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81
81화
음원.
한 뮤지션이 살아가면서 남길 수 있는 음악의 정수.
그런데 근래 들어서는 시장에 한 변화가 나타났다.
누구나 손쉽게 만들 수 있다는 것.
시장이 온라인 중심으로 옮겨간 덕일까.
레코딩에서 믹싱, 유통까지 50만 원에 해결해 주겠다는 업체까지 나왔지.
하지만 옛날에는 이게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그거 아세요? 80년대만 해도 곡 하나 내는 데 한 세월이었던 거.”
나는 마이크에 입을 대고 시청자들을 향해 말을 이었다.
“돈 열심히 모으는 건 둘째치고, 일단 기획사 눈에 띄어야 뭐가 되든 말든 했으니까요.”
실력이 있어도 기획사의 눈에 들어와야 앨범을 낼 수 있었다.
혼자 공들여서 만들어 봐야 의미가 없다.
팔아 준다는 곳이 없으면, 판로를 뚫는 게 불가능에 가까웠으니까.
이게 옛날과 지금의 차이였다.
“요즘은 음원만 준비하면 혼자서도 얼마든 만들어서 인터넷에 공유하고 그러잖아요. 세상이 되게 좋아졌죠. 희범아, 안 그래?”
“응? 그렇지.”
멍하니 화면만 바라보고 있던 고희범이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눈을 게슴츠레 뜨며 말했다.
“그런데 너는 왜 말을 옛날 썰 풀 듯하냐.”
“할 수도 있지. 내 썰이니까. 왜?”
“왜는 개뿔이.”
고희범은 눈을 따지듯이 뜨더니 말했다.
“야, 인마, 너 음악 시작하고 아직 반년도 안 됐잖아.”
흠.
날카로운 지적이다.
나는 골똘히 고민하다가 말했다.
“내가 김한석이니까.”
“앞에 중경대 세 글자 붙이라고 제발! 시청자님들이 오해하잖아!”
고희범이 버럭 외친 순간이었다.
[또 또 또 김한석에 몰입한다 ㅋㅋㅋㅋㅋ]시청자들이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저놈의 컨셉질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맨날 중경대 빼놓고 말하기 ㅋㅋㅋㅋㅋㅋㅋㅋ] [지난 방송에서는 새어 보니까 14번 빠뜨렸더라 ㅋㅋㅋ] [저거 백퍼 고의다 ㅋㅋㅋㅋㅋㅋㅋ]저게 재밌는가.
영 공감이 안 되는 상황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고희범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어메이징 스펙타클이다.”
저건 또 무슨 말이지.
이상한 말을 또 혼자 만들어서 중얼거리고 있다.
가관이다.
“현재 발언을 무효로 하고 고희범의 입을 세 턴 동안 봉인한다”
그렇게 뭐라 화제를 돌려나 볼까 분위기를 재는 순간이었다.
[음원 사이트에 올라왔다!!!]어느 시청자가 외쳤다.
* * *
연이어 그가 채팅창에 외쳤다.
[지금 멜로랑 아이뮤직에 올라왔음]아.
때가 됐다.
오늘 안에 업로드될 예정이라고 했는데, 지금 막 음원 사이트에 곡이 등록됐나 보다.
“어디 보자.”
일말의 기대감을 품고 마우스를 딸깍여 아이뮤직에 들어가자, 아까 그 시청자가 말했던 그대로였다.
음원이 첫 페이지 신곡 추천 리스트에 걸려 있다.
그런데 그냥 등록만 된 게 아니라, 큼지막한 배너가 걸려 있었다.
[장서균 음악경연대회 10주년, 그 영광의 주인공은?]문구 아래로 찍힌 수상자 단체 사진까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눈에 박힐 법한 광고였다.
원래 이런 마이너한 대회는 홍보가 따로 안 들어간다고 하지 않았나.
따로 이벤트가 들어간다는 고지는 못 받았는데.
‘10주년이라고 힘을 좀 줬나 보네.’
그런 생각을 하며 마우스를 몇 차례 더 누르자 이내 앨범 페이지로 연결되었다.
[제10회 장서균 음악경연대회] [장르: 인디, 가요] [기획사: 장서균 음악 재단] [앨범 분류: 컴필레이션]그 페이지를 본 순간이었다.
정보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 순간적으로 온몸에 확 와닿았다.
‘드디어.’
내가 음원을 내기는 냈구나.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아무리 먼 옛날에 정규 앨범을 몇 장이나 내 봤다고 한들, 들뜨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
그야 음원이니까.
각별한 의미를 품을 수밖에 없는 게 음원이니까.
[만 원 후원!] [김한영 축하해! 김한영 축하해! 김한영 축하해!] [5천 원 후원!] [그 하꼬 같던 김한영이 맞냐? 김한영은 정말 웅장이다. 기타가 전설해진다.] [3만 원 후원!] [지금 들으러 갑니다] [천 원 후원!] [우가수 다음편은 음원 발표로 끝나겠네 ㅋㅋㅋㅋㅋ] [2천 원 후원!] [아 ㅋㅋㅋㅋ 스포하지 말라고 ㅋㅋㅋㅋ] [천 원 후원!] [뻡적 대응하겠습니다]시청자들 또한 벌써 축제 분위기.
