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85
85화
“시청자분들께 맡겨 보자고요?”
정셰프의 시선이 흔들렸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 웃으며 답했다.
“네, 시청자분들한테 맡겨 보는 게 어떨까 싶어요.”
사실, 결정이 서투른 결정권자란 어딜 가나 있는 존재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러했다.
단기간에 성장한 중소기업들은 거의 다 그렇지 않나.
‘선택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잘 모르지.’
이건 자연적인 섭리였다.
업계가 안정화가 안 될수록 어쩔 수 없는 일.
메가 무비도 그러했다.
아무리 100만 미튜버라며 큼지막한 타이틀을 걸고 있지만, 그 본질은 업력 3년조차 못 채운 신생 기업.
그렇기에 깔끔한 운영이라는 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미숙한 게 당연했다.
‘그냥 무작정 반려만 때리면 점차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고 착각하는 사람도 있으니.’
물론, 정셰프가 그런 사람일지 아닌지는 모른다.
하지만 대놓고 지적할 생각은 없었다.
‘나 같은 신인이 지적하면 화만 나겠지.’
정면으로 부딪치지 말자.
이럴 때는 대화의 흐름 자체를 다른 방향으로 유도하는 게 정답이리라.
나는 그 정도의 생각으로 말을 이었다.
“기왕 하는 프로젝트잖아요. 조금 더 규모를 키워서, 아예 시청자분들에게 투표를 맡겨 보면 어떨까 해요.”
그게 시청자에게 선택권을 넘기는 것이었다.
네가 정하는 게 아니다.
나도 아니다.
프로젝트 자체를 시청자에게 넘겨 보는 거다.
자, 어떻게 대답할 테냐.
“으음.”
정셰프는 턱을 짚고 고민하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방식이 될까요?”
“대본과 더불어 곡을 몇 개 선정하는 거예요.”
기다렸던 시나리오가 시작됐다.
나는 이 대화가 서로에게 좋은 방향으로 풀리리라는 걸 직감하며 말을 이었다.
“영상 제작 과정까지 콘텐츠로 만드는 거예요. 제가 곡을 만들면 그걸 시청자 투표에 맡기고, 가장 반응이 좋았던 곡을 영상으로 만들어서 올리는 거죠.”
“음, 솔깃하기는 한데요.”
정셰프는 몸을 소파에 깊게 기대며 말했다.
“이런 시도를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조금 파격적이기도 하고.”
콘텐츠의 성패에 확신이 없군.
포기할까, 아니면 방향을 바꿔서 다시 한번 접근해 볼까 고민하는 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요즘 인터넷에 보면 인터랙티브 무비라고 있지 않아요?”
줄곧 가만히 앉아 있었던 고희범이 입을 열었다.
“그 뭐지, 시청자들의 선택에 따라 향후 전개가 달라지는 그런 작품들이요. 되게 재밌게 봤었는데.”
갑자기 잡담으로 빠졌다.
아이고,
본론에만 집중해도 여유가 없는데, 여기에서 이야기가 벗어나는가.
‘희범아, 아니야. 이거 아니야.’
네가 미튜버들한테 은근한 팬심을 품은 건 알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야.
속으로 쓴 물을 삼킨 찰나였다.
“아, 저도 최근에 하나 재밌게 봤어요!”
정셰프의 시선이 반짝였다.
그가 수상쩍으리만치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넷플레이에 올라온 거 있잖아요.”
“[서바이버vs디재스터]!”
“맞아요. 그거!”
그런 작품이 있었나.
모르겠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 작품을 본 듯했다.
나는 의아한 마음에 물었다.
“그게 뭔데?”
“이야, 이걸 또 본 사람이 여기 있었네, 정글에 조난된 사람이 시청자들이 선택하기에 따라서 행동을 바꾸면서 살아남는 건데, 엄청 재밌음.”
“그렇죠. 어떻게 안 보나요. 그런 띵작을.”
심지어, 굉장히 재밌게 본 눈치.
고희범이 희희낙락한 목소리로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진짜 진짜 진짜 재밌었죠. 주인공이 7일 차까지는 진흙쿠키 먹으면서 생존하다가, 8일 차에 식중독으로 죽었잖아요.”
“되게 아까웠죠. 이틀만 더 버텼으면 탈출이었는데. 아, 근데 그거 아세요? 조만간 시즌2 만든다고 하던데요?”
“오, 진짜요?”
“얼마 전에 발표회가 있었어요.”
“오오.”
