜 반응이 잘 없는가.
그 이유를 말하자면, 생각보다 답이 간단했다.
[왜 굳이 이걸 봄?]잘하는 사람이 더 널린 탓이었다.
음악을 잘하는 사람은 많다.
시대가 시대이다 보니 바닥의 자갈처럼 깔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특별함이 필요했다.
시골 하늘에 별이 촘촘히 깔려도 금성만큼은 한눈에 들어오듯, 단번에 시선을 빼앗는 특별함을 가진 사람이 필요했다.
선봉장이라고 말해도 좋으리라.
그 자체로 시선을 앗아가는 특별함.
이것을 가진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지금, 무대 위에 그런 사람이 서 있었다.
“내 귓가를 간지럽히는 네 상냥한 목소리. 잘 자요. 내 아이. 내일이 되면 다시 함께 구름 바다 위에서 노를 저어요.”
무난한 발라드였다.
그 누구라도 부를 수 있는 발라드.
연주가 특별히 어려운 것도 아니고, 그렇게까지 특별한 곡도 아니다.
미튜브에 검색해 보면 같은 노래를 부른 사람이 수백 명은 쏟아질 정도로 널리디 널린 곡.
하지만 김한영이 부르면 달랐다.
무엇이 다른가.
모르겠다.
자못 사람의 시선을 주목하게 만드는 끼가 존재했다.
말로 풀어 설명하기 전에 귀로 이해하게 만드는 그런 끼였다.
[감미롭다.] [되게 안정적인 맛이 있어.]시청자들도 김한영의 음악을 딱 정의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뭔데 눈을 뗄 수가 없냐.]원래 가수의 끼라는 건 그런 것이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다.
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자연히 알게 되기 마련.
“감사합니다.”
시작은 그러했다.
불과 두 곡을 부르는 사이 모여든 시청자가 어느새.
[1,492명 시청 중.]거진 1,500명에 달했다.
한대, 이중 평소 김한영의 방송을 봐 왔던 사람은 불과 500명이 안 되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1,000명은 무엇인가.
강유미라는 이름을 듣고 무심코 찾아온 사람들에 불과했다.
하지만.
“가장 보잘것없는 이 밤에 나는 아무것도 아닌 내가 서러워 무릎을 끌어안고 울었다. 사는 게 아닌 살아가는 것 같은 하루가 싫어 듣는 이 없는 전화를 붙잡고 혼잣말을 반복했다.”
김한영의 목소리에는 그런 사람들조차 제자리에 붙잡아 두는 마력이 존재했다.
[뭔 방송을 끄질 못 하겠네 ㅅㅂ] [아 ㅋㅋㅋㅋ 너도?] [야나두!] [↑ 언젯적 드립]일단 붙잡아 두었다면 그다음은 멀리 갈 것도 없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좋은 무대가 많이 남았으니 계속해서 화면 고정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일정이 끝난 뒤에는 특별한 무대와 게스트를 더 준비했습니다.”
완만하게 바톤을 넘기는 정도로 충분했다.
“휘휘 휘파람 불며 걷는다. 바닥에 깔린 아스팔트마저 즐거워 싱글벙글 웃는다. 지나가다 마주친 고양이마저 나를 축복해 주는 것 같다.”
기복이라고는 전혀 없이 안정적인 무대를 선보인 조은솔.
“I’m the demon with a glass hand. I know how to ruin everything. You better run run run run away before it’s too too too too late.”
가장 세련된 요즘 음악을 작정한 듯 보인 성민아.
[저게 뭔 악기임?] [내도 몰러]김예담.
“국악, 많이 사랑해 주세요!”
그리고 홍윤서.
[좀 슬리퍼 좀 벗어!!!!!!!] [맨날 슬리퍼야!!!!] [저놈의 반바지ㅣㅣ이이이ㅣ이ㅣ이ㅣ이이] [내 누ㅜㅜㅜ우우ㅜㅜ우ㅜ운] [집에 옷이 저것밖에 없냐ㅏㅏㅏㅏ]이어서 깜짝 무대로 출연한 한윤태 사장.