나는 애써 호흡을 다스린 뒤, 마우스를 드래그해 설명란으로 눈을 돌렸다.
[앨범 소개] [장서균 음악경연대회가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했다.현시대의 한국 가요 시장을 넘어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새로운 음악을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만나 보자.
올해도 걸출한 실력과 통통 튀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신인이 대거 등장.
심사위원으로 장서균 싱어송라이터가 직접 등장하며 평가에 심혈을 기울였다.]
두근거린다.
단순히 설명 페이지를 읽고 있을 뿐인데, 뭐가 이렇게 기쁜가.
숨이 가쁠 정도로 기쁨이 치고 올라왔다.
[Track 1. 바게트/김한영]심지어 1번 트랙이 내 곡이지 않나.
그 밑으로 심사위원들의 평가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귀재가 등장했다.] [김한영은 훌륭한 연주자이기도 하나, 동시에 본선에만 자기 곡을 세 곡이나 올린 작곡가이기도 하다. 향후 그의 행보에 주목해 보자.] [옛 레트로 시대의 감성을 가지고 현시대의 음악을 풀어냈다. 그야말로 클래식의 재해석이라고 할 수 있겠다.] [확신할 수 있다. 김한영은 유명해질 것.]이런 대회가 으레 그러하듯 후하기 짝이 없는 평가들이었다.
하지만 기쁘다.
‘아, 이거 나쁜 습관인데.’
입꼬리가 절로 당겨진다.
빈말이라도 칭찬을 들어서 기쁜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사실, 나는 이번 생에 들어 음원을 내는 데 큰 의미를 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음원보다는 방송에 집중해도 대중에게 충분히 어필할 수 있으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지.
하지만 실패했나 보다.
‘이걸 어떻게 안 기뻐해.’
마음이 기뻐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그래, 나는 또다시 한 번 출사표를 던진 셈이었다.
‘어디 한번 들어나 볼까.’
그렇게 마우스를 누르려는 순간이었다.
‘아.’
손가락 끝이 허공에서 멈췄다.
이거 저작권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했나.
방송 중 플랫폼 음원을 바로 재생하면 안 된다고 했지.
하지만 상관없다.
‘연주 정도는 내가 직접 하면 그만이지.’
오늘은 그 정도는 해도 되는 날이니까 말이다.
달그락.
나는 어느새 전우가 된 기타를 손에 쥐며 말했다.
“그냥 해 보는 말인데요. 열심히 만든 음원이니까 시청자님들도 한 번쯤 들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순간이었다.
어느 시청자가 대뜸 찔러 들어왔다.
[음원 사달라고?]“아뇨, 꼭 그러지는 않아도 괜찮아요. 그냥 들어 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아 ㅋㅋㅋㅋ 어림도 없지.] [여기서 영업을?]뭔가 또 오해가 생긴 것 같다.
나는 황급히 말했다.
“안 사도 괜찮아요. 스트리밍도 괜찮으니까 그냥 들어 주세요.”
[ㅋㅋㅋㅋㅋ 우리가 김한영 말을 들을 것 같음?] [나는 나보다 약한 사람의 말은 듣지 않는다.] [조금 더 간곡히 부탁해 보라고 ㅋㅋㅋ] [어이, 김한영, “성의”라는 걸 보여 봐라]이 사람들, 사람 말 더럽게 안 듣네.
즐기고 있군.
유감이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네, 지갑 싹싹 털어서 결제해 주세요. 가능하면 주변 사람들한테도 널리 알려 주세요. 저도 차트 한 번 정복해 보고 싶네요.”
알 바 있나.
까짓거 내 방송인데 내 음원 좀 들어 달라고 부탁 좀 할 수도 있지.
싫음 말고.
[ㅋㅋㅋㅋㅋㅋㅋ 드디어 본심을 드러냈군]하지만 그 말에 시청자들은 즐거운 듯 한결 더 날뛰기 시작했다.
[자본주의에 미친 괴물!] [하지만 그런 솔직한 자세 싫지만은 않아] [딱, 딱히 너를 위해 사 주는 건 아니라고] [김한영, 너는 가식보다 허세가 어울려] [이럴 때는 결제하면 된다고 생각해] [아 ㅋㅋㅋㅋ 딱 한 번만 속아 주는 거라고 ㅋㅋㅋㅋㅋㅋ] [닥치고 내 돈 가져가!]어느 쪽 장단에 맞춰 줘야 할지 모르겠네.
청개구리들도 아니고.
나는 눈을 깜빡이기를 잠시. 말로 뭔가 설득해 보기를 포기했다.
굳이 말로 할 필요 없겠지.