“시즌1이 워낙 대박이었잖아요. 할리우드에서 투자해 주겠다고 붙었어요. 시즌2부터는 제작 예산 팡팡 늘려서 본격적으로 가 볼 생각이더라고요. 로또 터졌죠.”
갑작스러운 잡담이 시작되었다.
이쪽이 뭔지 잘 모르는 나로서는 끼어들기 어려운 잡담.
전형적인 매니아들의 대화라고 할 수 있었다.
“크, 맞아요. 요즘 이런 게 부쩍 늘어나던데, 한국 감독들은 왜 안 하나 몰라. 우리 고 편집자님 생각은 어때요?”
화기애애하다.
두 사람의 얼굴에서 싱글벙글 웃음이 떠날 줄 몰랐다.
분명 비즈니스 관계로 만난 두 사람이거늘, 아주 조금의 계산조차 없이 편하게 대화를 주고받는다는 게 보였다.
“시장이 작아서 그런 거 아닐까요? 아무래도 만들었다가 실패하면 부담이 크잖아요. 워너 시스터즈도 그렇고 투자에 민감한 사람들이 많으니.”
“하기야, 12화까지 생각하고 만들었는데 8화에 주인공이 죽어 버리면 낭패죠.”
“죽었다고 진짜로 거기에서 시즌을 완결 내 버린 것도 대단하고요. 저였다면 매출을 생각해서라도 질질 끌었을 텐데.”
“감독의 결단이 대단했죠. 어쨌든 그 덕분에 명작으로 남은 거 아닐까요? 억지로 살렸어도 잘 팔렸을 것 같기는 한데.”
분명히 돌아간다.
본론과는 돌아가도 한참 돌아가는 대화였다.
하지만 이 대화를 듣고 있노라면 뭐라고 해야 할까.
‘뭔가 되는 것 같은데?’
좋은 방향으로 차근차근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기를 잠시.
‘그렇구나.’
머릿속으로 정답이 떠올랐다.
‘영화광이라 이 말인가.’
정셰프의 본질이었다.
그는 초보 사업가지만, 동시에 열렬한 영화광이기도 한 것.
고희범의 난데없이 튀어나온 말이 그의 시네필로서의 면모를 자극해 버렸다.
“이렇게 또 업계 동료를 만날 줄이야. 후, 편집자님이 조금 치시네요.”
“기본 소양이죠.”
“아니지.”
그다음 순간이었다.
“이럴 게 아니라, 저희도 한번 해 보는 거 어떨까요?”
끝내, 정셰프의 입에서 먼저 해 보자는 말까지 튀어나오고 말았다.
“오, 진짜로요?”
“답답하면 네가 뛰라는 말 있잖아요. 다른 감독들이 안 하면 내가 직접 해야지.”
그다음 순간이었다.
“한영 님! 생각해 보니까 말씀 주신 방식이 좋을 것 같아요. 해 보죠. 아니, 해 주십시오!”
“…….”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방송 포맷 이야기로 설득하려고 했을 때는 은근히 소극적이었던 사람이, 이제는 자기가 먼저 열정적으로 밀어붙인다.
좋기야 좋다.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고, 처음 의도했던 범주로 왔으니 이득이다.
내가 음악을 위해서라면 작은 고집 따위는 미련 없이 포기하듯, 정셰프 또한 영상을 위해서라면 마찬가지인 것.
‘꼭 계산으로 접근할 필요는 없네.’
처음 의도했던 것과는 거리가 조금 멀어진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다.
우리 편집자가 모처럼 한 건 했구나.
그럼 됐다.
나는 곧 생각을 포기하고는, 이어서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훌륭하십니다. 까짓거 한번 해 보죠!”
나도 모르겠다.
가끔은 이성보다 감성이 나은가 보다.
* * *
몇 차례 물밑작업이 일어났다.
또한, 그 과정에서 대대적인 기획 수정이 이루어졌다.
“인터랙티브 무비로 갑시다.‘
선택권이 우리 둘에게서 시청자들에게로 옮겨간 것.
“선택지는 셋 제공할 거예요. 어떤 곡을 연주할지는 한영 님에게 전적으로 맡기겠습니다.”
“곡이 시청자들 마음에 안 들 수도 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그럼 그것 또한 하나의 재미죠. 안 팔린 선택지는 비하인드 클립으로 공개하면 됩니다.”
“콘텐츠가 복사가 되겠네요.”
“바로 그거죠.”
갑작스럽게 프로젝트의 볼륨이 부풀었다.
20만도 안 되는 중견과 100만이 넘는 대기업이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의 팀을 결성했다.