[생각보다 졸라 잘하는데?] [ㄹㅇ] [사장님이 힘을 숨김]또한, 오지.
[오늘은 머리 안 깎네] [ㄹㅇ 이 정도 되면 예의상 눈썹이라도 깎아야 하는 거 아니냐]전체적으로 라인업이 좋았다.
엄청나게 특별한 사람은 없지만, 그렇기에 부담 또한 없다.
여기에 딱 한 곡을 연주하고 사라진 임선우까지.
[????] [??????????] [선우가 왜 나와???] [클립 땄지?]전체적으로 나무랄 게 없는 무대.
그리고.
오늘 밤의 하이라이트.
“안녕하세요. 강유미입니다.”
강유미가 등장했을 때 이 모든 빌드업이 끝내 절정에 치달았다.
[아 ㅋㅋㅋㅋ 기다리고 있었다고 ㅋㅋㅋ] [뭐야 ㄷㄷㄷㄷㄷ 겁나 아름다우시네 ㄷㄷㄷㄷㄷㄷㄷㄷ] [ㄹㅇ 진짜로 섭외했네?] [김한영은 진짜다] [게스트 섭외에 너무 진심]말은 좋다.
하지만 정리하자면 근본이 없기도 했다.
음악 방송인.
대학교 동아리 사람들.
격투 게임 방송인.
전직 애니메이션 노래 전문 가수.
엔터테인먼트의 후계자.
국악 엘리트.
공연장 사장님.
코드가 없다 못해 도저히 감을 잡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김한영 방송의 색채가 뚜렷해졌다.
[근본이 없네] [ㄹㅇ 근본 없자너 ㅋㅋㅋㅋ] [뭔 가챠 돌리듯 사람들을 데려왔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데 은근 중독되]아무나 나와서, 부르고 싶은 곡을 부른다.
무근본.
무지성.
그게 곧 김한영 방송의 정체성이었다.
“안녕하세요. 다시 한번 김한영입니다. 미발표곡 하나 몰래 들려 드릴게요. 조만간 음원으로 발표할 곡입니다. 원래 아직 들려드리면 안 되는 건데, 저희 사이에 안 되는 게 어딨어.”
그렇게 마지막 곡에 다다랐을 무렵.
[3,320명 시청 중]이번 방송이 성공이라는 건 그 누구도 의심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후원액: 5,495,500]상업적으로도 그러했다.
* * *
온갖 고난과 역경이 함께했던 공연이 끝났다.
그리고 이에 대한 내 소감은.
‘짜릿해. 흥미로워. 무대가 최고야.’
더없이 신났다.
[구독자 수: 11.3만]불과 하루아침 사이에 구독자가 1만 명이 붙었다.
이게 말이 되는가.
놀랍게도 말이 돼 버렸다.
어제 방송을 보러 들린 사람들이 거의 다 구독을 누른 모양.
하물며 이것조차도 아직 과정에 불과하다는 게 중요했다.
‘흐름에 오른 건 확실하고, 이제 이걸 어떻게 더 부풀리냐가 남았는데.’
일단 포맷의 가능성은 확인했지.
강유미의 힘이 컸겠지만, 후원액을 기준으로 봤을 때 70%는 다른 참가자의 무대에서 왔다.
‘방송의 양보다는 질을 올리는 게 맞아.’
확신이 들었다.
그렇기에 어떻게 하면 질을 올릴 수 있을까 고민이 들어 나직이 한숨을 흘린 순간이었다.
“흐으음.”
“왜 그래?”
고희범이 물었다.
“아니, 조금 아쉬워서.”
“뭐가?”
“이번 무대 영상 올리는 거. 그리고 앞으로 방송 올리는 것도.”
지금까지 해 왔듯 현장에서 방송을 진행한 그대로 올려도 되겠지.
하지만 한 차례 다듬을 필요성이 있었다.
‘슬슬 필요한 순간이 왔나.’
그동안 자본의 문제로 애써 외면해 왔던 게 있었다.
“사운드 전담해 줄 사람 한 명 구하자.”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