“기념으로 랜선 공연이나 한탕 뛰어 보죠. 오늘은 밤샘할 겁니다. 치킨 시키실 분들은 미리 시키세요.”
이건 자축 공연이다.
음원을 낸 게 기뻐서 여는 자축 공연.
냈다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둘 뿐, 성과는 기대하지 않았다.
큰 기획사의 신곡이 홍수같이 쏟아지는 요즘 세상에, 곡을 낸들 차트를 치고 올라가기는 어렵겠지.
‘그래도 음원을 내니까 좋기는 하다.’
딱 그 정도의 감각이었다.
그래,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 * *
이변이 일어난 건 그날 저녁부터였다.
[바게트/김한영 new!]저녁 11시 무렵.
아이뮤직 차트 150위에 김한영의 음원이 고개를 드러냈다.
아직은 썩 미묘한 순위.
150위는 인지도가 상당히 낮은 뮤지션이라도 신곡을 내면 가까스로 고개를 들이밀 때가 많은 순위였다.
사이트 대문에 이벤트가 걸렸으니까 순위권 진입은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수없이 많은 신곡이 150위 턱걸이를 했다가도 1시간만 지나면 사라지기 마련.
하지만.
김한영의 신곡은 내려가지 않았다.
[148위 – 바게트/김한영 ↑]오히려 순위가 올라갔다.
여기까지는 단순히 우연이라고 볼 수 있는 일.
하지만 45분이 더 흘렀을 때.
우연은 이제 우연이 아니게 되었다.
[139위 – 바게트/김한영 ↑↑]140위를 넘어섰다.
여기서부터는 요행으로는 넘어서기 어려운 순위.
확실한 팬층이 받쳐 줘야 조금이라도 버틸 만한 영역이었다.
하지만 이 부분이 핵심이었다.
아이뮤직의 차트 알고리즘은 스트리밍보다는 음원 구매에 가중치가 쏠려 있었다.
그것도 무려 30배의 차이.
그 덕분일까.
[136위 – 바게트/김한영 ↑↑↑]김한영의 신곡은 좀처럼 밑으로 내려올 줄을 몰랐다.
어느 순간 멈춰서기는 했다.
[135위 – 바게트/김한영 (=)]추가 화력이 없는 것.
하지만.
화력이란 끌어오면 그만인 일이었다.
로켓에 추진제가 단계별로 붙듯 이 단계에 어느 누군가가 혜성처럼 동참했다.
[김일용(@WORKDRAGONKIM)] [평소 주목하던 신인이 마침내 신곡을 발매했습니다.]김일용.
한 차례 김한영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적 있는 연예인이었다.
그가 SNS에 대놓고 홍보글을 올렸다.
그 한 명만이 아니었다.
[강유미(@StrongUandMe) [누가 앨범에 나타났게요?]김한영에게 빚을 진 뮤지션, 강유미도 동참했다.
여기에 김이철의 지인 한둘도 동참했다.
[오늘의 선곡] [님들 이거 아직도 안 들어봄?]더불어 장서균도.
[부끄럽지만 제 이름에서 비롯된 음악경연대회의 컴필레이션 앨범이 나왔습니다.]여기에 테슬라 소속으로서, 평소 김한영에게 관심을 품었던 어느 인터넷 방송인까지.
[오, 우리 스앵님들, 이거 들어보셨습니까예?]순간적으로 화력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단순히 화력이 몰리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음악이란 자고로 가장 먼저 곡이 좋아야 밀물을 붙잡을 수 있는 법.
그리고.
[오 ㅋㅋㅋㅋㅋ 노래 좋음.]이건 김한영이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
[우가수 나왔던 애네] [이거 음원 나옴?] [이야, 확실히 음원은 다르다] [난 라이브가 더 좋은 것 같은데?] [ㅋㅋㅋㅋㅋ 한번 올려 보자] [무한 반복재생 중임] [이게 왜 순위 오름?]난데없이 새벽 빈틈을 타고 리스너들이 새로운 떡밥을 잡아챘다.
이게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124위 – 바게트/김한영 ↑↑]김한영의 신곡이 새로운 추진력을 얻었다는 것.
한 번 들어온 사람을 계속 묶어 두는 힘이 있기 때문일까.
오른 순위는 좀처럼 떨어질 줄을 모르고 계속해서 위로 진격했다.
[121위]올랐다.
[115위]오르고 또 올랐다.
[108위]끝을 모르고 올랐다.
그렇게 아침 해가 뜰 무렵이 되어 최종적으로 달성한 순위는.
[48위 – 바게트/김한영 HOT!]차트 50위 진입.
기획사의 힘을 빌리지 않은 신인의 순위라고는 믿기지 않는 순위였다.
물론, 새벽 시간이라는 이점이 있었다.
또한, 스트리밍보다 다운로드 수가 따라 준다는 점 또한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사하라 사막 나비의 날갯짓이 될 만한 기록.
“……홀리몰리 과카몰리.”
고희범이 질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