“곡은 전부 한 곡을 만들되, 시청자들한테는 1절만 짧게 들려주는 거예요. 선택한 곡과 전개로 나아가는 거죠. 작업량 부담이 상당할 것 같은데 하실 수 있으실까요?”
“이럴 때 해내야 프로죠.”
“오오오, 좋습니다. 간만에 피가 끓어오르네요.”
소통이 트였다.
원래 쓸데없이 서로 배려하느라 소통의 벽이 세워져 있었는데, 그것이 깔끔하게 사라졌다.
곡을 연주할 때도 마찬가지.
“우선은 이렇게 세 곡을 만들어 왔습니다.”
“벌써요?”
“한번 들어 봐 주세요.”
그렇게 맥스 무비 스튜디오에서 시험차 마련한 세 곡을 공개했을 때.
“……언빌리버블.”
“어메이징 스펙타클.”
그곳 직원들의 반응은 더 검토할 것도 없었다.
테슬라 사장 미팅도 동시에 진행되었다.
“어떤 콘텐츠를 마련하셨나 했는데, 한영 님은 언제나 제 예상을 뛰어넘으시네요.”
“그게 크리에이터니까요.”
“좋습니다. 이만하면 블록버스터군요. 저희 채널 테슬라도 전력을 다해서 보조하겠습니다. 후, 벌써 기대되는군요. 미튜브의 신! 미튜브의 천재! 미튜브의 음악천재!”
학교 과제도 마찬가지.
제출한 과제 기획서를 받은 박정화 교수는 작게 헛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했다.
“내가 지금까지 과제를 내면서 이런 계획표를 제출한 사람은 본 적이 없는데.”
“많이 힘들까요?”
박정화 교수는 오묘한 웃음을 흘리기를 잠시,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할 수 있겠니?”
“해 보고자 합니다.”
“기획과 실제 실행할 때의 무게가 꽤 다를 거야. 막상 시작해 보면 중간에 장애물도 많을 테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답했다.
“장애물을 넘어설 때 성장한다고 믿습니다.”
“푸훗.”
박정화 교수는 작게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했다.
“어쩜, 자신감은 좋네. 나도 기대할게.”
정리됐다.
틀이 반듯하게 깔리자, 순풍을 업은 갤리선처럼 작업이 진척되었다.
작업물을 보내고.
“멋집니다!”
컨펌을 받고.
“그레이트!”
디마에게 넘기고.
“참신한 시도를 많이 하네.”
“어려울까?”
“해 보면 재밌겠다. 그런데 스튜디오 작업이면 나도 집 밖에 나가야 하나?”
식구들에게도 의견을 듣고.
“진짜 어디에서 이렇게 자꾸 멜로디를 뽑아내? 머리 뚜껑을 한 번만 열어 보고 싶다.”
그렇게 복잡한 시간을 보내기를 한참.
드디어 준비했던 날이 도래했다.
* * *
“후우.”
한 차례 호흡을 가다듬기를 잠시.
삑-.
비프음과 함께 화면에 내 얼굴이 나타났다.
나는 시선 처리에 주의하며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천재 싱어송라이터 김한영입니다.”
그 순간이었다.
[김-하] [김한영이 밉다. 김한영이 밉다. 김한영이 밉다.] [엄마! 나도 김한영이 될래!]시청자들이 순식간에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쌓인 시청자들이 찰나의 순간에 500을 넘겼다.
어마어마한 속도.
‘갈수록 가속도가 붙는 느낌이네.’
우리 방송의 충성도가 높다는 건 근래 자주 느끼고 있는 바다.
하지만 이건 참 뭐라고 해야 할까.
다른 방송들에 비해서도 심히 압도적인 수준.
어지간한 20만 미튜버들도 라이브 방송에서는 1,000명 유지가 어렵다고들 하는데, 나는 피크에서 2,000을 넘길 때가 허다했다.
‘2,000명이라.’
너무 가볍게 오른 숫자에 스스로 실감이 안 날 정도.
2,000명.
차트 최상위권을 심심하면 찍는 중견 가수들이, 심혈을 기울여 콘서트을 열어야 동원할 수 있는 숫자다.
하지만 인터넷 방송에서는 어떠한가.
50위 안을 요행으로 찍은 내가 2,000을 동원한다.
‘역시, 이만한 게 없어.’
조만간 1만을 노려볼 수 있지 않을까.
그날이 정말로 온다면, 조금은 자랑스러울 것 같다.
나는 그런 생각을 목울대에 꾹꾹 눌러 담으며 입을 열었다.
“싱어송라이터 김한영이 새로운 도전을 가져왔습니다.”
– 다음 화에 계속 –